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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거리/재미있는 역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의 위엄 및 업적



- 네이버 백과사전 인물사전 중에서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은 한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의 한 표상이다. 그런 추앙은 그를 수식하는 ‘성웅’이라는 칭호에 집약되어 있다. ‘성스럽다’는 표현은 그 자체로 범접할 수 없는 경지를 나타내지만, 천부적 재능과 순탄한 운명에 힘입어 그런 수준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역경과 난관을 치열한 고뇌와 노력으로 돌파했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그런 측면은 ‘악성’으로 불리는 베토벤이나 ‘시선’ 이백(李白)과 대비되어 ‘시성’으로 지칭되는 두보(杜甫)의 삶과 작품을 생각하면 수긍될 것이다. 


 인간의 행동 중에서 가장 거칠고 파괴적인 것은 폭력이다. 그리고 가장 거대한 형태의 폭력은 전쟁이다. 이순신은 그런 전쟁을 가장 앞장서 수행해야 하는 직무를 가진 무장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돌파해야 할 역경이 다른 분야의 사람들보다 훨씬 가혹했으리라는 예상은 자연스럽다. 실제로 그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거대한 운명을 극복하고 위업을 성취한 인간의 어떤 전범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만하다.


- 이하 생략





세계 4대 해신

살리미스 해전 - 그리스 연합군 총사령관 '테미스토클레스'
칼레 해전 - 신흥 해양국가 영국의 해군제독 '찰스 하워드'
트라팔카 해전 - 영국 해군 총사령관 '허레이쇼 넬슨'

그리고,

한산 해전 - 조선 삼도 수군 통제사 '이순신'









옥포해전

1592년 5월 7일 거제시 옥포

조선 : 군사 - 판옥선 29척 / 피해 - 1명 부상
  왜  : 군사 - 50척 / 피해 - 전선 26척 격침, 4080명 사망


합포해전

1592년 5월 7일 창원 마산 합포구

조선 : 군사 - 판옥선 29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8척 / 피해 - 전멸


적진포해전

1592년 5월 8일 고성 적진포 앞바다

조선 : 군사 - 판옥선 29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13척 / 피해 - 전선 11척 격침, 2840명 사망


사천해전

1592년 5월 29일 경상도, 사천 앞바다

조선 : 군사 - 거북선 2척, 판옥선 26척 / 피해 - 이순신, 나대용 피격(사상자 기록없음)
  왜  : 군사 - 13척, 병력모름 / 피해 - 13척 모두격침, 2600명 사망


당포해전

1592년 6월 2일 토영 당포 앞바다

조선 : 군사 - 거북선(귀선) 포함 26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21척 / 피해 - 전선 21척 모두 격침, 2820명 사망


1차 당항포 해전

1592년 6월 5일 고성 당항포

조선 : 군사 - 전선 51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전산 26척 / 피해 - 구루시마 미치유키 사망, 전선 26척 모두격침, 2720명 사망


율포해전

1592년 6월 7일 거제도 율포만 앞바다

조선 : 군사 - 전선 51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전선 7척 / 피해 - 대선 2척·소선 1척 격침, 대선 3척·소선1척 나포

한산도 대첩

1592년 7월 8일 견내량, 한산도 앞바다

조선 : 군사 - 전선 56척 / 피해 - 3명 전사, 10여명 부상
  왜  : 군사 - 전선 73척, 수군 1만 명 / 피해 - 47척 침몰, 12척 나포, 8980명 사망, 마나베 사마노조 할복자살


안골포 해전

1592년 7월 10일 경상도 진해 안골포

조선 : 군사 - 전선 56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전선 42척 / 피해 - 전선 42척 모두 격침, 3960명 사망


장림포해전

1592년 8월 29일 경상도 장림포

조선 : 군사 - 전선 166척, 판옥선 74척 / 피해 - 불명
  왜  : 군사 - 전선 6척, 병력 30명 / 피해 -6척 모두 격침, 30명 도주


화준구미 해전

1592년 9월 1일 부산 사하구 몰운대 인근

조선 : 군사 - 전선 166척, 판옥선 74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5척 / 피해 - 전멸


다대포 해전

1592년 9월 1일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조선 : 군사 - 전선 166척, 판옥선 74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8척 / 피해 - 전멸


서평포 해전

1592년 9월 1일 부산시 사하구 구평동 감천항

조선 : 군사 - 전선 166척, 판옥선 74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9척 / 피해 - 전멸


절영도 해전

1592년 9월 1일 부산시 영도구

조선 : 군사 - 전선 166척, 판옥선 74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2척 / 피해 - 전멸


초량목 해전

1592년 9월 1일 부산시 동구 초량동

조선 : 군사 - 전선 166척, 판옥선 74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4척 / 피해 - 전멸


부산포 해전

1592년 9월 1일 부산시 동구 좌천동

조선 : 군사 - 전선 166척, 판옥선 74척 / 피해 - 정운 등 6명 전사, 25명 부상
  왜  : 군사 - 전선 470척, 벙력 7만명 / 피해 - 전선 128척 격침, 5000여 명 사상


웅포 해전

1593년 2월 10일 경남 진해시 웅천동

조선 : 군사 - 전선 89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40여 척 / 피해 - 100여 명 사망



2차 당항포 해전

1594년 3월 4일 경상도 고성 당항포

조선 : 군사 - 연합함대 124척/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31척 / 피해 - 전멸


장문포 해전

1594년 11월 15일 거제 장목면 장목리

조선 : 군사 - 판옥선 50여척(거북선포함)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불명 / 피해 - 도주


어란포 해전

1597년 8월 27일 어란포 앞바다

조선 : 군사 - 전선 13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전선 8척 / 피해 - 도주


벽파진 해전

1597년 9월 7일 진도군 벽파진

조선 : 군사 - 전선 13척 / 피해 - 기록없음
  왜  : 군사 - 전선 13척 / 피해 - 도주


명량 대첩

1597년 9월 16일 명량 해협

조선 : 군사 - 판옥선 13척, 2400여 명 / 피해 - 2명 전사 및 3명 부상(총 사상자 불명)
  왜  : 군사 - 세키부네 133척, 아타케부네 200여 척, 그 외 500여 척, 27420여 명 / 피해 - 전선 31척 격침, 92척 전투력 상실, 도도 다카토라 부상, 구루시미 미치후사 전사, 총 18466 사망


절이도 해전

1598년 7월 19일 전라남도 고흥군 금사면 신촌리 고라금해수욕장

조선 : 군사 - 판옥선 85척, 병력 1만 7000명, 명나라 사선 25척, 명 호선 77척, 명 병력 2만 6000명 / 피해 - 불명
  왜  : 군사 - 아타케부네 100여 척, 병력 1만 6600명 / 피해 - 아타케부네 50척 격침


장도해전 : 순천왜고성전투

1598년 9월 20일~10월 7일 순천 왜성

조선 : 군사 - 수군 1만 5000여 명 / 피해 - 조선 130명 사상, 명나라 전선 30여척 격침 및 파손, 명나라 수군 2000명 전사
  왜  : 군사 - 1만 4천여명/ 피해 - 전선 30척 격칙 및 파손, 11척 나포, 3천명 사상


노량 해전

1598년 11월 19일 어란포 앞바다

조선 : 군사 - 조선 전선 83척, 명 전선 63척 / 피해 - 이순신 장군 및 조선군 300명 사상, 명군 500여명 사상
  왜  : 군사 - 전선 500여 척 / 피해 - 전선 200여 척 격침, 150여 척 파손, 100여 척 연합수군에 나포



총 45전 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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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 이순신 장군 평가

이순신은 천지를 주무르는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주와 나라를 바로 잡은 보천욕일(補天浴日)의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
        
— 명나라 장수 진린, 1598년 선조에게 올린 글에서

        
고니시, 시마즈 등은 이순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싸우다가 또 패주했다. 이야말로 죽은 제갈(諸葛孔明)이 살아 있는 중달(仲達)을 쫓은 것이나 다름없다. 싸움이 그치자 그제야 비로소 이순신의 죽음을 안 진린은 놀라고 배에 엎어지기 세 번이더니 탄식하기를 “실로 그만한 자 고금에 다시 없다!”고 하였다.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킨 그 충렬(忠烈). 조선왕조는 쇠망하기 시작하여 3 백년 뒤 일본에 합병 되었다. 하나, 호걸 이순신의 영명(英名)은 천추에 길이 빛날 것이다.
        
— 아오야기 난메이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 장수 정도였을거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 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일 몇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서 나의 직무를 다할 수 있을련지 의문이 갔다.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



나를 넬슨에 비하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하는 것은 감당 할 수 없는 일이다.
        
—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 1905년 쓰시마 해전 승전 후 축하하는 축사를 듣고 나서



당신 나라의 이순신 장군은 나의 스승입니다.
        
— 도고 헤이하치로가 한국의 실업가 이영개에게, 후지이 노부오


그의 이름은 서구 역사가들에게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공적으로 보아서 위대한 해상지휘관들 중에서도 능히 맨 앞줄을 차지할 만한 이순신 제독을 낳게 한 것은 신의 섭리였다. 이순신 제독은 광범위하고 정확한 전략판단과 해군전술가로서의 특출한 기술을 갖고 있었으며, 탁월한 지휘통솔력과 전쟁의 기본정신인 그칠 줄 모르는 공격정신을 아울러 가지고 있었다. 그가 지휘한 모든 전투에 있어 그는 언제나 승리를 끝까지 추구하였으며, 그 반면에 그 용감한 공격이 결코 맹목적인 모험은 아니었다는 점은, 넬슨(Horatio Nelson) 제독이 기회가 있는 대로 적을 공격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다가도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이순신 제독이 넬슨 제독보다 나은 점을 가졌으니, 그것은 기계발명에 대한 비상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 영국의 해전사 전문가이자 해군중장 G. A. 발라드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에서조차도 성웅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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