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을 거리/책이랑 좋은글

새의 선물 중에서 (저자 은희경) 기억에 남았던 (좋은(?)) 부분

by 파란토마토 2007. 11. 1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의 선물(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상세보기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으로 사춘기 소녀의 고민과 방황을 `과부 수다떨듯` 녹여냈다.30대후반 여성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60년대말을 배경으로 물컹거리는 성욕,신분상승의 욕망과 허세,인간애가 뒤엉킨 세상을 시종 웃음을 자아내는 해학적 문체와 치밀한 심리묘사로 풀어낸다.


소설은 `나는 세상이 내게 별반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열두살에 성장을 멈췄다. 나는 알것을 다 알았고 내가 생각하기로는 더이상 성숙할 것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화자가 자신의 12세 시절을 묘사한 액자소설(소설속의 소설) 형식으로 써졌다.

[중앙일보 1995-11-21]

 

사랑은 자의적인 것이다. 작은 친절일 뿐인데도 자신의 환심을 사려는 조바심으로 보이고 스쳐가는 눈빛일 뿐인데 자신의 가슴에 운명적 각인을 남기려는 의사표시로 믿게 만드는
어리석은 맹목성이 있다.



성숙한 사람은 언제나 손해이다.
나는 너무 일찍 성숙했고 그러기에 일찍부터 삶을 알게 된 만큼 삶에서 빨리 밑지기 시작했다.



사랑이 아무리 집요해도 그것이 스러진 뒤에는 그 자리에 오는 다른 사랑에 의해 배척당한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지는 속성이다. 운명적이었다고 생각해도 사랑이 흔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사랑에 대한 냉소를 갖게 된다.

사랑에 빠지는 일에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다시 사랑에 빠지며 자기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유지의 감각과 신랄함을 갖기 때문에 집착없이 그 사랑에 열중할 수 있다.

사랑은 냉소에 의해 불붙혀지며, 그 냉소의 원인이 된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이 훨씬 너그러운 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게 사랑이다.



죽은 이선생이 이런 얘기를 했었다.

숲속에 마른 열매 하나가 툭 떨어졌다. 나무 밑에 있던 여우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멀리서 호랑이가 그 여우를 보았다. 꾀보 여우가 저렇게 다급하게 뛸 때는 분명 굉장한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도 뛰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뛰는 모습을 숲속 동물들이 보았다.

산중호걸인 호랑이가 저렇게 도망을 칠 정도면 굉장한 천재지변이거나 외계인의 출현이다. 그래서 숲속의 모든 동물이 다 뛰었다. 온 숲이 뒤집혀졌고 숲은 그 숲이 생긴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