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에 장사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도 “사람이란 공격에는 저항할 수 있지만 칭찬에는 모두 무기력하다”고 주장한 바 있지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상사에게 알랑거리는 동료가 밉고 부당하게 보이지만 차마 따라할 수는 없는 그것, '아부'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K과장)
이 모든 괴로움은 '아부는 옳지 않은 것이고, 나는 도덕적인 사람이라서 그것을 할 수 없다. 그렇게까지 해서 출세하고 싶지는 않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을 따라하는 것은 동료를 미워하는 자기 마음이 질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인데요, 그러지 말고 차라리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나 자신도 아부를 해버리는 건 어떤가요?
아.. 아부는 나쁜 것이라구요?
자, 그렇게 아부를 미치도록 싫어하는 여러분들을 위한, 아부의 합리화를 위한 책들을 대거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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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와 칭찬은 새로운 게임룰이다
우리 사회에서 한 개인이 성공하기 위한 자질로 전문적인 지식, 개인적인 능력, 운, 학연과 지연 등 여러 요소가 거론된다. 특히 개인의 능력면에서 전략적인 마인드나 추진력, 또는 인화력이나 리더십, 지구력 등의 자질은 높이 평가받고 있지만, 아부의 능력은 흔히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오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 ‘협상가적인 태도’ ‘타인을 배려하는 행위’ ‘윈윈 전략’ 등으로 긍정적인 눈길을 받으며, 일부에서는 적극적으로 권장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인류와 함께 진화(발달)해오며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아부는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또 내가 하면 능력이자 훌륭한 처세술이고, 남이 하면 치사하고 비열한 행동이라는 이중적인 시각에서도 편안하지 못하다. 받을 때는 달콤하지만, 마지못해 할 때는 쓰디쓴 맛이 난다는 점에서도 역시 이중적이다.
요즘 칭찬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특성, 또는 이룩한 일을) ‘좋거나 훌륭하다고 말해주거나 높이 평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기업이나 정부 등의 조직체에서 칭찬을 적극 권장하고, 그 능력을 얻기 위해 학습하는 열풍까지 불고 있다.
사실 요즘 들어, 많은 사람들이 칭찬인지 아부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표현들을 쏟아내고 있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을 어떻게 칭찬해야 좋을지 그 방법과 기술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 정도이다. 케케묵은 방식은 더 이상 먹혀들지 않고,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부의 정의로 살펴보는 아부의 역사
세계적 시사주간지 <타임>의 기자를 거쳐, 수석 편집장까지 지낸 이 책 <아부의 기술>(원제 You're Too Kind - A Brief History of Flattery)의 지은이 리처드 스텐걸(Richard Stengel)은 아부를 ‘전략적인 칭찬, 즉 특별한 목적을 추구하는 수단으로서의 칭찬’이라고 정의하였다. 아부는 특정한 목적을 지니고 있는 칭찬으로 지나치게 과장될 수 있고, 때로 정확할 수 있으며, 또는 진실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단적으로 말해, 아부는 자기 자신이 유리한 입장에 놓이도록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높이는 일종의 현실에 대한 조작이기 때문에, 진정한 칭찬까지도 아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미래의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행하는 의도적인 거래라는 것이다.
<한글 사전>에서 아부의 뜻풀이는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림’ 또는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상대에게) ‘그의 마음을 사기 위해 짐짓 그의 기분을 좋게 할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21세기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뜻풀이가 지나치게 간단하고, 언어의 사회적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감이 있다.
이에 반해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각의 시대에서 통용되었던 아부(flattery)의 뜻을 무려 10개나 소개하고 있다.
아부라는 단어가 처음 나타났을 때, 그것은 사회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도덕적 타락으로 정의되었다(그리스 시대). 중세 시대에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고 잠재적으로 사회를 동요시키는 요소로 보았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사회가 보다 인간중심적이고 활동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아부에 담겨져 있는 경멸적인 뉘앙스의 농도가 점차 엷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아부는 엄청난 죄악이 아닌,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애교 섞인 결점 정도로 인식되었다. ‘허영심이나 자긍심을 높여주는 행위, 자기만족을 주는 행위, 명예가 높거나 특별한 존재로 느끼게끔 만드는 행위’로 설명되고 있다(네 번째 정의).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아부라는 단어에 대한 조롱의 강도가 비로소 점점 약해진다. ‘지나치게 호의적으로 표현하는 것. 특히 화가들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아홉번째 정의)과 ‘일종의 도덕적 이완, 굼뜬 무심함’ ‘실수를 그럴듯하게 얼버무려주고 완화시켜주는 것’ 심지어 ‘대범하고 관대한 행위’로까지 설명하고 있다(열번째 마지막 정의). 즉 누군가의 잘못에 대하여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거나 잘 모르고 한 행동이라며 애써 무시하는 생략의 아부, 눈에 보이는 실수를 언급하지 않는 아부, 사소한 실수를 눈감아주는 아부까지 포괄하고 있다.
아부가 꿀처럼 흐르는 각 나라의 수도, 아부 드림팀이 건재하는 ‘백악관’
루소에서 시작하여 미국의 대표적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에 이르는 일군의 뛰어난 사회학자들은, 근대 이후 인류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가에 대해 강박관념처럼 집착해 왔다고 주장한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생각보다 타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을 더욱 신뢰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의존해 살아간다면, 아부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오늘날의 현실은 당연한 이치다.
또 아부는 민주주의의 엔진이 되었다. 아부는 출신이나 계급이 아닌 자신의 능력과 특장점을 가지고 보다 높은 신분으로 상승하는데 보탬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나 권력에 뜻을 품은 엘리트들이 모여드는 각 나라의 수도에는 아부가 꿀처럼 흐른다. 그중에서도 고대와 중세의 궁전, 오늘날의 백악관과 청와대에는 아부의 드림팀이 건재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직장과 사무실에서 성공적인 아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음 아부로 이어지고 있다.
아부는 무공해 웰빙 푸드, 부드러운 사회의 윤활유
몽테뉴는 불확실한 시대에 아부가 유행한다고 말했다. 로마 시대에서 정치적 동요가 제일 심각한 때 수사학이 최고의 정점에 올랐다고 지적한다. 사회의 변화속도가 빠른 시대일수록, 인간은 불안해지고, 힘에 매달리고, 안정을 추구하기 때문에 아부가 극에 달한다.
우리 시대에 과학, 의학, 전자, 컴퓨터 분야에서의 변화는 인간의 예측을 초월한다. 생명공학은 인간이 여태껏 이해해온 생명에 대한 본질을 바꾸어놓았을 정도이다.
지은이의 주장은 분명하다. 현대인의 정체성에 대하여 예리한 통찰력을 보이고, 이미지(인상) 관리와 자기연출에 대한 개념을 처음으로 고안한 20세기 미국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의 주장을 따른다. 현대사회에서 적절한 아부야말로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라는 것이다. 만일 필요한 상황에서 적당하게 아부하지 않으면, 우리의 일상적 삶은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될 거라는 것이다.
또 아부는 거짓말과 달리, 거짓으로 탄로가 나도 처벌이 없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아부받은 사람은 오히려 고마워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아부를 받을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라는 점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현대인에게 이보다 더 훌륭하게 자긍심을 높여주는 일이 또 있을까?
아부로 인해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고, 현대인이 조금이라도 더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매우 좋은 일이다.
이 책의 저자는 출세에는 아부가 꼭 필요하다는 너무 강조하다 보니 약간 촛점이 빗나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제 경우에는 책 소개가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읽어보았는데 뭔가 소개에 나온 내용보다 더 도움되는 듯한 부분은 솔직히 없었습니다. 그래도 본인의 성격이 너무 곧디 곧아서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부로 인한 죄책감을 버리기 위한 수단으로 한 번 쯤 읽어볼 만은 합니다. 물론, 당신의 가치관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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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요. 진심으로 아부합시다!” 김효석교수의 아부론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고 있는 아부가 아니다. 왜 우리는 아부에 부정적인가? 칭찬은 진심이 담겨 있지만 아부에는 진심이 담겨있지 않기에 사람들은 아부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김효석교수 왈 ‘기왕 아부해야 할 상황이라면 확실하게 하자’고 얘기한다.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쇼호스트와 영업, 세일즈, 아카데미 운영 등 원하는 것 이상으로 이루고 있는 김효석교수의 강의에서 제대로 배워보자.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책 읽을 시간조차 없는 직장인을 위한 글쓴이의 배려.. CD로 만든 아부의 기술. 푸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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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와 아첨에 대한 오해
- 아부(阿附)란 리더에게 삶을 의탁하는 것이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듯 사람도 의지할 곳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아부를 한자어에 충실하게 풀이하면 리더에게 삶을 의탁하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당부(黨附)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었다.말 그대로 당파를 형성하거나 기존의 당파에 자신을 의탁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는 아부라는 단어와 아첨이라는 단어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 그렇다면 아부와 아첨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아부와 아첨의 용례를 보면 “아부하는 것은 나쁜 짓이고 아부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결국 아부나 아첨은 인간관계의 핵심 중 하나인 권력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 제1장에서는 아부라는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살펴본다. 아부하는 사람, 아부 받는 사람, 아부하는 사람의 동료로 구성된 3가지 현상이 어떻게 아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평가를 일으키는지 알아본다. 그리고 <창세기>, 소크라테스, 공자의 《논어》에 나타난 아부와 아첨에 대한 경계, 셰익스피어가 말하는 아부와 아첨의 정의,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속내를 비친 아부론,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를 통해 권력과 아부의 문제를 바라봄으로써 위선과 가식의 명제를 깨트리려는 시도를 한다.
도덕주의와의 결별
- 도덕주의란 아부 못지않은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하나의 경향이다
우리는 종종 무의식중에 자신은 옳고 선하며 자신과 맞서는 자는 그르고 악하다는 생각에 빠져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러한 도덕주의의 희생물이 다름 아닌 아부다. 도덕주의가 아부하고만 대립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도덕주의는 무엇인가? 도덕주의라는 말은 다소 긍정적이다. 도덕주의를 실천하며 일관되게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간디 같은 성인으로 불린다. 도덕주의는 중립적 의미를 지닌다. 칸트의 윤리학을 중립적 의미의 도덕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도덕주의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도덕주의자는 무엇보다 남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제2장 도덕주의와의 결별에서는 ‘도덕과 윤리를 지향했던 현실주의자’ 공자를 언급하여 도덕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간과 사회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의 면모를 드러낸다. 도덕주의가 어떠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퍼트리샤 브로진스키와 제임스 깁슨이라는 사회심리학자가 쓴 《위선과 착각》을 해부함으로써, 현실(철학에서는 실재)이라는 단어의 철학용어사전을 분석함으로써, 현재 사용되고 있는 현실과 현실적이라는 용어를 분석하고 예제를 분석하여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도덕주의적인 양분법을 낳고 있는 현실을 해부한다. “선하기만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신 아니면 위선자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을 통해 도덕주의가 갖는 위선과 병폐를 열거한다.
본능과 욕망으로서의 아부
- 욕망, 권력욕과 출세욕으로서의 아부는 경계가 필요하다.
인간세계뿐만이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아부와 아첨은 권력관계와 밀접하다. 문제는 우리 인간들이 늘 본능에 대해서 이중적 태도를 취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생존본능으로서 아부와 아첨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아부는 존재방식, 아첨은 행동방식이다.
다시 말하면 아부는 전략, 아첨은 전술의 문제다. 어찌 보면 조직사회에서의 아부란 생존본능과 무관치 않다. 그렇다면 그릇된 아부 중 배신의 문제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우리는 배신의 문제를 통해 거꾸로 ‘아부’에 담겨 있는 신뢰의 문제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아부의 핵심요소 중 하나가 신뢰이기 때문이다. 아부는 생물학적, 사회적 생존을 위한 불가결한 요소다.
제3장 본능과 욕망으로서의 아부에서는 신분상승욕을 갖는 아부와 아첨이 어떻게 인간의 공통된 욕망으로 자리매김하는지 분석한다. 이 장에서는 아첨은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아첨을 가장 잘하는 ‘직업군’의 하나로 믿고 있던 내시(환관)의 삶을 살펴보면서 그들이 어떻게 충신으로서, 일관된 아부를 행한 것인지 살펴본다. 또한 아부는 노예근성의 발로라는 비난에 대하여, 세파와 나이에 따른 아부와 아첨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도 논의해본다.
전통사회에서 아부의 문제
- 군주제 사회라고 해도 아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조선 건국 과정을 통해 관련 인물을 분석하여 이들과 얽혀있는 아부와 독립, 실리와 명분, 배신의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룬다. 아부에 능하지 못했던 황희 정승은 어떻게 탁월한 지도자와의 만남을 통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보전하게 되었는지도 확인한다. 세조 초 영의정까지 지낸 정인지, 이와 대비되는 인물인 신숙주가 어떻게 다른지 아부의 정도를 파악하고 두 인물과 대비를 이루는 인물군인 사육신을 살펴봄으로써 이들이 지녔던 도덕적 부채의식이 전통사회에서 생사의 문제를 낳은 아부라는 현상을 펼쳤는지 확인한다.
제4장에서는 조선이 건국되고 태조, 태종, 세종을 거쳐 세조대에 이르기까지 막강했던 절대왕권과 아부의 문제를 살펴보고 군자와 소인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한 사례를 제시한다. 군자와 소인의 차이는 무엇인지 《논어》를 다시 살펴보면서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고 있다. 성종 때의 군자 소인 논쟁이 어떻게 첨예하게 대립되었는지 그리고 군자, 소인 그리고 아첨과 아부의 문제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충신과 간신은 어떻게 아첨과 아부의 문제와 연결되는지 현석규, 유자광, 성종, 중종의 예를 통해 살펴본다. 설총의 <화왕계>에 나타난 아첨의 경계문구를 탐독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현대 한국사회와 아부
- “신분에서 계약으로” 현대사회에서 아부는 계약행위다.
현대사회에서는 아부나 아첨은 해서도 안 되지만 할 필요도 없다고 사고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어려서부터 부모에 의해서긴 하지만 이런저런 형태의 아부가 자신의 삶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제 아부는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숙고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이기심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경멸의 대상이었다. 성리학적 도덕주의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이기심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제5장에서는 이기심의 긍정을 통해 아부와 아첨, 자유, 그리고 개인의 책임 문제까지 고찰한다. 이방원이 거병을 했을 때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부와 아첨, 배신의 문제를 어떻게 대처했는지 현대 정치권에서의 부침(浮沈)과 줄서기의 해부를 통해 살펴본다. 그리고 체면사회 대한민국에서의 아부와 아첨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각종 속담과 외국인 교수의 흥미로운 주장을 통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분석해본다.
아부와 리더십
- 리더십론이란 곧 조직 관리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조직을 관리할 수 없다.
아부가 부각되는 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련해서다. 권력의 문제도 바로 아부와 직결된다. 리더와 리더십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세워 아부의 문제를 적확하게 파헤치자.
제6장에서는 리더십이 아부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철저히 해부한다. 사람은 자신이 아부하는 조직과 그 리더의 미래를 치밀하게 따져본다. 리더의 잠재력은 미래의 요소를 포괄한다. 팔로워십을 제공하고자 하는 부하들에게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지 않는 리더는 아부를 이끌어낼 수 없다. 우리는 이 장을 통해 아부의 성공과 실패에 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더불어 리더란 어떤 사람인지, 리더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올바른 리더십이 아부와 배신을 어떻게 조절하는지와 조직을 어떤 형태로 이끌어가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딜레마에 빠진 리더라면 마키아벨리의 조언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이란 너무 자기 자신과 자신의 활동에 만족하고 자기기만에 쉽게 빠지기 때문에 아첨이라는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아첨의 스펙트럼과 위험성
- 조직의 윤활유로서의 아첨은 묵인하자.
이 책의 제7장과 제8장은 아첨의 사전적 의미를 철저히 분석하고 그것을 해부함으로써 다양한 언어와의 경계를 구분한다. 친절과 공손, 애교, 감언이설, 교언영색, 곡학아세, 비굴, 침묵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역사적 형태를 분석하고 아첨을 대하는 지도자의 덕목으로서 천자문의 구절 ‘영음찰리 감모변색(聆音察理 鑑貌辨色)’, 즉 소리만을 듣고서도 그 뜻과 숨은 이치를 알아차리고 거동을 거울 보듯이 훤히 살피고 얼굴빛을 정확하게 분별해야 한다는경구를 살펴본다. 그리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사례로 아첨의 위험성을 살펴보고, 아첨이 참소로 이어질 경우 어떠한 피해가 나타나는지 유자광, 진복창의 사례를 통해 자기파멸로 끝나게 되는 권력욕의 허와 실을 되짚어본다.
위선과 위악을 동시에 깨는 망치
- 인간사에서 무수히 발견하게 되는 아부라는 인간 현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쳐보자.
이 책은 아첨을 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주의 에세이도 아니고 아첨을 이러저러하게 하라는 처세서도 아니다. 다만 ‘아부’라는 인간관계의 현상을 적나라하게 분석함으로써 조직을 병들게 하는 아첨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조직을 살리는 팔로워십으로서의 ‘아부’는 새롭게 바라보자는 의도다.
아부에 관한 새로운 정의는 바로 개인과 조직의 관계를 유연하게 바라보자는 하나의 제안이다. 아부의 고찰을 통해 팔로워십에 관한 새로운 명분을 심어줌으로써 조직을 움직이는 동력을 만들 수 있는 팔로워십을 제안한 것이다. 조직에 몸담고 있는 독자들이여! 아부는 나쁜 것이 아니다. 조직을 위해 아부하자.
[인터파크 도서 제공]
위에 나온 모든 책들을 통틀어서 가장 점잖고,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아부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위의 책들은 나도 읽을 때 좀 거슬렸는데 이 책은 그래도 가장 도덕적인 견지에서 거부감이 덜 느껴졌거든요. (내가 이걸 진작에 좀 읽어볼 걸 그랬나? ㅋ..) 이런 책들이 나오는 걸 보면 다른 사람들도 다 나처럼 아부를 못해서 힘들었던 경험이 있는 것일까요?? 저는 어릴 때 위인전을 너무 많이 읽어서 직선적이고 바른 말이야 말로 진정한 충신의 정수라고 생각해서인데.. 다른 이들은 왜 그리 되었는지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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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주는 건 어디까지나 상사의 몫이다.
일단 인정을 받아야 큰소리 칠 수 있다.
인정받지 못하면 그저 불평분자가 되어 따로 놀게 될 뿐이다.
상사들과 소원해 진 다음에 뒤늦게 점수를 따고 평판을 바꾸려고 하는 건 엎질러진 물을 도로 담는 것만큼 어렵다.
이미 형성된 편견을 깨고 우호적으로 돌려놓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이 경우 자칫하면 부자연스럽고 역겨운 아부가 나와도 역효과만 낸다.
애초에 목을 뻣뻣이 세우지 말라.
아부는 어렵지 않다. 돈이 많이 들지도 않다.
선배를 선배로, 상사를 상사로 대하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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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가 분석한 아부의 심리학
"와, 오늘 넥타이 근사한데요."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옆 부서에서 부장님 일처리 능력에 반했대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부형 발언들이다. 아부(阿附)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남의 비위를 맞춰 알랑거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알랑거리는` 겉모습만 보고 눈꼴시다고 한다. 상사에게 아부하는 것은 나쁘다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아부에 대한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우종민 서울백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말한다. 우 교수에 따르면 아부는 부하직원이라면 반드시 습득해야 하는 핵심 기술이다.
또 아부를 잘하는 사람은 비굴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남의 비위를 `파악`하고 `맞출` 수 있는 태도와 능력이 있는 유연한 사람이다. 거꾸로 말하면 자기 생각만 하고 사는 사람은 남의 비위를 알 수 없으니 아예 아부를 할 수도 없다. 정신의학적으로도 아부를 잘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상대방 처지에서 끊임없이 생각하는 `마음 이론`이 발달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2009년 `남자 심리학`으로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했던 우종민 교수는 새로 출간한 `뒤집는 힘`을 통해 30대 직장인을 위한 역발상을 제시한다. 30대 직장인은 업무에 대해 서툰 초보 직장인도 아니고 알 만큼 알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내가 해야 할 일 적당히 하는 법에 익숙해진 입사 5~10년차들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이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바로 `뒤집는 힘`이다. 회식 도중 일어나도 판은 깨지지 않고, 스트레스 없는 사람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 우종민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존스홉킨스대 블룸버그 보건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했고 현재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리더스북 펴냄.
한국, 미국, 일본 등등.. 참으로 다양한 나라에서 나오는 아부의 필요성에 대한 책들이 참 많습니다.
이런 책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아부를 못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역설이겠지요.
아부(阿附)는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알랑거리`는 겉모습만 보고 눈꼴시다고 하겠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저도 상사에게 하는 아부는 잘 못하지만 동료에게는 아부를 잘 하는 것 같네요. 왠지 상사에게는 아부인 것 같아서 도리어 안하게 되고, 동료들에게는 더 열심히 좋은 말을 퍼붓는 습관이 있습니다.
아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비위를 잘 파악하고 기분을 맞출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생각만 하고 사는 사람은 남의 비위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아예 아부를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정신적으로 죄책감을 가지지 말고, 적당한 칭찬으로 상사건 동료건 추켜준다는 마음으로 하나씩 시작해보세요.
정신의학적으로 아부를 잘 하는 사람은 `마음이론(Theory Of Mind)`이 잘 발달된 사람입니다. 마음이론이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인데, 이게 부족하면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아부를 잘하는 사람은 고위 인지기능이 발달한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내가 아닌 남의 입장을 철저하게 이해해야 아부할 수 있습니다.
자.. 여태껏 아부못해서 괴로웠던 분들, 사회생활이 상사 때문에 괴로웠던 분들, 아부가 아닌, 적절한 칭찬으로 거듭 태어나셔서 성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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