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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숙빈 최씨)와 숙종의 첫 만남은 어땠을까? (야사집 수문록 보기)

by 파란토마토 2013. 5. 29.

 

인기 드라마였던 동이 속의 숙빈 최씨와 숙종의 실제 만남은 어땠을까?
궁녀와 지존의 극적인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수문록: 조선 후기의 문신 이문정(李聞政)이 4년 2개월 동안 재위한 경종연간의 역사를 들은 대로 기록한 책.

 

 

최숙빈과 숙종의 첫 만남과 관련하여서도 우리는 역사학적 사실과 진실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흔히 하는 말처럼 남녀 간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최숙빈과 숙종이 처음 만난 때는 숙종 18년(1692)이었다. 이때 최숙빈의 나이는 23세였다. 최씨가 7세의 나이로 입궁한 때가 숙종 2년(1676)이므로, 두 사람은 무려 16년간이나 같은 공간에 살다가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아무리 궁녀의 행동반경이 제한되고 왕과의 접촉이 극히 힘들었다 해도, 한 공간에서 16년간이나 같이 살다 되면 어쩌다 한 번이라도 한쪽이 다른 쪽을 봤거나 혹은 양쪽이 서로를 봤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위와 같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두 사람의 첫 만남에 관한 사료의 내용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사료에 기록된 것과 달리 실제로는 숙종 18년(1692) 이전에 이들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는 것이다. 

이들의 첫 만남을 증언하는 사료는 이문정(1656~1726년)이 지은 <수문록>이다. 이문정은 최숙빈보다 14세가 많은 사람이다. 동지중추부사(종2품, 차관급)를 지낸 이문정은 신임사화(1721~1722년) 이후 학문과 집필에만 전념한 인물이다.

 

▲ 이문정의 <수문록> ⓒ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인현왕후가 폐서인(廢庶人)되고 장옥정이 중전으로 있을 때인 숙종 18년(1692)의 상황을 보여주는 <수문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밤중에 궁궐을 거닐던 숙종은 조명이 유독 화려한 어느 궁녀의 방에 주목하게 되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숙종이 방안을 몰래 엿보니, 웬 궁녀가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그 앞에 꿇어 앉아 무언가를 기원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숙종은 방문을 열어젖혔고, 그렇게 해서 최 숙빈과 숙종이 조우하게 되었다. 

그럼,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숙종이 방문을 열어젖힌 뒤의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을 통해, 우리는 최 숙빈이 그 순간에 얼마나 대담성을 발휘했는지를 알 수 있다. 

 

방문을 열어젖힌 숙종은 "너 지금 뭐하냐?"고 물었다. 당시의 정황을 다룬 이문정의 <수문록>에서는 "선대왕(先大王, 숙종)이 매우 이상히 여겨 그 문을 열고 연유를 물어보았다"고 기록했다.

 


왕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최 숙빈의 '대담성'

 

▲ 최숙빈과 숙종의 첫 만남에 관한 <수문록>의 기록. 한밤중에 잔칫상을 차려 놓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숙종이 묻자, 최숙빈이 자신과 인현왕후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 <수문록>

 

 

 

 

 "선대왕(先大王, 죽은 임금 즉 숙종)이 하루는 밤이 깊어진 후에 지팡이를 들고 궁궐 안을 돌아다니다가 나인들의 방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유독 한 나인(궁녀)의 방만 등촉이 휘황찬란하였다. 밖에서 몰래 엿보니,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한 나인이 두 손을 마주잡고 상 앞에 꿇어앉아 있었다. 선대왕이 매우 이상히 여겨 그 문을 열고 연유를 물어보았다."

 

 

숙종은 좀 '솔직한' 군주였던 모양이다. 평소에도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최측근들에게 숨기지 않았던 듯하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숙종은 그 의문의 방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방문 앞에 다가선 숙종은, 창호지에 침을 묻혔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국왕의 체면을 내팽긴 채 방안을 몰래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방안에서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궁녀가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두 손을 마주잡은 채로 상 앞에 꿇어앉아 있었던 것이다. 남들 다 자는 야심한 시각에 말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숙종은 결국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는 그 궁녀에게 물어보았다.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거냐고. 이 궁녀가 바로 훗날 영조를 낳게 될 최씨였다. 이것이 두 사람의 우연한 첫 만남이었다.

이후의 기사에서 상세히 설명하겠지만, 이날 밤 궁녀 최씨는 폐서인된 인현왕후의 생일을 기념하는 의식을 홀로 거행하다가 숙종에게 우연히 들켰고 그런 모습에 감동된 숙종이 최씨를 가까이 하게 되었다는 것이 <수문록>의 설명이다.

 

한밤중에 누군가가 방문을 열어 젖히길래 고개를 돌려보니 임금의 얼굴이 보인다면, 웬만한 궁녀들은 기겁을 하고 놀랄 것이다. 이런 경우에 임금이 "너 지금 뭐하냐?"라고 물어보면, 아마 말을 더듬거리며 제대로 대답도 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최 숙빈은 마치 사전에 준비라도 해놓은 듯이 매우 침착한 태도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녀는 중전(폐비 인현왕후)의 시녀로서 특별히 총애를 받았습니다."

"너 지금 뭐하냐?"라는 질문에 대해 "네, 저는 지금 뭐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하지 않고, 그는 자신이 인현왕후의 시녀였다며 자기소개부터 먼저 했다. 최 숙빈이 침착성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현왕후와의 관계를 밝힌 다음에 최 숙빈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나갔다.



"내일은 중전의 탄신일입니다. 폐위되어 서궁(西宮)에 계시면서 죄인으로 자처하며 수라를 들지 않으시고 조석으로 드시는 것이라곤 거친 현미뿐입니다. 내일이 탄신일인데 누가 좋은 음식을 올리겠습니까? 소녀로서는 슬픔을 이길 수 없어서 이것을 차린 겁니다. 중전께서 좋아하시는 것들이지만 도저히 진헌할 길이 없어서, 마치 실제로 진헌하는 것처럼 소녀의 방안에 차려놓고 정성을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당시 인현왕후가 죄인이고 장 희빈이 중전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위와 같은 대답은 사실상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인현왕후를 죄인이라고 규정한 사람은 다름 아닌 숙종이었다. 그런 숙종 앞에서 폐비를 두둔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숙종을 비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웬만한 궁녀 같았으면 이런 경우에 자기 부모님 생신이나 기일 등을 들먹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인현왕후의 생일을 들먹인 것은 최 숙빈이 보통 이상의 대담성을 소유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찌 보면 무모하다 할 수 있는 위의 행위를 결코 '무모함'이라 표현하지 않고 '대담성'이라 표현한 것은, 최 숙빈의 행동이 평소에 축적된 고도의 상황 판단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당시 숙종은 '폐비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라'는 서인들의 상소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숙종은 그런 상소들을 무시하곤 했지만, 계속 올라오는 상소문이 숙종의 심경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최숙빈과 숙종의 첫 만남에 관한 <수문록>의 기록. 폐비의 탄신일을 기념하고 있다고 최숙빈이 대답하자, 숙종이 그로부터 감동을 받아 최숙빈을 가까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담은 부분이다. ⓒ <수문록>

 

 

 

최 숙빈은 인현왕후전에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변화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관심을 갖고 있을 만한 사람이었다. 숙종의 질문에 대해 "저는 지금 폐비의 탄신일을 축하하고 있습니다"라고 당돌하게 대답한 것은, '이렇게 말해도 숙종이 진노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기초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상황판단을 했다 해도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폐비에 대한 숙종의 마음이 바뀌고 있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아직까지는 폐비가 죄인의 신분을 탈피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전을 쫓아낸 것은 잘못'이라는 메시지를 임금에게 전달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칭찬을 들을 가능성보다는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큰 일이었다.

결국 최 숙빈의 대담성은 진가를 발휘했다. 숙종은 "죄인의 생일을 기념하다니! 이런 발칙한!"이라고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최 숙빈의 행동으로부터 신선한 감동을 받아 그를 가까이하게 되었다. <수문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임금이 그제야 생각해 보니, 다음 날이 정말로 중전의 탄신일이었다. 느끼는 바가 있어, 그 성의를 가상히 여기시고는 마침내 그를 가까이하셨다."

침방나인으로 바느질 생활을 하던 최 숙빈이 숙종과 친분을 맺도록 하는 데에 기여한 결정적 요소는 위와 같이 최 숙빈 특유의 대담성이었다. 판단력을 실행에 옮기는 에너지인 대담성이 그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 이하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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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에게 껄떡댄 숙종? 실제론 최숙빈이 대담했다 

동이와 숙종의 만남, 실제론 더 드라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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