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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사망 이후 정조(正祖)가 즉위 100일간 한 일

by 파란토마토 2008. 2. 18.
영조 사망 이후 정조(正祖)가 즉위 100일간 한 일

글: 국양 서울대 연구처장,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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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정조 이산의 생애에 관한 TV 연속극과 책이 인기리에 방영되거나 판매되고 있다. 특히 TV에서는 극작가와 PD의 뛰어난 능력 덕택에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의 전개인데도, 시청자는 매주 궁금한 마음으로 다음 주 이야기를 기다린다.

정조는 즉위 3년 정월 초하룻날, “그럭저럭 하는 동안에 이미 세 차례나 한서(寒暑)가 바뀌었는데, 자신을 반성해 보건대 성찰과 검속(檢束)이 오히려 부족하게 됐음을 느끼게 되었으니, 사방의 신민들이 머리를 들고 목을 빼어 바라던 심정이 어떠하겠느냐? 이는 대개 과인이 지극한 정성으로 세속을 선도해 가지 못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다스릴 길을 찾지 못해서이니, 오히려 누구를 원망할 일이겠느냐? (중략)

대저 생업이 부요해지게 하고 재물이 유족해지게 하기란 무엇을 줌으로써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 강역의 우리 민생들에게 농상을 부지런히 하고 요역(요役)과 부세(賦稅)를 가볍게 해줘 위로는 부모를 섬기고 아래로는 처자를 먹여 살릴 수 있게 하여, 채찍질해 받아내는 고통이 없게 하고 안도하여 편안해지는 낙이 있게 하면, 민산(民産)이 족해지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자연히 유족해지고, 민심이 안정되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자연히 안정되는 것이다”라는 새해인사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정조는 항상 국민을 어려워하며,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했고, 경제에 대해 분배와 생산 증대 중 단순 분배보다는 세금을 줄이고 경제 주체들을 격려해 생산을 늘리면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현대 경제이론을 이미 그 시절 깨달은 것을 알 수 있다.

정조가 즉위한 1776년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해여서 국제적으로도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해 4월 22일(음력 3월 5일) 영조가 붕어하고 5일 뒤 정조가 경희궁의 숭정문에서 즉위한다. 아버지를 불운하게 잃었음에도, 복수심을 키우며 살지만은 않은 것 같다. 세손 시절부터 책을 가까이 하며 서고를 짓고 문집을 만들며 책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정조실록에서 즉위 뒤 100일 동안을 살펴보면 나흘은 기록이 전혀 남지 않은 것으로 보아 행사 없이 쉰 것으로 보이고, 나머지 96일은 매일 정사를 보았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근무하지 않는 현재의 우리와 비교해 보면 부지런한 군주였다.

실록에는 그 기간 294건의 기록이 있다. 그중 세손 시절 본인과 아버지인 사도세자에 대한 모함을 바로잡는 논죄에 대한 기록이 84건으로 가장 많다. 그 다음은 79건의 인사에 관한 기록이다. 약 70명이 파직되고 135명이 새로 임명됐다. 채제공, 홍국영 등을 한 직책에 제수했다가 다른 직책으로 바꾼 사실에서 집권 초 인사의 중요함을 깨닫고 고심한 흔적을 볼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많은 기록은 선행 대왕의 장례에 관한 논의이고, 그 다음은 48건의 행정제도 개선에 관한 기록이다. 선행 대왕 시절 늘어난 궁중 기구와 궁인의 수를 감축하고, 행정 비용을 절감하고, 과도한 예절에 소용되는 비용을 줄이고, 궁중 공사에 소용된 비용 절감을 명하고 있다. 국가 예산을 절약해 새 제도와 사업에 규모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개혁행정의 원칙을 깨달았던 것 같다.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가장 중요하게 준비한 것은 인재 교육과 문예 부흥, 부패로 무너져 가는 과거제도의 개선이다. 초기 100일 동안 두 차례에 걸친 회의에서 기존 과거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대책을 상의해 보고하라고 명하고 있다. 그 결과 집권 초기 왕립도서관인 규장각을 창덕궁 북원(北苑)에 짓고, 규장각을 통해 학자를 모으고 후일 성리학에서 한 걸음 나아간 실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책을 가까이 하고, 부지런하며, 국민을 어려워하고, 국가 경제의 흐름을 볼 줄 알며, 우수한 인재 육성을 도모하고, 인사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신하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정조대왕은 세종대왕, 성종대왕과 함께 조선의 3대 성군으로 존경받고 있다. 대통령 당선인과 당선인을 돕는 이들이 옛일에서 배울 점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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