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을 거리/재미있는 역사

세조의 킹메이커, 신숙주 (조선시대 최고의 King Maker) - KBS 한국사전

by 파란토마토 2011. 7. 30.

[제4회]세조의 킹메이커,
신 숙 주



▣방송 : 2007. 7. 7(토) 20:1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이상호 아나운서
▣연출 : 김현기PD
▣작가 : 윤영수

 


신숙주! 그의 선택이

조선의 왕, 그리고 역사를 바꾼다!

세종부터 성종에 이르는 조선의 전성기!
그 찬란한 시대에
여섯 임금을 모시며 변신을 거듭해온 인물이 있다. 조선 500년사에 걸쳐 지금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
신.숙.주!

그는 처세에 능한 변절자인가?
혼돈의 왕조를 바로잡은 천재관료인가?


"이 나물을 만두 속으로 넣을 적에 짓이겨 넣는 고로 신숙주 를 이 나물 찧듯 하자고 하여 숙주나물 이 라 하였다"

                  이용기 『조선무쌍요리제법』 中


"세종(世宗)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신숙주는 큰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라.' 하셨다."

                                             『문종실록』中


 

1453년 10월 10일(음), 그들의 선택이 조선의 역사를 바꾼다.

그 때 조정에는 조선건국 이래 최대의 피바람이 몰아친다. 단종 1년, 수양대군은 당시의 권력자였던 김종서의 집을 습격하여 그와 아들을 제거한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살생계획에 따라 반대파를 모두 숙청하고, 친동생인 안평대군까지 귀양을 보낸다. 치밀하고, 처절했던 조선 초 최대의 쿠데타, 계유정난! 대권을 거머쥔 수양대군의 뒤에는 시대를 넘어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문제의 인물,
                       
신숙주가 있었다.

수양대군! 명관(明官)을 알아본 최고의 선택 - 외교 전문가, 신숙주!

"신숙주는 곧 나의 '위징'이다"
위징(魏徵)'은 당태종의 참모로서 중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재상이라 불렸던 인물. 수양대군은 세조 즉위 후 신숙주를 '위징(魏徵)'에 빗대어 총애하였다. 그렇다면, 세조의 남자, 신숙주는 누구인가?

"집현전에서 근무하게 되어 숙직할 때에 평소에 보지 못했던 책을 가져다가 남김없이 모두 열람하였다. 어떤 때에는 동료 대신 숙직을 청하여 밤새도록 잠자지 않았다. <연려실기술> 필원잡기 中

그는 세종 때 집현전 8학사였고, 일본에 다녀온 촉망받는 신진 지식인이었다. 또한 몽고어, 일본어, 만주어 등 외국어에 두루 능통한 전문 외교관이기도 했다.

수양대군이 권람에게 중국에 보낼 정관이 될 만 한 자를 물었더니 신숙주를
추천하였다.                               <연려실기술> 연려실기술 동각잡기 中

계유정난을 일으키며, 명나라로부터 왕권을 인정받기 위해 능력 있는 외교 전문가가 필요했던 수양대군! 천재관료 신숙주를 그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우연을 가장하고 의도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하는데...

신숙주! 최고 권력을 향한 최선의 선택 - No.3 수양대군!
수양대군은 왜 계유정난을 일으킨 것일까? 당시 수양대군은 가장 정통성 있는 세력인 단종, 정가의 평판이 좋은 양평대군에 이어 제3세력 이었다. 대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조카 단종과 친동생 안평대군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단종을 보위하며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도 탄탄대로를 걸었을 신숙주. 그는 왜 수양대군과 손을 잡고 시대를 뒤집으려 했을까? 왜 자신을 아꼈던 역대 왕들에게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300년 후, 그의 선택이 비난 받기 시작한다!  

세종부터 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모시며 조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국가경영자 신숙주!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그의 공로는 반대파였던 사림의 시조 '김종직'조차 인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조선 중기를 넘어서면서 신숙주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단종을 몰아낸 후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 송씨를 공신비로 삼았다는 내용이 문헌에 기록될 정도였다. 그러나 신숙주는 세조의 즉위를 도운 다른 공신들에 비해 훨씬 청렴하고, 뛰어난 관료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다.
왜 유독 신숙주가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그를 변절자의 상징으로 만든 것일까?


신숙주 재발견! 역사적 편견 속 가려져있던 그의 또 다른 면모!

1460년, 8000명의 조선군사가 두만강을 건너 여진 정벌에 나선다. 여진족을 괴멸시키며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적이 불시에 조선군 진영을 기습한다. 당시 조선군의 군장이었던 신숙주. 한 밤중에 벌어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그는 가만히 누워서 시를 읊는데...


신숙주는 조선 전기, 문물제도 완성의 총지휘자였다. 한글편찬을 비롯하여 운문, 서예에서 해박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또한 <경국대전>, <동국통감> 등의 법전과 역사서 편찬을 주도하였고, 세조실록, 예조실록의 찬수까지 도맡아 했다. 말년에는 벼슬에서 간절히 물러나고 싶어 했지만 나라의 임금이 놓아주지 않아 죽을 때까지 벼슬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신숙주인 것이다.

 



신숙주는 세조에게 빌붙어서 권력을 잡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진정코 흔들리는 국가를 바로 잡고 싶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