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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길 거리/귀여운 동물들

나와 인연을 맺은 동물들 2. 국이 된 중닭, 하얀 고양이 살찐이

by 파란토마토 2007. 11. 13.


쫑을 떠나보내고 몇 년 후 잠시 만났던 동물들 이야기.

쫑 이후에는 개 이외의 다른 동물도 가까이 지낸 적이 없다. 이것은 쫑을 못잊어서가 아니라 우리집에서 동물을 키울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쨋든 짧은 인연이나마 적어보자.


2. 어느날 육계장(?)이 되어 돌아온 중닭 한마리.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어디서 얻어온, 아니 선물 받은(?) 닭 한 마리를 잠시 키운 적이 있다. 어머니는 아직 병아리라고 했지만 병아리도 무서워하는 내게 중닭은 병아리가 아니라 닭이었다.;;;

이 사진을 보면 중닭의 개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중닭의 개념: 성계> 중닭? 중계? > 영계 > 병아리

오른쪽에 덩치가 좀 작고, 닭벼슬이 거의 나지 않은 닭이 중닭이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중닭은 보통 닭보다 확연히 크기가 작고, 소리가 삐약도 아니고 꼬꼬댁도 아닌 것이.. 그 중간쯤 되며, 외모는 병아리보다는 성계에 가깝지만 전체적으로 중닭이랑 성계랑은 조금 다르긴 하다.

어머니는 오래 키우면 정들까봐 그랬는지 며칠 지나지 않아 얘를 잡아서 국을 끓이셨다. 학교 다녀오니 닭은 사라지고 국만 남았다는;;; 우리집 식구답게 소심하고 겁많은 어머니는 기르던 닭을 차마 잡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대신 다 손질해준 걸 받아서 요리만 했기 때문에 어머니도 많이 안무서워했던 것 같다.

개미 한 마리라도 죽는 걸 보는 건 찝찝하건만 아무리 잠시라도 집에서 보던 생명을 잡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인정머리랑 개념이 통째로 없었던 나는 그 닭이 죽었다는데도 슬프지도 않았다. -_-;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주 용감했는지;; 무식했는지;; 다 손질된 후, 닭 뱃속의 작은 계란 노른자를 피하지도 않고 본 기억도 난다.

웃긴 것은 닭이 죽었다는데 슬퍼하지도 않았으면서 국은 먹기 싫었다. 어머니가 한 숫갈만 먹어보라고 했는데 끝까지 안먹었던 나도 참 웃기지 않남.ㅋ 한 가닥 남은 의리인가.



3. 하얀 고양이 살찐아... 너무 몰라서 미안해..

그 후 내가 꽤 나이를 먹었을 때 어머니는 식당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우리 식당이 있던 장소가 시골은 아니었지만 옆 마을이 거의 공터 수준이라서 시골이나 마찬가지였다.
- 우리는 그런 곳을 시골이라 말하고, 촌동네라고 해석한다.ㅋㅋ -

우리는 우선 엉성한 임시 구조물을 주방으로 꾸리기 시작했는데, 이 놈의 쥐들이 여간 극성이 아니라서 청소와 위생 유지가 너무 힘들었다. 
- 그래도 우리 어머니가 워낙 깔끔해서 위생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
병적으로 청결에 집착하시는 어머니가 아무리 조심을 해도 워낙 구멍이 많으니 우리는 쥐가 들어올까봐 늘 불안에 떨어야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는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을 못하겠다며 근처 건강원에서 하얀 중고양이 한 마리를 '사'가지고 오셨다. 고양이는 악물 짐승이라며 그리도 무서워하던 어머니가 고양이를 데려오다니. 쥐보단 고양이가 좋은가 보다.ㅋㅋ (어머니가 안사왔으면 이 고양이는 신경통 약용으로 솥에 들어갈 운명이었다.ㅜㅜ) 사람에게 길이 안들어 사납다고 했는데,들고양이로 살던 것을 건강원에서 잡은 모양디다.

지금 생각하니 신기하다. 우리나라 토종 고양이 중에서 흰 고양이는 없는 거 아닌가? 게다가 들고양이로 자유롭게 살다가 사람에게 잡힌 것 치고는 너무 예쁘고 소심했다. 어쨋든 어머니는 그 고양이를 예로부터 전해오던 대표 고양이 이름인 살찐이로 부르기로 했다.

처음에는 살찐이의 안정을 위해 골방의 상자 안에 있게 해주고, 모래상자와 밥만 갖다줬는데, 며칠이 지나자 나를 더이상 적이 아니라고 인식한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손을 뻗어보아도 더이상 피하지 않았고 내가 있어도 밥을 잘 먹었다.

살찐이는 들고양이라기엔 너무 얌전하고 소심했지만 그 녀석의 출신이 들고양이라는 것을 증명하는게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쥐를 기똥차게 잘 잡는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의 크기로 보아 많이 잡아도 6개월인데 살찐이는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만 나면 귀를 쫑긋 세우고 얼음! 자세로 소리의 출처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드디어 '감 잡았다' 싶을 때는 야~옹하고 크게 울었는데 그러면 제 아무리 미친 듯이 뛰고 떠들던 쥐들도 마치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ㅋㅋㅋ




살찐이가 쥐잡는 광경은 정말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징그러웠지만 하도 신기해서 몰래 훔쳐본 바로는) ...


살찐이는 마치 비호처럼 쥐를 잡았는데, 날뛰던 쥐들의 숫자에 비해서 잡은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집에 고양이가 산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온 동네 쥐들에게 다 퍼져서 살찐이가 우리집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 우리집 근처에서는 쥐꼬리도 찾을 수 없었다.ㅋㅋㅋ

나중에 살찐이가 완전히 마음을 열었을 때는 아침마다 우리가 자는 방 현관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다가 방문을 열면 "야~옹"하고 울면서 우릴 따라다녔다. 내가 살찐이를 쓰다듬어 주면 살찐이는 나를 핥아주려고 노력했는데 이게 고양이의 그루밍(털고르기) 개념인지도 몰랐던 나는 살찐이의 그런 행동이 징그럽기만 했다. 고양이 자체도 아직은 무서웠고 까칠한 혓바닥의 감촉도 소름끼쳤고, 쥐를 잡던 애를 가까이 하기가 꺼려져서 살찐이가 나한테 오면 나는 늘 도망다녔다.

나와 두번째로 인연을 맺은 동물, 살찐의 아기들

살찐이가 낳은 새끼들

살찐이는 우리집의 쥐를 다 쫓아주고, 동네 들고양이 숫놈이랑 바람이 나서 애까지 낳아줬지만 우리집에서 끝까지 살지 못하고 결국은 쫓겨났다. 아니 가출한 건가?

살찐이가 자꾸만 모래그릇이 아닌 바닥에 똥오줌을 싸서 화가 난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고 야단을 심하게 쳤던 어느날, 살찐이는 평소처럼 외출을 나가서는 집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ㅡ.ㅜ

나중에 고양이에 대한 지식을 좀 더 찾아보니 살찐이한테 참 미안했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깨끗한 새 모래가 필요한 지도 몰라서 모래를 갈아준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_-;

살찐이는 정말 착하고 순한 고양이였는데 우리가 너무 무지해서 참으로 푸대접을 받고 살았다. 무서워서 제대로 만져주지도 못했으니 ㅡㅡ;;;

내 나름대로 휴머니스트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동물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보니 미안한 기억 밖에 없군. -_ㅡ;;



살찐아!!
너도 이젠 무지개 다리를 건넜겠지..

미안하다!!
다음에 꼭 우리집으로 다시 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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