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금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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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보란? 임금의 인장은 의식용인 어새와 어보, 집무용인 국새와 옥새로 구분된다. 어보는 재질에 따라 금보와 옥보가 있으며, 제왕의 시호諡號, 존호尊號, 묘호廟號, 휘호徽號를 새긴다. 위 금보는 영조가 사용한 금보이다. | |
소장처 | 국립고궁박물관 |
사도세자가 8세 때 쓴 글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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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는 3세 때부터 서연교육을 시작했다. 보통 7~8세가 되야 세자교육을 시작하는 전례에 비춰볼 때 사도세자는 조선 왕조 역사상 유례없는 조기교육을 받은 것이다. 영조는 왜 이렇게 일찍 세자에게 조기교육을 시킨 것일까? | |
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사도세자가 10세 때 장인에게 보낸 안부편지 | |
사도세자가 10세 때 혜경궁 홍씨와 혼인한 후 장인에게 보낸 문안편지이다. 그림이 미리 인쇄되어있는 시전지에 편지를 썼다. 처가에 보낸 편지를 통해 아이를 출산한 부인의 건강을 걱정하고, 장인의 생일까지 직접 챙기는 등 사도세자의 자상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
사도세자가 장인에게 병세를 호소하는 편지 | |
"나는 원래 남모르는 울화의 증세가 있는데다, 지금 또 더위를 먹은 가운데 임금을 모시고 나오니, (긴장돼) 열은 높고 울증은 극도로 달해 답답하기가 미칠 듯 합니다. 이런 증세는 의관과 함께 말할 수 없습니다. 경이 우울증을 씻어내는 약에 대해 익히 알고 있으니 약을 지어 남몰래 보내 주면 어떻겠습니까." [1735년 또는 1754년 어느 날] | |
* 이 서첩은 일제강점기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구입해서 일본에 가져갔고, 최근 서울대 권두환 교수가 이 서첩의 존재사실을 확인하였다. 조선시대 영조, 장조(사도세자), 정조 3대의 서첩이 남아있는데, 이 중 사도세자가 처가에 보낸 편지는 총 26통이다. | |
소장처 | 일본 야마구치(山口) 현립도서관 |
서시춘방관 (書示春坊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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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23년 (1747), 세자가 13세 때 영조가 세자시강원(춘방) 현판에 걸어둔 친필글씨 | |
소장처 | 국립고궁박물관 |
평암집 (平庵集) | |
사도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친 설서(說書) 권정침(1710~1767)의 문집. 사도세자가 죽을 때까지 서연(세자교육장)에서 주고받은 문답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나경언이 영조에게 세자의 비행을 고변한 당일의 상황 등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단서가 기록되어 있다. | |
소장처 | 한국국학진흥원 |
어제사도세자묘지문 (御製思悼世子墓誌文) | |
사도세자가 죽은 해인 1762년, 7월 영조가 직접 구술한 묘지문. 영조는 세자가 죽자 사도(思悼: 안타깝게 생각한다)라는 시호를 내리고, 묘지문을 기록하게 했다. "너는 무슨 마음으로 칠십의 아비로 하여금 이런 경우를 당하게 하는고..." "난잡하고, 방종한 짓을 타일렀으나 제멋대로 군소배들과 어울리니 장차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여러 날 (뒤주를) 지키게 한 것은 종묘와 사직을 위함이었는데..." "진실로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랐으나 9일 째에 이르러 네가 죽었다는 망극한 비보를 들었노라..." "어찌 내가 좋아서 했겠는가? 어찌 내가 좋아서 했겠는가?" 글쎄... 과연 이것만이 사도세자를 죽인 진정한 이유였을까? |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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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소란? 조선시대 유생들의 집단 상소 가운데 하나인 '만인소(萬人蔬)' 만여명이 함께 서명해서 올리는 상소이기 때문에 그만큼 여론의 파급력이 크다. 영남유생 만여명이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며 왕으로 추존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는 정조대부터 철종대까지 4차례나 이루어졌다.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은 후일 첨예한 정치적 이슈를 이루었다. | |
소장처 | 안동 한국국학진흥원 |
※이 중에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영남만인소입니다.
정조가 저것을 받아 보았을 때 얼마나 감동적이었을지..
그때의 광경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 이산에서는 영남만인소가 등장할 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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