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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몽선습3

[펌] 조선이 생각보다 괜찮은 나라인 이유 1 출처는 미상이긴 한데 여하간에 괜찮은 글 있어서 그대로 옮긴다. 이 분 너무 너무 대단하시다.. 어떻게 이런 학식과 지식과 글솜씨까지... 혹시 문제되면 삭제 예정. 원글자 나타나면 알려주시길. 무엇보다 조선은 무력에 의해 지배되어지는 나라가 아니었다. 동시대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조선의 지배계급은 사적인 무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다. 국가를 운용 유지하기 위해 군사적인 긴장을 이용하지도 않았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해결하고자 군사력을 동원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이익을 취하기 위해 함부로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전쟁을 이유로 민중을 억압하거나 탄압하지도 않았다. 조선의 비교대상으로 언급하는 일본과 비교해보면 그 독특함과 뛰어남이 크게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물론 조선의 양반들에게도 부정적인 부분.. 2013. 2. 7.
[펌] 영조의 업적 - 애민군주이자 실패한 아버지, 영조 탕평책의 태생적인 한계 뛰어난 정치가였으나 실패한 아버지였던 영조 영조 (英祖) [1694 ~ 1776] [1724.08 ~ 1776.03] 조선 제 21대 왕 前 연잉군, 後 왕세제 휘 : 금(昑) 자 : 광숙(光叔) 태어난 곳 : 1694년 9월 13일 창덕궁 보경당 승하한 곳 : 1776년 3월 5일 경희궁 집경당 아버지 : 숙종(肅宗, 조선 제 19대 왕) [1661 ~ 1720] 어머니 : 숙빈 최씨(淑嬪 崔氏) [1670 ~ 1718] ◎정치이념 극단으로 치닫던 당쟁을 해결하기 위해 탕평책을 실시하여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조정을 안정 ◎업적 1740년 : 개성부 행차 때 정몽주의 충절을 기려 선죽교에 비석을 세우는 등 역사상의 충신들에 대한 추존사업을 실시함 1743년 : [수교집록]을 속편함 , [속대전]을 [속오.. 2011. 7. 2.
사도세자, 개혁을 이루지 못한 비운의 세자.. "아바마마, 살려주시옵소서!" 당파에 의해 희생된 비운의 사도세자 출처: 디씨인싸이드 이산갤러리 1735년 1월 21일, 영조는 영빈 이씨에게서 손꼽아 기다리던 원자 선(後 사도세자)를 얻었다. 그리고 영조의 나이로 인해 이듬해인 1736년 3월 15일, 원자 선을 2세에 왕세자로 책봉했다. 세자 선은 2세 때 천(天), 지(地), 부(父), 모(母) 등 63자를 해득할 정도로 조숙했다. 그는 3세 때 부왕과 대신들 앞에서 '효경'을 외웠고, 7세때 '동몽선습'을 독파했으며, 서예를 좋아해서 수시로 문자를 쓰고 시를 지어서 대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10세 때 노론과 소론을 구별하여 두 당파를 비교하기도 했고, 소론이 주도한 바 있는 신임옥사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처럼 어렸을 때부터 영특했던 세자 선은 영조의 나이 .. 2008.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