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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대군3

연산군 때문에 한꺼번에 폐출당한 고모와 조카: 폐비 신씨, 단경왕후 이야기 조선시대의 폐비는 폐비 윤씨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연산군 때문에 한꺼번에 폐출당한 고모와 조카: 폐비 신씨, 단경왕후 가장 유명한 사람은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이긴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쫓겨난 중전은 몇 명 더 있었습니다. 먼저 미친 남편 연산군과 혼인하는 바람에 조용히 살다가 날벼락 맞은 연산군의 부인, 폐비 신씨(廢妃 愼氏, 거창군 부인. 1472년~1537년)는 연산군의 정비(正妃)로 신승선과 임영대군의 딸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거창. 중종의 정비인 단경왕후의 고모입니다. 단경왕후의 아버지는 익창부원군 신수근으로 연산군의 처남이었고 할아버지는 당대의 명신이었던 거창부원군 신승선으로 연산군의 장인이기도 했으며 고모는 바로 연산군의 비(妃)로 그녀의 친정 거창 신씨 가문은 당대 .. 2008. 2. 23.
연산군 이야기 (성종, 폐비 윤씨 이야기 추가) 출처는 박영규의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일단 출발점이 되는 성종 성종의 도학 정치와 조선의 태평성대 (1457-1494, 재위 기간 1469년 11월-1494년 12월, 25년 1개월) "성종은 치세에 능했다. 권신을 견제하기 위해 사림 세력을 끌어들여 권력의 균형을 이룸과 동시에, 유교 사상을 더욱 정착시켜 왕도정치를 실현해나갔다. 그 결과로 그는 모든 기초를 완성시켰다는 뜻의 성종이라는 묘호를 얻었을 만큼 조선 개국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열어갔다." " 성종이 편전을 장악하면서부터 상황은 급변했다. 성종은 우선 조정의 서무 결재에 원로 대신들이 참여하던 원상제도를 폐지하여 왕명 출납과 서무 결재권을 되찾았으며, 김종직 등 젊은 사림 출신 문신들을 가까이 하면서 권신들을 견제했다. 또한 2년.. 2007. 11. 9.
연산군에게 폭군이란 딱지는 누가 붙였을까? 연산군에게 폭군이란 딱지는 누가 붙였을까? [이야기가 있는 문화기행-22]실록에 그려진 연산군 ▲ 영화 에서 연산군역을 맡은 정진영. ⓒ 이글픽처스 왕은 왕이로되 왕이 아닌 왕이 바로 연산군이다. 이러한 연산군이 영화 가 뜨자 새로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선 역대 왕 중에서 연산군만큼 소설과 연극, 영화,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에 등장한 연산은 폭군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이번에 뜬 연산군은 마마 콤플렉스에 힘들어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연산군은 폭군이었을까? 그의 재위기간 12년은 실록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하고 로 남아있다. 내용 또한 패악으로 그득하다.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교과서로 학습하고 그것을 자료로 만들어진 소설을 읽고 영화 연극 드라마를 접한.. 2006.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