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요즘 아니 몇 달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보았다.

 

바보스럽게 웃고 있는 김수현의 얼굴과,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듯한 박기웅과 이현우의 얼굴이 있는 영화의 포스터와 "들개로 태어나, 괴물로 길러져, 바보로 스며들다'라는 문구는 이 영화에 대단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듯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 영화 배급사는 영화 흥행이 잘 되자 이후 새로운 스페셜 포스터 3장을 더 공개했는데... 이것들 또한 기가 막힌 구도와 색감을 자랑한다. 오히려 오리지널 포스터들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주인공들의 마지막을 알리는 듯한 대사가 있는 이 포스터들은 영화보기 전의 기대감을 증폭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보고 나서의 소감은....ㅋ 그야말로 은밀하게 위대했다는 것이다.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많고, 주인공들은 내내 심각하고 처절한데...

계속 말할 듯 말듯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고, 주인공들은 내내 괴로워하고... 

그러다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에서 동구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던 김수현의 일상 모습

 

 

 

만화같은 외모와 캐릭터를 자랑하던 또 다른 간첩 아저씨

 

 

 

 

내가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던 대사인 "내래 남조선 새끼들에게 진정한 인민의 롹을 보여주갔어~"ㅋㅋㅋㅋㅋ

 

 

 

김수현 보러 갔다가 이현우 보려고 두 번 보게 된다는 말을 남긴 애기 간첩 이현우.. 현우야;;;;

 

 

 

알고 보면 슬픈 장면인... 멸치 따는 장면.. 흑흑...ㅠㅠ

 

 

 

현우야... 아니 해진이구나.. 해진아... 조장님 곁에서 행복하니?

 

 

 

 

 

이 영화는 스토리가 거의 없기 때문에 스토리를 기대하고 본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스토리가 진짜 없다. 그냥 영화의 앞 부분 시작할 때 웃긴 '장면' 몇 개 이후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까 궁금해하게 되지만

그 뒤로도 장면을 만화처럼 붙여놓았을 뿐... 큰 줄기의 스토리가 없다.

 

그런데 주인공 중의 한 명에게라도 감정이입이 되면 묘하게도 영화가 참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주인공 눈빛을 보면서 가슴이 두근~ 하는 것도 느껴보고 말이지...

 

나는 영화적으로는 참 못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했지만 간첩 세 명의 관계가 흥미진진해서 그런대로 즐기면서 볼 수 있었다.

 

이상! 위대할 뻔 했다가 은밀하게 끝난 영화인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감상평이다.

 

 

 

 

관련글

 

2012/01/24 - 해를 품은 달 현장 스틸샷~ 촬영 사진 및 등장인물들 간단 소개

 

2012/01/25 - MBC 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 - 공홈 등장인물 소개 및 포스터, 월페이퍼 다운

 

2013/05/13 - 미인 밝히던 조선 왕들의 '굴욕' - 해를 품은 달 일곱번째 이야기

반응형
반응형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허연우(한가인 분)와 이훤 임금(김수현 분).
ⓒ MBC

관련사진보기

미인 밝히던 조선 왕들의 '굴욕'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일곱 번째 이야기

 

 


'왕이 되면 예쁜 여자들을 사귀기 쉬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옛날 왕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천만에!"라며 손사래를 칠 것이다.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원칙상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이훤 임금(김수현 분)은 죽은 세자빈을 닮은 연우(한가인 분)를 무척이나 가까이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훤의 소망은 수많은 장애물에 의해 차단되어 있다. 그의 소망은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자칫 연우의 생명까지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이훤의 소망이 이루어지기 힘든 것은, 연우가 무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연우가 무녀가 아닌 궁녀라 해도, 이 소망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대왕대비와 중전과 외척세력이 묵과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이훤의 처지는 옛날 왕들의 사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들 역시 모험을 각오하지 않고는, 관심 있는 여성을 가까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왕이 되면 예쁜 여자들을 사귀기 쉬웠을 것'이란 관념보다는 '대학생이 되면 멋진 이성을 사귀기 쉬울 것'이란 관념이 차라리 현실적일 것이다.

 



왕의 '베드신'은 오직 후계자 생산을 위해 

'왕은 본인이 원하면 예쁜 여성을 첩으로 삼을 수 있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조선시대 27명의 왕이 평균 3.7명의 후궁을 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후계자를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약간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첩의 선택은 원칙적으로 왕실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임금 본인이 여자를 고른다는 것은 원칙상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대비나 중전 같은 왕실 여성들이 후궁을 선정했기 때문에, 남자 눈에 예쁜 여성이 후궁에 뽑힐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후궁의 일차적 선정 기준은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가'였다.

왕의 '베드신'도 철저한 사전 기획 속에 공개적으로 진행됐다. 여덟 명의 궁녀가 사방을 둘러싼 가운데 치러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왕이 육체적 쾌락을 탐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베드신을 찍는 배우가 쾌감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왕은 중전이나 후궁들과의 관계 속에서 남자의 행복을 느끼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궁녀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런 만족을 충족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것 역시 불가능했다. 왕이 예쁜 궁녀에게 한눈을 팔지 못하도록 왕실과 궁중과 조정이 집중 단속했기 때문이다.

승정원(비서실)의 업무일지인 <승정원일기>에 나타나듯이, 왕의 동선은 철저하게 파악되었다. 그러다 보니, 왕이 궁녀와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여간해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연예계 톱스타가 기자들을 따돌리고 인천공항을 빠져나가기 힘든 것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여차하면 신하들의 '막가는' 발언들이... 

 궁궐에 갇힌 왕의 모습. 사진은 정조 임금의 모습을 형상화한 밀랍인형.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 소재.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게다가 유교적 소양을 갖춘 신하들은 매일 두세 번씩 경연(세미나) 자리에서 왕의 귀에 '공자 왈', '맹자 왈'을 주입했다. 이때 가장 강조된 것이 "군자는 홀로(獨) 있을 때를 삼가야(愼) 한다"(君子必愼其獨也)는 구절이었다. <대학>에 나오는 신독(愼獨) 사상이다.

신하들은 왕이 침실에 혼자 있을 때도 신독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남이 안 보는 곳에서도 항상 허리를 펴고 똑바로 앉아 자기 수양을 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일례로, 중종 12년 8월 8일자(1517년 8년 24일) <중종실록>에는, 조광조가 경연 자리에서 중종에게 자세를 똑바로 하시라고 훈계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광조는 "혹시 요즘 혼자 계실 때 마음공부를 게을리 해서 이런 것 아닙니까?"라며 다그치기까지 했다. 침실에서 딴 생각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막간다'는 느낌을 주는 발언이었다. 이 정도로, 주변 사람들은 왕이 혹시라도 국가경영 이외의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길까봐 항상 경계하고 견제했다.

2003년 3월 9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평검사들과 '막가는' 대화를 했다. 평검사들의 발언 태도는, 내용의 당부당을 떠나, 누가 봐도 '막가는' 것이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제2장에 따르면, '검찰과 긴장관계를 만든 이유가 무엇인가?'란 취지의 질문에 대해 노무현은 "그건 작심하고 시작한 것이죠"라고 답했다.

왕들은 항상 노무현처럼 작심하는 심정으로 살아야 했다. 공개석상에서 왕은 반말을 하고 신하들은 존댓말을 했지만, 가슴을 졸이는 쪽은 신하들이 아니라 왕이었다. 신하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공손한 존댓말로 막가는 발언들을 해댔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듣지 않고 살려면, 이성에 대한 관심을 억제하고 국정에 전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임금 곁에는 '예쁠 것도 없는' 궁녀들만이

주변 사람들은 왕이 여자에게 정신을 쏟지 못하도록 '사전방지 활동'만 벌인 게 아니었다. 철저한 마크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는 '사후진압 활동'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이런 사후진압 때문에 체면을 구긴 왕들의 사례가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일례로, 제11대 임금인 중종은 미모의 후궁인 홍희빈(희빈 홍씨)을 특별히 가까이 하다가 조정의 견제를 받았다. 중종 13년 3월 12일(1518년 4월 21일) 아침, 그는 경연에 나갔다가 사헌부(검찰청) 정4품 관료로부터 '여색에 빠지는 자는 용렬한 임금'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른 아침 댓바람부터 '평검사'한테서 '여자 조심하라'는 막말을 들은 것이다.

제19대 숙종은 미모의 궁녀인 장옥정(훗날의 장희빈)을 후궁으로 삼으려다가 '미인을 경계하시라'는 상소를 받았다. 숙종 12년 12월 14일(1687년 1월 27일)의 일이다. 숙종이 끝내 자기 의지를 관철시키기는 했지만, 이것은 그가 비교적 강력한 군주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창덕궁 선정전. 왕의 편전(집무실)이었다.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소재.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왕이 경고를 무시하고 마음에 드는 궁녀를 가까이할 경우, 자칫 궁녀의 신변까지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다. 숙종이 궁녀 시절의 최숙빈(숙빈 최씨, 영조의 어머니)을 가까이하자 중전인 장희빈이 최숙빈을 죽이려다 실패한 사건이 이문정의 <수문록>에 기록되어 있다.

또 김용숙의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에 수록된 구한말 궁녀들의 증언에 따르면, 제26대 고종 임금 때는 왕의 관심을 끄는 궁녀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사건들이 많았다고 한다. 중전 명성황후(민비)와 후궁 엄귀인의 첩보망이 그처럼 촘촘했던 것이다. <해를 품은 달>의 보경 왕후(김민서 분)가 이훤과 연우의 관계를 견제하는 것 이상으로 실제 상황은 살벌했던 것이다. 

이 정도였기 때문에, 왕이 얼굴 반반한 궁녀를 자기 옆에 둘 수 있는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정지용의 <향수>에 나오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궁녀들만이 왕의 곁에서 오래도록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이하 생략. 전체 기사를 보려면 여기를 클릭

반응형
반응형
포스터





등장인물 소개

이훤 - 김수현, 아역 여진구

허연우 - 한가인, 아역 김유정

허염

양명 - 정일우, 아역 이민호

윤보경




월페이퍼 - 배경화면 - 바탕화면.. 뭐라고 부를까;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