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남자, 순한 남자, 순박한 남자의 대명사였던 황정민이 나쁜 남자로 변신했다?
청순하고 여린 임수정이 남자를 유혹한다.!
황정민과 임수정의 베드씬! 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멘트로 관객에게 알려졌던 영화 행복.
미안하다 사랑한다(이하 미사)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임수정.
장화홍련 때의 당찬 연기와는 달리 미사나 새드무지에서는 참 재미없고 식상한 연기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행복에서는 "엇! 제법인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잘한다.
예고편에서 임수정이 길바닥에 드러누워있길래 왜 그러나 했더니 쓰러진 거였구나..
워낙 동안이라서 저 어린 여자애가 저런 감정을 어떻게 알고 저런 연기를 했을까 싶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녀 나이도 올해 서른이다ㅡㅡ;ㅋ
이 영화 홍보할 때 임수정/황정민 베드씬을 상당히 많이 써먹었는데 두 사람의 베드신이라는 것이.ㅋ 실은 영화사의 완벽한 낚시라고 보면 된다. 많은 남정네들이 기대할만한 베드씬은 전혀 나오지 않고 영희가 입원하여 좁아터진 병원 침대에 둘이 낑겨 누워있는 것이 이 영화의 진짜 "Bed Scene" 이다.
그녀와 황정민의 므흣(?)한 장면도 잠시 나오긴 한다만... 예고편에서 보여주는게 다고, 어찌보면 영화 본편보다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예고편의 베드신이 더 야하게 느껴진다. (영화를 보면서 남자들은 아쉬움과 안도감을 함께 느꼈다고 하죠?ㅋㅋ)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
두 사람의 사랑은 뜻밖의 장소에서 시작된다.
서울에서 클럽을 운영하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겨온 영수(황정민). 운영하던 가게는 망하고 애인 수연(공효진)과도 헤어지고, 설상가상으로 심각한 간 경변까지 앓게 된 영수는 주변에 유학 간단 거짓말을 남기고 도망치듯 시골 요양원 ‘희망의 집’으로 내려간다.
자포자기 상태인 영수는 희망의 집에 와서 재미없고 무기력한 생활을 시작하는데.. 그런 그에게 웃음을 찾아준 사람이 은희(임수정)다.
영수는 가장 끔찍하리라 생각한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휴식을 얻게 되고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운다.
이 곳에 왔을 때, 그는 제 버릇 못버리고 처음부터 영희에게 끈적한 추파를 던진다. 그런데 여기서 보통 여자들 같았으면 "뭐 저런 재수없는 놈이 다 있어?" 라고 생각할 만한 수준인데 은희는 그런 영수에게 호감을 느낀다.
아마도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겠지.
늘 쫓기듯 살아온 그에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만난 따뜻한 심성의 영희는 어둠 속의 한 줄기 빛과 같았고, 그는 여기서 소박한 행복을 맛보며 지친 인생에 위안을 얻게 된다.
나 옮는 병 아니에요..로 시작된 은희의 구애. 은희의 소박하지만 대담한 유혹에 영수 드디어 넘어갔다! (남자분들 침 닦으세요!) 이렇게 달랑~ 안기는 그녀가 부럽구나ㅜㅜ 달콤한 고백 (남자분들의 비명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요.ㅋㅋㅋ) 영원할 것만 같던 행복한 순간
저렇게 예쁜 여자가 저렇게 노골적으로 다가오는데.... 거부할 남자가 어디 있으랴.-_-;
들꽃 한 다발 꺾어 바친 수줍은 고백에 은희는 뛸 듯이 기뻐하고..
은희의 극진한 간호 덕분에 영수는 건강을 되찾는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가장 행복한 순간에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걸까 제대로 뛰지도 못해서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영희
예고편에서 보여주었던 행복한 장면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고 영수(황정민)는 목숨을 다해 자신을 사랑하는 은희(임수정)에게 이별을 고하고 영희의 울음소리를 뒤로 한채 잔인하게 떠나간다.
그녀가 만약 좀 더 건강했더라면, 만약 좀 더 가졌더라면,..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그렇게 순수하고 착한 여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만약에 다른 선택이 있었더라면 그녀는 모든 것을 영수에게 바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지독한 현실주의.
나는 이 영화의 그런 면이 마음에 들었다. 아니 이건 봄날은 간다에서도 눈치챘지만 허진호 감독님의 특징인 것 같다. 이영애를 욕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고 묻는 유지태가 철없어 보였던 건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처럼 아무 계산없이 순수하게 서로를 사랑하고 아낌없이 주는 연인은 그리 흔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순수한 사람도 순수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사람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너무 냉정한 건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수를 지독히 비겁하고 나쁜 놈이라고 욕하고 은희가 너무 가엾다고 했지만 나는 그게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은희와 영수는 둘 다 지독하게 외로웠고, 둘 다 그 당시에 서로가 필요했을 뿐이다.
영수는 한 번도 은희를 사랑한 적 없다. (예고편에서 나온 '변치 않겠다는 말' 그 말이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다. 영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나 이제 너 없으면 안될 것 같아."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에도 영수는 진실해 보이지 않았다. 영수는 은희가 필요한 게 아니라 아플 때 옆에 있어줄 여자가 필요했고, 다 나은 후에는 같이 놀 여자가 필요했다. 영수에게 매달리는 영희가 답답해 보였던 것은 처음부터 영수는 사랑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은희가 아프고 연약한 여자로 나오는 것을 영희의 순수함, 버림받은 후의 동정심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라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연애소설,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여름향기, 가을동화, 세상 끝까지 등의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아픈 여자 주인공은 여리고 순수하고 아름답게 묘사되지만 영화 행복에서는 아픈 사람이 옆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난 내일 같은 거 몰라" 라는 은희의 말은 나쁜 놈 영수가 아니라 누가 들어도 짜증나는 말인 것이다. 영수처럼 도시에서 온갖 향락을 누리며 살던 사람에게 은희와의 삶은 지루할 수 밖에 없었다. (소심하고 폐쇄적인 수도승 형인) 내가 봐도 갑갑해 보였으니까.
그렇기에 두 사람의 이별은 영수 한 사람만의 잘못은 아니다. 물론 영수가 너무했지만-_-; 은희도 잘못했다. 영수를 떠나보낼 자신이 없었더라면 언제든지 떠나도 된다며 그렇게 쉽게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조건없이 사랑한 건 은희였지 영수는 아니었으니까.
어쨋든 영화는 비극으로 끝나고 영수는 그제서야 행복의 의미를 배우면서 은희에 대한 사랑도 깨닫는데... 은희가 죽은 후에야 은희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다니.. 참 안타까운 사람이다.
행복을 본 후에 많은 사람들이 여자 버리는 나쁜 놈이 벌받는 스토리를 만들었다고 허진호 감독님께 실망했다고 말하던데 영수는 벌을 받은 게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 댓가가 너무 혹독하긴 했지만.
행복이란 뭘까?
백과사전에는 부족함이나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안심해 하는 심리적인 상태를 의미한다고 나와있다. 영수는 편하고 재미있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생각했지만 행복이란 것은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라 자기 마음 한 구석 편히 쉴 곳이 있는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이 사람 과연 다시 사랑할 수 있을지...)
진정한 행복은 마음의 안식처라는 허진호 감독님의 메시지에 조용히 공감이 되는 영화였다.
사족:
1.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그것을 위안해줄 아무 것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따뜻한 쉴 곳'과 나를 반겨주는 환한 웃음이 아닐까?
(그래서 남자들이 그렇게 결혼~ 결혼 타령 하나 보다.)
2. 이 영화 15세 이상 관람가라서 여중생들이 이걸 보고 그렇게 욕을 하던데.. 영화 관람 기준은 자극적인 장면이 아니라 이해가능한 연령대로 바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19세로 바꿔주심이 어떨는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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