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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23

신봉승 '대왕세종' '이산' 맹비판 - 사극이 막가고 있다! 신봉승 작가의 따끔한 질책: 역사드라마가 막가고 있다 출처: 초당 신봉승 작가님 홈페이지 이미지 출처: KBS 대왕세종 홈페이지 및 대왕세종 갤러리 Ⅰ. 역사드라마의 광풍이 불고 있는 요즘이다. 방송사 마다 경쟁적으로 역사드라마를 만들어서 내보낸다. 평생을 그 일에 종사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무척도 반갑고 즐거운 노릇이어야 옳지만, 실상은 가슴을 조이면서 걱정할 때가 더 많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역사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진다는 점은 국사정신의 고양과 나라의 정체성 확립에도 필요불가결한 것이지만, 그러자니 고증考證이 맞느니, 틀리느니 하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게 되고, 사실史實과 맞느냐, 맞지 않느냐로 격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엄격하게 생각하면 드라마와 사실은 맞지 않는 것이 정상이.. 2008. 2. 26.
정조의 한맺힌 발언,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영조, 정조, 사도세자 책 모음) 정조의 한맺힌 발언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44 회 / 2월 18일 (월) 밤 9시 55분 정조 드라마가 작년부터 계속적으로 인기를 끄니 영조, 정조 관련 서적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네요. 관련글: 정조 열풍 - '이산, 한성별곡, 정조 암살 미스테리 8일'에서 정조 이미지 시청자들은 극적인 것을 좋아하니 그동안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는 수없이 만들어졌지만 그 아들 정조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저도 정조하면 '탕평책과 규장각' 외에는 별로 할 말이 없더라구요. 사도세자의 비극이 크다면 노론의 틈바구니 속에서 세손 자리를 부지한 정조의 아픔 또한 컸을텐데 정조 또한 세종대왕처럼 너무 성군이라서 그런지 드라마와 출판계에서 홀대받아왔습지요.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천재군주 정조가 .. 2008. 2. 26.
[펌] 이산도 벗기지 못한 '혜경궁 홍씨' 의 가면. [이산] 도 벗기지 못한 '혜경궁 홍씨' 의 가면.출처: 한밤의 연예가 섹션 블로그"남편을 잃었는데 아들까지 잃겠습니까. 그 때의 아픔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을겁니다."[이산] 의 '혜경궁 홍씨' 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산] 속 혜경궁의 모습은 강인한 어머니이자 자애로운 부인이고, 당파에 남편을 잃고 아들까지 잃을 뻔한 비운의 여인이다. 그러나 역사 속 혜경궁의 모습은 과연 그러할까. 드라마 [이산] 이 벗기지 못한, 아니 어쩌면 벗기지 않은 혜경궁 홍씨의 '참모습'. [한중록] 으로 만들어 진 혜경궁의 가면을 벗겨보자.남편을 버리다.영조 20년 1월 9일. 열살의 '세자빈' 을 앞에 두고 장차 임금의 장인이 되는 홍봉한이 입을 열었다. "궁중에 들어가면 3전 섬김을 .. 2008. 2. 24.
정조의 생애와 업적 및 정조시대에 일어난 사건들 출처: 다음 신지식 이름 산. 자 형운. 호 홍재. 영조의 손자로 아버지는 장헌세자, 어머니는 영의정 홍봉한의 딸 혜경궁 홍씨이다. 1759년(영조 35) 세손에 책봉되고, 1762년 2월에 좌참찬 김시묵의 딸 효의왕후를 맞아 가례를 치렀다. 이 해 5월에 아버지가 뒤주 속에 갇혀 죽는 광경을 목도해야 했다. 1764년 2월 영조가 일찍 죽은 맏아들 효장세자의 뒤를 이어 종통을 잇게 하였다. 1775년(영조 51) 12월 노병이 깊어진 국왕이 세손에게 대리청정을 명령하자 좌의정 홍인한이 이를 방해하여 조정이 한때 크게 긴장하였다. 홍인한은 세손의 외척으로 기대를 모을 위치였으나, 탐포하고 무지한 그를 세손이 비천하게 여겨 멀리하자, 이에 원한을 품고 화완옹주(和緩翁主)의 소생으로 어미와 함께 권세를 부리.. 2008.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