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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 윤씨19

[드라마의 이해 - 왕과나] '안방의 제왕' 인수대비 - 이덕일 [드라마의 이해 - 왕과나]'안방의 제왕' 인수대비 ( 이덕일·역사평론가 ) "남편은 아내의 하늘이다” 남존여비 강요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쫓고 즉위한 1455년, 만 열여덟 살의 며느리 한씨도 비로소 세자빈이 됐다. 결혼 당시 남편은 대군 아들에 불과했으나 그녀는 이때 이미 시아버지가 임금이 되기 위한 포석으로 자신을 며느리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수대비(1437~1504)의 아버지 한확(1403~1456)은 조선 제일의 중국통이었다. 태종 17년(1417) 명나라에 공녀로 간 그의 누나가 황제 성조(成祖)의 후궁이 된 덕분이었다. 성조는 한확에게도 광록시소경(光祿寺少卿)이란 벼슬을 내리고,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했을 때는 조선인인 그를 사신으로 임명해 고명(誥命)을 줄 정도로 총애했다. 수양대.. 2007. 11. 9.
중국판 폐비 윤씨 사건 조선시대 성종 때 연산군의 생모였던 폐비 윤씨(廢妃 尹氏)가 임금의 용안에 흉터자국을 내어 폐비된 사건은 역사에 무지한 사람일 지라도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정사인 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닌 야사(野史)에 기록된 이야기이다. 중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즉, 임금의 용안에 상처를 입혀서 폐위된 황후의 이야기가 야사에 전해내려오고 있으니 이를 여기서 소개하고자 한다. 송나라(960-1279)의 4대 황제는 인종황제(仁宗皇帝 : 재위 1022 - 1063)때의 일이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인종은 명판관 포청천(包靑天)이 활약하던 시대에 통치했던 황제이다. 사극 을 보면 알겠지만, 살쾡이 태자의 사건의 이야기로도 유명한 임금이다.(살쾡이 태자의 이야기를 알고 싶으신 분은 네이버에서 검색하시면, .. 2007. 11. 9.
폐군의 여인들: 장녹수와 김개시 - 공통점과 차이점은? 장녹수는 연산군을 어떻게 사로잡았나? ※폐군의 역사가 파란만장할 수 밖에 없기에 연산군과 광해군은 드라마나, 영화로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시대극 소재 중 하나이다. 재미있는 것은 광해군을 배경으로 왕의 여자라는 드라마가, 연산군을 배경으로 왕의 남자라는 영화가 각각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장녹수와 김개시에 대해 알아보자. (출처: 파란블로그) ====================================== 조선 시대의 궁녀들 주에서 명성을 떨친 예는 아무래도 평범한 궁녀로 입궁하여 왕의 총애를 받고 후궁이나 왕비의 자리에 올랐거나 후대 왕을 출산한 경우다. 예컨대 숙종의 궁녀로 들어가서 경종을 낳고 왕비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쫓겨난 장희빈, 숙종의 무수리로 들어갔다가 훗날의 영조를 출산한 최숙빈, 고종의 궁녀로 들어가서 영친왕을 출사하고 .. 2007. 11. 9.
비운의 왕비,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묘 비운의 왕비 폐비 윤씨 묘수난의 서삼릉(3) 서삼릉 비공개 지역에 숨어 있는 연산군 어머니 윤씨(1445-1482)의 회묘를 볼 때마다 김영임이 부르는 '회심곡'의 구슬픈 가락이 묘 주변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폐비 윤씨 회묘의 겉모습은 왕릉과 다름없다. 오히려 웬만한 왕릉보다 외관상으로는 훨씬 훌륭하다. 묘에서 능으로, 능에서 다시 묘로 격하된 폐비 윤씨의 슬픈 운명이 죽어서도 서삼릉 비공개 지역 끝자락에 숨어서 이렇게 눈물을 감추고 있는 것인가. 연산군의 정성 때문인지 조선전기 양식을 따르고 있는 회묘의 석물은 웅장한 무인석과 문인석, 석호와 석양도 뛰어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두 문인석의 얼굴은 한결같이 어둡고 슬픈 표정이다. 마치 폐비 윤씨의 한맺힌 한삼 자락의 슬픔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2007.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