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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거리/재미있는 역사

폐비 윤씨가 쫓겨난 진짜 이유는? (부제: 폐비는 인수대비 때문에 쫓겨난 것이 아니다??)

폐비 윤씨 VS 인수대비는 정말로 라이벌이었을까?

폐비 윤씨는 인수대비가 아니라 성종에게 미움받아서 쫓겨났다!??

인수대비와 폐비 윤씨


연산군을 다룬 그 동안의 많은 작품들에서처럼 인수대비(전인화)는 이번에도 폐비 윤씨와 가장 대립하는 인물로서 폐비를 궁 밖으로 내치는 장본인이며, 흔히 폐비 혹은 연산군과 역사의 라이벌로 비유되기도 한다.

세조의 큰아들 의경세자(덕종)의 비 소혜왕후(인수대비)는 서원부원군 한확의 딸이며 좌리공신 한치인의 누이동생이다. 그녀는 1455년 세자빈에 간택되어 수빈에 책봉되었으나, 의경세자가 스무 살에 요절함으로써 왕비로 올라가지 못하고 사가로 물러났다.
 
이후 1469년 11월 둘째아들 성종이 즉위하여 남편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자 왕후에 책봉되었으며, 이어서 인수대비에 책봉되었다. 소생으로는 월산대군과 성종이 있으며, 성품이 곧고 학식이 깊어 성종의 정치에도 많은 자문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경전에 조예가 깊어 불경을 언해하기도 했으며, 부녀자의 도리를 기록한 <내훈>을 간행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는 폐비 윤씨의 강한 성품에 불만을 품었고, 폐비 윤씨를 끊임없이 압박하며 미워했다. 인수대비는 이후 윤씨가 성종의 규방 출입에 질투하여 얼굴에 손톱 자국을 내자 그녀를 폐비시켰으며 그녀를 사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인수대비가 임금 성종과 왕실 최고 어른이자 막후 실력자인 시어머니 정희대비(양미경)를 제치고 며느리와 극단적인 대립각을 세우며 파국을 주도했고, 결국은 모두의 반대를 무릎쓰고 폐비를 사사시켰다는 것' 모두를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

역사는 승자의 편이고, 드라마는 패자의 편이라 양쪽 모두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있기에 사건과 기록의 이면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폐비 윤씨를 죽음으로 내몬 역사 속 주인공은 과연 인수대비였을까?

일개 후궁에서 일국의 국모로 승천하다

폐비 윤씨(구혜선) 중전 책봉식


조선 초기 친여식이나 집안 여식을 후궁으로 들이는 것은 권력으로 가는 지름길로 간주되었다. 때문에 유력한 친지나 집안 권세가의 후원을 등에 업고 입궁한 간택 후궁들은 명문가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성종의 간택 후궁으로 가장 먼저 입궁한 폐비 윤씨 역시 고려 시대때부터 꾸준히 벼슬을 해온 양반 가문 출신이다. 폐비 윤씨의 부친 윤기견은 집현전에 출입할 만큼 경서와 문학에 밝았고 판봉상시사의 벼슬까지 이르렀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윤씨의 어머니 신씨는 윤기견의 둘째 부인으로 태종을 도운 공신 '신숙주'를 배출한 고령신씨 가문의 여식이다. 폐비윤씨가 입궁 당시 내명부 종2품 직위에 해당하는 숙의(淑儀)의 첩지를 받은 것은 '상등급(上等級) 사대부집안' 출신으로 대접받았다는 것을 추정하게 한다.

파평윤씨 명문가 출신의 정현왕후 윤씨는 같은 해 6월에 입궐했는데 그때 나이 12살로 통상적인 간택후궁의 나이보다도 더 어렸다. 그녀의 부친 윤호는 당시의 권력을 움켜쥔 실세인 대왕대비 정희왕후 윤씨(양미경)의 조카뻘이 됐다. 두 숙의 윤씨가 입궐하던 당시 성종에겐 이들보다 앞서 승은을 입은 후궁, 엄귀인과 정소용이 있었다. (드라마 ‘왕과 나’에서는 한명회에 의해 간택 후궁으로 등장한다.)


숙의 윤씨(폐비)는 아들을 낳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하게 되는데 이를 방해하는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성종의 후궁인 소용 정씨와 엄씨였다. 소용 정씨는 초계정씨로 역시 명문가의 여식이고, 소용 엄씨는 영월 엄씨로 소용 정씨와는 소꿉친구이며 중인 집안의 여식이었다. 미색으로 따진다면 정소용쪽이 훨씬 더 미려했으며 소용 엄씨는 그저 그런 외모를 지닌 여자였다고 한다. (그럼 집안도 정소용이 좋고 미색도 뛰어난데 왜 엄귀인한테 형님이라고 부르는겨?)

그로부터 얼마 후 공혜왕후가 승하하며 교태전 자리가 비자 유일하게 회임 중에 있던 폐비 윤씨가 중전에 오른다. 후궁에서 세자빈이나 중전을 삼을 때 먼저 자식의 유무, 나이의 고하 등을 따져 간택한다는 세종조 관례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때 대왕대비 정희왕후가 내린 교서에는 폐비 윤씨의 후덕함과 겸손함이 왕비의 자질에 적합하다고 적었지만 내심 자신의 가문 출신인 정현왕후 윤씨가 중전자리에 오르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보였다고 한다. (이에 대한 뒷 이야기는 추후 조사 예정)


비운의 왕비 폐비 윤씨

폐비 윤씨는 중전에 오른지 석달만에 원자(연산군)를 낳으며 권력이동의 축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왕의 생모, 대비가 될 사람이라는 것만큼 막강한 권력은 없기 때문이다) 일부 사서에선 상등급 사대부집안 출신이지만 자신을 뒷받침해줄 조정 세력이 미미했던 폐비 윤씨가 원자를 보호하기 위해 과도한 애정과 집착을 보였다는 기록도 있다.

어쨌든 폐비 윤씨는 왕비가 된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성종 8년 4월 덕종(성종의 아버지)의 후궁이었던 숙의권씨 처소에서 왕의 후궁 엄씨와 정씨가 중궁과 왕자를 모해하려 한다는 투서가 발견되면서부터 몰락의 길로 걷기 시작한다. 당시 사건에 대한 실록의 기록은 미진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때 정희왕후와 인수대비 측은 두 후궁을 적극 감싸는 한편 원자를 중전에게서 빼앗아 궁밖으로 보내 버린다. 성종은 중전을 폐비시켜 빈으로 강등시킨다는 교지를 내리지만 대신들은 벌떼같이 달려들어 원자를 낳은 왕비를 폐비시키는 것은 국가의 중대사라며 반대해 철회된다. 이는 원자를 낳은 지 4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므로, 폐비 윤씨가 권력을 탐해 일어난 것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폐비 윤씨가 대군을 낳은 2년 후 일단락됐던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지며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결국 성종 10년 6월 윤씨는 중전에서 폐출돼 사가로 쫓겨났다.

왕과 나 폐비윤씨(구혜선) 폐출 장면

왕실의 윗전이었던 정희왕후는 원자가 사가에서 폐비와 만나지 못하도록 폐비가 폐출되는 날, 피접을 위해 궁 밖에 나가 있던 원자를 궁으로 불러들이는 한편 아직 100일도 채 되지않아 어미와 유모의 손길이 필요했던 둘째 대군을 손도 쓰지 못하게 해 5일 뒤 사망에 이른다. 성종은 그로부터 불과 석 달 뒤에 숙의 권씨를 새로운 후궁으로 간택하여 입궁시킨다. (정희왕후는 '왕과 나'나 '왕과 비'에서처럼 인정많고 자애로운 시할머니가 아니었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인수대비가 폐비 축출에 관여되지 않았다고 볼 순 없지만 당시 권력의 실세인 정희왕후나 성종의 뜻이 컷을 가능성이 많다. 기록을 살펴보아도 인수대비가 여러 사안에 의견을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성정을 간섭한 것은 정희왕후 승하 이후다. 또 왕비의 투기든 후궁들의 이간질 때문이든 왕과 폐비 윤씨 간의 언쟁이 잦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성종-폐비 부부 사이에 어떤 문제가 존재했음은 분명하다.

폐비 축출에 지대한 공(?)을 세웠던 귀인 엄씨와 귀인 정씨 역시 실록에 정씨의 오라비를 속량하였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 그 출신이 천민이기에 중전자리를 노린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얘기다. 이들이 폐비 윤씨를 향한 성종의 총애를 질투할 순 있지만 중전을 탐탁치않게 여긴 삼대비의 총애를 기반으로 자의든 타의든 중전폐출의 선봉에 섰을 것으로 보여진다.


성종은 왜 폐비윤씨를 버렸나

성종은 조선조를 통틀어 부인이 가장 많았던 왕 가운데 한명이다. 성종은 공혜왕후 한씨와 폐비윤씨 정현왕후 등 계비 2명, 그리고 9명의 후궁 등 총 12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신하들중엔 왕이 후궁을 너무 많이 두는 것에 대한 우려의 상소를 올린 사람도 있을 만큼 여자를 좋아했던 정력가이다. (어우동과의 로맨스에서 이생원이 진짜 성종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성종이 그만큼 여자를 좋아했기에 그런 얘기도 떠도는 것이겠지.) 성종의 이런 성향들이 실제 폐비 윤씨의 투기로 이어졌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가정의 분란을 끊이지 않게 한 원인이 됐고 이는 부부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폐비의 사사가 성종의 의지였는지 인수대비의 뜻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도 정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기에 폐비 윤씨를 다룬 사극마다 해석이 분분하다. 이덕화가 주인공인 드라마 한명회(1994년)에서는 인수대비(김영란)도 폐비(장서희)를 싫어했지만 무엇보다 성종(박진성)이 폐비에 대해서 냉정하게 돌아선 것으로 표현했고, 박지영, 유동근 주연의 장녹수(1995년)에서는 성종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지만 인수대비(반효정)의 의견이 강했던 것으로 표현했다.

왕과 비(1998년)에서는 성종(이진우)이 굉장히 미화되어 성종은 폐비, 사사 둘 다 원치 않았으나 인수대비(채시라)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눈물을 흘리면서 폐비를 사사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최근작 왕과 나(2007년)에서도 성종(고주원)은 눈물을 흘리면서 인수대비의 명을 따른 것으로 나온다.


기록을 살펴보았을 때는 성종은 중전을 폐출시키던 당시 폐비에 대한 증오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폐비가 끝까지 그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던 방술책 문제에 대해 배후 조사를 청한 대신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중전이 후궁 측을 모함한 것으로 몰아간 비상과 투서에 대해서는 중궁전의 궁녀들을 고문한 끝에 원하는 답을 들은 후 참수했다.

또 성종은 중전의 폐위문제에 대해 대간과 성균관 유생 65명이 죄도 명확하지 않은 중전을 폐비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대상소를 올렸음에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고 폐출돼 사가로 나간 폐비에게 일절 도움을 허락하지 않는 냉정함을 보였다. 심지어 폐비 윤씨가 폐출되기도 전 후궁간택령을 내리기까지 했으며 윤씨를 사사한 다음날에는 그의 일가 모두를 매우 혹독한 지역으로 유배시켜 버렸다.

가족과 떨어져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폐비는 기초 식량조차 부족했고 백성들은 가엾다고 그녀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성종은 이조차 금지시키고 벌을 내려 폐비를 내외적으로 철저히 고립시켰다고 하니 폐비 사사에 성종의 뜻이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폐비 사사 후에도 성종은 여전히 폐비를 용서하지 못하는 인상을 보여주었는데, <성종실록> 성종 20년, 5월 16일자에 이 때의 기록이 남아있다.

"나는 지금도 옛날 일을 생각하면 한밤중까지 두려워하며 홀로 앉아 잠못 이룬 날이 그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비록 영원토록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혼령에게 어찌 원통함이 있겠으며, 내가 어찌 불쌍한 생각이 들겠는가?"

이런 마당에 폐비의 불행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이 오직 인수대비였다는 것은 여자에게 뒤집어 씌우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관들과 이를 무분별하게 영상화한 작품들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다.

성종이 그토록 총애했던 폐비 윤씨를 미워하게 된 연유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용안에 상처를 냈다는 것은 성종 스스로 발표했던 교서에도 없던 내용이며 투기를 심하게 했다는 이야기는 실록이 분명한 설명을 해주지 못 하고 있다. 비상사건 역시 명확한 형태로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성종은 처음에 그녀를 사랑했으나, 나중에는 열렬히 미워했다는 슬픈 진실이다.

'사랑과 미움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은 이럴 때를 위해서 필요한 말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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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도형 2008.03.24 15:27

    정귀인과 엄귀인은 신분상 왕후의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여인입니다
    그렇기에 정귀인 엄귀인에 대한 왕후의 투기는 일종의 화풀이 대상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정현왕후가 될 윤슉의는 잘못 건드리면 정말 안 될 여인이니까요
    그리고 왕과나가 왜곡하는 인물이 하나 있으니
    바로 오상궁입니다
    실제 성종의 유모는 백씨이며 봉보부인에 봉해지는데
    왕의 유모임을 내세워 공공연히 뇌물을 받았다고 합니다
    물론 왕은 그런 그녀의 행동을 몹시 질타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아꼈다고 합니다
    그녀가 아프자 친히 문병을 가기도 합니다
    얼마나 대단한 여인이면 실록에 졸기까지 기록됩니다
    물론 그녀의 그런 행동은 양대비전의 묵인이 없으면 불가능했겠지요
    이 여인 역시 폐비 축출에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데, 후일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됩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할머니 어머니 유모에 이르는 자신을 둘러싼 여인들의 드센 행동에 질린 성종이
    그녀를 내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사실 간단히 말해 왕비가 싫으면 얼마든지 다른 후궁을 만들 수 있는데도 굳이 내친 것으로 보아 그녀의 드센 성품에 완전히 질리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 Favicon of http://blutom.com BlogIcon 파란토마토 2008.03.25 14:12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엄귀인, 정귀인이 단골로 출연하는 거 보면 폐비와 사이가 좋지는 않아 보이지만.. 어쨋든 폐비 윤씨의 성품이 드센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상궁의 비리에 대해서는 저도 많이 들었어요. 자세한 건 기억이 안나지만 뇌물도 받고 하여간 고분고분하진 않았겠죠. 성종도 생각해보니 불쌍하네요. 그동안은 미워하기만 했는데... 안그래도 대왕대비 정희왕후, 인수대비도 별나고.. 오상궁도 매우 아꼈다는데.. 엄청난 효자였던 성종이 그 윗전들 얼마나 눈치를 보았을지..;; 그래서 폐비의 성품에 더 질렸는지도 모르죠.

  • Favicon of http://bambimama.tistory.com BlogIcon bambimama 2008.03.24 15:31

    파토님, 이사가시는 와중에서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하여튼 역사에 전혀 관심없는 제가 점점 흥미가 생기네요.
    어떻게 자료를 조사 하시는지요?
    전 원래 역사란 승자의 위치에서 쓰여지므로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다양한 자료를 통해 나름대로의 진실은 밝힐 수 있나봐..하는 생각이 토마토님의 블로그를 보고 들어요..

    이사를 주제로 한 포스팅도 기대합니다. ㅎㅎㅎ

    • Favicon of http://blutom.com BlogIcon 파란토마토 2008.03.25 14:14

      아.. 네.. 이사 중이라 정신이 좀 없네요... 전 뭐.. 역사에 관심이 있다고 해도 극히 일부분을 편식하는 것이라서 다른 분들께 '저 역사에 관심 있구요, 좀 압니다'라고 말하긴 매우 부끄러운 수준입니다.ㅋ 어쨋든 역사에 대한 건 제가 책으로 읽은 뼈다귀에 검색으로 살 붙이고, 그래도 미심쩍은 건 조선왕조실록 국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 좀 하고...제 생각 좀 덧붙이고 그럽니다. 검색으로 다른 분들의 좋은 글들 도움도 많이 받습니다. 설마 제가 전부 다 조사했을까요?ㅋ 만약 그렇다면 저도 역사학도에 명함 좀 내밀어도 될 듯.;)

  • 이도형 2008.03.24 15:32

    정귀인과 엄귀인은 승은 후궁입니다
    즉 궁녀 출신이지요
    당시 궁녀는 거의가 내수사 소속 관비들로 채워졌지요
    그렇기에 정귀인 엄귀인 역시 관노 출신으로 짐작되고요
    아마 그 어머니가 관원의 첩이 되면서 태어난 여인으로 짐작됩니다
    장녹수 역시 그렇게 태어난 여인이지요

    • Favicon of http://blutom.com BlogIcon 파란토마토 2008.03.25 14:18

      둘 다요? 한 명만 그런게 아니라요?? 음;; 전 한 명만 천출인줄 알았는데... 어쨋든 저의 기대와는 달리 왕과 나는 정말 구제불능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고,, 이산도 너무 구름잡는 스토리에... 대왕세종도 처음의 웅장함이 사라져서... 작년에 사극 비교기 쓸 때의 기대감이 너무 많이 사라져버렸답니다. 흑.ㅡㅜ

  • Favicon of http://bluenlive.net BlogIcon bluenlive 2008.03.24 17:24

    어? 이사가세요?
    (역시 본문과는 아무 상관 없는 댓글…)

  • Favicon of http://meffect.tistory.com BlogIcon 달빛효과 2008.03.24 17:46

    역시 파고 또 파고들어도 폐비 윤씨 이야기는 나올게 많네요..!
    오늘도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난지 100일도 안된 둘째 대군을 그렇게 죽음으로 몰고가다니;;;;
    정말 손이 아깝지 않았나 보네요;;; 역시 후궁이 많아서 그런가..^^;

    그렇게 생각하니 폐비 윤씨의 성품에 대해 정말 궁금하기 짝이없네요...
    역시 직접 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 진실인가..ㅠ_ㅠ
    인수대비 한씨는 왕과 비나 왕과 나에서 워낙 드세게 그려져서 정말 이미지 굳은 것 같아요.
    저도 채시라의 수빈 한씨 시절 연기를 잊을 수가 없네요;;;
    거기엔 게다가 정희왕후가 글도 못 읽는 허수아비 수렴청정 대비마마로 나왔죠..;;;
    그 뒤에 또 수빈 한씨가 있었고...

    그나저나, 성종이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정말 폐비윤씨한테 완전 치가 떨리게 당한 모양인데
    대체 무슨 일을 당했길래 일국의 왕이 저런 말까지 하는지 궁금하네요;;;
    죽인 후인데도... 그 원혼은 원통할 일이 없고 자신은 그를 불쌍히 여길 턱이 없고...
    그만큼 뭔가 잘못했던건가 싶은 생각이 드는데, 혹시 이것이 성종의 언론플레이라면 ....ㅡㅡ;
    별의 별 생각을 다해 봅니다..ㅎㅎ

    만약 사극계의 사골소재 폐비윤씨와 연산군에 대한 드라마가 몇년 후에 또 나온다고 하면,
    그때는 드센 여장부 정희왕후(이분 한파워 하시는거 저도 아는데 정말...드라마에선..ㅡㅡ; )
    좀 제대로 그리고... 인수대비는 실록에 근거에 해 좀 수위(?)를 낮추고^^;
    폐비윤씨는 이번처럼 너무 비련의 여주인공 눈물뚝뚝 좀 벗고 다양한 색깔을 냈으면 해요..ㅎㅎ
    갠적으론 왕과 비의 김성령 폐비윤씨가 나름 색깔이 있어보였지만, 거기도 '표독'이 결국 메인같아서^^;
    그리고 내시는 더이상 ㅡㅡ;

    아무튼 이번 포스팅 배울점이 많네요. 재밌게 읽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blutom.com BlogIcon 파란토마토 2008.03.25 14:22

      그렇죠? 저 때의 이야기는 정말 파도 파도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파는게 아니라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어서요.. 근데 뭐.. 폐비의 성품이 좀 나빴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아요. 문제는 사약을 받을 만큼 큰 죄였나.. 그게 진짜 음모가 아닌 폐비 혼자만의 잿이었나.. 폐비 집안이 좋았어도 과연 그렇게 철저히 외면당했을까? 이 정도의 가정일 뿐이구요.

      인수대비는 정말 채시라가 짱짱짱!!!인 거 같습니다. 어제 전인화의 연기도 봤는데;; 정말 못하더이다.. 젊을 때는 그런대로 봐줄만 했는데.. 노역은 그때 갓 30넘은 채시라의 노역보다 훨씬 못하더군요. 어쩜 목소리도 그리 젊고.. 왕과 나는 분장도 어째 그래 못하는지... 다들 흰머리만 있고 얼굴은 그대로.. 어휴... 진짜 졸작..

      저도 김성령의 폐비 맘에 들었지만 너무 표독스러워서 비호감이었어요. 사실 왕과 비 본방 때는 김성령, 채시라 모두 너무 드세보여서 전 싫어했답니다.ㅋㅋ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정성 많이 들인 글이 블로거뉴스나 다른 곳에선 외면당해서 슬프지만ㅠㅠ 달빛효과님이라도 재미있게 읽어주시니 보람이 있네요. :)

    • Favicon of http://bambimama.tistory.com BlogIcon bambimama 2008.03.25 16:04

      보는 사람이 없다구요?? 어어..너무 잘보고 있는데 기운 내세요..그리고 달빛님.."사골 소재"라..너무 웃기십니다. 한국 역사에 사골소재가 장희빈과 숙종, 연산군과 장녹수, 폐비 윤씨와 성종등 몇세트 되는군요. ㅋㅋㅋ 끓여도 끓여도 우러나는 소재들.. 한명회,명성왕후,사도세자등도 들어갈라나요...?
      참, 제 블로그는 현재 기초공사중입니다..일단 쓰고 싶은 주제중에 나중에 까먹지 않으려고 미완성이지만 몇개 올려 놨어요..보셔도 되지만 미완성인줄만 알아주세요..ㅎㅎ

    • Favicon of http://blutom.com BlogIcon 파란토마토 2008.03.26 16:12

      bambimama님, 이렇게 힘을 주는 댓글 감사합니다!! 사극사골소재(^^)라는 표현도 재미있습니다. 하하.

  • Favicon of http://rjlim2001.tistory.com BlogIcon na야 2008.03.24 18:02

    역시나 오늘도 장황한(?) 역사 포스트..쓸때마다 쉬우신게 아니시군요..ㅎㅎ

  • Favicon of https://ruddo.tistory.com BlogIcon rudo 2008.03.25 15:14 신고

    와, 정말 흥미로워요.
    요즘보는 왕과나를 통한 이야기와는 쫌 다른거같기도 하고,
    와와오아와, 암튼 파란토마토님 포스팅 읽고 다시 역사책 뒤져보고싶단 충동이 듭니다.
    .. 첨이에요.-_-;;;
    그냥 보는것만으로도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배워야겠군요.ㅋㅋ

    • Favicon of http://blutom.com BlogIcon 파란토마토 2008.03.26 16:13

      그래요? 우와.. 저를 통해서 역사의식과 역사공부에 대한 충동을 느끼신다니..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 이도형 2008.03.25 23:36

    인수대비 지존은 고두심씨였지요
    엄하면서도 부드러운
    연산군도 그리 미워하지 않은....
    그리고 왕과나는 이미 포기한 사극이지요
    사(기)극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인수대비 사망은 한명회가 가장 슬폈지요
    연산군이 두 동생 끌고 들어와 갖은 행패를 다 부리지요
    요약하면
    '할머니가 뭔데 불쌍한 우리 엄마 죽였어?'
    그리고 술상을 걷어차고
    인수대비 비명 지르며 잠시 화면 멈추고
    해설로 사망합니다
    해설로 죽는 사람 정말 그렇더군요

    • Favicon of http://blutom.com BlogIcon 파란토마토 2008.03.26 16:17

      하하하.. 사(기)극이라.. 어떤 분은 왕과 나는 코스프레라고 하더군요.. 역사에 대해서 눈꼽만치만 아는 제가 봐도 너무 화딱지나서 못보겠더라구요.ㅠㅠ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보지만요.. ㅜㅜ

      김영란 인수대비가 그렇게 죽었나요.ㅋ 술상 걷어찬 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해설로는 패륜의 극치라고 하는데.. 저는 연산군 정도의 똘아이가 그정도면 준수하다고 생각했답니다;;

      아.. 그리고 사극에 나오는 장면이 실록에 그대로 나오는 거 너무 신기하지 않나요? 전 정귀인, 엄귀인 아들에게 술 따르는 거 시키는 장면이 실록에 기록된 게 너무 신기하더군요.

  • Favicon of http://wingchip.tistory.com/ BlogIcon 날개칩 2008.03.26 00:12

    이렇게 또 자세한 사실을 읽으니, 뭐가 뭔지 참 헷갈리기도 하네요;
    조사하신 것을 보니 연산군의 폭주는, 아버지 성종의 윤씨 폐비 결정이 성종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고 오해하고 있었다라는 얘기가 되는 듯도 한걸요.
    그게 아니면 다 알았지만 성종은 이미 죽었으니, 화풀이 할 상대가 살아있는 사람들 밖에
    없어서 그랬던 걸까요. 음;;;

    • Favicon of http://blutom.com BlogIcon 파란토마토 2008.03.26 16:14

      음.. 그러게요. 날개칩님 말씀 듣고 보니.. 연산군의 폭주는 오해였을까요? 화풀이였을까요? 저도 문득 그게 궁금해지네요. 암튼 성종이 폐비에게 질려서 치를 떨었다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 천년목 2008.03.29 18:34

    연산군은 잔인함 밖에 없던 10여년 세월인데.. 그 세월 마저 불쌍하게 돼버렸으니.. 참 팔자 한번 박복한게 윤씨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어쩌자고 투기심 하나 때문에 아들을 그 지경으로까지 몰고 간 건지.. 성종이나 인수대비도 마찬가지죠..
    차라리 배신이나 때리지만 않았으면 저승에서 춤이라도 추고 남을 텐데..ㅠㅠ

    • Favicon of https://blutom.tistory.com BlogIcon 파란토마토 2008.03.30 16:05 신고

      그러게요.. 저도 연산군 참 미워했지만.. 알면 알수록 불쌍한 사람이더군요. 음... 윤씨는 투기심도 그렇지만.. 어리석었던 것 같습니다. 살벌한 정치판에서의 생존전략을 배우지 못한 여자였던 거죠. ㅎ

  • Favicon of http://nisgeokr.tistory.com BlogIcon 별빛하나 2008.03.31 12:33

    이런 걸 보면... 사회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은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

    우리나라의 모든 문물을 완성시킬 때 준다는 '성종'... 정말 모든 게... ^^

  • 천년목 2008.04.04 16:30

    왕과 나가 드디어 종영이 됐어요..ㅜㅜ 그 동안 보면서 미운 정이란게 참 많이 들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 엔딩신 만큼은 정말 최고였거든요.. 어린 연산군을 들춰업고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연산군이 처선아.. 처선아..!! 이러면서
    절규를 하는데.. 어흑..ㅠㅠ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그리고 옥패 부여잡고 울면서 처선의 모습이 화면에 수놓아지고 끝..ㅠㅠ
    아.. 다른 건 몰라도 태우씨는.. 눈물 연기 정말 잘하시더라구요..ㅜㅜ 역시 어렸을때부터 타고난 느낌을 받아서인지
    감정연기 하나는 끝내주시더군요..ㅠㅠ

    • Favicon of https://blutom.tistory.com BlogIcon 파란토마토 2008.04.06 01:01 신고

      천년목님.. 저도 왕과 나 마지막회는 좀 궁금했는데 못봤네요..;;; 반정군 쳐들어오는 부분까지 보다가 너무 너무 유치하고 정태우가 "진성이라면 내 왕위를 주리라~" 어쩌구 하는 부분도 너무 어색해서 보다 말았는데 약간 후회도 됩니다.ㅋ 이제 정태우의 왕과 나가 끝나버렸으니 천년목님도 더이상 안오시는 건가요? 흑..ㅠ 암튼 담에 기회되면 왕과 나 마지막회의 마지막 부분은 꼭 보고 싶습니다. 왕과 나가 스토리 전개 능력은 꽝인데, 때때로 화면 장악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더군요. :)

  • 천년목 2008.04.22 21:31

    혜선씨.. 처음에는 강단도 없고 너무 우는 것만 자주 나와서 짜증 지대로였다는 분 진짜 많았는데..
    폐비가 되고 나니까 어느새 연기가 확~!! 어우 진짜 많이 느셨더라구요..
    전인화씨랑 카리스마 연기도 좋았구.. 여러모로 발전이 보이는 것 같았거든요..
    조선 최초로 폐비신분이 된 왕비란 경이롭도록 불행한 타이틀을 지닌 그녀..
    참 죽어서도 욕을 먹는데 팔자한번 박복하니.. 역시 여자 인생이란 게 곧이 곧대로란 게 맞긴 맞나봐요.. ㅎㅎ 헛웃음만 나올뿐..

    • Favicon of https://blutom.tistory.com BlogIcon 파란토마토 2008.04.29 10:53 신고

      천년목님 죄송해요. 답글이 너무 늦었죠? ㅠㅠ 폐비 되고 나서 구혜선 연기 정말 많이 늘었더군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때부터 왕과나가 재밌어지기 시작했잔하요. 그뒤로도 막장으로 흐르는 대본 때문에 결국 열받아서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보다 말았지만요.. 암튼 폐비 윤씨는 왕과나에서 나온 것처럼 그런 여자는 아니었죠.. 어휴.. 왕과나 생각하니 또 열받네요!! 오만석도 너무 아니고, 고주원도 너무 못하고.. 정태우도 실망이었고....... 그나마 제일 기대 안했던 구혜선이 제일 잘해서 구혜선의 재발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박수경 2008.09.16 22:08

    정귀인은 정발의 서손녀인 정인석의 딸이므로 정귀인도 중인정도의 여식입니다.
    엄귀인이 오히려 양반가문이나 성종의 사랑을 입지 못하였습니다.

  • 새벽이슬 2012.01.14 19:15

    여자에게 뒤집어씌운다는말에 공감이요~ 여자의적은여자 라는말도 옛날남자들이 만들었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