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때 나의 이상형은....
순정만화(특히 황미나!)에 나오는 남자답지 않게 휘날리는 긴머리에,, 정상적인 인간의 몸으로는 이상발육으로 볼 만큼 다리길고, 얼굴을 비롯하여 온몸은 언제나 아침에 피죽 한그릇 못 먹은 듯 비쩍 마른 ,, ........ 발육부진의 그런 남자 주인공이 아니었다.!
20살이 넘고도 한참 동안 누가 내게 이상형을 물으면 나는 항상 "오혜성"으로 대답했다.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다른 설명 없이도 바로 알 것이다. 오혜성이 누구인지를.
나는 오빠의 강력한 권력 남용으로 인해 순정 만화보다는 이현세 만화를 주로 보고 자랐다. - 울 오빠 혼자서 그 많은 이현세 만화를 다 빌려 보기에는 너무나 경제적인 타격이 크므로 각자 용돈을 조금씩 갹출해서 함께 빌려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땐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추억을 만들어준 오빠에게 고맙다.)
오혜성은 이현세 만화의 단골 캐릭터인데 특히 이현세 작가님의 불후의 명작이요, 필생의 역작이요, 최고의 걸작이자 히트작인 공포의 외인구단을 통해 그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매력을 느낀 그 삐죽거리는 까치머리도 좋았지만 그의 외로운 눈빛이 더욱 좋았다.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외고집도 좋았고,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뒷골목 인생인 그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사랑했다. 내 친구들이 황미나, 이미라.. 등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며 왕자님 꿈에 젖어서 살 때.. 나는 혜성이의 외로움에 가슴 아파하고, 그의 불행에 눈물 흘렸다.
많은 열혈 애독자를 양산해냈던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책표지
나만 그랬던 건 아니고.. 전국의 많은 옵하들이 이 만화에 열광했었나 보다..
이현세의 만화가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그 가장 큰 원인은 기존의 만화와는 확연히 선을 긋는 독특한 캐릭터의 확립이다. 이현세 만화의 주인공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오혜성'이고 '엄지'다. 이들이 히어로이고 히로인이다. 그러나 오혜성은 밝고 명랑하고 해피엔딩을 향해 힘차게 허들을 넘어가던 기존의 영웅들과는 딴판으로, 비극만이 기다리고 있는 결과를 향해 내리막길을 달려간 경우가 더 많았다.『공포의 외인구단』에서 그러했고『지옥의 링』,『유리턱』,『국경의 갈가마귀』등등, 해피엔딩보다 주인공의 죽음이나 파멸로 끝나는 것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까치의 눈이 멀고, 엄지가 미치는 처절한 엔딩으로 더 기억에 남는 작품, 공포의 외인구단
오빠 심부름으로 다음 권을 빌리러 만화 대여점에 갈 때마다 빈 손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어쨋든 공포의 외인구단은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면서 '만화 =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공식을 시원하게 깨어 버린다. 너무도 폭발적인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는데 당시로서는 대박영화였다고 한다.
특히 영화 OST인 정수라의 '난 너에게'는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는 오혜성의 대사를 그대로 붙인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로 크게 히트를 쳤다. 이런 저런 인기로 90년대 초반에만 해도 오혜성(설까치)의 얼굴이 그려진 만화방 간판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원작을 장르를 옮겨서 리메이크한 작품이 대부분 다 그렇듯이 원작 팬들은 영화가 만화보다 훨씬 못하다, 시시하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솔직히 이 영화는 원작 만화에 비하면 정말 만화수준이었다;; 아니.. 요즘 애들 말로는 '안습'인가? 만화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스토리에 박진감도 없고, 주인공들도 만화 캐릭터와 매치가 되지 않고 많이 어색했다. 더 황당한 건 저 매력적인 제목을 '이장호의 외인구단'이라는 촌스러운 제목으로 바꿔버렸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공포'라는 말이 국민들에게 혐오감을 조성하기 때문에 그랬다나 어쨋다나..;; 정말 우스꽝스러운 이유지만 예전에 우리나라는 그랬나보다. 하긴 대통령 직선제를 하기 위해서 화염병 들고 온 나라 대학생이 데모해야 했던 시대였으니까.. 지금 우리가 인터넷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현직 대통령 욕을 실컷해도 안끌려가는 거 생각하면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그건 그렇고 말이 옆으로 샜는데..
그나마 최재성은 반항적인 눈빛으로 그전부터 '까치'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나머지 주인공들은 솔직히 너무 매력없었다. 일단 원작 이미지와 너무 매치가 안됐고, 나이도 너무 많아보였다. 아뉘... 마동탁 역에 맹상훈이 말이 되냐고요? ㅜㅜ
여주인공 엄지 역의 이보희도 이 당시 에로영화 어우동에도 나오던 배우였지.. 아마? ㅡㅡ;; 어쨋든 이보희씨 이쁘긴 정말 이쁘네. 하지만 나의 엄지는 좀 더 청순해야돼ㅠㅠ
말은 이렇게 하지만 거의 모든 이현세 만화에서 엄지가 악역이기 때문에 (민폐 끼치는 여자 캐릭터) 나는 엄지가 너무 미웠고, 혜성이가 너무 답답하고 불쌍했다.. 어쨋든 어릴 때부터 이현세 만화를 보고 자란 내게, 이상형은 혜성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나의 성격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감수성 예민한 나이에 지독한 외골수인 혜성이를 그렇게 좋아했으니.. 지금 자라나는 애들에게 저 만화를 보여주면 싫어할 것 같다. 시종일관 너무 진지해서..^^;
난 어릴 때 그림에 소질이 꽤 있어서 연습장에 그림을 많이 그렸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예쁜 여자 캐릭터를 그렸지만 내 연습장에는 거의 오혜성 그림이 들어있었다. 그의 슬픈 눈빛을 제대로 그려내고 싶어서 설까치 아이스크림도 자주 사먹었다...!! 근데 맛은 없었다.;
어쨋든...
내 어린 시절 추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오혜성이 지금도 그립다.
덧글:
1. 지금 까치와 엄지를 새로 뽑는다면 누가 좋을까요? 까치(는 별명, 본명은 오혜성) - 이준기?(약간 어울리나?) 강동원? (넘 힘이 없어보여....) 조인성? 엄지는.. 한가인? (아줌마라서..) 송혜교?? (너무 발랄해;;) 김태희? (안상큼해..ㅠㅠ) 이효리? (넘 섹시해ㅠ)
2. 제가 감상을 덧붙인 시기와 제가 저 만화를 본 시기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저한테 최고였다는 뜻이니 다른 만화팬들은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도 황미나 이미라 만화 재미있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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