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쫑에 대한 글을 하나 쓰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 줄줄이 사탕이 되는구나... (근데 시리즈를 우리말로 줄줄이라든가.. 바꿔서 쓰면 안될까? 너무 웃긴가? ㅋㅋ)
쫑에 대한 기억도 점점 희미해지면서 나는 점차 동물들을 싫어하게 되었다. 딱히 싫다기 보다는 가까이 하는 것을 꺼려했다는 게 정확하다.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처럼 나는 개나 고양이가 무섭고, 더럽다고 생각했다.
이건 위생개념이 생기면서 병이 옮을까봐 두려운 것도 있었고, 주위에서 만난 개들과의 안좋은 기억 때문이기도 했다. (쓸데없는 변명을 닥치라고 하시면 저를 두번 죽이는 거에요!!)
개에 대한 안좋은 추억
1. 자주 놀러가던 친구집 개가 나를 볼 때마다 목의 핏줄이 불거져 나오도록 짖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친구집에도 가기가 싫었다. 내 친구는 "괜찮아. 괜찮아.. 해치지 않아.." 는 아니고^^; '물진 않는다' 고 했지만 그 말을 누가 믿겠냐고!! 목줄이 끊어져라 나를 향해 달려오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고 안문다고 누가 믿겠냐고요!!
2. 골목길에서 나는 내 길을 가고 있건만 대문 안에서 들려오는 개짖는 소리...!! 집 앞의 문패 밑에 붙어있던 "개조심"
말이야 바른 말이지.. 개를 어떻게 조심합니까?? 자기들이 목줄 안끊어지게 조심해야지, 나를 향해서 돌진하는 개를 사람이 무슨 수로 피하냐고요.. (그레이하운드 평균 속력 - 67km/h , 빠른 사람 평균 속력 - 23km/h)
3. 이런 일들로 개에 대한 두려움만이 커져있던 나에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큰 개 한 마리... 나는 파랗게 질려있는데 데려갈 생각도 않고 고상한 목소리로 "이리 와~ 이리 와~"만 반복하는 개주인.-_-;;;;; 아무리 자기네 개가 순하고 이뻐도 남들한테는 무섭다고요.. -_ㅜ
이렇듯 개에 대한 인식이 안좋았기 때문에 개의 본분이라 생각했던 도둑 지키기도 못하고, 사람보다 더 호의호식하며 집안에서 사는 애완견에 대한 나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TV 동물농장에서 개랑 같이 이불 덮고 자는 사람들을 보면 개를 집안에서 키우면 그 냄새는 어쩔 것이며, 그 털은 어쩔 것인가.. 생각하며 신기해했는데, 언니집에서 키우는 말티즈 한 마리 덕분에 개에 대한, 아니 동물에 대한 나의 인식은 확 바뀌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는 까꿍이도 무서워했지만 성격이 얌전하고 똑똑해서 곧 까꿍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손, 앉아, 엎드려, 기다려, 가져와, 곰돌이 어딨어?, 빵야!! 등등의 말귀를 알아듣고 따라하는 까꿍이가 신기하고, 청소기만 보면 무서워서 덜덜덜 떠는 모습도 너무 귀여운거다.
처음에는 까꿍이를 만지는 것도 찝찝해서 늘 발로 만져주곤 했는데 나의 발길이 싫었는지 까꿍이가 자꾸 도망을 다녀서 난 소세지로 까꿍이를 유인해서는 발로 꿍이를 주무르곤 했다. (언니 말로는 맨날 까꿍이를 피해다니다가 술에 취하자 까꿍이를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아서 황당했다고 한다.ㅋㅋㅋ)
까꿍이는 그동안 내가 잊고 있었던 동물과의 교감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요즘도 동물을 만지고 나면 꼭 손을 씻지만 예전에는 나에게 꼬리치는 애들도 무서워서 도망갔지만 이제는 귀엽고 순한 애들은 꼭 만져보고 싶다. 떠돌이개나 길고양이를 보면 정말 무서웠는데 이젠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니.. 변하긴 변했다.
까꿍이 이후 작은 언니네 조카들이 강아지 키우자고 난리가 났고, 결국 조카가 잡종 강아지를 두 마리나 얻어오는 황당한 일도 생겼고 언니는 어쩔 수 없이 마당에서 얘들을 키우게 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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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얘들을 키울 여력이 되지 않아 다른 데로 보내버렸는데.. 얘들이 너무 순하고 이뻐서 나는 진돗개보다 똥개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쓰레기 버리러 갔다가 음식쓰레기통 위에 앉아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는데 녀석은 보기에 안스러울 정도로 깡말라 있었다. 사람을 보고 도망가지 않는걸 보면 길고양이 치고는 넉살도 좋은 것 같은데 왜 그리 못얻어먹었을까. 예전같으면 내가 먼저 도망갔겠지만 (나는 고양이도 개처럼 사람에게 먼저 덤비는 줄 알았다.) 그땐 뭐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불쌍한 마음에 얼른 집에 가서 물에 불은 멸치를 가지고 왔더니, 글쎄 이 녀석이 내 옆으로 와서 냄새를 킁킁 맞는 것이다. 에구. 배가 많이 고픈가 보다 생각했지만.... 왠걸?? 이 넘이 냄새를 맡고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음식쓰레기통 위로 냉큼~ 올라가는 것이다.
'얼씨구~ 요놈 봐라?? 배가 덜 고팠네." -_-;; 라는 생각이.ㅋㅋㅋ
기가 막혀서 쳐다보고 있는데 어떤 아줌마가 오시더니 그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나비야. 뭐 좀 줄까?"
"야~~옹" (이라고 쓰고 "빨리 줘. 빨리 줘! 배고파 죽겠어." 라고 읽는다.)
그 아줌마는 통 안에서 살이 조금 남은 통닭 조각을 꺼내주었고, 고양이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난 속으로 '앗.. 개나 고양이한테 저렇게 진한 양념은 해로운데.. 더구나 뼈도 있을텐데...'라고 걱정했지만 내가 키울 것도 아니면서 배 곯는 애 먹을 거 하나라도 주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고기 얻어먹는 나비.
나는 순전히 그 아줌마가 그 고양이를 '나비'라 불렀다는 이유로 그 애를 나비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경비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나비가 근방에 출몰한지 몇 개월이 지났으며 한 마리 더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비는 사람을 피하지 않아서 꽤 유명한 고양이였고, 나비, 살찐이, 야옹이, 고양이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다행히 이 동네에는 고양이를 병적으로 싫어하거나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후 나는 나비에게 먹을 것을 갖다주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며칠에 한번씩 가다가 점점 더 자주 가게 되어 나중에는 하루에 두 번 간 적도 있었다. 그 뒤로도 멸치를 몇 번 줘봤지만 그 때마다 나비의 반응은 심드렁~했고.. 나는 '멸치를 싫어하는 고양이도 있다!' 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짜식... 얻어먹는 주제에-_- 까다롭기도 하네. 살찐이는 멸치를 얼마나 좋아했는데-_-;;)
처음에는 남는 음식(고양이가 먹을 만한 것) 위주로 갖다줬지만 못만나는 날은 그대로 놔두게 되면 음식냄새 때문에 주변이 지저분해지기 때문에 그대로 버려야 했다. 그래서 사람 먹는 음식에서 사료로 대체했고, 밥을 주는 장소도 음식쓰레기통 옆에서 좀 떨어진 놀이터 안으로 옮겼다. 내가 놀이터 안에서 나비랑 같이 있을 때면 가끔 쓰레기 버리러 왔다가 나비를 찾는 목소리(에이.. 오늘은 고양이 없네.)를 들을 때도 있다.
나비는 길냥이치고는 넉살이 좋았지만 애교가 많은 편은 아니다. 사람에게 친근하게 구는 길냥이들은 보통 애교가 아주 많은 편인데 나비는 그런 면에서 참 뻔뻔한 놈이었다.
내가 밥주러 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야~~옹" (배고파 죽겠네. 왜 이제 와.! ) 하고 다가오지만 그럴 때 외에는 목소리 듣기도 힘들고 밥 먹느라 밥준 나에게는 신경도 안쓰더니 밥준지 1년이 넘어가니 이젠 밥 다 먹고 내 옆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거나, 내 다리에 얼굴을 부비부비 거리거나, 꼬리로 나를 탁탁 치기도 한다. ㅋㅋ
나비 최고의 애교 - 마구 뒹굴기
그래, 그래, 거기 잘 좀 만져봐.하는 표정의 나비ㅋㅋ
작년 겨울에는 만나기가 힘들어서 밥주기를 게을리했더니 살이 다시 쏙 빠졌지만 요즘은 월동 준비하라고 열심히 주는 편이라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내 친구 하나는 불쌍한 길고양이로 상상을 하다가 실물을 보더니, "야야.. 저게 무슨 나비냐. 돼지지. 이젠 밥 고만 줘라. 얼굴 터지겠다." 라고 했다. ;; ㅋㅋㅋ
토실토실 토끼같은 나비
그런데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는 것은 처음의 즐거움과는 달리 점점 부담으로 다가온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워져도 쉴 곳이 없는 길냥이 신세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한 생명을 내가 거두고 있다는 왠지 모를 보람과 알량한 뿌듯함에서 점점 더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어차피 집고양이들 수명의 반에 반도 못사는 길냥이,, 배라도 불려주자는 생각에서 시작했건만 내가 없으면 어떡하나, 혹시 나 때문에 먹이 구하는 방법을 잊은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내가 얼마 후 거주지를 옮겨야 할 것 같아서 고민이다. 이제 겨울도 다가오는데.. 길고양이라서 많이 먹지 못하면 겨울에는 얼어죽을 수도 있고.. 처음처럼 그렇게 말라갈 것을 생각하면 참 심란하다. 또한 밥주던 내가 안오면 동물은 이유도 모르고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까.. 이런 이유로 해서 자생력을 잃을까봐 일부러 며칠 걸러서 밥을 주기도 하지만 이래 저래 걱정돼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