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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길 거리/먹고 듣고 보자!

전 세계를 사로잡은 초통령(초등학생들의 대통령) 뽀로로의 위력~~!!


"오랫동안 아이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콘텐츠를 제작이 꿈"



아이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떠돌았었다. 집안의 평화에 큰 공헌을 한 '뽀로로'에게 노벨평화상을 줘야 한다고.그만큼 아이들 사이에서 '뽀로로'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뽀로로'를 단순히 만화 속 인기 캐릭터 정도로 생각한다면 서운하다. 하늘을 날지 못해 속상한 펭귄 '뽀로로'는 아이들의 생활을 바꿀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전 세계 아이들의 친구이자 '톱스타'가 됐다. 



 
 



무의미한 실패는 없다




상품 로열티로 국내에서 한 해 동안 벌어들인 돈만 130억원, 매년 창출해내는 브랜드 가치 약 5천여 억원, 전 세계 110개국 수출, 배용준·김연아와 함께 '한국 방문의 해' 홍보대사로 위촉…. 듣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이 화려한 수식어의 '국민 스타'는 누굴까. 바로 올해로 겨우 만 일곱 살 된 꼬마 펭귄 '뽀로로'다. 2003년 11월 '뽀롱뽀롱 뽀로로'라는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통해 혜성같이 나타난 '뽀로로'와 친구들은 줄곧 국내 애니메이션 시청률 1위를 고수하며 인기를 이어왔고 DVD, 책 등은 물론 각종 문구류, 장난감, 식료품, 유아용품 등 1천여 종이 넘는 관련 상품을 출시해왔다. 게임, 학습, 뮤지컬 등 활동 분야도 넓어졌다.


뽀로로 수출국가


'뽀로로'의 인기는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영국, 일본, 중국 등 110개국에서 '뽀로로'에게 '러브콜'을 보내왔으며 애니메이션이 방영된 곳만 해도 17개국에 이른다. 애니메이션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일본에서도 100개국 이상 수출된 캐릭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2004년 국내 애니메이션 최초로 유럽 공중파 방송에 진출한 '뽀로로'는 프랑스 국영 방송 TF1에서 방영되며 공중파 동시간대 프로그램 시청률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사실 처음 '뽀로로'가 세상에 나왔을 때 이렇게까지 엄청난 성공을 거둘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애니메이션 산업의 불모지로 여겨지던 한국에서 태어난 토종 캐릭터가 얼마나 '먹힐 수 있을지' 우려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뽀로로'의 기획자이자 제작자인 (주)아이코닉스의 최종일 대표는 척박한 환경과 거듭되는 실패의 어려움을 딛고 '뽀로로' 신화를 이끌어냈다.










"'뽀로로'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에요.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끝에 얻은 결과에요. 야심 차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줄줄이 엎어지고, 일하던 부서가 없어지기도 했죠. 회사를 차린 뒤 한동안은 투자금만 계속 까먹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오늘날의 '뽀로로'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대형 광고기획사인 금강기획에 입사한 최종일 대표는 광고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언젠가부터 자신이 직접 만든 콘텐츠로 소비자들의 최종 평가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수용자들의 욕구를 완벽히 충족시키는 대중문화 콘텐츠 개발을 꿈꾸게 된 것이다.



"분명 광고도 매력 있는 분야였지만 좀 더 적극적인 일을 하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광고는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광고주의 의뢰에 충실한 작업을 할 수밖에 없고, 그 부분에서 회의가 들더라고요. 고심 끝에 관심을 갖고 있던 애니메이션 쪽으로 눈을 돌렸는데, 마침 회사에서 신사업팀을 만들어 새로운 일들을 추진하면서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서게 됐어요."



영상산업에 대한 관심이 막 생겨나기 시작한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활발하게 일에 매진했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벽은 높았고 실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게 작용했다. 그 사이 외환위기가 터지며 그가 몸담고 있던 회사가 미국계 광고회사에 매각됐다. 새로운 오너는 '광고회사 본연의 업무에 주력해야 한다'는 원칙을 펼치며 애니메이션 사업을 정리했고, 이에 최 대표는 인생을 건 선택을 해야만 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남을 것인가, 어렵겠지만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그의 선택은 '도전'이었다. 사표를 던진 그는 직원 5명과 함께 창작 애니메이션을 기획·제작하는 회사 '아이코닉스'를 설립했다.



"이미 실패의 쓴맛을 경험한 상태에서 회사까지 그만두고 독립해 애니메이션을 계속 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어요. 주변에서도 다 말렸고요. 당시 사표를 내러 갔는데 사장님께서 제게 '너 미쳤니?'라며 간곡히 만류하셨어요. 경제위기 상황에서 그것도 하는 족족 '말아먹던' 사업을 시작하겠다니 '얘가 정말 미쳤구나' 싶으셨을 거예요. 하지만 그때 제게는 작지만 강한 확신이 있었어요. 물론 여러 시행착오는 따르겠지만 분명히 '된다'라는 믿음이요. 또 만약 끝내 제 판단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거니까 감당해내기로 마음먹었어요. 거꾸로 그 사장님께 사업 계획을 보여드리면서 '투자할 기회를 드리겠다'고 했죠. 지금 그분이 저희 회사 주주 중 한 분이세요(웃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굳건한 각오로 신나게 일을 시작했지만 회사 설립 후 처음 몇 년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서정적인 이야기와 아름다운 영상으로 완성도를 높인, 반드시 '될 것'만 같던 작품에도 아이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종일 대표는 주저앉지 않고 꾸준히 그 실패 요인들을 학습하고 분석해나갔다. 그리고 곧, 그동안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청층인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이런 것을 보여주면 좋겠구나'라는 생각만 해왔음을 깨달았다. 간단한 듯하지만 의외로 까맣게 놓치고 있던 그 사실은 자연스레 '뽀로로'의 신화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해답과 자극을 주는 사랑스러운 아이들





'뽀롱뽀롱 뽀로로'의 성공에는 최종일 대표의 두 자녀도 큰 몫을 했다. 직업 때문이 아니라 원래부터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을 즐기는 최 대표는 주말이면 아이들과 에니메이션을 보곤 했는데 어느날 문득 궁금증이 일었단다.



"제가 웃는 부분에서 아이들도 똑같이 깔깔대며 웃는 거예요. 아이들이 정말로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빠가 웃으니까 그냥 따라 웃는 걸까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재미있는 장면에서도 웃지 않고 꾹 참고 관찰을 했죠. 그랬더니 '웃음 포인트'마다 정확하게 즐거워하더라고요. 그때 확신했어요. 아이들이 이야기를 이해한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은 뭔가 교훈을 얻고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것을요."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확고한 해답을 얻은 최종일 대표는 교훈을 전달하는 데 치중해 재미를 소홀히 했던 기존의 유아 애니메이션과의 차별화를 꾀하기로 했다. 분명 교육적인 부분을 버릴 수는 없지만 그것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재미와 공감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 녹여내기로 했다. 아이들도 보편적인 정서를 갖고 있고 주체적인 사고를 하는 존재인 만큼 무조건 가르치는 것보다 '이야기'를 전하는 편이 오히려 더 효과적일 것 같았다.




최 대표의 생각은 적중했다. EBS를 통해 첫 방송이 나간 이후 아이들은 금세 '뽀로로'와 친구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버렸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언제나 즐거운 뽀롱뽀롱 뽀로로'라는 음악이 나오면 어느새 TV 앞으로 모여들어 열광하기 시작했다. 주요 시청층인 유아들의 집중력을 고려해 5분 내외의 짤막한 에피소드가 이어지게 만든 것도 유효했다.



"'뽀롱뽀롱 뽀로로'는 유아용 애니메이션도 이렇게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보여준 케이스예요. 제작자들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놀면서 함께 배울 수도 있고, 아이들끼리 어울리면서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요. 덕분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죠. '뽀로로' 이후로 요즘은 재미를 강조한 유아물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아이들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나의 이야기, 내 친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캐릭터의 성격을 설정하고 에피소드에 일상생활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는 것도 염두에 뒀다. 따라서 주인공 '뽀로로'뿐 아니라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도 구체적인 성격을 부여했다. 호기심 많은 '뽀로로'와 장난꾸러기 '크롱'이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 따뜻한 마음씨의 '루피'와 섬세한 성격의 '포비'가 친구들을 감싸 안는 모습 등에는 최 대표가 자녀들은 물론 주변 아이들을 면밀하게 관찰해 얻어낸 아이들만의 세계가 오롯이 녹아 있다.




"그전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보면 특별한 성격의 영웅적 캐릭터가 많았어요. 제가 '뽀로로'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구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거였어요. 수줍음이 많은 아이도, 활달한 아이도, 나서기 좋아하는 아이도, 궁금증이 많은 아이도 모두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다른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충분히 현명하게 화해하고 해결하면서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최 대표는 착하고 용감한 '영웅' 주인공 대신 언젠가 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수를 저지르는 '펭귄'과 동물 친구들을 등장시켰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했기 때문에 문화적·지역적 차이에서 자유로운 동물 중에서 캐릭터를 골랐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친근해하는 동물 중에서 강력한 경쟁자가 없는 것을 찾다 '펭귄'과 친구들로 곰, 여우, 벌새, 공룡 등을 설정했다. 이니셜 첫 글자 P를 따고 뒤뚱뒤뚱 걷는 느낌을 살려 '뽀로로'라는 이름도 직접 지어줬다. 유아들의 신체구조와 비슷하게 머리와 몸이 거의 반반의 비율이 되도록 만들고 밝고 안정감 있는 색의 고글과 모자를 씌웠다. 이러한 오랜 진통 끝에 최 대표가 작은 것 하나까지 모두 세심하게 사랑을 쏟은 '뽀로로'가 태어났다.



"방송 초기에는 특히 아이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처음 '뽀로로'를 만들었을 때 큰아이가 일곱 살, 둘째가 네 살이었는데 최초의 시청자이자 평가자가 되어줬어요. 에피소드의 소재도 많이 제공해줬고요. 재미있는 건 아이들이 친구를 데려오면 꼭 제가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여줘요. 그러고는 '오버'해서 웃으며 친구들 눈치를 살피죠. 친구들이 재밌다고 웃어주길 기대하는 거예요. 사실 '뽀로로' 이전에 만든 작품들은 아이들이 처음에 조금 보다가는 금방 장난감으로 눈을 돌리더라고요. 그러면 우리 아이들은 실망해서 끝내 '아빠가 만든 거'라는 말도 안 꺼내더군요. 그런데 '뽀로로'는 달랐어요.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집중해 보더라고요."






아빠가 만든 작품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보여주고 싶어 하는 두 아이는 최 대표에게 더 재미있는, 더 잘 만든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욕을 갖게 했다. 내 아이가 친구에게 아빠를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정서에 악영향을 줄 만한 자극적인 소재나 폭력적 내용은 철저히 배제했다. 돈이 많이 들더라도 완성도 있는 영상이 되도록 꼼꼼히 신경 썼다. 관련 상품 사업에 있어서도 확고한 원칙을 세웠다. '뽀로로'의 이미지를 해쳐서는 안 되고, 유아들이 쓰는 것이므로 질이 좋아야 한다는 것. 예를 들어 '뽀로로'는 '말다툼은 있지만 싸움은 하지 않는 평화로운 세계관'을 가졌기 때문에 무기류 장난감으로는 상품화하지 않는다. 또 유해성은 없는지, 보통 어떤 상품을 만들어내는 회사인지, 양심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는지 등을 엄격하게 따진다.



척박한 국내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뽀로로'와 '뽀로로 아빠' 최종일 대표가 쌓아올린 성과는 대단하다. 그리고 그 성공은 그동안 겪었던 숱한 실패와 시행착오를 밑거름으로, 그 위에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떳떳할 수 있는 좋은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최 대표의 노력이 더해져 이루어진 것이다. 자주 들르는 대형 서점에서 정신없이 「뽀로로」 책을 넘기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면 늘 흐뭇함과 동시에 또 다른 작품에 대한 의욕이 불끈 솟는다는 최종일 대표. 그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뽀로로' 이후에도 꾸준히 새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어요. 서울시·EBS와 공동 제작한 '꼬마 버스 타요'나 '치로와 친구들'도 반응이 괜찮은 편이에요. 계속 아이들을 즐겁게 해줄 좋은 작품을 내놓을 계획이에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발맞춰 다양한 형태로 제작하는 것도 준비 중이고요. 해외 활동도 지금까지는 수출하는 데 의미를 뒀다면 앞으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사업을 펼쳐보려 해요."





'뽀로로'의 성공 이후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을 견인하는 선구자로서의 '의무'도 느끼고 있다는 최종일 대표. 그는 더욱 질 좋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올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먼저 모범을 보이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또 일본, 미국 등 애니메이션 선진국들과도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세계적인 캐릭터로 '뽀로로'를 키워내는 데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앞으로 최 대표가 만들어낼 캐릭터들과 함께 우리의 아이들이 웃고 행복해할 것을 그려보니 그의 변치 않는 마음이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진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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