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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해 15가지 공식

 

 

 

공식 1 : 의견 차이를 나타내는 논쟁 방식의 글에서 저자가 기존 이론을 공격할 때 main idea / primary purpose 문제의 답은 correct, criticize, doubt, challenge, attack, counter, suggest an alternative to a traditional hypothesis, suggest a significant modification 등이 포함된 보기이다.

 

 

 

공식 2 : 의견 차이를 나타내는 논쟁 방식의 글에서 저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기존 이론을 공격할 때 저자는 객관적으로 기존이론과 새 이론을 논한다. 이 때, main idea / primary purpose 문제의 답은 discuss가 포함된 보기이다.

 

 

 

공식 3 : 자연 현상이나 사회 현상의 차이, 접근 방법의 차이를 나타내는 비교 방식의 글에서 main idea / primary purpose 문제의 답은 compare, contrast, difference를 포함한 보기이다.

 

 

 

공식 4 : 설명문 방식의 글에서 main idea / primary purpose 문제의 답은 explain, describe, present, illustrate, point out을 포함한 보기이다.

 

 

 

공식 5 : Passage 내용이 수학 논문이 아닌 이상 prove(증명하다), demonstrate(증명하다), disprove(반증하다), refute(반증하다)를 포함하는 보기는 논쟁 방식, 비교 방식, 설명문 방식에 맞지 않으므로 답이 될 수 없다. 또한, establish(제도, 질서 등을 확립하다)는 여러 사람에 의해 검증 된 후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답이 될 수 없다. 그리고 reconcile(화해시키다, 조화시키다)는 논쟁 방식에서 저자가 2개의 이론을 조정할 때 가능한 데 그런 글은 출제된 적 없다.

 

 

 

공식 6 : According to the passage 문제는 본문에 나와 있는 내용을 거의 그대로 묻는다. 답하는 요령은 첫째, 질문 내용이 본문 어디에 나오는지 확인하라. 둘째, 단어 또는 어구가 보기에서 어떻게 바뀌는지 확인하고 답을 찾아라.

 

 

 

공식 7 : "Mention X (in line 9) in order to ",  "describe", "refer to" 문제는 X가 속한 문장이나 바로 앞 문장에서 답을 찾아라. 왜냐하면 X가 속한 문장은 그 이전 문장을 보충 설명하니까.

 

 

 

공식 8 : 고유명사는 주로 이전 문장에 대한 보충 설명을 위해 쓰인다. 그러므로 "고유명사를 왜 언급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고유명사가 들어 있는 문장 또는 이전 문장에서 답을 찾아라.

 

 

 

공식 9 : <The passage imply / suggest that … >, <It can be inferred in the passage that … >이라는 inference 문제에서 that 이하의 내용이 본문 어떤 내용과 일치하는지 찾아라. 답은 그 문장 속에 숨어 있다.

 

 

 

공식 10 : Inference 문제의 전형적인 것은 본문에 나와 있는 것의 반대 내용을 묻는다. 특히, 본문에 나오는 연대에 유의하라.

 

 

 

공식 11 : Organization(글의 구성)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detail한 내용보다는 내용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라. 이 문제는 주로 논쟁 방식과 설명문 방식의 글에서 주어지고 있다.

 

 

 

공식 12 : 특정적인 문장의 기능을 묻는 문제는 바로 앞 문장, 특정적인 단락의 기능을 묻는 문제는 앞 단락을 확인하라. 왜냐하면 뒤에 나오는 내용은 앞에 나온 내용을 보충 설명하기 때문이다. 단락과 단락의 관계를 묻는 문제는 글의 구성(논쟁 방식, 비교 방식, 설명문 방식)을 확인하라.

 

 

 

공식 13 : "위 글은 다음 질문들 중 어떤 것에 답하는 정보를 제공하는가?"라는 문제에 답하기 위해 보기에 주어진 의문사(what, why, how, which 등)에 초점을 맞춰라. 왜냐하면 의문사가 틀리면 보기 전체 내용이 틀리기 때문이다.

 

 

 

공식 14 : 저자의 "attitude (태도)" 또는 "tone (어조)"를 묻는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의견을 나타내는 형용사나 부사를 본문에서 찾아라.

 

 

 

공식 15 : 주장이나 결론을 강화(Strengthen)하는 문제의 답은 그 주장이나 결론을 뒷받침하는 것이고, 약화(Weaken)하는 문제의 답은 그 주장이나 결론을 부정하는 것이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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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의상 논란이 불거지자 매니지먼트 측이 입을 열었다.

9일 각종 보도와 커뮤니티 사이트 등을 통해 김연아 의상 논란이 끊이질 않자, 김연아의 소속사 ‘올댓스포츠’ 측은 “새 쇼트 프로그램 의상을 곡 느낌에 맞게 따뜻하고 서정적인 빛깔의 원단을 골랐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김연아는 6일 쇼트 프로그램을 마친 직후 “디자이너 선생님과 의논해서 만든 의상이고, 앞으로 불편한 점은 수정하겠다"고 전한 바 있다.

한편, 김연아는 이날 쇼트 프로그램 곡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를 위해 입은 노란색과 올리브녹색이 섞인 드레스를 착용했다.

 

 

- 이하 생략

 

 

 

우선 김연아 선수의 성공적인 복귀를 환영한다.

쇼트에서 착빙할 때 스텝 아웃과, 프리 첫 점프에서 넘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토탈 1위이고, 프로그램도 매우 아름답다.

그녀가 이렇게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데 쇼트의 노란 의상은 물론, 프리의 검은 의상까지도 계속 논란에 휩싸여서.. 

대회가 끝난 지금까지도 시끌시끌하다. 

 

솔직히 그 전에 김연아 선수의 의상들과 비교하면 이번 의상이 약간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래도 프로그램에 잘 어울리고, 선수 본인이 마음에 든다니 그냥 조용히 넘어가면 좋겠는데...

너무 큰 논란으로 번져버려서.. 의상 자체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아직 어린 김연아 선수가 여러가지 구설수에 휩쓸리는게 안스럽게 보인다.

 

 

김연아 선수 피겨의상 변천사를 보면,

어릴 때보다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의상이 점점 더 진화되어 온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작년의 뱀파이어와 레미제라블도 잠깐 논란에 휩싸였지만 그런대로 예쁘다는 평이었던 것에 비해 

 

올해의 의상은 아직까지도 시끌시끌한 거 보면 당분간 이 논란이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뱀파이어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표현한 의상

 

 

중세의 서민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레미제라블 의상

 

 

 

 

욕하는 사람들이 팬인지 안티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연아 선수 의상 때문에 얼마나 시끄러웠으면

팬들이 외국 디자이너가 김연아 의상에 대해 평한 것을 퍼와서 번역/해석을 했더라.

 

 

 

 

 

ICE STYLE

퀸 유나가 돌아와쪙! - 그녀의 쇼트 프로그램 코스튬과 그 외 골든스핀 대회 여싱 코스튬들

 

올챔이자 월챔이신 김연느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골든스핀에 출전함. --- 이어짐

 

 

 

 

그녀는 13-14시즌 여싱을 통틀어 최고의 쇼트 프로그램 점수를 받아뜸.

골든스핀은 국제대회이긴 한데 낮은 수준의(B급 대회) 스케이터들이 일반적으로 참여함.

근데 여기에 유나퀸이 와서 많은 피겨팬들이 기뻐해쪙!

 

 

 

자 그럼 연느 쇼트 프로그램 코스튬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여?

그녀는 연두빛 컬러 코스튬에 누드 일루전 레이스(mesh),

멀티 컬러 크리스탈로 덮인 톱에 롱 쉬폰 슬리브와 쉬폰 멀티 레이어드 스커트를 입어썽.

 

( *치맛단이 두 겹이란 뜻, 소재와 디자인과 비즈에 대해 이야기 )

 

 

 

 

연두색은 살짝 숨어있는 느낌적인 느낌:

위 사진을 보면, 그녀의 의상이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져있다는 걸 알 수 이뜸. 

매우 복잡한 스팽클 디테일을 빼곡하게 사용했기 때므네.

 

색깔은... 사실 소화하기 쫌 마이 힘든 색깔이었지.

밑에 같이 실은 제 64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의 디올 오뜨 꾸뛰르에서 줄리안 무어가 입은 걸 보렴.

그거랑 비슷하단다. 

 

근데 유나킴은 이 색깔을 너무 잘 소화해내쪙! 짱짱!

나는 연아의 이 의상이랑 색깔이 좋아. 

(이하 캡쳐 짤림)

 

 

* 여기서부터 추가!사실 이거 올리면... 닉 베리오스가 너무 그냥 슨냥이 같아섴ㅋㅋㅋㅋㅋ 좀 객관적으로 쓰고 싶었는데 ;ㅅ;이 사람 뭐야? 연아에 대해 너무 잘 아는 거 아님? ㅠㅠ 소녀 세계 다큐를 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문제인데...;;;;
그리고 성숙해보인다면 누구 말마따나 오히려 잘한 것일지도 모르지. ^^어릿광대를 보내주오에서 연아가 누굴 연기하는지 생각해보세여~

But Yuna Kim was able to pull it off...I do like the costume and the color on her, I must admit. If I had any critique, it would be the "mumsy" aspect of the silhouette. I know that Kim is not known for anything too plunging or skin revealing but perhaps this style just seems a bit covered up and "older". I would love to know what you guys think?

Also, I must add...Yuna Kim's costume reminds me of what Nancy Kerrigan wore for her Short Program at the '92 Olympics:

 

 

굉장히 소화하기 힘든 색상인데 연아는 아주 잘 어울리게 입었고, 나는 연아의 의상과 컬러가 좋아!
하나 단점을 말하자면, 실루엣이 조금 올드한 것 같은데... 난 연아가 피부를 너무 드러내는 걸(몸 라인을 드러내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어.그래도 피부를 다 덮으면 조금 올드해보이는 것 같긴 해.노네 생각은 어떠닁?
추가. 이번 연느 코스튬은 나에게 92년 올림픽에서 낸시 캐리건이 입었던 쇼트 프로그램 의상을 떠올리게 해~
 

 

 

 

http://www.nickverrreos.blogspot.kr/2013/12/ice-styleyuna-kim-returns-her-short.html?m=1

 

 

 

위에서 보듯이 닉 베레오스는 김연아 의상에 극찬을 하고 있다.

그러니 나머지는 그녀의 선택에 맡기고 의상에 대한 비판은 이쯤에서 접어두는게 어떨까..

 

 

마지막으로 프리 프로그램 연아 선수 깜찍한 엔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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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e뉴스 김민정 기자] 많은 이들이 밤에 제대로 잠들지 못해 어려움을 한 번쯤은 겪어 봤을 것이다.

이에 미국 허핑턴 포스터가 전문가들의 말과 연구를 인용해 ‘빨리 잠들기 위한 7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 전자제품이 꺼지는 시간을 설정할 것

TV, 컴퓨터, 스마트폰 등에서 나오는 강한 빛은 수면 촉진 호르몬인 멜라토닌 생성을 억제해 수면을 방해한다고 알려졌다.

미국 심리학자이자 수면전문가인 마이클 브레우스 박사는 취침 1시간 전에 모든 전자제품의 전원을 끌 것을 추천했다.

◆ 걱정거리를 일기로 쓸 것

잠자리에 누워 뒤척이는 것은 아직 생각의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 브레우스 박사는 마음속 걱정거리를 지우는 것이 빠른 수면에 매우 효과적이라며 일기를 쓰라고 조언했다.

◆ 취침 시간에 울리도록 알람을 맞출 것

일정한 취침 시간은 아이들 뿐만아니라 성인에게도 중요하다. 항상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면 수면의 질이 높아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가지 일을 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간을 흘려버린다. 이에 브레우스 박사는 취침 시간 15분 전 알람을 설정하라고 조언했다.

◆ 일은 직장해서만 할 것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밤이나 주말에도 일에 관한 이메일을 주고 받는 사람이 늘어났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레슬리 펄로 교수팀이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전문직 종사자들의 26%가 잠들때까지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당시 연구진은 일주일에 단 하루 저녁만 스마트폰을 쓰지 않아도 업무의욕이 높아지고 행복함도 더 커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 운동은 가급적 오전이나 낮에 할 것

미국 국립수면재단에 따르면 운동을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잠을 더 쉽게 잘 수 있지만 오전이나 낮에 하는 운동이 퇴근 뒤나 저녁 식사 후하는 운동보다 수면의 질을 더 높일 수 있다.

◆ 자기 전 똑같은 일상을 반복할 것

마사재퍼슨병원 수면의학센터 크리스 윈터 박사에 따르면 양치와 세수를 하고 잠옷을 입는 등 잠자리에 들기 전 일련의 동작을 일상화하면 우리 몸도 자연스럽게 잠들 준비를 하게 된다.

◆ 피로할 때 침대에 누울 것

피로함을 느낄 때 견디면 금세 괜찮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이는 체력을 과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그 다음날 더 피곤할 수 있다.

브레우스 박사는 피곤할 때 바로 잠들지 않으면 3시간 이상 잠을 못잘 수 있으므로 피로를 느낄 때 바로 침대에 들라고 조언했다.

김민정 (a2030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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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킹, 토이스토리...ㅠㅠㅠㅠ

내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영화들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이 사랑받았구나..ㅠㅠ

역시.. 인간 정서가 만국 공통인가보다.


특히 라이언킹은 20년이 넘은 작품인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성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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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공포증 동영상! 


목성 공포증이란 심해공포증, 우주 공포증과 비슷한 증상으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에 압도되었을 때 느끼는 불안한 감정이라고 한다. 인간은 시야의 한계를 초월하는 거대한 광경이 직접 눈앞에 펼쳐졌을때 그 공포는 상상을 초월하며, 그러한 거대한 존재와 부딪히게 되면 숨이 턱 막힌다던가, 이 공간에 빠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끝모를 불안감으로 공황장애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인간이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증이 있기 때문이다. 


달에서 찍은 지구... 푸른 빛의 아름다운 공 같은 모습이다.




목성의 위성인 이오에서 찍은 목성의 모습이다. 형체를 확인할 수조차 없는 크기의 목성. 

크기만으로도 압도되어 숨이 막혀오는 기분이다.




목성과 지구를 나란히 놓으면.....




이것은 목성의 대적점보다도 더 작은 지구의 모습이다. 

목성은 대적점 하나가 지구 3개 정도를 삼키고도 남을 정도의 크기이니 전체 크기는 상상이 안될 정도이다.

게다가 목성은 가스로만 이루어져 발을 디딜 땅조차도 없으니... 

우리가 만약 목성에 떨어지게 된다면....  ?? 

그 결과는 상상에 맡기겠다.




여기까지 오셨다면 거의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 번 실험해보자!!!




목성공포증 심리테스트 실험!

- 만약 달과 같은 거리에 다른 행성들이 위치한다면???
















크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길 원한다면.... 

여기에 달부터 태양계의 모든 행성과, 항성인 태양과, 은하계의 여러 항성들의 크기 비교가 있다.

와우............................ 

이 정도 보아도 끄떡없다면~ 당신은 목성 공포증이 없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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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대 문명

[ 世界 四大 文明 , cradle of civilization ]

[네이버 지식백과]세계 4대 문명 [世界 四大 文明, cradle of civilization] (시사상식사전, 2013, 박문각)

세계에서 가장 먼저 문명을 발달시킨 황하,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이집트 등 4개의 문명을 지칭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문명, 이집트문명, 황하문명을 말한다. 4대 문명의 발생지들은 모두 큰 강을 끼고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이 기후가 온화하고 기름진 토지를 지닌 지역들이다. 특히 황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인더스강, 나일강 등 이들 지역이 4대 강을 끼고 있어 기후ㆍ교통ㆍ토지 등 고대 농업 발달에 유리하다는 점 때문에 문명 발생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인더스문명은 BC 3000년 중엽부터 약 1000년 동안 인더스강 유역에서 청동기를 바탕으로 번영한 고대 문명이다. 대표적 유적은 당시의 2대 도시였던 하라파와 모헨조다로인데, 최초로 고고학적 조사를 받았던 하라파 유적의 이름을 따서 고고학적으로는 하라파 문화라고 부른다.





아랍 - 페르시아 제국 건설. 대략 오늘날의 이란에 해당하는 지역. 


페르시아 제국은 기원전 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지녔다. 페르시아 문명이라 함은 이란과 그 주민의 역사를 지칭한다. 


BC 6500년경 농경, 목축이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두 강 유역에서 발달하였다.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의 땅'이란 뜻으로 비옥한 반달 모양의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번영하였다. 바빌로니아ㆍ아시리아 문명을 가리키나 넓게는 서남아시아 전체의 고대 문명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지리적 요건 때문에 외부와의 교섭이 빈번하여 정치ㆍ문화적 색채가 복잡하였다. 폐쇄적인 이집트 문명과는 달리 두 강 유역은 항상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고, 국가의 흥망과 민족의 교체가 극심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 전개된 문화는 개방적, 능동적이었다.






중국 - 항우, 유방의 천하 결전 끝에 유방의 승리로 한나라가 건국됨. 


황하문명: 황허[黃河] 유역에서 발생한 중국의 고대 문명으로 양쯔강[揚子江] 문명과 함께 중국문명(中國文明)을 대표한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 문명을 형성한 황하문명은 중국 황하강 중ㆍ하류 지역에서 발생한 문명이다. BC 5000년~4000년경부터 신석기 문화가 이루어졌으며, 좁쌀ㆍ기장 등이 재배되고 개ㆍ돼지 등도 사육되었다. 황하강 유역의 신석기 문화는 양사오 문화와 그로부터 발생한 룽산 문화로 대별된다.






북아프리카 - 고대 이집트 건설.


BC 3000년경의 이집트문명은 나일강 하류의 비옥한 토지에서 이루어졌다. 이집트는 지리적 위치가 폐쇄적이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비하여 정치ㆍ문화적 색채가 단조롭다. 사막과 바다로 둘러 싸여 있어서 외부의 침입 없이 2000년 동안 고유문화를 간직할 수 있었다. 또한 나일강과 주변의 기름진 토양을 바탕으로 일찍 농경이 발달하였다. 해마다 겪게 되는 나일강의 범람은 상류의 비옥한 퇴적물을 운반하는 작용을 하였으므로 나일강변은 풍요로운 땅이었다. 홍수는 규칙적으로 일어나서 미리 예측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농사의 시기를 조절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범람 때문에 태양력, 기하학, 건축술, 천문학이 발달하였다.






남유럽 - 신생국 로마의 성장과 그리스의 몰락. 







시베리아 - 수렵 채집

북아메리카 - 수렵 채집

북서유럽(영국,독일,노르웨이, 덴마크) - 수렵 채집

동유럽 - 수렵 채집

아프리카(누비아, 북아프리카, 이집트 제외) - 수렵 채집

동남아시아 - 수렵 채집

일본 - 수렵 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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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위대하게...

 

이 영화가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먼저 연재된 후에 만들어진 작품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웹툰을 원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들 중 하나라는 것은 전혀 특별하거나 특이한 것이 아니다.

 

 

 

 

 

 

내가 놀랐던 것은 주인공들의 놀라운 싱크로율 때문이었는데...

특히 주인공 원류환 역의 김수현은 진짜 만화에서 툭~ 하고 바로 튀어나온 듯한 100%의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신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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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니 몇 달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보았다.

 

바보스럽게 웃고 있는 김수현의 얼굴과,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듯한 박기웅과 이현우의 얼굴이 있는 영화의 포스터와 "들개로 태어나, 괴물로 길러져, 바보로 스며들다'라는 문구는 이 영화에 대단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듯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 영화 배급사는 영화 흥행이 잘 되자 이후 새로운 스페셜 포스터 3장을 더 공개했는데... 이것들 또한 기가 막힌 구도와 색감을 자랑한다. 오히려 오리지널 포스터들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주인공들의 마지막을 알리는 듯한 대사가 있는 이 포스터들은 영화보기 전의 기대감을 증폭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보고 나서의 소감은....ㅋ 그야말로 은밀하게 위대했다는 것이다.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많고, 주인공들은 내내 심각하고 처절한데...

계속 말할 듯 말듯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고, 주인공들은 내내 괴로워하고... 

그러다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에서 동구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던 김수현의 일상 모습

 

 

 

만화같은 외모와 캐릭터를 자랑하던 또 다른 간첩 아저씨

 

 

 

 

내가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던 대사인 "내래 남조선 새끼들에게 진정한 인민의 롹을 보여주갔어~"ㅋㅋㅋㅋㅋ

 

 

 

김수현 보러 갔다가 이현우 보려고 두 번 보게 된다는 말을 남긴 애기 간첩 이현우.. 현우야;;;;

 

 

 

알고 보면 슬픈 장면인... 멸치 따는 장면.. 흑흑...ㅠㅠ

 

 

 

현우야... 아니 해진이구나.. 해진아... 조장님 곁에서 행복하니?

 

 

 

 

 

이 영화는 스토리가 거의 없기 때문에 스토리를 기대하고 본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스토리가 진짜 없다. 그냥 영화의 앞 부분 시작할 때 웃긴 '장면' 몇 개 이후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까 궁금해하게 되지만

그 뒤로도 장면을 만화처럼 붙여놓았을 뿐... 큰 줄기의 스토리가 없다.

 

그런데 주인공 중의 한 명에게라도 감정이입이 되면 묘하게도 영화가 참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주인공 눈빛을 보면서 가슴이 두근~ 하는 것도 느껴보고 말이지...

 

나는 영화적으로는 참 못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했지만 간첩 세 명의 관계가 흥미진진해서 그런대로 즐기면서 볼 수 있었다.

 

이상! 위대할 뻔 했다가 은밀하게 끝난 영화인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감상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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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미래 수익의 10%를 투자해야 한다면. 투자하고 싶은 사람을 주위에서 골라보십시요.
대부분은 가장 잘생긴 사람이나 운동을 잘하는 학생 
키가 큰 학생, 가장 날쌘 학생 
가장 돈이 많은 학생 
나아가 가장 머리가 좋은 학생을 고르진 않습니다.
당신이 고르는 대상은 그들 가운데 가장 인격이 뛰어난 사람 일것입니다. 
누가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릴지 모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당신이 가장 투자하고 싶지 않은 사람, 
다시 말해 가장 수익이 떨어질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골라보십시요.
이번에도 가장 성적이 떨어지거나 
운동시합이 있을때마다 후보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만년벤치나 데우고 있는 학생이나. 
나아가 지능이 가장 떨어지는 학생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당신이 고르는 대상은 
잔머리를 굴리고 거짓말을 하고 
남의 공로를 가로채는- 
신뢰할수 없고 이기적이고 오만하며 독선적이고 신용이 없는 사람일것입니다.
이 두 부류 사람들의 차이는 인생에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인격은 
당신의 말,. 행동, 옷차림, 당신이 쓴 글, 
심지어 당신의 생김새에서 까지.. 
모든면에서 들어납니다.
결코 숨길수도 위조할수도 없습니다.
숨길수 없지만.. 
고쳐질수 없는 것도 아니니 희망을 잃지 마십시요.
인격 또한 하나의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닮고 싶은 사람의 인격의 특징을 종이 한장에다가 써보십시요. 
반대로 당신이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의 인격의 특징을 써보십시요.
그리고 둘 사이의 차이를 비교해보십시요. 
그것은 결코 큰 차이가 아닐것입니다.
야구공은 100미터 넘게 던지느냐.못던지느냐 
역기를 100킬로 넘게 드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아닐것입니다.
거짓말을 하느냐. 안하느냐. 
자기마음대로 말을 내;느냐. 한번더 생각을 하느냐. 
남을 배려하는 말투인가. 남을 무시하는 말투인가. 
조금 더 신경써서 일하느냐. 조금 더 게으르게 행동하느냐.. 
잘못을 저질렀을때.정직한가, 아니면, 둘러대며 남탓하는가.
결코 큰차이가 아닌..이런 작은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여러분이 아직 젊다면.. 
여러분이 닮고 싶은 인격을 조금만 신경써 연습한다면. 
머지 않아 당신의 인격으로 만들수 있을것입니다.
인격 또한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습관은 처음엔 깃털같아 결코 느낄수 없지만. 
나중엔 무거운 쇳덩이 같아 결코 바꿀수 없습니다.
내 나이때 습관을 고치는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여러분은 젊습니다. 
아직 충분히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니 정직하십시요. 
어떠한 경우에도 거짓말하지 마세요. 
변호사가 뭐라하든 신경쓰지 마세요. 
그저 자기가 보는 그대로 풀어놓으십시요.
저의 성공에는 
우리(버크셔해서웨이)의 평판덕이 큽니다.
저는 저의 사람들에게 법의 테두리보다 훨씬 더 안쪽의 경계선에서 행동하며. 
우리에게 비판적이고 또한 영리한 기자가 우리의 행동을 신문에 대서특필할수 있을 정도로 행동하길 바랬습니다.
저는 저의 회사들의 지사장들에게 2년에 한번 이와같은 메세지를 줍니다.

" 여러분은 돈을 잃어도 상관 없습니다. 
많은 돈이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평판을 잃지 마십시요. 
인격을 잃지는 마십시요. 
우리에겐 돈을 잃은 여유는 충분히 있으나 평판을 잃는 여유는 조금도 없습니다."
여러분 (대학생들)은 아직 젊습니다. 
지금의 모습보다 훨씬 낳아질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결코 돈 때문에 직장 선택하거나 사람을 사귀지 마십시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직업을갖고 좋아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만을 사귀십시요.
저는 아무리 큰 돈을 벌어준다고 해도. 
도덕적으로 믿을수 없고. 
신용이 가지 않은 사람과는 함께 사업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언젠가는 뱉어내야한다란걸 알고 있기때문입니다 .
저는 1년내내 제가 좋아하는 일을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함께 합니다. 
제 속을 뒤집어 놓는 사람과는 상종도 안하죠. 
결국 가장 중요한것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 원칙입니다. 
금전적으로 성공하는것은 두번째의 일입니다.

전 가난했던..젊은 시절에도. 
저는 충분히 행복했고. 지금 처럼 제 일을 사랑했습니다. 
가난했던때와 조금은 부유해진 지금과 바뀐것은 저에겐 별로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성실히. 
그리고 정직하게 생활한다면. 
거기다 유머 또한 잃지 않고 하루를 유쾌히 감사한다면.. 
여러분은 성공을 결코 피할수 없을 겁니다.



- 워렌 버핏 미국의 대학생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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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 쓴 글은 역시 옛날 이야기보다 재미있다. (역사니까 옛날 이야기 맞구나..ㅋ)

 

 

유약한 숙종, 깨방정 숙종... 숙종의 진짜 모습은?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4월 26일 제11부 때부터 전국 시청률 20%대(TNmS 집계 기준)를 돌파한 MBC 드라마 <동이>가 주는 색다른 재미 중 하나는 '숙종의 이미지 변신'이다.

 


 

종래 사극에 나온 숙종과 달리 <동이> 속의 '깨방정 숙종'은 밝고 경쾌한 이미지의 소유자로 묘사되고 있다. 이따금씩 장난스러운 말투와 표정을 구사하는 숙종(지진희 분)은 궁녀들에게 손을 흔드는가 하면 동이(한효주 분)에게 등을 밟히기도 하는 등, 파격적인 군주의 이미지를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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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동이>에서 숙종역을 맡은 배우 지진희.
ⓒ MBC

어쩌면, 드라마 <동이>의 '숙종 이미지 바꾸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파격적으로 전개돼도 무방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기존의 숙종 이미지는, 엄밀히 말하면, 사료에 근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숙종의 이미지는 '궁중의 여인천하에 휘둘리는 유약한 지아비'의 이미지다. 사실, 이런 이미지는 김만중의 <사씨남정기>에 근거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악하고 시기심 많은 첩인 교씨에게 눈이 멀어 지혜로운 조강지처인 사씨를 내쫓았다가 나중에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소설 속 유한림(유연수)의 이미지가 오래도록 숙종의 이미지와 오버랩 되어 우리의 인식 속에 전해져 왔다.


 

당연한 언급이지만, 김만중의 <사씨남정기>는 역사서가 아니라 소설이다. 당시의 사실관계를 일정 정도 반영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김만중의 머릿속에서 나온 상상의 결과물에 불과하다.


 

게다가 김만중(1637~1692년)은 46년간에 걸친 숙종(재위 1674~1720년)의 치세 중에서 그 절반도 안 되는 18년밖에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숙종이란 군주를 전체적으로 통찰할 만한 입장에 있지 않았다. 그런 김만중이 남긴 소설을 근거로 숙종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균형자' 혹은 '조정자' 역할을 수행한 숙종


 

그렇다면 숙종의 올바른 이미지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사료에 드러난 객관적 상황을 근거로 숙종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숙종이 과연 여인천하에 휘둘렸는가?'하는 문제에만 국한하여 숙종의 이미지를 탐색해보기로 하자.


 

어느 쪽이 어느 쪽을 이용했는지를 판단하고자 할 때 가장 과학적인 방법 중 하나는, 양쪽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어느 쪽이 자기 목적을 달성하고 최종적으로 생존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A가 "나는 B를 이용했다"고 주장할지라도 두 사람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B의 목적이 달성되었거나 혹은 B가 최종적으로 살아남았다면, A가 주관적으로 어떻게 자부하든 간에 둘 중 상대방을 이용한 쪽은 B라고 해석하는 게 가장 객관적인 접근법이 될 것이다.


 

그럼, 숙종과 여인들의 상호작용에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것은 어느 쪽일까? 또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어느 쪽일까?


 

인조 쿠데타(인조반정, 1623년) 이후 51년간 조선의 여당은 기본적으로 서인 당파였다. 인조·효종·현종 시기에 서인이 만년 여당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런데 숙종 즉위년인 1674년에 발생한 제2차 예송논쟁을 통해 남인 당파가 집권에 성공한 이후로 숙종 연간(1674~1720년)에는 집권여당이 수시로 교체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1680년에는 경신대출척(경신환국)으로 서인정권이 부활했다가 1689년에는 기사환국으로 남인정권이 기사회생하고, 1694년에는 갑술옥사로 서인정권이 되살아났다가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면서 소론정권이 나타나고, 1710년에는 경인환국으로 노·소론 균형 국면이 조성되었다가 1716년 병신처분으로 노론정권이 성립했다.


 

이 과정에서 숙종은 일종의 '균형자' 혹은 '조정자' 역할을 수행했다. 격한 대결의 와중에 어느 일당이 권력을 독차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그는 한쪽이 너무 커지기 전에 다른 쪽에 힘을 실어주는 전략을 구사하곤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당파에 대한 숙종의 태도'와 '처첩에 대한 숙종의 태도' 사이에 고도의 상호 연관성이 존재했다는 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서인 출신의 인현왕후가 중전이 된 것은 서인이 재집권(1680년)에 성공한 직후의 일이었다. 만약 남인이 계속 정권을 잡았다면, 인현왕후가 인경왕후의 뒤를 이어 1681년에 중전 자리를 차지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서인 출신의 새로운 중전은 서인 정권의 부활과 함께 출현했던 것이다.

 

 

 


 

'챔피언' 장옥정의 자리를 불안하게 만든 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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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시대 여인천하의 세 주역. 왼쪽부터 최숙빈(한효주 분), 장희빈(이소연 분), 인현왕후(박하선 분).
ⓒ MBC

인현왕후가 중전이고 서인이 여당이던 시기에, 숙종은 남인의 지원을 받는 장옥정(장희빈)의 위상을 계속 높여주었다. 장옥정은 1686년에 종4품 숙원에 책봉되고 1688년에 정2품 소의로 승진한 데 이어 1689년 초에 정1품 빈으로 승격되었다. 서인과 인현왕후가 너무 세지지 못하도록 하는 힘의 원천이 숙종 쪽에서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1689년에 인현왕후가 쫓겨나고 서인정권이 붕괴하면서 장옥정과 남인의 세상이 도래했지만, 숙종은 이번에는 장희빈에 맞설 대항마를 서서히 육성했다. <동이>의 주인공인 최 숙빈(숙빈 최씨)이 바로 그 대항마였다. 장옥정이 중전 자리에 있었던 시기에, 최 숙빈은 궁녀에서 후궁으로 뛰어올랐다.


 

인현왕후 대 장희빈의 대결구도로 전개되던 여인천하에 최 숙빈이라는 다크호스가 끼어들게 된 것이다. 전혀 의외의 인물을 등장시켜 여인천하를 복잡하게 만드는 한편 '챔피언' 장옥정의 지위를 불안하게 만든 인물은 바로 숙종이었던 것이다.


 

1694년에는 인현왕후와 서인정권이 함께 복귀했고 이때 정계에서는 남인정권이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런데 장희빈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세 여인이 궐 내에서 공존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장희빈의 아들인 이윤(훗날 경종)이 무사히 왕위를 잇도록 하기 위한 숙종의 배려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승리한 인현왕후의 힘이 너무 커지지 않게 하는 것에 기여했다.


 

이런 조치는 결과적으로 서인과 인현왕후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지지 않도록 하는 데에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상태는 숙종시대 여인천하가 종식된 1701년까지 그대로 지속되었다.


 

당쟁과 여인천하가 상호 맞물려 돌아간 위의 과정을 보노라면, 숙종이 결코 여인천하에 휘둘린 유약한 군주가 아니었다는 판단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세 여인이 '때때로'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숙종이 성취한 목적에 비할 것이 못 된다. 숙종은 처첩을 다루는 과정을 통해 '매번' 당쟁의 균형을 조절하는 소득을 얻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최종적으로 살아남았는가?


 

숙종시대 여인천하가 끝난 1701년에는 매우 주목할 만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숙종 27년(1701) 음력 8월 14일에 여인천하의 한 축인 인현왕후가 사망하자,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최 숙빈은 "인현왕후 생전에 장 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했다"고 숙종에게 귀띔하여 장 희빈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물론 장 희빈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숙종은 이를 명분으로 음력 10월 8일에 장 희빈에게 자진(自盡)명령을 내렸다. 이로써 여인천하의 세 주역 중 2명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최 숙빈이 여인천하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승리는 '여인천하 안에서의 승리'에 불과했다. 인현왕후·장 희빈의 잇따른 죽음으로 최 숙빈에게도 중전을 노려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장 희빈이 죽기 전날인 음력 10월 7일에 숙종이 "앞으로 다시는 후궁이 중전이 될 수 없도록 한다"는 왕명을 내림에 따라 최 숙빈이 혹시라도 품었을지 모르는 '왕후의 꿈'은 순식하게 허망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중전은 못 되더라도 최 숙빈이 그대로 대궐에 남아 있었더라면, 내명부는 최 숙빈의 '독재' 하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을 경계해서였는지 숙종은 1702년에 내명부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새로운 중전인 인원왕후를 맞아들인 데에 이어 세 명의 후궁을 승진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새로운 내명부는 인원왕후 밑에 김 영빈(영빈 김씨), 박 명빈(명빈 박씨), 유 소의(소의 유씨) 등이 포진하는 구도로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최 숙빈은 궐을 떠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최 숙빈은 1701~1704년 사이에 숙종 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인현왕후·장 희빈·최 숙빈 구도를 끝내고 인원왕후 중심의 새로운 내명부 체제를 만드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다름 아닌 숙종이었다.

 

 

 


 

여인천하 종결서 드러난 냉혹하고 비정한 숙종의 모습


 

여인천하가 종결을 향해 치닫던 1701년에 숙종이 취한 태도를 보노라면, 여인들의 파워가 자신의 파워를 능가하지 못하도록 항상 고심했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인현왕후가 죽자 장 희빈에게 자살을 명령하고 최 숙빈에게도 궐을 떠날 것을 요구하는 숙종의 모습에서, 우리는 내명부의 그 어떤 여인도 절대권력을 갖지 못하도록 하려 했던 냉혹하고 비정한 숙종의 이미지를 읽을 수 있다.


 

만약 숙종이 처첩들에게 휘둘리는 신세였다면, 여인천하가 종결되기 전에 그의 권력이 먼저 종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도리어 숙종은 여인천하를 종결시키고 자신이 최종적으로 살아남았다. 이런 숙종의 모습으로부터, 우리는 '여인천하에 휘둘리는 숙종'이 아닌 '여인천하를 이용하는 숙종'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여인천하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숙종의 모습. 여인천하를 종결시키고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숙종의 모습. 이런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는 <사씨남정기>가 만들어낸 숙종의 이미지가 역사적 실제와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겉으로는 남에게 휘둘리는 듯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의 실속을 챙기는 '영악한 군주'의 모습. 그것이 숙종의 진짜 이미지가 아닐까. 드라마 <동이>에서는 '깨방정 숙종'을 내세워 숙종의 이미지를 바꾸고 있지만, 우리의 인식 속에 각인된 숙종의 이미지는 드라마보다 훨씬 더 강도 높게 파격적으로 탈바꿈되어야 할지 모른다.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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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with narcissistic, Machiavellian, and psychopathic personalities are the most successful in office environments, a psychologist and author Oliver James suggests.

In his new book “Office Politics,” James identified three types of dysfunctional workers in modern workplaces: psychopaths, Machiavellian, and narcissist. According to James, the people most likely to thrive in office are ‘triadic’ people, who are a combination of all three.

He alleged that the triadic people’s self-centeredness, sense of deceit, and lack of empathy can help them reach the top of their respective chains of commands.

James argued that modern office tends to reward people with such behavior.

“Whether you work in the corporate sector, a small business or a public sector job, the system you are in is liable to reward ruthless, selfish manipulation,” he said in his book.

Disregard for other people’s feelings combined with Machiavellian traits of ‘doing whatever necessary,’ enables the triadic people to make tough, ruthless choices such as firing an entire department.

In addition, their narcissistic traits allow them to project unwavering confidence, and quickly blame others for failures, according to James.

The success at work comes at a price, James added, as triadic people are susceptible to trouble in their personal relationships. They are reluctant to take responsibility or accept failure, which tends to strain any relationship they have with another person.


From news reports
(khnews@heraldcorp.com)

 

 

 

 


<관련 한글 기사>

‘싸가지 없는’ 사람들, 회사생활 잘해

현대 사회에서는 자아도취적(narcissistic)이고 사이코패스적 기질이 있고, 권모술수에 능한 마키아벨리적인 (Machiavellian)사람이 가장 성공하기 유리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심리학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제임스가 최근 발표한 ‘사내정치(Office Politics)’라는 책에 따르면 직장 사무실에서 흔히 발견되는 정신적 결함은 위의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승진할 확률이 높은 사람들은 이 세 가지 특징을 모두 갖춘 3위일체 (triadic)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는 3위일체 사람들의 자기중심적 사고, 남들을 속이는 경향, 그리고 남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능력이 모두 사무실에서 살아남는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대 사회의 일터가 대부분 “무자비하고, 이기적이며,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제임스의 이론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는 성향과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해내는’ 마키아벨리적 성격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들은 대량 해고 등 가차없는 조치를 망설임 없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의 자아도취적인 성격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을 보여줄 수 있으며, 실패를 했을 시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인데, 제임스는 3위일체 성격을 지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자아도취적 성격으로 인해 책임을 지거나 실패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성향을 보이는데, 이로 인해 대인관계가 파탄이 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코리아헤럴드)

 

 

 

 

기사 출처: http://www.koreaherald.com/view.php?ud=20130129000691 

 

 

 

이렇게 공감이 될 수가.........................

그동안 내 주변의 그 정신병 있어 보이던 애들이 승승장구하던 비결이었구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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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드라마였던 동이 속의 숙빈 최씨와 숙종의 실제 만남은 어땠을까?
궁녀와 지존의 극적인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수문록: 조선 후기의 문신 이문정(李聞政)이 4년 2개월 동안 재위한 경종연간의 역사를 들은 대로 기록한 책.

 

 

최숙빈과 숙종의 첫 만남과 관련하여서도 우리는 역사학적 사실과 진실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흔히 하는 말처럼 남녀 간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최숙빈과 숙종이 처음 만난 때는 숙종 18년(1692)이었다. 이때 최숙빈의 나이는 23세였다. 최씨가 7세의 나이로 입궁한 때가 숙종 2년(1676)이므로, 두 사람은 무려 16년간이나 같은 공간에 살다가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아무리 궁녀의 행동반경이 제한되고 왕과의 접촉이 극히 힘들었다 해도, 한 공간에서 16년간이나 같이 살다 되면 어쩌다 한 번이라도 한쪽이 다른 쪽을 봤거나 혹은 양쪽이 서로를 봤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위와 같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두 사람의 첫 만남에 관한 사료의 내용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사료에 기록된 것과 달리 실제로는 숙종 18년(1692) 이전에 이들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는 것이다. 

이들의 첫 만남을 증언하는 사료는 이문정(1656~1726년)이 지은 <수문록>이다. 이문정은 최숙빈보다 14세가 많은 사람이다. 동지중추부사(종2품, 차관급)를 지낸 이문정은 신임사화(1721~1722년) 이후 학문과 집필에만 전념한 인물이다.

 

▲ 이문정의 <수문록> ⓒ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인현왕후가 폐서인(廢庶人)되고 장옥정이 중전으로 있을 때인 숙종 18년(1692)의 상황을 보여주는 <수문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밤중에 궁궐을 거닐던 숙종은 조명이 유독 화려한 어느 궁녀의 방에 주목하게 되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숙종이 방안을 몰래 엿보니, 웬 궁녀가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그 앞에 꿇어 앉아 무언가를 기원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숙종은 방문을 열어젖혔고, 그렇게 해서 최 숙빈과 숙종이 조우하게 되었다. 

그럼,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숙종이 방문을 열어젖힌 뒤의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을 통해, 우리는 최 숙빈이 그 순간에 얼마나 대담성을 발휘했는지를 알 수 있다. 

 

방문을 열어젖힌 숙종은 "너 지금 뭐하냐?"고 물었다. 당시의 정황을 다룬 이문정의 <수문록>에서는 "선대왕(先大王, 숙종)이 매우 이상히 여겨 그 문을 열고 연유를 물어보았다"고 기록했다.

 


왕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최 숙빈의 '대담성'

 

▲ 최숙빈과 숙종의 첫 만남에 관한 <수문록>의 기록. 한밤중에 잔칫상을 차려 놓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숙종이 묻자, 최숙빈이 자신과 인현왕후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 <수문록>

 

 

 

 

 "선대왕(先大王, 죽은 임금 즉 숙종)이 하루는 밤이 깊어진 후에 지팡이를 들고 궁궐 안을 돌아다니다가 나인들의 방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유독 한 나인(궁녀)의 방만 등촉이 휘황찬란하였다. 밖에서 몰래 엿보니,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한 나인이 두 손을 마주잡고 상 앞에 꿇어앉아 있었다. 선대왕이 매우 이상히 여겨 그 문을 열고 연유를 물어보았다."

 

 

숙종은 좀 '솔직한' 군주였던 모양이다. 평소에도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최측근들에게 숨기지 않았던 듯하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숙종은 그 의문의 방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방문 앞에 다가선 숙종은, 창호지에 침을 묻혔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국왕의 체면을 내팽긴 채 방안을 몰래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방안에서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궁녀가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두 손을 마주잡은 채로 상 앞에 꿇어앉아 있었던 것이다. 남들 다 자는 야심한 시각에 말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숙종은 결국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는 그 궁녀에게 물어보았다.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거냐고. 이 궁녀가 바로 훗날 영조를 낳게 될 최씨였다. 이것이 두 사람의 우연한 첫 만남이었다.

이후의 기사에서 상세히 설명하겠지만, 이날 밤 궁녀 최씨는 폐서인된 인현왕후의 생일을 기념하는 의식을 홀로 거행하다가 숙종에게 우연히 들켰고 그런 모습에 감동된 숙종이 최씨를 가까이 하게 되었다는 것이 <수문록>의 설명이다.

 

한밤중에 누군가가 방문을 열어 젖히길래 고개를 돌려보니 임금의 얼굴이 보인다면, 웬만한 궁녀들은 기겁을 하고 놀랄 것이다. 이런 경우에 임금이 "너 지금 뭐하냐?"라고 물어보면, 아마 말을 더듬거리며 제대로 대답도 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최 숙빈은 마치 사전에 준비라도 해놓은 듯이 매우 침착한 태도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녀는 중전(폐비 인현왕후)의 시녀로서 특별히 총애를 받았습니다."

"너 지금 뭐하냐?"라는 질문에 대해 "네, 저는 지금 뭐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하지 않고, 그는 자신이 인현왕후의 시녀였다며 자기소개부터 먼저 했다. 최 숙빈이 침착성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현왕후와의 관계를 밝힌 다음에 최 숙빈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나갔다.



"내일은 중전의 탄신일입니다. 폐위되어 서궁(西宮)에 계시면서 죄인으로 자처하며 수라를 들지 않으시고 조석으로 드시는 것이라곤 거친 현미뿐입니다. 내일이 탄신일인데 누가 좋은 음식을 올리겠습니까? 소녀로서는 슬픔을 이길 수 없어서 이것을 차린 겁니다. 중전께서 좋아하시는 것들이지만 도저히 진헌할 길이 없어서, 마치 실제로 진헌하는 것처럼 소녀의 방안에 차려놓고 정성을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당시 인현왕후가 죄인이고 장 희빈이 중전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위와 같은 대답은 사실상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인현왕후를 죄인이라고 규정한 사람은 다름 아닌 숙종이었다. 그런 숙종 앞에서 폐비를 두둔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숙종을 비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웬만한 궁녀 같았으면 이런 경우에 자기 부모님 생신이나 기일 등을 들먹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인현왕후의 생일을 들먹인 것은 최 숙빈이 보통 이상의 대담성을 소유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찌 보면 무모하다 할 수 있는 위의 행위를 결코 '무모함'이라 표현하지 않고 '대담성'이라 표현한 것은, 최 숙빈의 행동이 평소에 축적된 고도의 상황 판단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당시 숙종은 '폐비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라'는 서인들의 상소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숙종은 그런 상소들을 무시하곤 했지만, 계속 올라오는 상소문이 숙종의 심경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최숙빈과 숙종의 첫 만남에 관한 <수문록>의 기록. 폐비의 탄신일을 기념하고 있다고 최숙빈이 대답하자, 숙종이 그로부터 감동을 받아 최숙빈을 가까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담은 부분이다. ⓒ <수문록>

 

 

 

최 숙빈은 인현왕후전에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변화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관심을 갖고 있을 만한 사람이었다. 숙종의 질문에 대해 "저는 지금 폐비의 탄신일을 축하하고 있습니다"라고 당돌하게 대답한 것은, '이렇게 말해도 숙종이 진노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기초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상황판단을 했다 해도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폐비에 대한 숙종의 마음이 바뀌고 있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아직까지는 폐비가 죄인의 신분을 탈피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전을 쫓아낸 것은 잘못'이라는 메시지를 임금에게 전달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칭찬을 들을 가능성보다는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큰 일이었다.

결국 최 숙빈의 대담성은 진가를 발휘했다. 숙종은 "죄인의 생일을 기념하다니! 이런 발칙한!"이라고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최 숙빈의 행동으로부터 신선한 감동을 받아 그를 가까이하게 되었다. <수문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임금이 그제야 생각해 보니, 다음 날이 정말로 중전의 탄신일이었다. 느끼는 바가 있어, 그 성의를 가상히 여기시고는 마침내 그를 가까이하셨다."

침방나인으로 바느질 생활을 하던 최 숙빈이 숙종과 친분을 맺도록 하는 데에 기여한 결정적 요소는 위와 같이 최 숙빈 특유의 대담성이었다. 판단력을 실행에 옮기는 에너지인 대담성이 그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 이하 생략 =======================

 

 

 

전체 기사를 보고 싶으면 여기를 클릭:

동이에게 껄떡댄 숙종? 실제론 최숙빈이 대담했다 

동이와 숙종의 만남, 실제론 더 드라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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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가 석가모니를 찾아가 호소하였답니다.

저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이 무슨 이유입니까?

그것은 네가 남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저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빈 털털이입니다.
남에게 줄 것이 있어야 주지 뭘 준단 말입니까?

그렇지 않느니라, 아무리 재산이 없더라도
줄 수 있는 일곱 가지는 누구나 다 있는 것이다.


첫째는 화안시(和顔施)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것이요,

둘째는 언시(言施)
말로써 얼마든지 베풀 수 있으니
사랑의 말, 칭찬의 말, 위로의 말,
격려의 말, 양보의 말, 부드러운 말 등이다.

셋째는 심시(心施)
마음의 문을 열고 따뜻한 마음을 주는 것이다.

넷째는 안시(眼施)
호의를 담은 눈으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눈으로 베푸는 것이요,

다섯째는 신시(身施)
몸으로 때우는 것으로 남의 짐을
들어준다거나 일을 돕는 것이요,

여섯째는 좌시(座施)
때와 장소에 맞게 자리를 내주어
양보하는 것이고,

일곱째는 찰시(察施)
굳이 묻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알아서 도와주는 것이다.

네가 이 일곱 가지를 행하여
습관이 붙으면 너에게 행운이 따르리라..
라고 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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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백과사전 인물사전 중에서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은 한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의 한 표상이다. 그런 추앙은 그를 수식하는 ‘성웅’이라는 칭호에 집약되어 있다. ‘성스럽다’는 표현은 그 자체로 범접할 수 없는 경지를 나타내지만, 천부적 재능과 순탄한 운명에 힘입어 그런 수준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역경과 난관을 치열한 고뇌와 노력으로 돌파했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그런 측면은 ‘악성’으로 불리는 베토벤이나 ‘시선’ 이백(李白)과 대비되어 ‘시성’으로 지칭되는 두보(杜甫)의 삶과 작품을 생각하면 수긍될 것이다. 


 인간의 행동 중에서 가장 거칠고 파괴적인 것은 폭력이다. 그리고 가장 거대한 형태의 폭력은 전쟁이다. 이순신은 그런 전쟁을 가장 앞장서 수행해야 하는 직무를 가진 무장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돌파해야 할 역경이 다른 분야의 사람들보다 훨씬 가혹했으리라는 예상은 자연스럽다. 실제로 그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거대한 운명을 극복하고 위업을 성취한 인간의 어떤 전범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만하다.


- 이하 생략





세계 4대 해신

살리미스 해전 - 그리스 연합군 총사령관 '테미스토클레스'
칼레 해전 - 신흥 해양국가 영국의 해군제독 '찰스 하워드'
트라팔카 해전 - 영국 해군 총사령관 '허레이쇼 넬슨'

그리고,

한산 해전 - 조선 삼도 수군 통제사 '이순신'









옥포해전

1592년 5월 7일 거제시 옥포

조선 : 군사 - 판옥선 29척 / 피해 - 1명 부상
  왜  : 군사 - 50척 / 피해 - 전선 26척 격침, 4080명 사망


합포해전

1592년 5월 7일 창원 마산 합포구

조선 : 군사 - 판옥선 29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8척 / 피해 - 전멸


적진포해전

1592년 5월 8일 고성 적진포 앞바다

조선 : 군사 - 판옥선 29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13척 / 피해 - 전선 11척 격침, 2840명 사망


사천해전

1592년 5월 29일 경상도, 사천 앞바다

조선 : 군사 - 거북선 2척, 판옥선 26척 / 피해 - 이순신, 나대용 피격(사상자 기록없음)
  왜  : 군사 - 13척, 병력모름 / 피해 - 13척 모두격침, 2600명 사망


당포해전

1592년 6월 2일 토영 당포 앞바다

조선 : 군사 - 거북선(귀선) 포함 26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21척 / 피해 - 전선 21척 모두 격침, 2820명 사망


1차 당항포 해전

1592년 6월 5일 고성 당항포

조선 : 군사 - 전선 51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전산 26척 / 피해 - 구루시마 미치유키 사망, 전선 26척 모두격침, 2720명 사망


율포해전

1592년 6월 7일 거제도 율포만 앞바다

조선 : 군사 - 전선 51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전선 7척 / 피해 - 대선 2척·소선 1척 격침, 대선 3척·소선1척 나포

한산도 대첩

1592년 7월 8일 견내량, 한산도 앞바다

조선 : 군사 - 전선 56척 / 피해 - 3명 전사, 10여명 부상
  왜  : 군사 - 전선 73척, 수군 1만 명 / 피해 - 47척 침몰, 12척 나포, 8980명 사망, 마나베 사마노조 할복자살


안골포 해전

1592년 7월 10일 경상도 진해 안골포

조선 : 군사 - 전선 56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전선 42척 / 피해 - 전선 42척 모두 격침, 3960명 사망


장림포해전

1592년 8월 29일 경상도 장림포

조선 : 군사 - 전선 166척, 판옥선 74척 / 피해 - 불명
  왜  : 군사 - 전선 6척, 병력 30명 / 피해 -6척 모두 격침, 30명 도주


화준구미 해전

1592년 9월 1일 부산 사하구 몰운대 인근

조선 : 군사 - 전선 166척, 판옥선 74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5척 / 피해 - 전멸


다대포 해전

1592년 9월 1일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조선 : 군사 - 전선 166척, 판옥선 74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8척 / 피해 - 전멸


서평포 해전

1592년 9월 1일 부산시 사하구 구평동 감천항

조선 : 군사 - 전선 166척, 판옥선 74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9척 / 피해 - 전멸


절영도 해전

1592년 9월 1일 부산시 영도구

조선 : 군사 - 전선 166척, 판옥선 74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2척 / 피해 - 전멸


초량목 해전

1592년 9월 1일 부산시 동구 초량동

조선 : 군사 - 전선 166척, 판옥선 74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4척 / 피해 - 전멸


부산포 해전

1592년 9월 1일 부산시 동구 좌천동

조선 : 군사 - 전선 166척, 판옥선 74척 / 피해 - 정운 등 6명 전사, 25명 부상
  왜  : 군사 - 전선 470척, 벙력 7만명 / 피해 - 전선 128척 격침, 5000여 명 사상


웅포 해전

1593년 2월 10일 경남 진해시 웅천동

조선 : 군사 - 전선 89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40여 척 / 피해 - 100여 명 사망



2차 당항포 해전

1594년 3월 4일 경상도 고성 당항포

조선 : 군사 - 연합함대 124척/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31척 / 피해 - 전멸


장문포 해전

1594년 11월 15일 거제 장목면 장목리

조선 : 군사 - 판옥선 50여척(거북선포함)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불명 / 피해 - 도주


어란포 해전

1597년 8월 27일 어란포 앞바다

조선 : 군사 - 전선 13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전선 8척 / 피해 - 도주


벽파진 해전

1597년 9월 7일 진도군 벽파진

조선 : 군사 - 전선 13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전선 13척 / 피해 - 도주


명량 대첩

1597년 9월 16일 명량 해협

조선 : 군사 - 판옥선 13척, 2400여 명 / 피해 - 2명 전사 및 3명 부상(총 사상자 불명)
  왜  : 군사 - 세키부네 133척, 아타케부네 200여 척, 그 외 500여 척, 27420여 명 / 피해 - 전선 31척 격침, 92척 전투력 상실, 도도 다카토라 부상, 구루시미 미치후사 전사, 총 18466 사망


절이도 해전

1598년 7월 19일 전라남도 고흥군 금사면 신촌리 고라금해수욕장

조선 : 군사 - 판옥선 85척, 병력 1만 7000명, 명나라 사선 25척, 명 호선 77척, 명 병력 2만 6000명 / 피해 - 불명
  왜  : 군사 - 아타케부네 100여 척, 병력 1만 6600명 / 피해 - 아타케부네 50척 격침


장도해전 : 순천왜고성전투

1598년 9월 20일~10월 7일 순천 왜성

조선 : 군사 - 수군 1만 5000여 명 / 피해 - 조선 130명 사상, 명나라 전선 30여척 격침 및 파손, 명나라 수군 2000명 전사
  왜  : 군사 - 1만 4천여명/ 피해 - 전선 30척 격칙 및 파손, 11척 나포, 3천명 사상


노량 해전

1598년 11월 19일 어란포 앞바다

조선 : 군사 - 조선 전선 83척, 명 전선 63척 / 피해 - 이순신 장군 및 조선군 300명 사상, 명군 500여명 사상
  왜  : 군사 - 전선 500여 척 / 피해 - 전선 200여 척 격침, 150여 척 파손, 100여 척 연합수군에 나포



총 45전 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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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 이순신 장군 평가

이순신은 천지를 주무르는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주와 나라를 바로 잡은 보천욕일(補天浴日)의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
        
— 명나라 장수 진린, 1598년 선조에게 올린 글에서

        
고니시, 시마즈 등은 이순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싸우다가 또 패주했다. 이야말로 죽은 제갈(諸葛孔明)이 살아 있는 중달(仲達)을 쫓은 것이나 다름없다. 싸움이 그치자 그제야 비로소 이순신의 죽음을 안 진린은 놀라고 배에 엎어지기 세 번이더니 탄식하기를 “실로 그만한 자 고금에 다시 없다!”고 하였다.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킨 그 충렬(忠烈). 조선왕조는 쇠망하기 시작하여 3 백년 뒤 일본에 합병 되었다. 하나, 호걸 이순신의 영명(英名)은 천추에 길이 빛날 것이다.
        
— 아오야기 난메이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 장수 정도였을거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 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일 몇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서 나의 직무를 다할 수 있을련지 의문이 갔다.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



나를 넬슨에 비하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하는 것은 감당 할 수 없는 일이다.
        
—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 1905년 쓰시마 해전 승전 후 축하하는 축사를 듣고 나서



당신 나라의 이순신 장군은 나의 스승입니다.
        
— 도고 헤이하치로가 한국의 실업가 이영개에게, 후지이 노부오


그의 이름은 서구 역사가들에게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공적으로 보아서 위대한 해상지휘관들 중에서도 능히 맨 앞줄을 차지할 만한 이순신 제독을 낳게 한 것은 신의 섭리였다. 이순신 제독은 광범위하고 정확한 전략판단과 해군전술가로서의 특출한 기술을 갖고 있었으며, 탁월한 지휘통솔력과 전쟁의 기본정신인 그칠 줄 모르는 공격정신을 아울러 가지고 있었다. 그가 지휘한 모든 전투에 있어 그는 언제나 승리를 끝까지 추구하였으며, 그 반면에 그 용감한 공격이 결코 맹목적인 모험은 아니었다는 점은, 넬슨(Horatio Nelson) 제독이 기회가 있는 대로 적을 공격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다가도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이순신 제독이 넬슨 제독보다 나은 점을 가졌으니, 그것은 기계발명에 대한 비상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 영국의 해전사 전문가이자 해군중장 G. A. 발라드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에서조차도 성웅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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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30 - 유익하고 재미있는 역사 만화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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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전설인 김연아 선수의 Legend of Legend 전설 중의 전설, 레전드 오브 레전드인 레미제라블...

모든 나라에서 극찬을 퍼부었으며, 본인도 이보다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지 두렵다고 했던 레미제라블!

 

바로 그 레미제라블 세계 해설 버전이 왔다!!

https://youtu.be/4AKSLNzHpes?si=lE8cmyntILNhKX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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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혼

 

왕실의 혼례인 '국혼'은 절차와 격식이 매우 엄격하고 복잡하다.


국혼에는 '가례'와 '길례'가 있는데 왕을 비롯하여 세자, 세손 등 왕통을 이어나갈 분들의 혼례를 가례라 하고, 그외 왕족이나 공주의 혼례를 길례라 한다. 이와 같은 궁중혼례는 그때 그때 절차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고 조선초부터 준칙으로 정해져 내려오는데 '세종실록예지' '국조오례의' '국혼정례' 등이 그것이다. 그 절차는 육례로 진행되기 때문에 여러 달에 걸쳐 수천명의 인원이 동원되는 나라의 큰 잔치였다.


절차

 

① 납채(納采) : 간택된 왕비가 머물고 있는 별궁에 대궐에서 사신을 보내 청혼을 하는 의식
② 납징(納徵) : 혼인이 이루어지게 된 정표로 대궐에서 사신을 시켜 별궁에 예물을 보내는 의식
③ 고기(告期) : 대궐에서 길일을 택해 가례일로 정하여 이를 별궁에 알려주는 의식
④ 책비(冊妃) : 대궐에서 왕비를 책봉하는 의식과 왕비집에 사신을 보내 왕비로 책봉받는 의식
⑤ 친영(親迎) : 국왕이 별궁에 가서 왕비를 맞아들여 대궐로 돌아오는 의식
⑥ 동뢰(同牢) : 국왕이 왕비와 서로 절을 나눈 뒤 술과 찬을 나누고 첫날밤을 치루는 의식

 

금혼령

 

국혼의 선행되는 간택에 있어서 먼저 금혼령을 내렸다.


금혼령은 국혼에 앞서 민간의 혼사부터 금하고 나서 처자봉단(處子捧單)을 걷어 들이기 위한 전제 절차로 그 기간에 혼인할 수 있는 범위와, 절대로 할 수 없는 범위를 밝히고, 국혼에 응할 자격이 있는 자녀를 가진 집을 대상으로 하여 자진신고를 강요하는 명령이다.


 

이와 같은 국혼의 거론은 대왕대비, 왕대비 등 궁중에서 가장 행렬이 높은 여성이 적령기에 들어선 왕 또는 세자 등의 배우자 선택을 발설하여 예조에서 금혼령 발포를 명령하는데, 순조 19년 4월 丁丑일에 명하신 것으로는 '9세에서 13세에 이르는 처자에게 혼인을 금할 것을 명하고 왕세자 가례를 위하여 간택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면 예조에서는 구체적인 허혼범위와 처자봉단을 받아들이는 기한을 정하여 한성부 및 팔도에 영포하며, 마감이 지나면 한성부 및 각 도에서 단자를 일일이 감봉(監封)하여 예조로 올려 보낸다.


 

허혼범위는 우선적으로 사대부 계급의 연령제한이 있고, 그밖에 異姓親의 촌부라든가, 이씨라든가의 금기 등이 있었다.

 

 

 

 

초간택

 

초간택에 참가하는 처자들의 복장은 송화색 저고리에 다홍치마, 저고리 위에 덧저고리를 입고 치마를 입는다.

 

이렇게 예복을 갖추고 입궁할 때에는 세를 내서라도 최소한 사인교를 타고 간다. 가마 앞, 뒤에는 몸종과 유모가 따르며 더 갖춰진 신분의 아가씨는 수모(미옹사)까지 딸린다. 없는 경우에는 유모가 대신한다.

 

대궐문에 당도하면 가마에서 내려 걸어서 궁문턱을 넘어설 때 미리 준미해 놓은 솥뚜껑의 꼭지를 밟고 넘어가는 특이한 풍속이 있다. 입궁의 순서는 호주의 관직과 신분의 차에 의하여 고직과 신분이 높은 딸의 순서대로 입궁하게 된다.

 

심사방법은 30명 내외의 처자들을 한 줄로 세우고 왕을 포함한 왕족들은 발을 치고 보는데 이 경우 당사자인 신랑은 참여치 않는 것이 전례였었다. 간택의 심사가 끝나면 간단한 점심식사가 나오고 점심식사가 끝나면 처자들은 다시 먼저 들어왔던 문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재간택 (두 번째 간택)

 

재간택은 초간택을 한 지 2주일 후 정도로 주로 하며 절차는 같으나 다만 인원수가 초간택에서 많이 줄어 5내지 7인이 입궁한다.

 

재간택에서 세 사람을 뽑는다 하더라도 대개 내정은 되지만 발표하지 않으며 벌써 보이도록 특별 대우를 한다. 임중록에 의해서도 알 수 있듯이 귀가할 때 육인교를 태우고 차지내궁 등 근 50명의 호송을 받고 내전에서 보내는 봉서까지 가진 글월 비자를 시켜 따르게 하였다.

 


삼간택

 

세 번째 간택은 주로 재간택을 한 지 15일 내지 20일 만에 행하여지는데 재간택에서 내정된 처자에 대하여 재삼 확인하는 것이다.

 

삼간택에서는 왕이 이름을 지적하여 영의정을 통하여 공시한다.

삼간택에서는 최후로 뽑힌 처자는 그 자리에서 벌써 왕비 또는 빈궁대우를 받아 다른 후보자들의 큰절을 받으며 왕, 왕비, 왕대비를 뵈옵고 나서 사가가 아닌 별궁으로 큰 상궁이 모시고 가게 된다.별궁으로 나갈 때는 대궐에서 준비한 원삼에 족두리를 쓴 대례복 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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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4년(현종 15 / 숙종 즉위년, 甲寅)  
  · 1월
: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 장씨(張氏) 승하
  · 7월 : 대왕대비(장렬왕후)의 인선왕후에 대한 복제를 기년(朞年)으로 정함
  · 8월 : 현종 승하(해시(밤9-11)
  허적을 원상으로 삼음
  왕세자(숙종) 즉위(인정문에서)
  송시열을 서울로 들어오도록 함 - 오지 않음
  · 9월 : (영부사) 송시열에게 능지(묘비문)를 지어 올리도록 명함
  송시열이 사양하는 상소 올림
  정치화를 영부사로 삼고 송시열은 판중추부사(판부사)로 내림
  유생 곽세건이 송시열에게 내린 명이 부당하니 거두어 달라는 상소 올림
  (송시열은 선왕의 적통을 문제 삼은 이다)
  · 10월 : 송시열이 지문 짓기를 사양하자 김석주에게 짓도록 함
  (송시열에 관한 견제가 구체화)
  · 11월 : 이단하가 지어올린 대행왕의 행장을 고쳐 쓰게 함
  (송시열이 효종을 서자라고 썼던 대목이 오인례였음을 명시하라)
  · 12월 : 기해년 의례(儀禮)를 정한 신하들을 추죄함. 송시열(宋時烈)의 관작을 삭탈함
     
  1675년(숙종 1, 己卯)  
  · 1월
: 송시열을 덕원(德源)에 유배.
  · 3월 : 복창군·복평군을 궁녀 간통죄로 유배
  · 4월 : 윤5월 송시열을 위리안치(圍籬安置)함
  · 8월 : 윤휴의 건의로 복제를 3년으로 함.
  · 9월 : 비변사에서 오가작통사목(五家作統事目)을 올림.
  * 김우명(金佑明, 1619-1675) 죽음.
     
  1676년(숙종 2, 丙辰)
 
  · 2월
: 이황을 모신 안동의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사액함.
  · 4월 : 대흥산성(大興山城), 개성산성(開城山城)을 수축함.
  · 8월 : 선사진(宣沙鎭)을 가도로 옮김.
  용강(龍岡)에 황룡산성(黃龍山城)을 수축함
  ·  
  1677년(숙종 3, 丁巳)
 
  · 3월
: 호패법 시행.
  · 9월 : 대흥산성(大興山城), 개성산성(開城山城)을 수축함.
  · 11월 : 선사진(宣沙鎭)을 가도로 옮김.
  용강(龍岡)에 황룡산성(黃龍山城)을 수축함
  · 12월 : 호포법(戶布法)의 시행을 논의함.
  경상도에 대동법을 시행함
     
  1678년(숙종 4, 戊午)
 
  · 1월
: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주조하여 유통시킴.
  · 3월 : 청의 사신이 조선의 문적(文籍)을 얻어감.
  · 4월 : 공명첩(空名帖)을 폐지.
  · 6월 : 관서, 호남의 감사(監司) 병사(兵使)에게 주전(鑄錢)을 시킴.
  · 9월 : 각사노비(各司奴婢) 면천(免賤)의 한계를 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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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9년(숙종 5, 己未)  
  · 6월
: 허목(許穆)이 허적(許積)을 논핵함.
  남인이 청남(淸南) 탁남(濁 南)의 나뉨.

 

1680년(숙종 6, 庚申)  
  · 1월
: 외방의 주전(鑄錢)을 금지.
  · 4월 :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남인축출 서인집권. 윤휴 허적 등 남인 (南人)을 유배 보냄.
  서인(西人) 김수항(金壽恒)이 영의정이 됨.
  허견(許堅) 등이 복선군(福善君)의 추대를 도모하다 처형됨.
  · 5월 : 허적(許積, 1610-1680), 윤휴(尹휴, 1617-1680)를 사사(賜死)함.
  송시열을 석방함.
  윤8월 오정창(吳挺昌) 정원로(鄭元老) 등을 처형.
  · 10월 : 장옥정이 궁녀로 입궐
  송시열을 등용.
  인경왕후(仁敬王后) 김씨 죽음.

  1681년(숙종 7, 辛酉)  
  · 1월
: 새중전의 간택에 관해 논의
  · 2월 : 인경왕후 발인
  · 3월 : 병판 민유중의 딸을 왕비로 간택하다.
  민유중을 영돈녕부사 여양부원군으로 삼다.
  어영청(御營廳)에서 주전(鑄錢).
  · 4월 : 어의동의 별궁에서 납채례를 거행하다.
  납채례 : 대궐에서 간택된 왕비의 집에 혼인을 청하는 의식
  · 5월 : 장옥정이 대궐에서 쫓겨나감

  1682년(숙종 8, 壬戌)  
  · 1월
: 악기조성청(樂器造成廳)을 설치.
  · 5월 : 이이(李珥), 성혼(成渾)을 문묘에 종사함.
  · 10월 : 허새(許璽)등을 처형.
  · 11월 : 전라감영에서 주전(鑄錢)함.
  * 허목(許穆, 1595-1682) 죽음.

  1683년(숙종 9, 癸亥)  
  · 3월
: 송시열 치사(致仕)함.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완성.
  장희재가 인조반정 회갑 축하연에서 숙정을 데리고 달아남.
  · 4월 : 폐지된 사군(四郡)을 다시 설치할 것을 결정함.
  서인(西人)이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분당.
  · 7월 : 영남의 대동법을 개정함.
  · 12월 : 현종비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金氏) 죽음.

  1684년(숙종 10, 甲子)  
  · 3월
: 이단하(李端夏)가 사창절목(社倉節目)을 올림.
  무산부(茂山府)를 새로 설치함.
  · 10월 : 중용언해(中庸諺解) 완성.
  * 김석주(金錫胄, 1634-1684) 죽음.

 

1685년(숙종 11, 乙丑)  
  · 1월
: 호패의 지패(紙牌)를 목(木), 각(角)으로 바꾸게함.
  경성부의 사부(士夫)에게도 방역(坊役)을 부과함.
  종각(鐘閣)이 불에 탐.
  · 9월 : 호패 위조자를 사형에 처하기로 함.
  · 11월 : 삼금(蔘禁)범죄의 식(式)을 정함.

  1686년(숙종 12, 丙寅)  
  · 1월
: 안주(安州)에서 주전(鑄錢)하고 차자(車子)를 제조.
  · 7월 : 진도에서 표류한중국인 80여명을 송환.
  · 12월 : 이단하(李端夏)가 사창(社倉) 설치의 다섯가지 이득을 말함.
  ▷ 이징명(李徵明), 상소하여 여총(女寵)을 논함.

  1687년(숙종 13, 丁卯)  
  · 5월
: 명안공주 죽음
  · 6월 : 동평군 이항을 혜민서제조로 봉함.
  · 7월 : 최석정(崔錫鼎)이 선기옥형(璿璣玉衡)을 개수함.
  · 8월 :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 열조수교(列朝受敎)를 간행.
  · 9월 : 군문(軍門)에 육화진법(六花陣法)을 연습시킴.
  · 12월 : 숙종이 탕평책(蕩平策)을 유시(諭示)함.
  ▷ 만수전(萬壽殿) 불탐.
  * 김만기(金萬基, 1633-1687), 민유중(閔維重, 1630-1687),
  홍우원(洪宇遠, 1605-1687) 죽음.

  1688년(숙종 14, 戊辰)  
  · 2월
: 숙종이 남한산성에 행차.
  · 3월 : 평안도에 1년을 한도로 주전(鑄錢)케함.
  · 7월 : 소론 박세채(朴世采)을 내?i고 남구만 여성제(呂聖齊)를 유배함. 11월에 석방.
  · 8월 : 인조왕비 장렬왕후(莊烈王后) 죽음.
  · 10월 : 소의(昭儀) 장씨(張氏)가 왕자(경종)을 출산함.
  · 11월 : 소의 장씨의 어머니가 옥교를 타고 들어오다 욕을 당한 일로 상소가 올라옴

  1689년(숙종 15, 己巳)  
  · 1월
: 왕자를 원자로 정함.
  소의 장씨를 희빈에 봉함
  · 2월 : 기사환국(己巳換局). 서인 실각, 남인 집권.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을 제주도에 유배 안치(安置), 6월에 사사(賜死)함.
  · 3월 : 홍치상을 유언비어 유포죄로 절도에 위리안치함.
  김수항(金壽恒)의 관작을 삭탈함. 윤3월 사사(賜死).
  김익훈(金益勳) 장(杖)을 맞고 죽음.
  이이와 성혼을 문묘에서 출향(黜享).
  · 4월 : 귀인 김씨를 폐위해 사가로 돌려보냄.
  홍치상을 교형에 처함
  · 5월

: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를 폐위함.
  희빈 장씨의 명호를 정해 비로 삼음
  장형을 옥산부원군, 부인 고씨를 영주부부인, 계실 윤씨를 파산부부인으로 봉작함.
  * 김만중(金萬重)이 구운몽(九雲夢) 등을 지음.
  * 이단하(李端夏, 1625-1689) 죽음.

1690년(숙종 16, 庚午)  
  · 6월
: 원자(元子)를 세자(경종)로 책봉.
  · 9월 : 희빈 장씨가 왕자를 낳음. 열흘 뒤 죽음.
  · 10월 : 희빈(禧嬪) 장씨(張氏)를 왕비로 책봉.
  · 11월 : 진제(賑濟)를 위해 공명첩(空名帖) 2만장을 판매함.
  호적법을 밝히고 지패(紙牌)를 목패(木牌)로 바꿈.
  * 김수흥(金壽興, 1626-1690) 죽음.

  1691년(숙종 17, 辛未)  
  · 7월
: 세자를 위해 ‘한석봉천자문’을 편찬함
  · 10월 : 주전(鑄錢).
  · 12월 : 성삼문 등 사육신(死六臣)의 관작을 복구하고 시호를 내림.
  삼남, 서북의 인재를 고루 등용함.
  북한산성의 축성을 결정함.

  1692년(숙종 18, 壬申)  
  · 3월
: 장희재를 총융사로 삼음
  · 8월 : 숙종이 창덕궁으로 돌아옴.
  총융청(摠戎廳)의 주전(鑄錢)을 허락함.
  · 10월 : 동(銅)을 북경에서 구입함.
  · 12월 : 8도감사에게 인명(人命) 남살(濫殺)의 폐를 엄금함.
  * 남용익(南龍翼, 1628-1692), 민정중(閔鼎重, 1628-1692),
  김만중(金萬重, 1637-1692) 죽음.

  1693년(숙종 19, 癸酉)  
  · 4월
: 궁인 최씨를 숙원으로 봉함
  · 7월 : 주전(鑄錢)을 호조(戶曹)에 전담시키고 사사로이 주전하는 자는 교형(絞刑)에 처함.
  · 10월 : 소의 최씨가 왕자를 낳음.
  · 12월 : 소의 최씨가 낳은 왕자가 죽음.
  조사석(趙師錫, 1632-1693) 유배지에서 죽음.
  겨울에 대마도주가 본국인의 울릉도 어업의 금지를 요청함.

  1694년(숙종 20, 甲戌)  
  · 3월
: 왕세자가 서연을 시작함.
  갑술옥사(甲戌獄事). 남인 실각, 서인 집권.
  · 4월 : 소론 남구만(南九萬)이 영의정이 됨. 소론 등용.
  폐비 민씨를 왕후로 복위하고, 장씨를 폐위.
  · 5월 : 이이와 성혼을 문묘에 다시 종사.
  · 6월 : 숙원 최씨를 숙의로 삼음.
  · 8월 : 왜에게 왜인의 울릉도 왕래를 금지할 것을 요구함.
  · 9월 : 숙의 최씨가 왕자를 낳음(연잉군)
  어영청(御營廳)의 주전(鑄錢)을 허락함.

1695년(숙종 21, 乙亥)  
  · 4월
: 경기 충청지방에 도적이 횡행함.
  · 6월 : 서원(書院)의 첩설(疊設)을 금지함.
  · 10월 : 상평청(常平廳)의 주전(鑄錢)을 1년 기한으로 허가함.
  · 12월 : 버린 아이(遺棄兒) 수양(收養)의 법을 제정함.
  * 박세채(朴世采, 1631-1695) 죽음.

  1696년(숙종 22, 丙子)  
  · 1월
: 종묘악장(宗廟樂章)을 바로 고침.
  · 2월 : 사사로이 주전하는 자는 사율(死律)로 처벌함.
  · 4월 : 세자빈을 심호의 딸로 간택함. 세자가 관례를 치름.
  옥산부원군의 비석 파괴 사건으로 업동 등이 잡혀옴
  · 5월 : 세자가 가례를 올림
  · 9월 : 울릉도에서 일본으로 도항한 동래인 안용복(安龍福)을 추문(推問)함.

  1697년(숙종 23, 丁丑)  
  · 2월
: 대마도주가 막부(幕府) 명으로 왜인 울릉도 왕래 금지 통지.
  도성안에 있는 거지들을 각 섬에 보냄.
  · 4월 : 기아민의 구제를 위해 송첩(松帖)을 내줌.
  · 8월 : 중인(中人) 서얼(庶孼)의 통사자(通仕者)는 찰방(察訪)을 거친 후 수령으로 서용함을 허락함.
  · 10월 : 전국에 대기근.

  1698년(숙종 24, 戊寅)  
  · 1월
: 청에서 개시(開市)를 허락하고 속미(粟米) 4만석을 보내옴.
  숙종이 탕평(蕩平)할 것을 내림.
  · 8월 : 궁인 유씨를 숙원에 봉함.
  · 10월 : 사간원에서 지방의 생사(生祠)의 폐단을 규탄함.
  · 11월 : 노산군(魯山君)을 복위. 묘호를 단종(端宗)으로 함.
  상궁 박씨를 숙원에 봉함

  1699년(숙종 25, 己卯)  
  · 6월
: 최석정(崔錫鼎)의 건의로 국조보감속편(國朝寶鑑續編)을 편찬.
  · 7월 : 영월의 단종릉 장릉(莊陵)의 개수도감(改修都監)을 설치함.
  · 9월 : 남형(濫刑)을 엄금함.
  · 10월 : 숙의 최씨를 숙빈에 봉함.
  전염병이 유행하여 25만명이 사망함.
  * 권대운(權大運, 1612-1699) 죽음.

1700년(숙종 26, 庚辰)  
  · 3월
: 유생(儒生) 사제(賜第)의 범위를 정함.
  최석정(崔錫鼎)에게 속록(續錄), 여지승람(輿地勝覽)의 편수를 전담시킴.
  · 8월 : 선원보략(璿源譜略) 완성됨.

  1701년(숙종 27, 辛巳)  
  · 1월
: 문묘에 계성사(啓聖祠)를 세움.
  · 4월 : 청나라 사람이 압록강을 측량함.
  · 8월 :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 죽음.
  · 9월 : 대행왕비를 무고(巫蠱)한 죄인 장희재를 처형하라 명함.
  장희빈을 자진하게 하라는 비망기를 내림.
  · 10월 : 동평군(東平君) 항(杭)을 사사함.
: 빈(嬪)을 후비(后妃)에 올리지 못하게 명함.
  희빈(禧嬪) 장씨(張氏)를 사사(賜死)함.
  장희재를 처형함.
  ▷ 무고(巫蠱)의 옥(獄) 일어남.

  1702년(숙종 28, 壬午)  
  · 1월
: 세자가 장씨의 상(喪)에 감.
  희빈 장씨를 양주 인장리에 장사지냄
  · 5월 : 이준명(李浚明) 등이 울릉도 도형(圖形) 및 토산물을 바침.
  · 10월 : 김주신(金柱臣)의 딸을 왕비로 책봉. 인원왕후(仁元王后).
  귀인 김씨를 영빈, 귀인 박씨를 명빈, 숙의 유씨를 소의에 봉함
  · 11월 : 남구만, 유상운(柳尙運)을 유배지에서 석방함.

  1703년(숙종 29, 癸未)  
  · 1월
: 금위영을 폐지했다가 2월에 다시 부활시킴.
  · 7월 : 명빈 박씨가 훙서함.
  · 9월 : 명빈 소생의 왕자 이 헌을 연령군에 봉함.
  청나라에 황당선(荒唐船) 금지에 대해 통지함.
  * 이시백(李時白, 1635-1703), 박세당(朴世堂, 1629-1703),
  오도일(吳道一, 1645-1703) 죽음.

  1704년(숙종 30, 甲申)  
  · 2월
: 연잉군이 혼례를 올림.
  · 3월 : 도성 수축을 시작함.
  · 6월 : 서원의 첩설(疊設)을 금지.
  · 8월 : 해서대동시행절목(海西大同施行節目)을 정하게 함.
  · 11월 : 노산군일기(魯山君日記)를 단종실록(端宗實錄)으로 고침.
  · 12월 : 대보단(大報壇)이 완공.

1705년(숙종 31, 乙酉)  
  · 3월
: 숙종이 대보단에서 명의 신종(神宗)을 제사함.
  · 10월 : 숙종이 선위(禪位)를 명함.
  · 11월 : 세자가 선위의 명을 거두시기를 세 번째 상소하니 허락함.

  1706년(숙종 32, 丙戌)  
  · 2월
: 최석정이 동국여지승람의 수정을 요청함
  · 5월 : 유생 임부(林溥)등이 동궁모해 혐의로 김춘택을 탄핵하는 상소
  · 6월 : 동궁(東宮) 모해설로 임부(林溥)를 국문함.
  · 8월 : 최석정이 전록통고(典錄通考)를 편찬하여 올림.
  · 10월 : 청에서 칠정력(七政曆)을 수입함.

  1707년(숙종 33, 丁亥)  
  · 1월
: 임보(林溥)가 장을 맞고 죽음.
  · 2월 : 이순신 사우(祠宇)에 현충(顯忠)이라 사액함.
  연령군이 가례를 올림
  · 4월 : 형장(刑杖)을 일체 금지함.
  · 11월 : 숙종이 당론의 폐해를 유시(諭示)함.
  * 신완(申琓, 1646-1707) 죽음.

  1708년(숙종 34, 戊子)  
  · 2월
: 숙종이 당론을 경계함.
  · 4월 : 서양식 대포인 불랑기(佛狼機)를 만들게 함.
  · 10월 : 황해도에 대동법을 시행함.
  · 12월 : 서운관(書雲觀)에서 건상도(乾象圖)와 곤여도(坤輿圖) 올림.
  * 김창협(金昌協, 1651-1708) 죽음.

  1709년(숙종 35, 己丑)  
  · 1월
: 숙종이 노론 소론의 폐해를 유시(諭示)함.
  · 5월 : 서인(庶人) 상례(喪禮)의 제한을 엄격히 정함.
  김창집(金昌集)이 오륜전비언해(五倫全備諺解)를 완성.
  · 8월 : 강화도에 축성(築城)을 명함.

1710년(숙종 36, 庚寅)  
  · 3월 : 최석정(崔錫鼎)의 관직을 삭탈하고, 그가 올린 예기류편(禮記類篇)을 소각함.
  노론이 진출함.
  · 7월 : 왜관의 공작미(公作米)를 5년으로 연장해줌.
  · 10월 : 안정기(安鼎基)가 만든 차자(車子)를 제조함.

  1711년(숙종 37, 辛卯)  
  · 3월 : 북한산성(北漢山城) 축성을 시작하여 10월에 마침.
  · 5월 : 일본에 통신사 파견.
  · 12월 : 왜인의 구은(舊銀, 八星銀) 사용 요청을 허락함.
  비변사에서 양역변통절목(良役變通節目)을 올림.
  * 남구만 죽음

  1712년(숙종 38, 壬辰)  
  · 4월
: 청의 목극등(穆克登) 일행이 후주(厚州)에 이름.
  · 5월 : 총융청에서 북한산성 중성(重城)을 축조함.
  조선과 청나라가 백두산 정계비(白頭山定界碑)를 세움.

  1713년(숙종 39, 癸巳)  
  · 7월
: 서원의 첩설(疊設)을 금단함.
  · 10월 : 북도 친기위(北道 親騎衛)를 설치함.
  · 11월 : 이이명(李이命)이 오례의(五禮儀)의 개정을 논함.

  1714년(숙종 40, 甲午)  
  · 1월
: 팔도에 지진(地震).
  · 2월 : 숭례문 괘서(掛書) 사건이 일어남.
  · 7월 : 강원도의 군보단속절목(軍保團束節目)을 강구함.
  * 윤증(尹拯, 1629-1714) 죽음.

1715년(숙종 41, 乙未)  
  · 2월
: 동으로 도량형기를 주조하여 팔도에 반사함.
  · 4월 : 허원(許遠)이 북경에서 역서(曆書), 측산기계(測算機械), 자명종 (自鳴鐘) 등을 구해옴.
  · 12월 : 윤선거(尹宣擧)의 가례원류(家禮源流) 발문(跋文)으로 노소간의 분쟁이 격화됨.
  * 최석정(崔錫鼎, 1646-1715), 홍만선(洪萬選, 1643-1715) 죽음.

  1716년(숙종 42, 丙申)  
  · 8월
: 윤선거(尹宣擧) 문집의 훼판(毁板)을 명함. 병신처분(丙申處分).
  · 10월 : 윤선거의 선정(先正)의 칭호를 금지함.
  · 12월 : 윤증의 선정(先正)의 칭호를 금지함.

  1717년(숙종 43, 丁酉)  
  · 5월
: 김장생(金長生)을 문묘에 배향함.
  윤선거, 윤증 부자의 관작을 추탈(追奪)함.
  · 7월 : 왕이 이이명과 독대함.
  왕세자가 섭정을 함.

  1718년(숙종 44, 戊戌)  
  · 2월
: 세자빈 심씨가 훙서함.
  인장리의 장씨 묘를 천장하게 함.
  · 4월 : 소현세자빈 강씨의 위호(位號)를 회복시킴.
  · 9월 : 세자빈으로 어씨(魚氏) 책립.
  · 10월 : 마천령(磨天嶺)을 엄격히 막음.

  1719년(숙종 45, 己亥)  
  · 2월
: 숙종이 기로소(耆老所)이 들어감.
  · 7월 : 경상 전라 충청도에 균전사(均田使)를 파견.
  · 10월 : 연령군 죽음.

  1720년(숙종 46 / 경종 즉위년, 庚子)  
  · 6월
: 숙종 승하, 왕세자(경종) 즉위.
  · 10월 : 삼남의 양전을 끝냄.
  · 11월 : 청의 사신이 옴.
  조태구(趙泰耉)가 김창집(金昌集)을 배척하는 상소를 올림.
  * 최창대(崔昌大, 1669-1720), 민진후(閔鎭厚, 1659-1720)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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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허연우(한가인 분)와 이훤 임금(김수현 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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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 밝히던 조선 왕들의 '굴욕'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일곱 번째 이야기

 

 


'왕이 되면 예쁜 여자들을 사귀기 쉬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옛날 왕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천만에!"라며 손사래를 칠 것이다.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원칙상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이훤 임금(김수현 분)은 죽은 세자빈을 닮은 연우(한가인 분)를 무척이나 가까이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훤의 소망은 수많은 장애물에 의해 차단되어 있다. 그의 소망은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자칫 연우의 생명까지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이훤의 소망이 이루어지기 힘든 것은, 연우가 무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연우가 무녀가 아닌 궁녀라 해도, 이 소망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대왕대비와 중전과 외척세력이 묵과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이훤의 처지는 옛날 왕들의 사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들 역시 모험을 각오하지 않고는, 관심 있는 여성을 가까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왕이 되면 예쁜 여자들을 사귀기 쉬웠을 것'이란 관념보다는 '대학생이 되면 멋진 이성을 사귀기 쉬울 것'이란 관념이 차라리 현실적일 것이다.

 



왕의 '베드신'은 오직 후계자 생산을 위해 

'왕은 본인이 원하면 예쁜 여성을 첩으로 삼을 수 있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조선시대 27명의 왕이 평균 3.7명의 후궁을 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후계자를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약간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첩의 선택은 원칙적으로 왕실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임금 본인이 여자를 고른다는 것은 원칙상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대비나 중전 같은 왕실 여성들이 후궁을 선정했기 때문에, 남자 눈에 예쁜 여성이 후궁에 뽑힐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후궁의 일차적 선정 기준은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가'였다.

왕의 '베드신'도 철저한 사전 기획 속에 공개적으로 진행됐다. 여덟 명의 궁녀가 사방을 둘러싼 가운데 치러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왕이 육체적 쾌락을 탐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베드신을 찍는 배우가 쾌감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왕은 중전이나 후궁들과의 관계 속에서 남자의 행복을 느끼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궁녀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런 만족을 충족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것 역시 불가능했다. 왕이 예쁜 궁녀에게 한눈을 팔지 못하도록 왕실과 궁중과 조정이 집중 단속했기 때문이다.

승정원(비서실)의 업무일지인 <승정원일기>에 나타나듯이, 왕의 동선은 철저하게 파악되었다. 그러다 보니, 왕이 궁녀와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여간해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연예계 톱스타가 기자들을 따돌리고 인천공항을 빠져나가기 힘든 것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여차하면 신하들의 '막가는' 발언들이... 

 궁궐에 갇힌 왕의 모습. 사진은 정조 임금의 모습을 형상화한 밀랍인형.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 소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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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유교적 소양을 갖춘 신하들은 매일 두세 번씩 경연(세미나) 자리에서 왕의 귀에 '공자 왈', '맹자 왈'을 주입했다. 이때 가장 강조된 것이 "군자는 홀로(獨) 있을 때를 삼가야(愼) 한다"(君子必愼其獨也)는 구절이었다. <대학>에 나오는 신독(愼獨) 사상이다.

신하들은 왕이 침실에 혼자 있을 때도 신독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남이 안 보는 곳에서도 항상 허리를 펴고 똑바로 앉아 자기 수양을 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일례로, 중종 12년 8월 8일자(1517년 8년 24일) <중종실록>에는, 조광조가 경연 자리에서 중종에게 자세를 똑바로 하시라고 훈계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광조는 "혹시 요즘 혼자 계실 때 마음공부를 게을리 해서 이런 것 아닙니까?"라며 다그치기까지 했다. 침실에서 딴 생각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막간다'는 느낌을 주는 발언이었다. 이 정도로, 주변 사람들은 왕이 혹시라도 국가경영 이외의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길까봐 항상 경계하고 견제했다.

2003년 3월 9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평검사들과 '막가는' 대화를 했다. 평검사들의 발언 태도는, 내용의 당부당을 떠나, 누가 봐도 '막가는' 것이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제2장에 따르면, '검찰과 긴장관계를 만든 이유가 무엇인가?'란 취지의 질문에 대해 노무현은 "그건 작심하고 시작한 것이죠"라고 답했다.

왕들은 항상 노무현처럼 작심하는 심정으로 살아야 했다. 공개석상에서 왕은 반말을 하고 신하들은 존댓말을 했지만, 가슴을 졸이는 쪽은 신하들이 아니라 왕이었다. 신하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공손한 존댓말로 막가는 발언들을 해댔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듣지 않고 살려면, 이성에 대한 관심을 억제하고 국정에 전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임금 곁에는 '예쁠 것도 없는' 궁녀들만이

주변 사람들은 왕이 여자에게 정신을 쏟지 못하도록 '사전방지 활동'만 벌인 게 아니었다. 철저한 마크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는 '사후진압 활동'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이런 사후진압 때문에 체면을 구긴 왕들의 사례가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일례로, 제11대 임금인 중종은 미모의 후궁인 홍희빈(희빈 홍씨)을 특별히 가까이 하다가 조정의 견제를 받았다. 중종 13년 3월 12일(1518년 4월 21일) 아침, 그는 경연에 나갔다가 사헌부(검찰청) 정4품 관료로부터 '여색에 빠지는 자는 용렬한 임금'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른 아침 댓바람부터 '평검사'한테서 '여자 조심하라'는 막말을 들은 것이다.

제19대 숙종은 미모의 궁녀인 장옥정(훗날의 장희빈)을 후궁으로 삼으려다가 '미인을 경계하시라'는 상소를 받았다. 숙종 12년 12월 14일(1687년 1월 27일)의 일이다. 숙종이 끝내 자기 의지를 관철시키기는 했지만, 이것은 그가 비교적 강력한 군주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창덕궁 선정전. 왕의 편전(집무실)이었다.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소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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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경고를 무시하고 마음에 드는 궁녀를 가까이할 경우, 자칫 궁녀의 신변까지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다. 숙종이 궁녀 시절의 최숙빈(숙빈 최씨, 영조의 어머니)을 가까이하자 중전인 장희빈이 최숙빈을 죽이려다 실패한 사건이 이문정의 <수문록>에 기록되어 있다.

또 김용숙의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에 수록된 구한말 궁녀들의 증언에 따르면, 제26대 고종 임금 때는 왕의 관심을 끄는 궁녀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사건들이 많았다고 한다. 중전 명성황후(민비)와 후궁 엄귀인의 첩보망이 그처럼 촘촘했던 것이다. <해를 품은 달>의 보경 왕후(김민서 분)가 이훤과 연우의 관계를 견제하는 것 이상으로 실제 상황은 살벌했던 것이다. 

이 정도였기 때문에, 왕이 얼굴 반반한 궁녀를 자기 옆에 둘 수 있는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정지용의 <향수>에 나오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궁녀들만이 왕의 곁에서 오래도록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이하 생략. 전체 기사를 보려면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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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회] 숙의 최씨에 대한 희빈 장씨의 미움은...




숙의최씨가 황급히 달려온 숙종에게 인골 사건의 전모를 밝히려하지만

인현왕후는 근거도 없이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며 입을 다물게 한다.

숙의 최씨에 대한 희빈 장씨의 미움은 점점 더 커져가고...

한편 자신들의 정보가 자근아기에 의해 김춘택에게로 흘러간다고
판단한 숙정은 충근을 시켜 자근아기를 납치하려 하지만 김춘택의
방해로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충근등은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숙의 측 박상궁의 취선당 염탐은 계속되고 결국 권상궁에게 발견되어
희빈의 덫에 빠지고 만다.

박상궁은 피투성이가 되고 숙의가 달려와 취선당에 관련된 흉흉한 소문 때문이라며

별채를 뒤져야겠다며 벼르자 희빈은 자신있게, 만약 별채를 뒤져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숙의의 왕자를 우물에 던져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82회] 또 다시 일을 꾸미는 희빈 장씨...




결국 별채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희빈장씨는 숙의에게 아들을 살리고자 한다면

당장 대전으로 달려가 장희재의 방면을 주청드리라 명한다.

난감해지는 숙의 최씨!

어렵게 숙종에게 장희재의 방면을 입에 담자 숙종은 믿어지지 않는 듯
의아해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인현왕후 역시 이상하게 여겨 숙의를 불러 사실을
알려하나 숙의최씨는 그저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을 하지 못한다.

한편, 자근아기를 노리다 또다시 궁지에 몰린 충근이 동평군에게 달려와

살려달라 청할 때 의금부의 군사들이 들이닥치고 동평군은 위기에 빠진다.

충근은 당장 잡혀 들어가고 동평군역시 귀양을 가는 처지에 이른다.

장희재의 방면은 고사하고 충근의 일로 다시 위기에 빠지는 희빈장씨!

또 다시 일을 꾸며 충근을 독살시키고 안도의 한숨을 돌린다.

위세가 살아난 희빈장씨는 다시 숙의최씨를 불러 대전에 들어 장희재의
방면을 다시 주청하라 압력을 넣는데...



 

 

[83회] 숙안의 죽음에 인현왕후는 오열을 하는데...




숙의의 계속되는 의아한 행동에 의심을 품어오던 차에 자초지종을 알게된 민진후는

이를 인현왕후에게 고하자 인현왕후는 숙의를 직접찾아가 이실직고를 받아낸다.

하지만 이 일을 바로잡을 뚜렷한 방도가 없자 난감해하고....

한편 세자내외가 중궁전에서 오랫동안 문후들어 있다는 소식을 들은
희빈 장씨는 직접 중궁전을 찾아가 중전이 보는 앞에서 세자내외를
호통치는등 또 소란을 일으킨다.

이 와중에 숙안공주가 운명했다는 전언이 오고 그동안 정신적으로 큰
뒷받침되었던 숙안의 죽음에 인현왕후는 오열을 한다. 하지만 큰 걸림돌
하나가 제거되었다고 생각한 희빈장씨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인현왕후를 죽이기 위한 치성에 더욱 정성을 더하는데....





[84회] 희빈은 인현왕후를 해하려 계획을 세우고...




숙의와 희빈을 중궁전으로 부른 숙종은 그동안 중전의 간병에

이토록 소홀히 했냐며 호통을 친다. 그리고 앞으로 후궁 둘이 번갈아 가며

중전의 병간호를 하라고 명한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 희빈과 독대할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한
인현왕후는 내키지 않지만 어쩔수 없고....

우려한 바대로 간병온 희빈장씨는 인현왕후에게 막말도 서슴치 않는등
오히려 인현왕후의 병이 깊어가게 만들기만 한다.

한편 취선당에 관련해 이상한 소문이 끊임없자 숙종은 희빈이 중궁전에 든 사이에

취선당을 살펴보라 명하지만 무당 막례의 기지로 별 단서를 잡아내지 못한다.

위기를 넘긴 희빈은 더욱더 신통한 방술을 이용해 인현왕후를 해하려
계획을 세우고 이를 숙정을 통해 행하려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인현왕후의 병이 갑자기 호전되기 시작되고 오히려 세자빈이 신열로
앓아 눕는 일이 발생하는데....



 


[85회] 희빈은 인현왕후를 해하려 계획을 세우고...




희빈은 숙의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여의 순봉을 불러

자신이 지어온 탕재를 달여오라 명한다.

약에 극약이라도 들었을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중전의 환후를 염려한
충정이라는 희빈의 말에 중전 인현왕후는 거절하지 못한다.

그 탕재에 경분이라는 염화제일 수은을 넣은 희빈은 중전이 탕재를
마시자 회심을 미소를 짓는데...

그런데... 약을 마신 다음날, 의외로 중전은 차도를 보이게 되자

대궐 안은 모처럼 웃음꽃이 피어난다.

이러한 경사에 맞춰 숙종은 숙의를 숙빈에 봉하기에 이르고...

 

이처럼 자신의 의도와는 반대로 일이 진행되자 희빈장씨는 당황하고
어찌된 영문인지 알기 위해 여의 순봉을 불러 다그치기 시작하지만
어디서부터 일이 꼬였는지 알 길이 없자 다시 한번 경분이 든 약재를
달여 올리라 명하는데...

 


[ 제 85회 용어풀이 ]

월름미 : 월급으로 미리 주는 쌀




[86회] 춘택은 희빈을 없앨 계획을 세우고...




희빈의 모친 윤씨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희빈은 황급히 사가로 나가고

이 틈을 타 숙빈은 다시 한번 신당을 찾아내려 일을 꾸민다.

하지만 분란을 두려워한 인현왕후의 제지로 일을 실행하지는 못하고...

사경을 헤매던 윤씨는 결국 숨을 거두게 되고 희빈장씨는 슬픔에 빠진다.

이 소식을 접한 김춘택은 희빈이 사가로 나온 기회를 이용해 희빈을
없애버릴 계획을 꾸미는데...

희빈이 상을 다 치르고 궁으로 입궐하는 날, 김춘택은 꼭지단패거리를
불러모아 희빈을 처치하라 명한다.

드디어 꼭지단 패거리에 가마는 둘어싸이고 헤는 위기에 빠진다.

한편, 궐안의 숙빈역시 인현왕후의 명을 거역하고 신당을 찾기 위해
취선당으로 가는데...

 



 

 

[87회] 김춘택을 잡아들이라는 어명이 떨어지고...




김춘택을 당장 잡아들이라는 어명이 떨어지자 온 도성에는 나졸들이 깔린다.

하지만 희빈 장씨를 처단하기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김춘택은
오히려 결기를 다진다.

김춘택이 숙종을 알현하기 위해 일부러 잡히려한다는 이야기를
인현왕후로부터 전해들은 희빈장씨는 분하지만 자신의 죄과가 탄로 날까
전전긍긍한다.

숙종이 김춘택을 친국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순간, 희빈은 대전으로
나아와 김춘택의 친국은 또 다른 불행이 되기에 친국 대신 원지유배만
시키달라 주청드린다.

결국 희빈의 주청이 받아들여지고 김춘택은 경상도 상주로 유배를 가게 되는데...

모처럼 평온을 되찾는 대궐.

그러나 또다시 장희재의 방면을 주청한 제주목사의 상소문제로 시끄러워진다.

희빈장씨는 기회다 싶어 김춘택의 일로 트집을 잡힌 숙빈은 사주하여
함께 대전복도에 꿇어앉아 오라버니의 방면을 주청하지만

오히려 숙종의 노여움만 사는데...


 



[88회] 숙종의 돌아선 마음을 되돌리기 위한 장희빈의 노력...




숙종의 돌아선 마음을 다시 되돌리기 위한 방술로

희빈장씨는 숙종의 침의에 인골을 싸서 대전후원에 묻는다.
회심의 미소를 짓는 희빈 장씨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진다.

바로 인현왕후의 병세가 너무 악화되어 올 여름을 넘기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숙종은 조정을 개편하면서까지 중전을 살리려고 노력하지만...

한편 병마에 괴로워하는 인현왕후를 안스럽게 지키던 숙빈은 희빈에게 들러

중전이 편안히 눈감을 수 있도록 모든 저주를 거두어 달라고 요청하지만

희빈 장씨의 진노만 살뿐이다.

중궁전이 비었다는 전갈에 중전의 죽음을 앞당기기 위해 몸소 간병하러 온 것처럼

중궁전에 들린 희빈장씨는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말로 중전을 괴롭힌다.

그리고 중전의 헐떡거리는 목을 조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지만
때마침 숙빈최씨가 들어오는데....

중전을 죽이기 위해 희빈의 신당에서는 매일 방술이 진행되고
인현왕후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기에 이른다.

결국 숙종 27년 8월 14일,

중전 인현왕후는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마지막 유언을 뒤로하고 승하하고 마는데....

 

 

 

 

 

[89회] 인현왕후가 승하하자 희빈장씨는 다시 중전의 자리를...




자신의 의도대로 중전 인현왕후가 승하하자
희빈장씨는 다시 중전의 자리에 오르는 상상에 즐겁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이 호기를 맞아 그동안 죽어지내던 남인들이

서서히 희빈 장씨를 중전의 자리에 올리는 모의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무당막례가 미처 궐을 빠져나가기 전에 온 궐안은 내금위 군사들에 의해

통행금지가 행해지고 기세가 등등한 숙빈최씨는 몸소 군사들을 이끌고 취선당으로 들이닥치는데...

그러나 희빈 장씨의 간괴로 숙빈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막례는
무사히 궐을 빠져나간다.

뿐만 아니라 이미 말끔히 치워진 신당만을 확인하고는 숙빈최씨는
좌절하고 마는데...

한편 숙종은 중전의 죽음이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자괴감과 죄책감에,

몸소 상복을 입음으로서 통한을 달래고자 하였고 친히 행록을 지어

인현왕후의 행실을 기리고자 하였다.

 

그리고 희빈과 숙빈에게는 한시라도 인현왕후의 빈전에서 떠나지 말고

지극정성으로 대행왕비를 추모하라 명한다.

그러나 희빈이 빈전에 있던 숙빈을 취선당으로 부른 사이 빈전에 들린
숙종은 텅빈 빈전을 보고 불같이 격노하는데...


 

 

 

[90회] 희빈이 상복도 입지 않고 있다는 것과...

 




희빈이 상복도 입지 않고 있다는 것과 빈전의 숙빈을 함부로 불러내었다는 말에

화가 난 숙종은 취선당으로 달려와 희빈 장씨를 심하게 나무란다.

희빈장씨는 모든 것이 모함이라며 울며 매달려보지만

이미 희빈에게서 마음이 떠난 숙종은 더욱 모질게 희빈 장씨를 떼어놓으며

숙종은 취선당을 떠나고 만다.

숙종이 자신을 홀대하고 숙빈에게 더 호의를 보이자 위기를 느낀
희빈 장씨는 빈전 뜰 앞에서 석고대죄를 올린다.

숙종의 마음은 쉽게 돌어서지 않지만 눈물로 제어미의 용서를 구하는
세자의 호소에 숙종은 희빈의 석고대죄를 받아들인다.

한편 재집권을 위한 남인들의 발호가 시작되고 제주도에 유배된
장희재의 방면이야기 흘러나오자 김춘택은 긴장하기 시작한다.

이 소식을 들은 희빈장씨는 중전의 자리에 오를 날이 멀지 않았다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데...

 





[91회] 결정적인 증거를 손에 넣은 숙빈최씨는...




빈전에 든 숙빈최씨에게, 내관한명이 희빈 장씨의

값비싼 노리개를 가지고 있다는 중요한 정보가 날아든다.

이 소식을 들은 희빈 장씨는 그 내관을 불러들여 다시 한번 노리개를 주면서

입막음하고자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숙빈최씨 역시

그 내관을 불러 자초지종을 따져 묻는데...

한편 자근아기를 이용해 김춘택을 잡으려는 남인들은 급히 서두르고
김춘택은 행방이 묘연해진 자근아기를 찾기 위해 뛰어다닌다.

그러나 김춘택이 자근아기와 사통을 했다는 상소로 인해 김춘택은 다시
난관에 부딪히고 만다.

결정적인 증거를 손에 넣은 숙빈최씨는 서둘러 대전으로 향하고 드디어
모든 사실을 숙종 앞에서 털어놓자 충격 받은 숙종은 당장 대전 후원을
파보라고 명하는데...

 





[92회] 희빈은 세자를 붙들고 살려달라 애원하는데...




숙빈 최씨의 직접 지휘아래 대전의 후원을 파기 시작하자

희빈 장씨는 모든 것이 탄로 날까 두려움에 떤다.

마침내 희빈 장씨가 묻었던 인골이 나오고 이를 직접 지켜본 숙종은
당장 희빈장씨전의 권상궁을 잡아들이라 명한다.

권상궁은 잡혀오기전,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했다고 자백할 것이라며
희빈 장씨를 안심시키지만 희빈장씨는 불안하기만 하다.

드디어 숙종의 친국이 열리고 모진 고문이 권상궁에게 가해진다.

그러나 권상궁은 인골을 묻은 장본인은 자신이며 인현왕후를 저주할 목적이 아니라

희빈에게서 멀어진 숙종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한 것 뿐이라고 끝까지 강변한다.

친국은 희빈전의 모든 상궁, 나인들에게까지 확대되고 형벌은 더욱
가혹해진다.

혹시나 모든 것을 실토하지 않을지 불안한 희빈장씨는 세자를 붙들고
자신을 살릴 사람은 세자뿐이니 어미의 곁을 떠나지 말라며 애원하는데...





[93회] 숙빈최씨를 찾아가 살려달라 요청하는 장희빈.....




위기에 몰린 희빈장씨는 자존심을 뒤로한 채 숙빈최씨를 찾아가

지금 친국을 받고있는 권상궁을 살려달라 요청한다.

그러나 희빈이 먼저 자복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숙빈의
말에 발끈하여 심한 말다툼 끝에 힘없이 돌아온다.

궐안 사정을 알 리 없는 숙정 등은 김춘택을 잡고자 모사를 꾸미지만
김춘택은 이를 눈치채고 오히려 이들을 잡기 위해 몸소 숙정의 집으로 들어간다.

드디어 김춘택이 덫에 걸렸다 싶어 회심의 미소를 짓는 숙정.

그러나 그들이 김춘택을 포박하려는 순간 미리 준비하고 있던 의금부
병사들이 들이닥치는데...

결국 대궐로 압송되는 숙정과 막례!

이 일은 곧바로 숙종에게 보고되고 숙종은 친히 조사를 하겠노라며
이들의 친국차비도 서두르라 명한다.

그 와중에 희빈 장씨에게는 치명적인 물증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화살을 맞아 너덜너덜해진 인현왕후의 화상이었다.

한사코 부인하던 숙정과 막례도 이 물증에는 어쩔 수가 없었는지
드디어 모든 것을 실토하기 시작하는데...



 


[94회] 희빈장씨는 취선당으로 돌아와 체념의 눈물을...

 




모든 실상이 드러나는 장면을 목격한 희빈장씨는 취선당으로 돌아와

체념의 눈물을 흘리고, 끝끝내 희빈의 연루는 밝히지 않는 숙정과 막례에게

더욱 가혹한 고문을 명한 숙종은 이제서야 중전의 원혼을 풀 수가 있게 되었다며

인현왕후의 빈전 앞에서 용서를 구하는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세자에게 해가 돌아갈까 근심하던 남구만은 다시 한번 숙종을
찾아가 충정어린 간언을 하자 숙종은 흔들리기 시작하고, 믿을 것은
세자뿐인 희빈장씨는 세자를 빈전에 보내지 않고 함께 데리고 있는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숙종은 상주가 어떻게 빈전을 비우냐며 당장
세자를 데리고 오라고 명한다.

그러나 몇 차례 사람을 보내보지만 끝내 희빈 장씨가 세자를 붙잡고
놓아주지 아니하자 숙종은 드디어 내금위 병사 등을 동원하고서라도
세자를 끌어내라고 명한다.

불안에 떨며 세자를 보낼 수가 없다는 희빈 장씨의 절규!

그러나 왕명또한 거역할 수 없는 지라 최상앙은 완력을 써서라도
세자를 끌어내려 한다.

그런데....세자를 사이에 두고 내금위 병사들과 희빈 장씨의 실랑이가
계속되던 중 그만 세자가 실신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마는데...



 


[95회] 숙종은 결국 동평군의 사사를 윤허하고...




세자의 소식은 곧바로 숙종에게 보고되고 숙종은

희빈 장씨가 이제는 세자의 앞길까지 망치려 한다며 진노한다.

이런 와중에 김창집등 강경파들의 직언으로 숙종은 갈등을 거듭하던 끝에

결국 동평군의 사사를 윤허하고 이어서 무당 막례를 효수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 소식을 들은 희빈장씨는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좌절감에 빠져드는데...

신하들의 계속된 주청에 희빈 장씨의 처리문제로 편전에서 회의가 열리고

이 회의에서 장희재의 처단뿐만 아니라 희빈 장씨에게 사약을 내려야 한다는

노론 강경파 의견과 폐세자의 일을 걱정하는 소론의 남구만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자

숙종은 곤혹스러워 하는데...

 

 

 

 

[96회] 희빈에게 스스로 자진을 명하는 숙종..




취선당에 감금된 희빈장씨!

숙빈전의 박상궁이 진지상을 차려오자 화가난 희빈은 그 밥상을 세차게 밀어 던지며

세자가 오지 않으면 곡기를 끊고 죽고 말 것이라며 절규한다.

한편 희빈의 단죄를 둘러싼 노론 강경파와 남구만의 대립은 점점
격해지고 숙종은 행형을 뒤로 미루며 갈등하기 시작한다.

제주도를 탈출한 장희재는 도성으로 돌아와 민언량과 김태윤등
남인들을 만나 그동안의 소식을 듣고 분개한다.

그리고는 바로 군사들을 일으켜 반정에 나설 계획을 세우지만
제주도에서 동행한 준성의 고발로 장희재 역시 포박된다.

숙종의 명으로 장희재에 대한 국문이 시작되고, 이 자리에서 역모를 꾀하고

인현왕후의 저주를 부추긴 장희재의 편지가 물증으로 제시되는데...

희빈의 행형에 대해 고심하는 숙종!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 없었는지 희빈에게 직접 사약을 내리는 대신에
스스로 자진을 명하는 전지를 내리는데...



 


 

[97회] 어미의 목숨을 살려달라는 세자의 청에..




희빈 장씨에 대한 행형이 매듭지어졌다는 소식에 숙빈최씨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지만

세자는 자식된 도리를 다해야 한다며 대전으로 가려하지만 쓰러지고 만다.

마침내 자진의 명을 담은 전지가 취선당에 당도하자 희빈장씨는

큰 충격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세자를 데려오지 않으면 먼저 죽을 수 없다며 전지를
내팽겨치는등 격렬하게 어명을 거부한다.

이 소식에 격노하는 숙종!

당장 취선당으로 달려가려 하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대전에 나타난
세자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어미의 목숨을 살려달라는 세자의 청에잠시 흔들리는 숙종!

그러나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서는 나라를 경영할 수 없다며 냉정하게
세자를 나무란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취선당으로 나아온 세자!
그러나 내금위 군사들에게 제지를 당하고 취선당에서 끌려나간다.

“어마마마”를 부르짖는 세자의 절규를 들은 희빈장씨!

황급히 문을 박차고 나가보지만 결국 또 다시 제지당하는데...

 

 




[97회] 어미를 살리기 위한 세자의 석고대죄..

 




어미를 살리기 위한 세자의 석고대죄!

숙빈과 세자빈이 나서서 만류하지만 어미를 살려달라며 절규하는
세자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다.

찢어질 듯 마음이 아픈 숙종.

그러나 세자의 청을 받아들일 수가 없고 결국 세자는 내관들에 의해
동궁으로 끌려가는데...

이 광경을 지켜보던 숙빈최씨는 이러다 세자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취선당으로 가 희빈 장씨와 담판을 지으려한다.

즉 세자가 다 죽게 되었으니 세자를 살리려거든 희빈 장씨가 하루빨리
자진하는 수밖에 없다며 다그친다.

그러나 희빈 장씨의 기세가 꺾일 기미가 없자 마침내 품안에 있던
은장도를 꺼내 어서 왕명을 받들라며 소리치는데...

한편 정국이 어수선한 틈을 타 회생의 기회를 노리던 역관들과 남인들은 세를 규합,

관리들을 매수하여 희빈의 자진전교를 거두어 달라는 상소를 올리게 하는 등

최후의 발악을 시작하고 이 소식에 희빈 장씨와 장희재는 마지막 희망을 걸어본다.

그러나 이 일을 오히려 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며 숙종을 격노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 결과 마침내 숙종은 분노의 눈물을 머금은 채 희빈 장씨를 당장
사사하라는 어명을 내리는데...

 



 

 

 

 

[99회] 사약을 받으라는 어명이 내려지고...




사약을 받으라는 어명!

도승지는 희빈 장씨를 강제로 끌어내지만 희빈장씨는 사약소반을 뒤엎으면서

세자를 죽이고 오지 않으면 혼자서는 죽지 않겠노라며 심하게 거부한다.

이 소식에 심하게 격노하는 숙종!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부사 남구만까지 향저로 돌아간다는 말에 매우 미편해한다.

한편, 희빈 장씨를 살리기 위해 세를 결집하던 역관들은 남구만을 직접 찾아가

향저로 돌아가지 말고 오히려 자신들과 함께 입궐하여 희빈을 살려내야 한다고 설득하기 시작한다.

역관들의 움직임은 빨라지고 드디어 영부사 남구만을 앞세워 대궐로
몰려들어오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역관들의 국기를 뒤흔드는 이 사건은 오히려 숙종의 분노만 살 뿐,

숙종은 당장 난동에 나선 역관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라하고 남구만
역시 사저에 연금시켜버린다.

그리고 다시 한번 희빈에게 사약을 내리라는 최후의 결단을 내리는데...

그러나 희빈 장씨가 이번에도 사약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세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숙종은 직접 취선당으로 나아와 자신이 보는 앞에서
강제로라도 입을 벌여 사약을 마시게 하라 명하는데...





[100회] 세자의 품에서 사사되는 희빈장씨!




결국 자신의 불충을 용서해달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자의 품에서 사사되는 희빈장씨!

숙종은 불꺼진 대전에 홀로 앉아 희빈 장씨에 대한 회한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궁에 들러 세자에게 종사의 백년대계와 세자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천명을 받든 것이니 앞으로 보위를 이어갈 왕재로서의 위엄을 잃지 말라고 당부한다.

희빈의 사사이후 장희재등 희빈 일당들의 여죄가 추궁되고 혹독한
문초가 행해진다.

김태윤의 자복으로 장희재의 죄상도 낱낱이 밝혀지고 결국 장희재는
백성들의 야유와 욕설 속에서 참수되기에 이르러 한때를 풍미했던 장씨
일가의 세도는 이렇게 끝을 맺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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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회] 숙원 최씨를 제거하기 위한 방도를 찾는 희빈과..




환란의 씨앗를 없애기 위해서는 숙원을 죽이는 방도밖에는 없다고 판단한 중전 장씨는

희재를 불러 숙원 최씨를 없애라고 명한다.

숙종의 발걸음은 자주 숙원전을 향하고 이 자리에서 숙원은 매번 폐비
복위를 입에 담는다.

숙종은 이러한 숙원의 마음이 한없이 갸륵하지만 폐비 복위에 대해서는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한다.

한편 서인들의 폐비 복위 움직임은 수면위로 떠오르고 이들의 뒤를
캐고자 민장도는 자신이 심어놓은 첩자를 이용한다.

그리고 중전의 명을 거역할 수 없는 희재는 숙원 최씨를 제거하기 위한 방도를 찾기에

골몰하다 숙원 최씨의 형부인 김해성을 협박반 회유반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마침내 서인들의 거사일이 정해졌다는 첩보가 입수되고 장희재는

그 거사일에 맞춰 숙원 최씨를 독살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데...

 

 

 

 

 

 

[62회] 폐비복위를 위한 거사일!

 




폐비복위를 위한 거사일!

민장도등이 이미 그 정보를 입수하고 준비를 해놓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한중혁, 이시회등은 군사를 일으킨다.

 

그러나 거사를 시행하기도 전에 금군들에게 모조리 포박당하고...
한편, 이 거사일에 맞춰 숙원 최씨를 독살한다는 계획을 세운 장희재는

김해성을 이용해 독이 든 약재를 궐내로 반입하고자 한다.

자근아기로부터 김해성이 자주 숙원의 사가에 들린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김춘택은 불길한 예감이 들고...

장희재에게 포섭당한 김해성은 장희재에게서 받은,

독이 든 약재를 들고 숙원의 사가로 간다.

이 약을 먹으면 숙원이 왕자를 잉태한다는 감언이설을 들은 숙원의
아버지는 숙원전의 궁녀를 통해 그 약재를 궐내로 들여보낸다.

장희재 일패의 숙원 독살 기도를 직감한 김춘택은 뒤늦게 그 궁녀를
뒤따라 가는데...

 

 

 

 

 

[63회] 장희재의 숙원 독살 음모에 대해..




독이 든 탕재가 들어갔는데도 숙원이 죽었다는 소식이 없자

중전 장씨는 제 눈으로 확인하고자 숙원을 문후들라 명한다.

너무나도 멀쩡하고 태연한 숙원의 모습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할 지경이고

뒤늦게 온 장희재에게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며 호통을 친다.

이번 일에 숙종이 관여하면 곤란해지므로 마음이 급해진 장희재와
민장도는 잡혀온 서인무리들에게 더욱 심한 고문을 가하지만 김춘택등은
아랑곳하지 않고 폐비 복위의 정당성만을 강변한다.

바로 김인의 상소문이 올라올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춘택의 부탁을 받은 김인은 선뜻 붓을 들지 못하고...

서인들에 대한 고문이 날로 혹독해진다는 소식을 들은 폐비민씨는

다 자신 때문에 무고한 자들이 고통받는다는 자괴감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고

남인들의 이러한 정권유지 야욕에 회의를 느낀 동평군은
민암을 찾아와 당장 국청을 중지하라 요구한다.

그러나 장희재 입장에서는 숙원이 독약을 마시고 죽을 때가지는 국문을
중지할 수 없고...

숙종 역시 남인들의 정권 유지 야욕에 신물이 나 있던 터라 이번일에
자신이 직접나설까말까를 고민한다.

그러던 중 드디어 장희재의 숙원독살음모에 대해 김인등이 쓴 상소문이
숙종에게 전달되고 숙종은 당장 김인을 입궐시키라 명하는데...





[64회] 갑술환국은 숨가쁘게 진행되고...





직접 숙원전에 들러 자신의 눈으로 독약을 확인한 숙종은

당장 장희재를 잡아들이라 명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입궐하던 장희재는 금군들에 의해 잡혀 투옥된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대신들이 서로에게 탓을 하며 다투고 있는 사이
숙종이 내린 비망기가 도착한다.

앞으로 환국의 전개가 예고된 이 비망기는 남인들에 대한 숙종의 불만이
폭발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어 남인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한다.

한편 오라버니가 잡혀갔다는 소식에 안절부절못하던 중전 장씨는
세자를 앞세워 숙종에게 나아가려 하지만 이미 금족령이 내려진 상태라 어찌할 도리가 없다.

드디어 남인들이 모조리 원지유배 또는 처형되고 대신에 남구만 등의
서인세력들로 의정부를 개편하는 등 숙종의 갑술환국은 숨가쁘게 진행되고

최상앙을 폐비의 사가로 보내 폐비의 동태를 살피라 명한다.

폐비를 만나고 온 최상앙이 민씨가 폐가나 다름없는 곳에서 환후중에
있다는 말을 전하자 숙종의 마음은 죄책감으로 찢어질 것만 같다.

이 소식을 들은 숙원 최씨는 곧 복위의 날이 멀지 않았음을 예견하고
기뻐하지만, 숙종은 세자의 모후인 중전 장씨가 있으므로 폐비 민씨의
복위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데...






[65회] 숙종은 공식적으로 폐비 복위를 거론하고...........





혐의가 없음이 밝혀진 김춘택은 풀려나고 그를 만난 폐비 민씨는 고마움에 눈물을 흘린다.

독살음모의 주모자인 장희재에 대한 국문이 시작되고 장희재는 물증을 대라며

혐의를 완강히 거부하지만 김해성과의 대질심문에서 모든 것이 밝혀지는데...

드디어 숙종은 조정대신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폐비 복위를 거론하고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친다.

그 결과로 한때 영화를 누리던 남인대신들은 모두 유배되거나
사사되기에 이른다. 이 소식을 들은 중전 장씨는 발끈하며 세자를
데리고 대전으로 가려하나 이미 금족령이 내려진 상태라 어찌할 수가
없어 더욱 독이 오르고...

마침내 폐비의 복위 소식을 가지고 폐비의 사가로 향하는 최상앙.

그러나 이 기쁜 소식에도 불구하고 폐비 민씨는 자신의 병이 너무나
깊을 뿐 아니라 자신의 복위가 왕실이나 조정에 이로울 것이 없다며
어명을 받들 수가 없다고 하는데...





[66회] 중전 장씨는 희빈으로 강등되고...




복위의 어명을 받들 수가 없다는 폐비의 소식을 들은 숙종은 더욱더 가책을 느끼고

더욱 간곡한 자신의 소망을 담아 다시 한번 청하라 명한다.

옥에 갇힌 장희재의 광분은 날로 더해가고 심한 매질을 당하던
민장도는 거의 옥사할 위기에 처한다.

점점 입지가 위태로워지는 중전 장씨!

세자를 방패삼아 폐비의 복위만이라도 막아보려 하지만 역부족이고...

한편, 계속해서 복위의 어명을 거절하던 폐비 민씨는 자신의 과오를
뼈저리게 뉘우친다는 숙종의 비망기를 받아들고는 복위의 결단을 내린다.

마침내 숙종20년(1694년) 4월 12일, 폐비 민씨가 6년 간의 고초를 끝으로 재입궁을 하던 날,

온 도성은 중전마마를 외치는 백성들의 감격으로 가득 찬다.

숙종 역시 몸소 마중을 나오고,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숙종의 말에
인현왕후는 그만 눈물을 흘린다.

반면 중전 장씨는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고 그 거처도 취선당으로 쫓겨가게 되는데...

 

 

 

 


[67회] 불태워지는 중전 장씨의 옥책과 교지!

 




불태워지는 중전 장씨의 옥책과 교지!

중전 장씨의 6년 간의 영화는 이렇게 사라지고 눈물바다를 이룬 가운데
취선당으로 쫓겨간다.

뿐만 아니라 문초를 받던 민장도는 결국 숨을 거두게 되고 장희재 역시
간신히 사사는 모면하고 제주도에 유배되는 신세로 전락한다.

반면 숙종은 재입궐한 인현왕후의 중전 책비례를 성대히 치를 것을 명하고...

그런데 새중전을 맞이하기 위해 중궁전을 수리하던 중, 엄청난 파란을
몰고 올 언문편지 한 장이 발견된다.

바로 숙의 최씨의 독살을 모의하기 위해 장희재가 옥정에게 보냈던 그
편지가 발견되어 서인대신들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잘못하다가는 희재뿐만아니라 자신에게도 큰 화를 불러올 편지인지라
희빈 장씨는 그 편지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 제 67회 용어풀이 ]

삼사 : 조선시대 언론을 담당한 사헌부, 사헌부, 홍문관을 가리키는 말





[68회] 재집권한 서인정권은 또다시 소론과 노론으로...




재집권한 서인정권은 또다시 소론과 노론으로
갈라져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다툼이 시작된다.

특히 김춘택의 방면에 비해 귀양간 한중혁의 일을 빌미로 분열은 가속화된다.

결국 김춘택과 한중혁은 다시 한성으로 압송되어 재조사를 받게되고
우의정 윤지완의 주장으로 장희재의 숙의최씨 독살 음모 역시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대신들의 이런한 주장에 혹여 세자가 해를 입지 않을까 숙종은
심사숙고에 들어가지만 쉽게 결정을 내리지는 못한다.

중요한 단서가 되는 언문편지 문제는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게 되고
희빈 장씨는 위기감에 몸을 떤다.

고심하던 희빈 장씨는 세자를 앞세워 중전을 찾아가 읍소를 하며
장희재의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무리한 희빈의 요구에 중전이 대답이 없자 희빈 장씨는 세자를
음해 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데...




 

 

[69회] 희빈의 부친묘가 파헤쳐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남구만에게 편지를 받아온 희빈 장씨는 이를 불태우며 훗날을 도모할 것을 결심한다.

한편 김춘택, 한중혁등에 대한 재심문이 진행되지만 새로이 밝혀진 것이 없어

김춘택은 다시 방면되고 영의정 남구만은 처음에 이 일을 거론했던 한구를 유배시켜 버린다.

또한 세자의 외숙을 죄줄 수 없다는 상소를 올려 장희재를 다시
제주도로 돌려보내자 희빈 장씨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그러나 이 일을 빌미삼아 젊은 유생들 사이에는 남구만을 탄핵하고자하는 움직임이 일고

남구만은 숙종에게 사직상소를 올린다.

그러나 숙종은 윤허하지 않고...

그러던 중 양주에 있는 희빈의 부친묘가 파헤쳐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소식을 들은 희빈은 숙종에게 달려가 이는 세자를 음해하고자 하는
무리들의 소행이므로 반드시 색출하여 처단해야한다고 청한다.






[70회] 숙의에게 산기가 있다는 급한 전갈이 당도하는데...




희빈의 부친묘가 파헤쳐진 사건의 파문은 점점 더 커져가고

민진후등은 희빈의 패거리가 스스로 꾸민 일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러던중 산소 주위에서 발견된 호패를 단서 삼아 이조판서 최석정은
마침내 범인을 색출하기에 이른다.

범인은 다름 아닌 병조판서 신여철의 종속이었다.

의금부 병사들은 당장 그를 잡아들이는데, 이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희재의 수하들이었다.

잡혀온 범인에 대한 숙종의 친국이 시작되자 병조판서 신여철은
안절부절못하고 자신을 죽여달라며 대전 앞에서 석고대죄를 한다.

희빈 장씨는 더욱 기세가 올라 숙종에게 빨리 배후를 밝혀달라 조르고...

그런데 범인과 목격자의 대질심문을 하려는 중 그만 범인이 숨을 거두고 만다.

이 사건은 다시 미궁 속에 빠지고 화가 난 희빈은 다시 대전으로 든다.

희빈은 숙종에게 그 범인은 바로 세자를 음해 하려는 무리들에 의해
독살 당한 것이므로 하루빨리 그 무리들은 색출해달라고 재촉한다.

난감한 숙종이 희빈을 외면하고 있을 때 바로 숙의에게 산기가 있다는
급한 전갈이 당도하는데...


 

 

 

[71회] 숙종은 세자의 보위를 약속하며 세자빈을 들이라...




숙의의 산기소식에 대궐의 모든 이목이 숙의전으로 향하고 있을 때

숙정은 막례라는 무당을 찾아가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드디어 숙의가 왕자를 생산하자 숙종과 인현왕후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지만 희빈은 그 핏덩이를 살려둘 수 없다며 더욱 독이 오르는데...

한편, 피의자의 죽음으로 난감해진 최석정은 파묘사건의 목격자인
농부를 데리고 도성거리로 나가 범인 색출을 시도하고 마침내 업동이
걸려들기에 이른다.

이 와중에 업동이 장희재의 가솔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배후에 희빈이
있다는 생각에 주저하는 최석정에게 숙종은 배후가 누구든 간에
철저하게 사건을 조사하라 명하고...

이 소식을 들은 희빈은 놀라 쓰러지고 윤씨와 숙정은 혹여 업동이
진실을 발설할까 불안에 떨며 업동이를 처치할 궁리까지 한다.

하지만 세자에게 피해가 갈 까 걱정되는 남구만의 주청으로 다행히
업동은 풀려나게 되고 희빈은 한숨을 돌리게 된다.

이러한 희빈을 찾아온 숙종. 이 자리에서 숙종은 세자의 보위를
약속하며 하루 빨리 세자빈을 들이라 명하는데...

 





[72회] 왕자를 생산한 숙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못하는 희빈...




자신이 살아있는 한 세자의 서열에는 변함이 없으며

세자빈 간택에도 적극적인 인현왕후의 행동에 희빈은 눈물을 쏟으며 감격한다.

하지만 왕자를 생산한 숙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는 못하고...

한편 젊은 간관들의 반발로 지난번 방면되었던 업동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되고 더욱 모진 고문을 당하던 업동은 결국 입을 열게 된다.

업동의 입에서 희빈에 관련된 말이 나올 줄 기대했으나 업동은 전혀 엉뚱한

이홍발을 거론하자 서인들은 모두 황당해한다. 어쨌든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고...

한숨을 돌린 숙정은 다시 막례를 찾아가 인현왕후를 몰아내고 희빈의
복위를 도모하고자 일을 꾸미기 시작하고 희빈 역시 근래 자주
인현왕후가 혼절한다는 소식에 득의의 미소를 짓는데...


[ 제 72회 용어풀이 ]

탕탕평평 : 어느 한쪽도 치우치지 않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여 공평하게 정치를 하겠다는 말





[73회] 직접 인현왕후의 병간호를 하는 숙종...




중전의 소식을 듣고 달려온 숙종은 직접
병간호를 하는 등 인현의 완쾌를 위해 정성을 쏟는다.

한편 희빈은 세자빈의 간택단자 들어오는 것이 신통치 않자 직접 나서
동평군에게 하루빨리 서두르라 명하지만 사대부들이 의도적으로 희빈을
멀리하는 이유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결국 숙종과 인현이 직접 나서 간택단자의 일을 챙기고...

귀양을 가있는 희재는 숙정과 희빈에게 훗날을 도모하는 내용의 편지를
올리고 이를 눈치챈 김춘택은 희재의 수하들에게 미행을 붙인다.

편지를 받아든 희빈은 다시 한번 결기를 다지고 세자의 가례를 기회로
자신의 입지를 새롭게 할 것을 결심하는데...





[74회] 세자빈의 간택을 놓고 심한 의견차이를 보이는 인현과 희빈

 




세자빈의 간택을 놓고 심한 의견차이를 보이는 인현과 희빈.

희빈은 인현이 간택한 심호의 딸이 마음에 들지 않자 인현 앞에서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그러나 결국 심호의 딸이 최종 간택되어 가례가 치러지고

희빈은 첫대면에서 자신의 지원극통함을 한시라도 잊지말라고 신신당부한다.

한편 장희재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첩보를 접수한 김춘택은 윤씨가
숨어들었다는 막례집을 알아내 몰래 염탐하기 시작하지만 그의 수하들이
장희재의 수하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 음모가 중전이나 숙의에게로 향하고 있다고 판단한 김춘택의 발걸음은 빨라지는데...

가례를 올린 세자와 세자빈은 희빈보다는 오히려 인현왕후에게서

더 큰 자애로움을 느끼고 가깝게 지낸다.

이 사실을 안 희빈은 매우 못마땅해하고 당장 세자를 불러오라 호통치는데...





[75회] 희빈장씨는 막례에게 신당을 차릴 것을 명하는데..

 





희빈장씨가 숙종에게 지금 세자의 외조모가 사람들에게 쫓겨 숨어산다고 말하자

숙종은 당장 그들을 옛집으로 옮기게 하고 금군들이 직접 지켜주도록 명한다.

감읍하는 희빈 장씨.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김춘택등 노론들은 발끈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일을 빨리 진행시키고자 희빈은 막례의 입궐을
명하고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챈 숙의 최씨는 인현왕후에게 이를
고하지만 인현왕후는 투기하지 말라는 말만 할 뿐이다.

입궐에 성공한 막례는 희빈에게 중전의 자리에 다시 오르기 위해서는
궐안에 신당을 짓고 비방을 해야 한다고 고하자 희빈장씨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너무나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막례가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챈 김춘택과 숙의최씨는 방도를 강구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고 마침내 희빈장씨는 막례에게 신당을 차릴 것을 명하는데...





[76회] 희빈은 결국 신당 차리는 일을 잠시 뒤로 미루고..

 




권상궁등의 반대에 부딪힌 희빈은 결국 신당 차리는 일을 잠시 뒤로 미루지만

언제고 기회만 되면 다시 부르겠노니 그동안 필요한 신구들을 준비하라 막례에게 명한다.

그러던 중 유배된 업동이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희빈은 옛일이
탄로날까 다시 긴장하기 시작한다.

윤씨를 만나기 위해 막례집에 들린 업동은 막례와 함께 금군에 잡히게
되고 희빈 쪽은 업동이 모든 것을 발설할까 업동을 살해하고자 음모를 꾸민다.

하지만 또 다시 남구만의 진언으로 업동은 방면되어 희빈은 한 숨을
돌리게 되지만 김춘택은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쉽기만하다.

이제 더 이상 거칠 것이 없는 희빈의 위세!

희빈은 조그마한 일을 트집잡아 숙의의 궁인을 문초하는 일이 벌어지고
찾아온 숙의에게도 종아리를 걷으라 명하는데..



 


[77회] 희빈이 숙의를 매질한다는 소릴 들은 인현왕후는..




희빈이 숙의를 매질한다는 소릴 들은 인현왕후는 급히 취선당으로 와

매질을 말리려 하지만 오히려 희빈에게서 모욕스런 말을 듣는다.

참는데도 한계가 있는 법.

참다못한 인현왕후는 희빈의 뺨을 때리게 되고 희빈장씨는 통렬하게 울부짖는다.

그러던 중 숙종이 몹시 편찮으시다는 소문이 돌고 인현왕후는 최상앙을
불러 숙종의 환후를 확인한다.

아니라며 부인하는 숙종 앞에서 인현왕후는 옥체를 보전해야한다며
눈물로 간청을 하여 마침내 숙종의 몸에 뜸을 뜨는 등 치료를 위해
정성을 다하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현왕후는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다며 눈물을 흘리고...

이 소식을 들은 숙안공주는 대궐로 달려와 숙종의 환후는 심한 격무
탓이므로 격무를 벗어날 수 있도록 자신의 집으로 피접올 것을 주청하고
거절하던 숙종도 인현왕후의 청을 들어 피접을 결정한다.

하루라도 빨리 인현왕후의 국상을 바라던 희빈 장씨에게 숙종의 피접은
엄청난 기회가 되고 마침내 이 혼란을 틈타 막례의 재입궐을 추진, 신당
차리는 일을 서두르게 되는데...

 


[ 제 77회 용어풀이 ]

경연청 참찬관 : 임금 앞에서 경서를 강론하는 경연에 참예하는 관원

피접 : 장소를 옮겨서 병을 치료하는 일




[78회] 재입궐한 막례는 비밀리에 신당 차리는 일을..




재입궐한 막례는 비밀리에 신당 차리는 일을 서두르고

이를 바라보는 희빈 장씨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어린다.

한편 지난번 일을 사과하러 취선당에 들린 인현왕후는 다시 한번
희빈에게 모욕을 당하고 혼절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막례가 사라진 것을 발견한 김춘택은 아무래도 일이 심상치 않게
되어져간다는 것을 직감하고 숙의최씨를 사가로 불러내 취선당의 동태를
잘 살피라 경고한다.

하지만 숙의최씨가 궐밖에 나간 사이 희빈의 신당은 완성되고 마침내
저주의 의식이 시작된다.

첫 번째 화살은 숙의의 소생인 연잉군!

신기하게도 실제로 연잉군은 이유없이 심한 고열에 쓰러지고 숙의 최씨
대신에 왕자를 돌보던 인현왕후는 당황해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희빈과
막례는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갖은 처방에도 불구하고 왕자의 신열은 높아만 가자 인현왕후는 숙의의
사가로 급히 연통을 띄우고, 숙의 최씨는 허둥지둥 서둘러 입궐하는데...


 



[79회] 희빈은 중전복위의 의지를 더욱 불태우고....

 





왕자의 신열 소식에 대궐은 발칵 뒤집히고
숙의와 숙종은 급히 입궐한다.

반면, 막례의 영험함을 더욱 신임하는 희빈장씨! 다음으로 중전 인현왕후를

목표로 하여 의식을 진행할 것을 명하고 중전복위의 의지를 더욱 불태운다.

취선당의 행태가 계속 의심이 가는 숙의최씨는 희빈의 동정을 살피러
몸소 취선당으로 문후들고 김춘택과 자근아기 역시 아들 휘를 통해
취선당의 정보를 캐내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 일은 곧 취선당으로 알려지고 위험을 느낀 희빈장씨는
아쉽지만 훗날을 기약하며 막례를 다시 궐밖으로 내보낸다.

숙의의 왕자는 곧 회복이 되고 대궐은 다시 기쁨을 되찾지만 이 소식을
들은 희빈 장씨는 못내 아쉬워한다.

한편 취선당에 잡인이 출입한다는 풍문이 끊이지 않자 숙종은 내금위
병사들을 취선당으로 보내 샅샅이 뒤지라는 명령을 하달하는데...



 


 

[80회] 희빈의 무례함을 목격한 숙종은...

 




중전의 오라비인 민진후를 배후로 여긴 희빈장씨는

중전에게 따지기 위해 중궁전으로 달려오고 숙종이 보는 앞에서 소란을 피운다.

희빈의 무례함을 목격한 숙종은 내금위 병사들의 일은 자신의 명령에 의한 것임과

자신 또한 취선당에 얽힌 풍설을 잘 알고 있다는 경고를 남긴 채 자리를 뜬다.

위축되는 희빈장씨!

반면 기세가 오른 숙의최씨는 희빈 장씨를 정면으로 공박하는 등 이미
옛날의 나약한 모습이 아니다.

더욱 독이 오른 희빈장씨는 막례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하고 복수를 다짐한다.

사가에 나와있던 막례는 또 다른 방술을 제안하고 충근을 시켜 실행에 옮긴다.

그것은 바로 인현왕후 사가 마당에 사람의 인골과 중전당의를 함께 묻는 일.

하지만 민진후에게 발각되어 이 일은 실패로 돌아가고 도리어 취선당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높아만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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