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113 [펌] 인수대비는 한국인의 최고 여성상 출처: 우리 역사와 오늘 글: 김인호교수 펌: http://eroom.korea.com/eroom/default.aspx?bid=hsp_106045&pid=222064 ▶ 인수대비는 조선의 릴리스 인수대비(소혜왕후) 한씨하면 성종 임금의 어머니로서, 권력을 위해선 피도 눈물도 없었던 모사꾼 또는 청상과부가 된 그 광신적 히스테리에 못 이겨 며느리(연산군의 비 폐비 윤씨)마저 죽게 한 잔인한 여성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인수대비 한씨를 중국의 폭녀 여후(한고조 유방의 비)나 측천무후(당 고종의 비) 혹은 서태후(청 함풍제의 비) 등에 비교하기도 하고 그 패도와 악독한 성품에 대해 조롱한다. 그런데 그러한 한씨의 일화 속에는 현모양처를 강조하는 조선왕조의 유교적 여성관에서 배양된 또 하.. 2007. 11. 10. [펌] 무엇이 인수대비를 20대에 권력의 핵심으로 만들었는가 출 처: 승복이님의 ♤끄적끄적 이야기♤ / 블로그 / 냐하하하~ / 2006.08.14 [원문보기] 왕도와 치도가 근본을 이루었던 500년 조선사회에서 왕비의 자리에 오르지 않고 대비의 위엄을 누렸던 여인, 소혜왕후. 16살의 어린 나이에 당시 수양대군 이었던 세조의 맏며느리로 들어가, 시아버지 세조와 그 무리들이 지배했던 격동의 세월 속에서 한씨의 처세술은 과연 어떠하였는가. 조선조 가장 학식이 높고 유려했던 정치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소혜왕후의 면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위기를 기회로 만들 줄 아는 정치감각● 소혜왕후가 20대에 겪었던 풍파는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이었다. 수양대군이 이른바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잡은 뒤, 그의 맏며느리였던 한씨는 당당히 세자빈의 자리에 올라 "폭빈" 이라는 별명까지 받.. 2007. 11. 9. [드라마의 이해 - 왕과나] '안방의 제왕' 인수대비 - 이덕일 [드라마의 이해 - 왕과나]'안방의 제왕' 인수대비 ( 이덕일·역사평론가 ) "남편은 아내의 하늘이다” 남존여비 강요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쫓고 즉위한 1455년, 만 열여덟 살의 며느리 한씨도 비로소 세자빈이 됐다. 결혼 당시 남편은 대군 아들에 불과했으나 그녀는 이때 이미 시아버지가 임금이 되기 위한 포석으로 자신을 며느리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수대비(1437~1504)의 아버지 한확(1403~1456)은 조선 제일의 중국통이었다. 태종 17년(1417) 명나라에 공녀로 간 그의 누나가 황제 성조(成祖)의 후궁이 된 덕분이었다. 성조는 한확에게도 광록시소경(光祿寺少卿)이란 벼슬을 내리고,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했을 때는 조선인인 그를 사신으로 임명해 고명(誥命)을 줄 정도로 총애했다. 수양대.. 2007. 11. 9.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왕의 남자 이야기 (남사당패에 대한 Q&A) Q. 영화 오프닝 장면에서, 공길은 싫은 것이 분명한데도 억지로 양반에게 몸을 팔러 가고, 심지어 무리 중에 어떤 사람은 공길에게 몸을 팔 것을 강요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장생을 빼고는 아무도 공길의 편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너무 한 것 아닌가요? A. 남사당은 꼭두쇠를 중심으로 구성된 유랑집단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상 정확한 설명은 없습니다만 공길에게 몸을 팔 것을 강요한 사람은 공길이 속해 있는 남사당 패의 꼭두쇠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꼭두쇠는 무리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패거리 식구의 처우에 관련된 모든 처결을 할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심지어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패거리 중에 섞여 있기 위해서는 누구도 꼭두쇠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공길이 몸을 팔 경우 양반에게서.. 2007. 11. 9.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 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