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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거리/책이랑 좋은글

장희빈 소재의 책들

by 파란토마토 2010. 3. 25.

장희빈 사랑에 살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최정미 (유레카엠앤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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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의 옷을 입은 칙릿 소설 (※Chick Lit; chick + literature)은 젊은 여성을 겨냥한 영미권 소설들을 지칭하는 신조어)

한 여인이 있었다. 신분의 그늘이 재능을 압도하던 시절, 왕비가 되기에는 조금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탁월한 지성과 재능으로 이를 극복한 여자, 장옥정.

역사는 그녀를 아름다움에 의존해 치맛자락을 휘둘러댔던 희대의 요부로 기록했지만,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장옥정의 내면은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남자들은 <칼의 노래>를 통해 이순신의 리더십을 배우고,
여자들은 <사랑에 살다>를 통해 시대의 알파걸 장희빈의 지성과 열정을 배워야 한다."


장희빈, 역사가 왜곡한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진실 1, 그녀는 뛰어난 지성을 가진 조선 시대의 알파걸이었다

역관의 딸로 태어나 침방나인이 되었고, 훗날 숙종의 뒤를 이은 경종의 어머니였으며, 6년여 동안이나 왕비의 자리에 머물렀으나 희대의 요부 장희빈으로 생을 마감한 여인, 장옥정.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의 계비(繼妃)였던 인현왕후와 장희빈은 숙명적인 라이벌 관계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장희빈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는 사료는 인현왕후의 삶을 그린 '인현왕후전'이 전부. 그런데 이 소설은 인현왕후를 모시던 한 궁녀가 썼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통설이다. 누가 썼든, 아마도 '인현왕후전'은 철저히 그녀의 입장에서 쓰인 승자의 기록임에 틀림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영화로, 책으로, TV 드라마로 그려진 장희빈은 이렇게 편향될 수밖에 없었던 기록에 기대어 세상에 둘도 없는 요부로, 조선시대 최고의 팜므파탈로 박제되었다.


작가 최정미는, 죽은 자는 말을 할 수 없으니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인현왕후전'의 대척점에서 장희빈의 억울했을지 모를 사연을 대변해줘야 공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역사소설로서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해박한 이해와 해설을 기반으로, 장옥정이라는 한 여인의 삶을 조망하고 있다.

1688년, 이순이 즉위한 지 열네 해째 되던 해,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가 온 궁궐을 들뜨게 했다. 왕자의 탄생이었고, 훗날 숙종 이순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경종의 탄생이었다! 서인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왕자의 출산이 남인들의 복귀를 열어주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사람들은 옥정이 미인계로 단번에 임금의 마음을 사로잡고 치마폭에서 놀게 했다고들 하지만 그것은 천하의 이순을 모르고 하는 낭설이었다. 오히려 이순에게 옥정은 서인에게 긴장감을 유발시켜 권력 독점을 막는 데 유용한 방패막이일 수 있었다. -p.237


몇 번에 걸쳐 TV 역사드라마로 방영되었던 '장희빈'은 음모와 술수가 능하고 투기가 심한 악녀였던 데 반해 인현왕후는 온화하고 덕이 넘치는 사람으로 그려졌다. 그런데 실록에 의하면 악독한 요녀는 오히려 인현왕후였다. 숙종은 인현왕후 민씨를 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생각컨대 연산군의 어머니인 윤씨가 잘못한 바는 단지 투기였는데, 죄상이 드러나자 성종께서 종사를 위해 먼 앞날을 생각하시어 폐출했다. 더욱이 오늘날 민씨는 허물을 지고 범한 것이 윤씨보다 더하고, 윤씨에게 없던 행동까지 했으니 종사에 죄를 얻었다. 이에 폐하여 서인을 삼아 사저로 돌려보낸다."

이 상반된 견해에 대해 작가 최정미는 이렇게 단언한다. 장옥정은 패션 감각과 재능, 영민함으로 왕비에 등극한 조선 최고의 알파걸이었다고. 더불어 이 당당한 여인의 죽음은 한 여자로서 한 남자에게 주었던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인한 것이었다고.

이순은 복잡한 머리를 털고 편전을 떴다. 옥정과 가볍게 농을 주고받으면 머리가 가벼워지려나. .. 모처럼 응향각에 든 이순이 소주방에 일러 주안상을 내오라 했다. 평소에도 옥정이 영민한 것은 알고 있었으나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룰 수 있을 정도의 소양을 갖췄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근심을 털어놓고자 꺼내놓은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옥정이 알아듣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꺼낸 이야기였다. .. 그런데 옥정은 의외로 말귀를 잘 알아듣고 응수도 제법 잘했다.

이는 김인호 교수의 장희빈에 대한 평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500년의 조선 역사 중에서 최고의 어머니와 최고의 여성상을 또 한 사람 꼽는다면 그녀는 바로 장옥정 즉 장희빈이다. 특히 여성의 정치적 사회적 권리가 전혀 보장되지 못하고 정치적 훈련이 전혀 없던 시절, 그래도 자식을 왕으로 만들고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남성의 국왕 못지 않은 정치적 영향력을 후세에 남긴 장옥정이야말로 오늘날 다시 평가되어야 할 사람이라 보인다."
가난한 역관 아버지와 천민 어머니를 둔 장옥정. 그녀가 왕비의 자리에 등극할 수 있었던 진정한 힘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주관과 특유의 영민함 그리고 국왕 이순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이었다.


진실 2, 그녀는 조선 최고의 패셔니스타였다

장희빈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알려진 사실은 그녀가 역관 장현의 종질녀였고, 침방나인으로 궁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침방나인에게 주어진 소임은 왕실의 옷과 이불을 만드는 것이었다. 팩션을 써 나가는 데 있어, 장옥정이 침방나인이었던 점에 착안해 옷을 만드는 여인, 즉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재능을 돌아보게 되었다. 패션은 현대 독자들, 특히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요소다. 조선시대에 디자이너 혹은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재능을 바탕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간 여인 장옥정. 참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 시대, 철저한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 안에서, 역관인 아버지와 최하층 계급인 천민 노비를 어머니를 두었음에도 신분의 굴레에 함몰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인생을 개척, 당대 최고 지성 집단의 독설과 공격을 온몸으로 받았으면서도 끝내 조선 최고의 여인인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대단한 성공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한 시대를 풍미한 매혹적인 여성에 재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이룬 성공스토리는 현대인들에게도 충분한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다. 거기에 이렇게 현대적이고 당당한 여성이 지고지순한 사랑 속에서 죽어갔다는 비극성은 그녀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그 비극성이란 그렇게 재기발랄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여인 장옥정이 국왕 이순이라는 최고 권력가를 만나게 되고 진정한 사랑에 빠졌다가, 권력가의 이기에 의해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었다.


진실 3, 그녀는 사랑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놓았다

"전하는 처첩 간의 갈등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시면서 많은 것을 얻어내셨다. 전하가 잃으신 것은 없으시지. 나에게 씻을 수 없는 한과 모욕을 준신 것도 전하시고, 희빈 장씨에게 역시 광영과 상처를 번갈아 주신 것도 전하시다. 전하는 나와 희빈 장씨를 번갈아 쥐었다 폈다 하며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내셨다. 내가 중전의 자리를 다시 찾으면 기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어. 위안이 되는 것은 있지. 가문이 다시 일어서고 왕비로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 된 것! 대신 전하께서는 적절한 시기마다 왕비전의 주인을 바꾸어 환국을 일으키시고, 그 반대급부로 왕권을 극대화하셨지. 희빈 장씨와 나 모두 그분의 희생양인 것이야....."

다시 환궁하여 중전 자리에 오른 인현왕후의 회환 어린 말이다.


인현왕후와 장희빈 두 여성은 단순히 숙종의 여인이 아니라 남인과 서인 각파가 벌이는 권력쟁탈의 상징이었다. 권력과 함께 그들의 운명은 부침했고, 그 과정에서 이들 여인들은 모두 권력의 희생양으로 혹독한 업보를 치르고 말았다. 요녀가 아니라 정객으로서, 나아가 미모보다는 시대를 넘보는 재주로서 장옥정은 자식을 왕으로 만들었고, 잠시간 정권 교체라는 신선한 광풍을 역사에 남겨놓았다. 진정 멋진 여성의 운명은 미모보다는 시대와 역사 앞에 얼마나 정열적이었던가에 크게 빚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장옥정의 죽음을 새롭게 바라본다. 옥정이 자신의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은 진정 사랑 때문이었다고. 소설의 마지막 대목은 이순과 옥정의 대화 장면이다. 이순이 옥정에게 죽음을 명한 뒤 옥정이 되묻는다. "그것으로는 죽어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다른 이유를 말씀해주시오! 어찌해서 내가 죽어야 합니까?" 왕은 왕세자를 위해서 죽어달라고 말하지만, 옥정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어미 없이 커갈 자식을 두고 눈에 밟혀서 어찌 떠납니까? 그리는 더욱 못해드리겠습니다." 이때 이순이 결정적인 한마디를 내뱉는다. "나를 위해 죽어다오, 옥정아! 내가 너의 죽음을 원한다. 그것이면 되겠느냐?"

시대의 알파걸이었던 옥정은 그 순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짓는다. 이순을 위해 죽어주겠다고. 이것은 시대에 의해 희생된 죽음이 아니라, 사랑 앞에 정열적이었던 한 여인의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장희빈은 정치적 야망 때문에 죽음에 내몰린 것이 아니라 순결한 사랑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놓았다. 그것뿐이었다.





장희빈 사극의 배반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정두희 외 (소나무,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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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장희빈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미 영화로 2번, 드라마로 5번 제작되어 온갖 음모와 질투의 화신의 이미지에서, 적극적으로 신분상승을 꾀했던 진취적인 여성으로 우리 앞에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가 원했던 장희빈, 시대가 원했던 장희빈의 실체를 파헤친 이 책은 사극와 역사의 미묘한 관계에 관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장희빈 4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박종화 (범우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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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탄 박종화 장편역사소설. 17세기 병자호란 이후 1백여년의 역사를 배경으로 궁중과 조정의 거유, 석학과 재상, 충신과 모사, 미희와 요녀, 음부 등 온갖 군상의 인물들의 파노라마 속에서 어머니의 정부와 종친인 동평군의 주선으로 궁중에 들어가, 궁녀의 신분에서 숙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희대의 요녀 장희빈을 유장한 문체로 생생하게 형상화했다. KBS에서 방영인 100부작 드라마 장희빈(김혜수 주연)의 원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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