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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4년(현종 15 / 숙종 즉위년, 甲寅)  
  · 1월
: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 장씨(張氏) 승하
  · 7월 : 대왕대비(장렬왕후)의 인선왕후에 대한 복제를 기년(朞年)으로 정함
  · 8월 : 현종 승하(해시(밤9-11)
  허적을 원상으로 삼음
  왕세자(숙종) 즉위(인정문에서)
  송시열을 서울로 들어오도록 함 - 오지 않음
  · 9월 : (영부사) 송시열에게 능지(묘비문)를 지어 올리도록 명함
  송시열이 사양하는 상소 올림
  정치화를 영부사로 삼고 송시열은 판중추부사(판부사)로 내림
  유생 곽세건이 송시열에게 내린 명이 부당하니 거두어 달라는 상소 올림
  (송시열은 선왕의 적통을 문제 삼은 이다)
  · 10월 : 송시열이 지문 짓기를 사양하자 김석주에게 짓도록 함
  (송시열에 관한 견제가 구체화)
  · 11월 : 이단하가 지어올린 대행왕의 행장을 고쳐 쓰게 함
  (송시열이 효종을 서자라고 썼던 대목이 오인례였음을 명시하라)
  · 12월 : 기해년 의례(儀禮)를 정한 신하들을 추죄함. 송시열(宋時烈)의 관작을 삭탈함
     
  1675년(숙종 1, 己卯)  
  · 1월
: 송시열을 덕원(德源)에 유배.
  · 3월 : 복창군·복평군을 궁녀 간통죄로 유배
  · 4월 : 윤5월 송시열을 위리안치(圍籬安置)함
  · 8월 : 윤휴의 건의로 복제를 3년으로 함.
  · 9월 : 비변사에서 오가작통사목(五家作統事目)을 올림.
  * 김우명(金佑明, 1619-1675) 죽음.
     
  1676년(숙종 2, 丙辰)
 
  · 2월
: 이황을 모신 안동의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사액함.
  · 4월 : 대흥산성(大興山城), 개성산성(開城山城)을 수축함.
  · 8월 : 선사진(宣沙鎭)을 가도로 옮김.
  용강(龍岡)에 황룡산성(黃龍山城)을 수축함
  ·  
  1677년(숙종 3, 丁巳)
 
  · 3월
: 호패법 시행.
  · 9월 : 대흥산성(大興山城), 개성산성(開城山城)을 수축함.
  · 11월 : 선사진(宣沙鎭)을 가도로 옮김.
  용강(龍岡)에 황룡산성(黃龍山城)을 수축함
  · 12월 : 호포법(戶布法)의 시행을 논의함.
  경상도에 대동법을 시행함
     
  1678년(숙종 4, 戊午)
 
  · 1월
: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주조하여 유통시킴.
  · 3월 : 청의 사신이 조선의 문적(文籍)을 얻어감.
  · 4월 : 공명첩(空名帖)을 폐지.
  · 6월 : 관서, 호남의 감사(監司) 병사(兵使)에게 주전(鑄錢)을 시킴.
  · 9월 : 각사노비(各司奴婢) 면천(免賤)의 한계를 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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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9년(숙종 5, 己未)  
  · 6월
: 허목(許穆)이 허적(許積)을 논핵함.
  남인이 청남(淸南) 탁남(濁 南)의 나뉨.

 

1680년(숙종 6, 庚申)  
  · 1월
: 외방의 주전(鑄錢)을 금지.
  · 4월 :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남인축출 서인집권. 윤휴 허적 등 남인 (南人)을 유배 보냄.
  서인(西人) 김수항(金壽恒)이 영의정이 됨.
  허견(許堅) 등이 복선군(福善君)의 추대를 도모하다 처형됨.
  · 5월 : 허적(許積, 1610-1680), 윤휴(尹휴, 1617-1680)를 사사(賜死)함.
  송시열을 석방함.
  윤8월 오정창(吳挺昌) 정원로(鄭元老) 등을 처형.
  · 10월 : 장옥정이 궁녀로 입궐
  송시열을 등용.
  인경왕후(仁敬王后) 김씨 죽음.

  1681년(숙종 7, 辛酉)  
  · 1월
: 새중전의 간택에 관해 논의
  · 2월 : 인경왕후 발인
  · 3월 : 병판 민유중의 딸을 왕비로 간택하다.
  민유중을 영돈녕부사 여양부원군으로 삼다.
  어영청(御營廳)에서 주전(鑄錢).
  · 4월 : 어의동의 별궁에서 납채례를 거행하다.
  납채례 : 대궐에서 간택된 왕비의 집에 혼인을 청하는 의식
  · 5월 : 장옥정이 대궐에서 쫓겨나감

  1682년(숙종 8, 壬戌)  
  · 1월
: 악기조성청(樂器造成廳)을 설치.
  · 5월 : 이이(李珥), 성혼(成渾)을 문묘에 종사함.
  · 10월 : 허새(許璽)등을 처형.
  · 11월 : 전라감영에서 주전(鑄錢)함.
  * 허목(許穆, 1595-1682) 죽음.

  1683년(숙종 9, 癸亥)  
  · 3월
: 송시열 치사(致仕)함.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완성.
  장희재가 인조반정 회갑 축하연에서 숙정을 데리고 달아남.
  · 4월 : 폐지된 사군(四郡)을 다시 설치할 것을 결정함.
  서인(西人)이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분당.
  · 7월 : 영남의 대동법을 개정함.
  · 12월 : 현종비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金氏) 죽음.

  1684년(숙종 10, 甲子)  
  · 3월
: 이단하(李端夏)가 사창절목(社倉節目)을 올림.
  무산부(茂山府)를 새로 설치함.
  · 10월 : 중용언해(中庸諺解) 완성.
  * 김석주(金錫胄, 1634-1684) 죽음.

 

1685년(숙종 11, 乙丑)  
  · 1월
: 호패의 지패(紙牌)를 목(木), 각(角)으로 바꾸게함.
  경성부의 사부(士夫)에게도 방역(坊役)을 부과함.
  종각(鐘閣)이 불에 탐.
  · 9월 : 호패 위조자를 사형에 처하기로 함.
  · 11월 : 삼금(蔘禁)범죄의 식(式)을 정함.

  1686년(숙종 12, 丙寅)  
  · 1월
: 안주(安州)에서 주전(鑄錢)하고 차자(車子)를 제조.
  · 7월 : 진도에서 표류한중국인 80여명을 송환.
  · 12월 : 이단하(李端夏)가 사창(社倉) 설치의 다섯가지 이득을 말함.
  ▷ 이징명(李徵明), 상소하여 여총(女寵)을 논함.

  1687년(숙종 13, 丁卯)  
  · 5월
: 명안공주 죽음
  · 6월 : 동평군 이항을 혜민서제조로 봉함.
  · 7월 : 최석정(崔錫鼎)이 선기옥형(璿璣玉衡)을 개수함.
  · 8월 :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 열조수교(列朝受敎)를 간행.
  · 9월 : 군문(軍門)에 육화진법(六花陣法)을 연습시킴.
  · 12월 : 숙종이 탕평책(蕩平策)을 유시(諭示)함.
  ▷ 만수전(萬壽殿) 불탐.
  * 김만기(金萬基, 1633-1687), 민유중(閔維重, 1630-1687),
  홍우원(洪宇遠, 1605-1687) 죽음.

  1688년(숙종 14, 戊辰)  
  · 2월
: 숙종이 남한산성에 행차.
  · 3월 : 평안도에 1년을 한도로 주전(鑄錢)케함.
  · 7월 : 소론 박세채(朴世采)을 내?i고 남구만 여성제(呂聖齊)를 유배함. 11월에 석방.
  · 8월 : 인조왕비 장렬왕후(莊烈王后) 죽음.
  · 10월 : 소의(昭儀) 장씨(張氏)가 왕자(경종)을 출산함.
  · 11월 : 소의 장씨의 어머니가 옥교를 타고 들어오다 욕을 당한 일로 상소가 올라옴

  1689년(숙종 15, 己巳)  
  · 1월
: 왕자를 원자로 정함.
  소의 장씨를 희빈에 봉함
  · 2월 : 기사환국(己巳換局). 서인 실각, 남인 집권.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을 제주도에 유배 안치(安置), 6월에 사사(賜死)함.
  · 3월 : 홍치상을 유언비어 유포죄로 절도에 위리안치함.
  김수항(金壽恒)의 관작을 삭탈함. 윤3월 사사(賜死).
  김익훈(金益勳) 장(杖)을 맞고 죽음.
  이이와 성혼을 문묘에서 출향(黜享).
  · 4월 : 귀인 김씨를 폐위해 사가로 돌려보냄.
  홍치상을 교형에 처함
  · 5월

: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를 폐위함.
  희빈 장씨의 명호를 정해 비로 삼음
  장형을 옥산부원군, 부인 고씨를 영주부부인, 계실 윤씨를 파산부부인으로 봉작함.
  * 김만중(金萬重)이 구운몽(九雲夢) 등을 지음.
  * 이단하(李端夏, 1625-1689) 죽음.

1690년(숙종 16, 庚午)  
  · 6월
: 원자(元子)를 세자(경종)로 책봉.
  · 9월 : 희빈 장씨가 왕자를 낳음. 열흘 뒤 죽음.
  · 10월 : 희빈(禧嬪) 장씨(張氏)를 왕비로 책봉.
  · 11월 : 진제(賑濟)를 위해 공명첩(空名帖) 2만장을 판매함.
  호적법을 밝히고 지패(紙牌)를 목패(木牌)로 바꿈.
  * 김수흥(金壽興, 1626-1690) 죽음.

  1691년(숙종 17, 辛未)  
  · 7월
: 세자를 위해 ‘한석봉천자문’을 편찬함
  · 10월 : 주전(鑄錢).
  · 12월 : 성삼문 등 사육신(死六臣)의 관작을 복구하고 시호를 내림.
  삼남, 서북의 인재를 고루 등용함.
  북한산성의 축성을 결정함.

  1692년(숙종 18, 壬申)  
  · 3월
: 장희재를 총융사로 삼음
  · 8월 : 숙종이 창덕궁으로 돌아옴.
  총융청(摠戎廳)의 주전(鑄錢)을 허락함.
  · 10월 : 동(銅)을 북경에서 구입함.
  · 12월 : 8도감사에게 인명(人命) 남살(濫殺)의 폐를 엄금함.
  * 남용익(南龍翼, 1628-1692), 민정중(閔鼎重, 1628-1692),
  김만중(金萬重, 1637-1692) 죽음.

  1693년(숙종 19, 癸酉)  
  · 4월
: 궁인 최씨를 숙원으로 봉함
  · 7월 : 주전(鑄錢)을 호조(戶曹)에 전담시키고 사사로이 주전하는 자는 교형(絞刑)에 처함.
  · 10월 : 소의 최씨가 왕자를 낳음.
  · 12월 : 소의 최씨가 낳은 왕자가 죽음.
  조사석(趙師錫, 1632-1693) 유배지에서 죽음.
  겨울에 대마도주가 본국인의 울릉도 어업의 금지를 요청함.

  1694년(숙종 20, 甲戌)  
  · 3월
: 왕세자가 서연을 시작함.
  갑술옥사(甲戌獄事). 남인 실각, 서인 집권.
  · 4월 : 소론 남구만(南九萬)이 영의정이 됨. 소론 등용.
  폐비 민씨를 왕후로 복위하고, 장씨를 폐위.
  · 5월 : 이이와 성혼을 문묘에 다시 종사.
  · 6월 : 숙원 최씨를 숙의로 삼음.
  · 8월 : 왜에게 왜인의 울릉도 왕래를 금지할 것을 요구함.
  · 9월 : 숙의 최씨가 왕자를 낳음(연잉군)
  어영청(御營廳)의 주전(鑄錢)을 허락함.

1695년(숙종 21, 乙亥)  
  · 4월
: 경기 충청지방에 도적이 횡행함.
  · 6월 : 서원(書院)의 첩설(疊設)을 금지함.
  · 10월 : 상평청(常平廳)의 주전(鑄錢)을 1년 기한으로 허가함.
  · 12월 : 버린 아이(遺棄兒) 수양(收養)의 법을 제정함.
  * 박세채(朴世采, 1631-1695) 죽음.

  1696년(숙종 22, 丙子)  
  · 1월
: 종묘악장(宗廟樂章)을 바로 고침.
  · 2월 : 사사로이 주전하는 자는 사율(死律)로 처벌함.
  · 4월 : 세자빈을 심호의 딸로 간택함. 세자가 관례를 치름.
  옥산부원군의 비석 파괴 사건으로 업동 등이 잡혀옴
  · 5월 : 세자가 가례를 올림
  · 9월 : 울릉도에서 일본으로 도항한 동래인 안용복(安龍福)을 추문(推問)함.

  1697년(숙종 23, 丁丑)  
  · 2월
: 대마도주가 막부(幕府) 명으로 왜인 울릉도 왕래 금지 통지.
  도성안에 있는 거지들을 각 섬에 보냄.
  · 4월 : 기아민의 구제를 위해 송첩(松帖)을 내줌.
  · 8월 : 중인(中人) 서얼(庶孼)의 통사자(通仕者)는 찰방(察訪)을 거친 후 수령으로 서용함을 허락함.
  · 10월 : 전국에 대기근.

  1698년(숙종 24, 戊寅)  
  · 1월
: 청에서 개시(開市)를 허락하고 속미(粟米) 4만석을 보내옴.
  숙종이 탕평(蕩平)할 것을 내림.
  · 8월 : 궁인 유씨를 숙원에 봉함.
  · 10월 : 사간원에서 지방의 생사(生祠)의 폐단을 규탄함.
  · 11월 : 노산군(魯山君)을 복위. 묘호를 단종(端宗)으로 함.
  상궁 박씨를 숙원에 봉함

  1699년(숙종 25, 己卯)  
  · 6월
: 최석정(崔錫鼎)의 건의로 국조보감속편(國朝寶鑑續編)을 편찬.
  · 7월 : 영월의 단종릉 장릉(莊陵)의 개수도감(改修都監)을 설치함.
  · 9월 : 남형(濫刑)을 엄금함.
  · 10월 : 숙의 최씨를 숙빈에 봉함.
  전염병이 유행하여 25만명이 사망함.
  * 권대운(權大運, 1612-1699) 죽음.

1700년(숙종 26, 庚辰)  
  · 3월
: 유생(儒生) 사제(賜第)의 범위를 정함.
  최석정(崔錫鼎)에게 속록(續錄), 여지승람(輿地勝覽)의 편수를 전담시킴.
  · 8월 : 선원보략(璿源譜略) 완성됨.

  1701년(숙종 27, 辛巳)  
  · 1월
: 문묘에 계성사(啓聖祠)를 세움.
  · 4월 : 청나라 사람이 압록강을 측량함.
  · 8월 :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 죽음.
  · 9월 : 대행왕비를 무고(巫蠱)한 죄인 장희재를 처형하라 명함.
  장희빈을 자진하게 하라는 비망기를 내림.
  · 10월 : 동평군(東平君) 항(杭)을 사사함.
: 빈(嬪)을 후비(后妃)에 올리지 못하게 명함.
  희빈(禧嬪) 장씨(張氏)를 사사(賜死)함.
  장희재를 처형함.
  ▷ 무고(巫蠱)의 옥(獄) 일어남.

  1702년(숙종 28, 壬午)  
  · 1월
: 세자가 장씨의 상(喪)에 감.
  희빈 장씨를 양주 인장리에 장사지냄
  · 5월 : 이준명(李浚明) 등이 울릉도 도형(圖形) 및 토산물을 바침.
  · 10월 : 김주신(金柱臣)의 딸을 왕비로 책봉. 인원왕후(仁元王后).
  귀인 김씨를 영빈, 귀인 박씨를 명빈, 숙의 유씨를 소의에 봉함
  · 11월 : 남구만, 유상운(柳尙運)을 유배지에서 석방함.

  1703년(숙종 29, 癸未)  
  · 1월
: 금위영을 폐지했다가 2월에 다시 부활시킴.
  · 7월 : 명빈 박씨가 훙서함.
  · 9월 : 명빈 소생의 왕자 이 헌을 연령군에 봉함.
  청나라에 황당선(荒唐船) 금지에 대해 통지함.
  * 이시백(李時白, 1635-1703), 박세당(朴世堂, 1629-1703),
  오도일(吳道一, 1645-1703) 죽음.

  1704년(숙종 30, 甲申)  
  · 2월
: 연잉군이 혼례를 올림.
  · 3월 : 도성 수축을 시작함.
  · 6월 : 서원의 첩설(疊設)을 금지.
  · 8월 : 해서대동시행절목(海西大同施行節目)을 정하게 함.
  · 11월 : 노산군일기(魯山君日記)를 단종실록(端宗實錄)으로 고침.
  · 12월 : 대보단(大報壇)이 완공.

1705년(숙종 31, 乙酉)  
  · 3월
: 숙종이 대보단에서 명의 신종(神宗)을 제사함.
  · 10월 : 숙종이 선위(禪位)를 명함.
  · 11월 : 세자가 선위의 명을 거두시기를 세 번째 상소하니 허락함.

  1706년(숙종 32, 丙戌)  
  · 2월
: 최석정이 동국여지승람의 수정을 요청함
  · 5월 : 유생 임부(林溥)등이 동궁모해 혐의로 김춘택을 탄핵하는 상소
  · 6월 : 동궁(東宮) 모해설로 임부(林溥)를 국문함.
  · 8월 : 최석정이 전록통고(典錄通考)를 편찬하여 올림.
  · 10월 : 청에서 칠정력(七政曆)을 수입함.

  1707년(숙종 33, 丁亥)  
  · 1월
: 임보(林溥)가 장을 맞고 죽음.
  · 2월 : 이순신 사우(祠宇)에 현충(顯忠)이라 사액함.
  연령군이 가례를 올림
  · 4월 : 형장(刑杖)을 일체 금지함.
  · 11월 : 숙종이 당론의 폐해를 유시(諭示)함.
  * 신완(申琓, 1646-1707) 죽음.

  1708년(숙종 34, 戊子)  
  · 2월
: 숙종이 당론을 경계함.
  · 4월 : 서양식 대포인 불랑기(佛狼機)를 만들게 함.
  · 10월 : 황해도에 대동법을 시행함.
  · 12월 : 서운관(書雲觀)에서 건상도(乾象圖)와 곤여도(坤輿圖) 올림.
  * 김창협(金昌協, 1651-1708) 죽음.

  1709년(숙종 35, 己丑)  
  · 1월
: 숙종이 노론 소론의 폐해를 유시(諭示)함.
  · 5월 : 서인(庶人) 상례(喪禮)의 제한을 엄격히 정함.
  김창집(金昌集)이 오륜전비언해(五倫全備諺解)를 완성.
  · 8월 : 강화도에 축성(築城)을 명함.

1710년(숙종 36, 庚寅)  
  · 3월 : 최석정(崔錫鼎)의 관직을 삭탈하고, 그가 올린 예기류편(禮記類篇)을 소각함.
  노론이 진출함.
  · 7월 : 왜관의 공작미(公作米)를 5년으로 연장해줌.
  · 10월 : 안정기(安鼎基)가 만든 차자(車子)를 제조함.

  1711년(숙종 37, 辛卯)  
  · 3월 : 북한산성(北漢山城) 축성을 시작하여 10월에 마침.
  · 5월 : 일본에 통신사 파견.
  · 12월 : 왜인의 구은(舊銀, 八星銀) 사용 요청을 허락함.
  비변사에서 양역변통절목(良役變通節目)을 올림.
  * 남구만 죽음

  1712년(숙종 38, 壬辰)  
  · 4월
: 청의 목극등(穆克登) 일행이 후주(厚州)에 이름.
  · 5월 : 총융청에서 북한산성 중성(重城)을 축조함.
  조선과 청나라가 백두산 정계비(白頭山定界碑)를 세움.

  1713년(숙종 39, 癸巳)  
  · 7월
: 서원의 첩설(疊設)을 금단함.
  · 10월 : 북도 친기위(北道 親騎衛)를 설치함.
  · 11월 : 이이명(李이命)이 오례의(五禮儀)의 개정을 논함.

  1714년(숙종 40, 甲午)  
  · 1월
: 팔도에 지진(地震).
  · 2월 : 숭례문 괘서(掛書) 사건이 일어남.
  · 7월 : 강원도의 군보단속절목(軍保團束節目)을 강구함.
  * 윤증(尹拯, 1629-1714) 죽음.

1715년(숙종 41, 乙未)  
  · 2월
: 동으로 도량형기를 주조하여 팔도에 반사함.
  · 4월 : 허원(許遠)이 북경에서 역서(曆書), 측산기계(測算機械), 자명종 (自鳴鐘) 등을 구해옴.
  · 12월 : 윤선거(尹宣擧)의 가례원류(家禮源流) 발문(跋文)으로 노소간의 분쟁이 격화됨.
  * 최석정(崔錫鼎, 1646-1715), 홍만선(洪萬選, 1643-1715) 죽음.

  1716년(숙종 42, 丙申)  
  · 8월
: 윤선거(尹宣擧) 문집의 훼판(毁板)을 명함. 병신처분(丙申處分).
  · 10월 : 윤선거의 선정(先正)의 칭호를 금지함.
  · 12월 : 윤증의 선정(先正)의 칭호를 금지함.

  1717년(숙종 43, 丁酉)  
  · 5월
: 김장생(金長生)을 문묘에 배향함.
  윤선거, 윤증 부자의 관작을 추탈(追奪)함.
  · 7월 : 왕이 이이명과 독대함.
  왕세자가 섭정을 함.

  1718년(숙종 44, 戊戌)  
  · 2월
: 세자빈 심씨가 훙서함.
  인장리의 장씨 묘를 천장하게 함.
  · 4월 : 소현세자빈 강씨의 위호(位號)를 회복시킴.
  · 9월 : 세자빈으로 어씨(魚氏) 책립.
  · 10월 : 마천령(磨天嶺)을 엄격히 막음.

  1719년(숙종 45, 己亥)  
  · 2월
: 숙종이 기로소(耆老所)이 들어감.
  · 7월 : 경상 전라 충청도에 균전사(均田使)를 파견.
  · 10월 : 연령군 죽음.

  1720년(숙종 46 / 경종 즉위년, 庚子)  
  · 6월
: 숙종 승하, 왕세자(경종) 즉위.
  · 10월 : 삼남의 양전을 끝냄.
  · 11월 : 청의 사신이 옴.
  조태구(趙泰耉)가 김창집(金昌集)을 배척하는 상소를 올림.
  * 최창대(崔昌大, 1669-1720), 민진후(閔鎭厚, 1659-1720)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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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야사 일부분.
이것들 중 일부는 다른 곳에서도 읽은 적이 있다.



<태종>

태종



직업정신 투철한 사관이 따라다니며 일거수 일투족을 다 기록해서
태종이 걷다가 헛발질한 것도 적음. 태종 그거는 제발 지워라 쪽팔리다 했는데
사관은 끝까지 '왕이 길을 걷다가 헛발질하다.

헛발질한 것을 적지 말라고 말한 것은 적지 말라 명하셨다' 적음.


하도 사관이 따라다녀서 못 쫓아오게 멀리까지 사냥을 나갔는데

말타고 거기까지  쫓아오는 사관....



<세종>


북방 개척한다고 도망가고, 모친상 핑계로 낙향
조선의 성군(聖君) 세종은 부하들을 휘몰아치는데 도가 튼 인물이었다.

아침 조회격인 새벽 4시 상참(上參)에서 부터 과업달성이 부진한 부하들을 닦달했다.
밤 낮으로 시달리다 못한 김종서의 경우 임금 곁에 있다가는 제명에 못살 것 같아
스스로 궁궐을 떠나 삭풍이 몰아치는 북방을 개척하겠다고 손들고 나선다.

정인지는 임금이 너무나도 독촉하고 소위 '갈궈 대는' 바람에

모친 3년상을 핑계로 상소를 올리고 낙향 하려한다.
임금은 법령까지 바꿔서 그를 다시 붙잡아다 오히려 일을더 시킨다.


흔히 청백리라고 알려진 황희는 청백리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었다.
임금이 사람을 붙여 처절하게 감시하고 너무도 기분 나쁘게 점검하는 바람에
'내참 더러워서 뇌물 먹지 않으리라' 결심한 케이스다.


그리고 나름대로 참 비리가 많은 황희

황희가 청렴결백 두루뭉술과는 거리가 멀었다고해요~
자기 사위가 사고친걸 무마하려다가 파면당하기도 하고,
수령에게 땅을 받고 그 아들에게 벼슬을 주기도 했다네요 ;
만화로 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보다 알게된 건데
항상 좋은면만 보여주던 사람들이 이런다니까 좀 실망이기도 하고 그래요 ㅋㅋ


훈민정음 반포식을 축하하는 잔치 행사에는 집현전 학사 절반이 참석을 못했다.
대부분이 살인적인 과중한 업무와 임금의 요구사항에 시달리다 못 견뎌 병석에 누운 탓이었다.
성군의 캐치프레이즈는 "신하가 고달파야 백성이 편안하다"였다.



나라에 큰 일이 있어서 모두 고기를 먹지 않는 기간중이었는데

태종임금님이 특별히
충녕[세종대왕] 을 모시는 하인들한테 충녕이는

삼시 세끼 고기 꼭 챙겨먹이라고 안 그럼 밥 안 먹는다고 ㅋㅋ
충녕이에게만 고기 먹는 걸 허락한다고하고

또 밥상에 고기가 없으면 상을 물리고 반찬 다시 가져오라고 하고
결국 고기반찬이 없던 밥상을 먹고 나서는 길에는 기운이 없어서 못 움직인다고
주저 앉아주시는 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랑해요 고기 당신없인 못살아 ㅋㅋㅋㅋㅋㅋ

어쨌든 삼시 세끼 꼬박 고기를 드셔야했던 세종대왕님 ㅋㅋ


친경 한다고,소 끌고 밭갈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자,배고픔을 못견뎌,
밭갈던 소를 때려 잡아서 국 끓여 드심



<문종>



문종은 부인 복이 정말 없었음.


문종의 부인은 용모가 그리 예쁘지 않아서 당시 세자였던 문종의 마음을 얻지 못헀는데

자나깨나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골몰하던 그녀가 쓴 방법은 주로

남자의 사랑을 받는 여자의 신발을 베어다 태워 가루로 만든 다음

그 가루를 술에 타 남자에게 먹이기

뱀이 교접할 때 흘린 정기를 수건으로 닦아 간직하기 등등......  그러다 걸려서 폐출당했음.


근데 좀 불쌍 ㅠㅠㅠ 그리고 그 후에 또 고른 봉씨는 너무 다혈질이라

세자와 성격이 안맞았고,


그 후에 세명의 후실을 들였는데 그중 권씨와 겨우 아이가 생겼음

근데 문제는 다혈질 봉씨로, 임신사실을 알고 나서 부터 자기도 임신했다고 거짓말하고

외간남자 엿보고 대낮부터 술주정등등 문제가 많이 생김.

그래도 두번이나 폐출시킬순 없어서 그냥 세종이 눈감아주고 있었는데 일이 터짐

궁녀중 동성애자인 궁녀를 불러들여서 사부작사부작 한거임...... ㄷㄷㄷ 결국 걸려서 폐출됨.



<세조>



세조가 왕이 되기전에 문종이 죽은지 나흘 뒤에,

단종의 즉위식이 있었던 날 (당시에는 수양대군이라 불림) 세조는

"대행의 은덕을 어찌 말로 다 할수 있으랴? 나더러 바르고 충성스러우며 지식이 남다르다고

항상 더불어 의논하셨지. 진법을 만들었더니'제갈량인들 수양보다 나을까?' 이러시는거야.

또 칭찬하기를 '수양은 비상한 사람이야'하셨어. 형제간의 정이 이와 같았거늘 흐규긓그그"

........... 음. 조,좋은 자기 칭찬이다 !!  


하루는 신숙주 한명회(세조의 오른팔격)와 술을 마시다가 신숙주의 팔을 비틀고는

아프냐며 자기팔도 비틀어보라 했는데 진짜 했는데 일단 술자리가 끝난뒤 생각해보니

괘씸해서 신숙주가 뭐하고 있는지 몰래 알아보라고 했는데 이미 신숙주는 한명회가

그대가 가지고 있는 밤에 책을 보는 습관을 오늘도 한다면 그대의 목숨이 위험해지리라

는것을 전해들어 불을 끄고 자고 있어서 화를 면할수 있었다는 이야기.

(이건 너무 간단히 쓰여있어서 제가 좀더 자세하게 고쳤어요)


세조는 후궁이 단 한명 뿐이고
평생 중전인 정희왕후와 금슬이 좋았는데
국사를 논할 때도, 국가의 모든 행사에도 꼭 정희왕후를 대동했으며
사냥을 할 때도 둘이 나란히 말을 타고!!!!!!!!
조선의 왕비가 말을 타고!!!!!!!!! 사냥에 나갔다고 나와있었음.

정희왕후는 좀 여장부인듯.



<연산군>



성종이랑 연산군이랑 오랜만에 밖에 바람쐬러 나와서 성종이 융아 좋지 않으냐?하니
연산군이 소떼를 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아바마마 저 송아지도 어미소가 있는데 저는 왜 어미가 없습니까"했다고...


엄청 꽃미남이었다고 함 여리여리한 미소년


연산군은 시를 좋아하고 노래와 춤을 즐겼는데

연산이 처용무를 추면 다들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고.

그가 우는 연기라고 할라치면 기생들도 모두 따라울어

연회장이 통곡의자리가 되기도 했다고한다.



<중종>



자식 사랑이 남달라서 공주, 옹주랑 왕자들이 오랜만에 문안오면 눈물흘림.
버선발로 뛰어남감



<명종>



다른 사람들은 다 물러가있거라 하고 노래 잘 부르는 내관하나랑

둘이서 내관은 노래 부르고 명종은 그거에 맞게 춤추며


2인조 가수 못지 않게 퍼포먼스를 본투 댄싱 ㅋㅋㅋㅋㅋㅋ  

꾀병부려서 총애하는 내관의 극진한 간호 받음

위의 내관은 동일인물로 남자임.



<효종>



나르시즘에 빠져서  항상 거울을 보고 웃음 [한마디로 왕자병]


인조를 닮아 얼굴이 예뻤는데 지 예쁜거 알았다고 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울을 끼고 자기 얼굴보며 만족하며 웃었대요.



<숙종>



따뜻한 온돌방에서 신하들이 꾸벅꾸벅 졸자 온돌을 빼버려서 얼음장에서 일하게 만들었음




<정조>



"매양 취침하기 전에 두 발바닥의 가운데를 마주 문질러 비비면 기운이 저절로 퍼진다.
내가 밤마다 시험해보았는데, 처음에는 힘이 드는 듯했으나 오래도록 계속했더니 신통한
효험이 있다"

내가 밤마다 시험해보았는데
내가 밤마다 시험해보았는데
내가 밤마다 시험해보았는데


실험정신이 참 투철하시군녀


공부 못하는 신하한테 공부하라고해 숙제 내줘 숙제 제대로 안하면 개망신 줘

술 못마시는 신하한테 술마시라고 강요 기절할 때까지 마셔

활 못 쏘는 신하한테 활 연습시켜

술을 무진장 좋아라 해서.
정약용에게,필통에 술 한가득 부어서 원샷을 강요
그래서 정약용은 술을 싫어했다고 함.
그때당시 필통에 술붓기라면..요즘 사발에 소주를 들이붓는거랑 맞먹는것.


학식, 인품, 외모 딸리는건 건강이 약한것 밖에 없음



출처 : 엽혹진 '병풍뒤향냄새'님이 쭉빵에서 퍼오신 글
         http://blog.naver.com/khs9182/80107049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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