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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대비16

폐비 윤씨 이야기 - 그녀는 왜 폐비가 되었나? 몇 년 전에 미니홈피에 있던 글이라서 어디까지가 원글인지, 정확한 출처인지 기억이 안납니다. 문제가 생기면 삭제하겠습니다. 알려주세요.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 폐비윤씨의 비극을 정확히 이해할려면 이야기는 좀 더 위로 올라가야돼. 때는 세조.(세종의 차남.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했지. 왕이되기전엔 수양대군으로 불렸슴) 세조에겐 아들이 둘 있었는데 첫째가 당연히 세자.(조선의 왕위는 장자승계원칙) 그런데 이 세자가 젊어서 병으로 죽고 20대의 세자빈은 애딸린 청상과부가 됐지. 왕실 법도에 따라 세자빈은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가. 그리고 세조의 두번째 왕자가 다시 세자가 되어 왕위를 이어받아.(얘가 예종) 그런데 예종이 왕위를 이어받고 얼마 안되서 죽어. 당연히 다시 왕위를 이어야하는데 .. 2007. 11. 9.
연산군 이야기 (성종, 폐비 윤씨 이야기 추가) 출처는 박영규의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일단 출발점이 되는 성종 성종의 도학 정치와 조선의 태평성대 (1457-1494, 재위 기간 1469년 11월-1494년 12월, 25년 1개월) "성종은 치세에 능했다. 권신을 견제하기 위해 사림 세력을 끌어들여 권력의 균형을 이룸과 동시에, 유교 사상을 더욱 정착시켜 왕도정치를 실현해나갔다. 그 결과로 그는 모든 기초를 완성시켰다는 뜻의 성종이라는 묘호를 얻었을 만큼 조선 개국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열어갔다." " 성종이 편전을 장악하면서부터 상황은 급변했다. 성종은 우선 조정의 서무 결재에 원로 대신들이 참여하던 원상제도를 폐지하여 왕명 출납과 서무 결재권을 되찾았으며, 김종직 등 젊은 사림 출신 문신들을 가까이 하면서 권신들을 견제했다. 또한 2년.. 2007. 11. 9.
왕의 남자는 연산군의 제삿날인걸 알까? '왕의 남자'는 연산군 제삿날인 걸 알까? 폐주 연산군 묘(1) ▲ 연산군 묘역 입구에서 종친들이 제사를 봉향하러 찾는 손님을 맞고 있다. 연산군의 제사를 보러 폐왕의 묘에 갔던 날은 4월임에도 쌀쌀했다. 다 물러간 추위가 다시 오는 듯 비까지 뿌리고 있어, 정리중인 겨울옷 중 오리털 파카를 다시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연산군(1476~1506) 500주기였던 지난 4월 2일, 청명제(淸明祭)를 지내던 그날 하늘은 구름이 잔뜩 껴있어 어두웠고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추운 바람이 불었다. 연산군과 부인 신씨의 묘(도봉구 방학동)에 올라서자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연산군 봉향회, 거창 신씨 대종회에서 참석한 문중 사람들로 붐볐다. 왕릉에서 치르는 왕이나 왕비 기신제에 여러 차례 다녀봤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2006. 4. 16.
연산군에게 폭군이란 딱지는 누가 붙였을까? 연산군에게 폭군이란 딱지는 누가 붙였을까? [이야기가 있는 문화기행-22]실록에 그려진 연산군 ▲ 영화 에서 연산군역을 맡은 정진영. ⓒ 이글픽처스 왕은 왕이로되 왕이 아닌 왕이 바로 연산군이다. 이러한 연산군이 영화 가 뜨자 새로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선 역대 왕 중에서 연산군만큼 소설과 연극, 영화,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에 등장한 연산은 폭군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이번에 뜬 연산군은 마마 콤플렉스에 힘들어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연산군은 폭군이었을까? 그의 재위기간 12년은 실록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하고 로 남아있다. 내용 또한 패악으로 그득하다.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교과서로 학습하고 그것을 자료로 만들어진 소설을 읽고 영화 연극 드라마를 접한.. 2006.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