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을 거리/블로그 이야기

펌질/불펌에 대한 단상 (부제: 절대바통 놀이 까칠맨님 바통터치)

by 파란토마토 2008. 1. 29.

이 글은 까칠맨님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저한테 너무 어려운 숙제를 주신 까칠맨님... 미워요.ㅠㅠ



음......
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원 글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군요.

일단 원 글의 개념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자신이 100% 쓴 것만이 원글이냐?'
고 물어보시면 저는 그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100% 순수한 창작물이 몇 개나 될까요? 별로 없을 것 같거든요. "Nothing New Under the Sun" 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의미론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이 잣대를 어디까지 적용해야하는가"하는 화용론적인 부분에서 접근해야할 것 같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마찰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네요. 음악가들의 표절논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원 글의 개념은 '다른 곳에서 상당 부분을 인용했더라도 자신만의 생각을 보태어 정리한 것'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이런 경우라 하더라도 인용한 부분에 대한 출처는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불펌에 대해서 태극기 휘날리며 목청을 높였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펌에 대해서 큰 소리칠 입장은 못됩니다. 저도 불펌왕이거든요. "남의 글을 배껴서 내 것인 척" 한 적은 없었지만 정보 저장의 필요성 때문에 신문 스크랩하듯이 제 미니홈피에 쌓아온 것들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워낙에 혼자 노는 게 컨셉이라서 볼 사람도 없었기에 양심의 가책 같은 것도 없었구요. 

미니홈피의 폐쇄성과 불편함에 질려서 티스토리로 넘어오게 되었는데 이때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예전에 모아둔 자료들 중에 출처가 모호한 자료들이 꽤 있는 것입니다. 특히 역사와 영어 같은 경우는 백과사전이나 블로그, 뇌이버 지식인 등에서 틈틈이 자료를 복사해놓은 것도 있고, 제가 재정리한 것도 있어서 원글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복사한 글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아는 한도 내에서는 출처 명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불펌이 심한데 위의 경우는 제 사적인 부분으로 그치지만, 대학교 리포트나 중고교 수행평가 숙제도 펌질에서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남의 글을 고대로 복사해서 붙이는 것은 물론이고, 인용 표기, 출처 표기는 해야할 필요성도 못느끼며, 그에 대한 최소한의 죄책감과 고마움도 없습니다.


왜 이렇게 다들 불펌에 무신경해진 것일까요??


저는 제일 큰 책임이 한국형 포털 서비스에 있다고 봅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정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정보를 얻으려면 도서관에 가서 책 몇 권을 뒤져야 했고, 그것을 여러 번 정독하고 정리해야 괜찮은 자료 하나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자료는 고부가가치를 띈 지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공책 필기 한 번 보고자 할 때도 친구한테 밥 사줘가면서 얼마나 알랑방구 껴야 됩니까? 

그런데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서 펌질이 당연히 누려도 되는 권리인 것처럼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포털 서비스는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합법적인 펌질이라는 요상망측한 기능을 만들었고, 이름마저 "스크랩"이라서 마치 신문 스크랩처럼 유익한 행위를 하는 것으로 느끼도록 대중을 마취시켰습니다. 또한 최다 스크랩 게시물 = 최고 인기 게시물로 등극시켜 메인에 띄우기까지 해주시니, 스크랩(=펌질) 당하는 것이 영광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불펌 금지라고 외치는 올드보이 오대수(최민식)와 미도(강혜정)


대부분의 원 저작자(너무 거창하군요)는 배워서 남준다는 신념에 입각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떠올리며 자신의 자료나 생각을 인터넷에 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인터넷에 올리는 순간 "니 것도 내 것이요~, 내 것도 내 것~"이 되니, 공산주의가 따로 없습니다.

힘들게 구해야하는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이를 더 고마워해야 되는데... 구하기가 너무 쉬워지니까 고마운 마음 자체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제 블로그에도 가장 검색순위가 높은 유입키워드를 통해 수 만 명이 다녀갔는데 댓글은 10개도 안됩니다.
)

관련글:
제 블로그 방문자들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 (부제: 유입검색어 분석) 


이렇게 심혈을 기울인 자신의 글과 자료가 감사 인사 한 마디 없이 마구 떠돌아다니거나 남의 글로 둔갑하니 생산자들은 점점 더 폐쇄적으로 변해가고, 이런 마당에 제대로 된 공유가 이루어질 리가 없습니다. 웃긴 건 네이버 블로거들이 불펌은 제일 많이 하는데 정작 불펌 방지를 제일 많이 사용하는 곳이 네이버라는 것입니다. 서로 서로 못 믿는 것일까요? ㅋ


제가 보기에는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는 거 같습니다.
저작권(불펌 금지) 사진 출처 - 세계일보

패러디 동영상을 공유하는 건 저작권에 위배된다고 곳곳에서 겁을 주면서 (팬들이 좋아하는 드라마로 만든 재밌는 패러디 영상이 작품 홍보가 되면 됐지 피해는 안갈텐데 말이지요.) 정보로서의 가치가 있는 원글 아니.. 가치가 없더라도 독창적인 글에 대한 존중은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최대 포털 서비스사들이 펌질은 합법적으로 장려하면서, '원저작자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저작권 법 위배 저작물 신고를 해야한다'며 신분증까지 요구하는 것이 참 웃기지 않습니까.? 온라인에서 펌질은 그렇게 쉽게 하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그것을 해결하려면 오프라인 상의 절차를 밟아야 하고,, 그것도 원 작자가 각종 불편과 허위 신고로 몰릴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더 편해져야 할 것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저작권 침해 - 불법 펌질 - 에 대해서는 네티즌들이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 정말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저작권의 원래 목표는 남의 글이나, 책이나, 음악 등을 자기가 쓴 것처럼 마구 퍼트려서 상업적인 용도로 써먹는 걸 방지하는게 아니었나요??

다X이나 뇌이X 같은 큰 회사에서 네티즌의 불펌에 대한 항의는 약자니까 무시하고 음협 같은 큰 단체에는 그럴 수 없으니까 "네티즌 늬들 안 잡혀가려면 알아서 잘 모셔라!" 라고 강요하는 듯한 인상은 저만 느끼는 것일까요? 결국 우리같은 약자들은 힘있는 빅 브라더스한테는 숙이고 들어가야 하고 우리의 권리는 지킬 방도도 없는 걸까요??


이 문제는 포털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만큼,
이를 해결하려면 포털 서비스에서 많이 도와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이 중도를 잘 지켜주길 바랍니다.
강자의 권리가 중요한만큼, 약자의 자유와 권리도 중요하니까요.


관련글
제 블로그 방문자들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 (부제: 유입검색어 분석)
포털싸이트의 횡포: 다음, 네이버는 왜 펌글에 관대한가?!!
다음 블로거뉴스와의 혈압 오르는 전화통화 내용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