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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길 거리/먹고 듣고 보자!

김민정 보그걸 매거진 인터뷰






런던에 온 지 이제 사흘 정도 지났을 뿐인데 김민정은 이곳에 금세 적응한 듯 보였다. 호텔 앞 카페에 먼저 자리 잡고 앉아 문을 열고 들어서는 에디터를 반기는 모습이 왠지 어색하질 않다. 그녀가 마시던 아메리카노 역시 편안하게 바닥을 보이고 있었음은 물론이고. 도자기 인형 같은 김민정이 보통 동양 여자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진작부터 눈치챈 카페 주인이 인터뷰에 앞서 딸기가 듬뿍 올려진 달콤한 와플을 서비스로 내온다. 이곳은 서울이 아닌 런던이지만 여배우로서 그녀의 존재감은 별다르지 않은 듯했다. “런던은 초행인데도 이곳의 분위기가 내 취향과 잘 맞는 것 같아요. 빛바랜 벽을 가진 오래된 건물들, 잿빛 하늘, 지나가는 사람들의 덤덤한 표정 같은 것들 말이죠. 뉴욕처럼 트렌디한 도시보다는 이곳이 맘에 들어요.” 왠지 철부지 아이처럼 무조건 예쁜 게 좋다고 할 것만 같던 그녀는 그렇게 어른스럽게 오래된 것들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었다. “워낙 클래식한 걸 좋아하거든요. 옷도 가방도 한번 사면 오래 쓰지, 유행에 맞춰 사는 성격이 못돼요. 그래서 클래식 하면 떠오르는 도시인 런던에 더욱 와보고 싶었어요. 작품이 끝난 후에도 성격상 해외 로케이션 화보 촬영을 나가는 편이 아닌데 런던과 <보그 걸>, 딱 두 단어만 듣고는 가기로 결정을 내렸죠(웃음).” 친구들과 하는 소꿉장난보다 대본 속 자신의 대사에 밑줄을 긋는 일이 더 익숙했고,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나이에 대하 사극의 캐릭터를 고민했던 어린 소녀는 이제 아슬아슬하게 노출되는 블랙 드레스도 멋들어지게 소화하는 배우가 되었다. 서울을 떠나오기 전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놀랐던 사실은 그녀가 아역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서양 같은 인터넷 속에서 그녀의 일상적인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간혹 연기관을 피력한 딱딱하고 짧은 인터뷰나 휴식기 동안 가졌던 봉사 활동 같은 미동에 가까운 뉴스만 있을 뿐 그 흔한 셀카조차 보질 못했으니. 덕분에 그녀를 마주하기까지 조금의 선입견도 남아 있질 않았다. "날 너무 많이 노출시키는 건 원치 않아요. 공인으로 살아가는 건 전적인 내 선택이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내 모든 걸 세세히 보여주는 데까지 책임을 느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속내를 침해받기 싫다는 새침함이나 여배우의 자존심 문제 같은 복잡다단한 게 아니에요. 나 역시 기본적인 사생활 정도는 보호받고 싶은 인간일 뿐이라는 단순함이죠." 그런 까닭에 '뉴 하트'를 시작하기 전 1년 남짓한 공백기는 정작 당사자는 무심했으나 타인들이 더 민감하게 느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복숭앗빛 맨 얼굴과 예의 노련한 연기력으로 걱정 반, 의구심 반의 눈길들을 멋지게 홈런으로 날려 버렸고, 조금씩 가빴던 숨을 내몰아 쉬기 위해 지금 런던에 있다. 무심한 고양이처럼 다 괜찮다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여배우로서 지나온 18년의 세월이 결코 만만치는 않았을 터. 이제 몸도 마음도 올곧게 단단해진 김민정의 진심은 무얼까. 깊고 커다란 눈의 그녀를 마주할수록 궁금한 게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VOGUE GIRL(이하 V.G.) 와, 이 카페는 정말 시끄럽군요.
김민정 그렇죠? 하지만 커피 맛은 정말 좋아요. 호텔 바로 맞은편에 있어서 이른 아침에 커피를 마시러 종종 나오곤 하거든요. 에스프레소 식기 전에 드세요.

V.G. 혹시 <보그 걸>과의 지난 인터뷰를 기억하나요? 2005년 겨울이었는데.
김민정 그럼요. 그 후로 지금까지 너무 많은 게 달라졌으니까요. <보그 걸> 인터뷰를 했던 스물네 살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내 인생 중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 같아요. 겉모습이나 배우로서의 위치가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가짐 말이죠. 내겐 꽤 절실했어요. 촬영 외의 시간은 모두 그 생각에 쏟아부을 정도였으니까.

V.G. 그럴 만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가요?
김민정 그런 건 아니에요. 원래 고민이 좀 많은 편이긴 하지만 어떤 사건이 닥쳐서 위기를 느낀 건 아니고 다분히 그럴 나이이다 보니 그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뿐이죠.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순간이 있잖아요. 내가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대부분 그 시점이 사춘기나 성인이 되는 20대 초반이라고 하던데 내 경우에는 어릴 때부터 일을 해왔기 때문에 좀 늦어진 것 같아요. 여러 캐릭터를 거치다 보니 정작 진정한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갖지 못했던 거죠. 게다가 나 자신조차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는데, 사람들은 브라운관을 통해 비쳐진 단편적인 이미지만 보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한때는 그들이 나에 대해 내린 정의가 진정한 내 모습인가 싶은 생각에 혼란스러웠어요.

V.G. 배우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고민이었군요. 정신적인 성인식 같은.
김민정 배우로서도 필요한 과정이었어요. 날 제대로 알아야 작품이 끝난 후에 캐릭터에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어렵지 않은데 그게 모호하니까 탈피하는 기간들이 힘겹더라고요.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점점 중첩된 거죠.

V.G. 결론은요? 지금의 고요한 당신 표정을 보면 무사히 내려진 것 같은데.
김민정 단순하던데요. 이 고민은 명확한 답이 있거나 분명한 끝이 있는 게 아니었어요. 나 역시 그저 원대한 정의를 내리고 싶다기보다 내게 다가오는 상황들을 매 순간 여유롭고 현명하게 대처하고 싶었을 뿐이었거든요. 결국 모든 사람들이 평생 고민하는 거잖아요. 현재를 행복하게 사는 방법.

V.G. 그 과정 속에서도 배우에 대한 맘은 흔들림이 없었나 보군요.
김민정 한때는 다른 직업을 가진 날 생각해본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언제나 결론은 부메랑처럼 제자리더군요. 배우란 직업이 내게 잘 어울리고 연기를 할 때 내가 무척 행복하다는 거죠. 배우가 천직이라는 말과는 좀 달라요. 배우는 단지 하나의 직업이고 내게 잘 맞을 뿐이지, ‘배우 김민정’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자체가 행복한 건 아니거든요. 사실 행복이 별건가요. 진정한 행복은 거창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거창해지는 순간 행복보다는 성취감에 가까워지지 않나요? 난 지금도 무척 행복해요. 런던 한복판에서 맘 편하게 인터뷰하는 이 순간 말이에요. 한국이었으면 이렇게 탁 트인 카페에서 목소리 높여서 얘기할 수 있겠어요? 그런 일상적인 행복이 내겐 더 큰 의미를 줘요.


V.G. 한 번쯤 당신에게 대입해본 다른 직업은 뭐였나요?
김민정 패션이나 디자인에 관련된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연기보다 더 좋았다면 당연히 했겠죠. 하지만 난 직업을 바꾸기엔 아직 배우가 너무 좋은데 이 정도 맘에 드는 거라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좀더 집중해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엔 아직 젊은 나이니까.

V.G. 그렇게 배우에 대한 정의가 확실한 당신에게 아역 배우들이 흔히 겪는 청소년과 성인의 간극은 접근할 틈도 없었을 것 같네요.
김민정 사람들은 내게 선입견을 갖고 있더군요. 철 모르는 어릴 때부터 연기를 했으니 머리가 굵어지면서 반드시 회의를 느낀 시점이 있었을 거라는 거죠. 다들 그때가 사춘기인 중.고등학교 때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대학교 입학 때까진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땐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환경이 너무나 당연했거든요. 게다가 난 어릴 때부터 굉장히 욕심 많은 완벽주의자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틈조차 없었어요. 아역 시절에도 놀면서 연기한 적이 없었거든요.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완벽에 가깝게 철저히 잘하고 싶어했죠.

V.G. 그렇게 매 작품마다 몸과 맘을 던지면서 일하면 참 힘들었겠어요.
김민정 그랬나 봐요. 20대로 접어든 후 많은 사람들이 이제 아역에서 벗어나 배우 김민정으로 안착했다고 생각할 무렵에서야 그런 고민에 빠진 걸 보면. 10대 때는 나 자신에게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거죠. 난 일을 너무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나머지 나 자신을 들들 볶는 스타일이에요. 오늘처럼 패션 화보를 촬영할 때도 감정을 담아 하나의 작품처럼 해내고 싶어하죠. 예전에는 의상도, 헤어도, 메이크업도 전부 하나하나 신경썼어요. 그땐 내가 모든 걸 다 꿰뚫고 리더십 있게 스태프들을 통제하는 게 프로라고 생각했거든요. 내 생각만큼 그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마음이 조급했고요. 이제는 달라요. 스태프들 각자의 몫을 인정하는 게 정답이고 더 좋은 결과를 위한 해결책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지금은 욕심을 조금씩 덜어내는 기쁨을 알아가는 중이에요.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잘해야 한다기보다 매 순간을 즐겁게 연기하며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계산하지 않은 채 연기할 때 나도 몰랐던 신선한 내 모습을 발견하는 건 꽤 신나는 일이더라고요.

V.G. 이제 경력 18년차에 접어들었는데도 좋은 연기를 위한 노력은 끊임이 없군요. 흔히 배우는 타고난다고들 하잖아요. 노력형과 재능형, 당신은 어떤 쪽인 것 같은가요?
김민정 흠, 천부적이라고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어느 정도는 타고나지 않았나 싶어요. 재능은 단순한 밑받침일 뿐 그 뒤로는 노력이 필수이자 전부지만. 가끔은 신기루 같은 학창 시절 때문에 너무 시작이 일렀던 건 아닌가 싶은 후회가 들 때도 분명 있죠. 하지만 또래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내 장점을 발견할 땐 그래도 아역 때부터 쌓아온 경험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V.G. 스스로 성인 배우로서의 궤도에 올랐다고 느꼈던 작품은 뭔가요?
김민정 역시 ‘아일랜드’죠. (V.G.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왜 이쁘고 지랄” 같은 대사를 감칠맛 나게 하던 한시연 역은 그야말로 김민정의 재발견이었어요.) 단순히 변신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도전한 건 아니에요. 난 매 작품마다 완전한 탈바꿈을 하기보다 기존의 내 이미지에 새로운 캐릭터를 덧입히고 싶거든요. 그래서 “저 사람, 김민정 맞아?”라는 말보다 “김민정이 이런 역할도 잘 어울리는구나”라는 말을 더 듣고 싶어요. ‘아일랜드’가 방영된 지 이제 4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시연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아요. 안티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인데 그나마 있던 이들이 그때 싹 없어지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그게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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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www.voguegir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