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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112

[펌] 장희빈, 당쟁의 주모자인가? 희생자인가? 장희빈은 효종 10년(1659)에 역관의 집안에서 태어나 현종 10년 아버지 장경(張烱)을 여의고 숙부 장현의 집안에서 자랐다. 어머니 윤씨가 조사석의 집 종이었던 관계로 조대비의 사촌동생인 조사석과 조대비의 조카사위인 숭선군, 그 아들인 동평군 집안과 가까웠다. 장희빈이 살았던 시기는 북벌론을 주도하던 효종이 승하하면서, 1차․2차 예송(禮訟)이 벌어지고 경신환국․기사환국․갑술환국이 벌어지는 붕당정치의 격동기였다. 이러한 격동기에 장희빈은 현종 15년 2차 예송으로 서인이 실각하고 숙종이 즉위하면서 남인이 정계를 주도하는 시기에 궁중에 들어가 2살 어린 숙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숙종 6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면서 궁 밖으로 쫓겨났다가, 숙종 9년 모후 명성왕후가 승하하면서 다시 궁으로 들어와.. 2013. 2. 7.
[펌] (현충일을 기리며) 진정한 한국 최고의 명문가 이 글을 어디에 쓰는 게 맞는지 한참 고민하다가.. 역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역사 카테고리로 넣기로 했다. ============================================================== 현충일을 맞이하여, 한국 최고의 명문가 - 우당 이회영 일가를 소개합니다. 조선 최고 부유층 집안의 넷째아들, 이회영. 선조시절 영의정을 지낸 백사 이항복의 후손으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이름난 집안의 자제였음 1910년.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일이 일어난다 일본에 의해 강제로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것임 병합이 발표된 직후, 갑자기 집과 땅을 포함한 전재산을 처분하기 시작하는 이회영 선생 그 후, 형제들을 불러 모인다 "제가 이렇게 형님들을 오시라고 한 이유는, 긴히 드.. 2012. 6. 6.
사진으로 보는 미국 100년사 길거리에서 줄넘기 (19세기 말) 브로드웨이 (1900년) 자전거 타고 나들이 가는 가족 (1900년) 여성 전용 지하철칸 (1903년) 신문팔이 소년들 (1910년대) 1차 대전에 참전하는 미군 (1916년) 멀리서 뉴욕을 바라보는 이민자 가족 (1925년) 자동차에서 내리는 부유한 여인 (1928년) 대공황 시기, 무료 배식소에 줄을 선 실업자들 (1930년) 맨해튼 (1931년) 맨해튼 야경 (1937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개봉 (1939년) 라디오 시티 뮤직홀의 안내원들 (1942년) 일본 패망에 환호하는 시민들 (1945년) 맥아더의 귀국을 환호하는 시민들 (1951년) 락앤롤쇼에 들어가기 위해 줄서있는 청소년들 (1957년) 눈덮힌 센트럴파크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1958년) 레스토랑에.. 2012. 3. 14.
수양대군이 세조가 되기 위해서 죽인 사람들 명단 지금에 와서 수양대군을 욕하는 건 현대의 시각이니 어쩌니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충효 사상이 강했던 그 당시에 어린 조카를 폐하고 왕이 된 수양대군이 얼마나 욕을 먹었으면 천재적인 학자였던 신숙주가 몇 백년 간 숙주나물로 불리며 미움을 받았을까? 또한 몇 십년간 왕보다 더한 권세를 누리며 살아간 한명회가 최악의 간신 이미지로 남아있을까? 왜 그렇게나 수많은 사람들이 세조에 대항하여 성공 가능성도 미미한 반란을 그렇게 많이 일으켰을까?? 그는 왜 왕이 되기 전에도, 왕이 되고 난 후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을까? 그가 왕이 된 후에도 끊임없이 악몽에 시달리고 죽은 현덕왕후의 묘를 파기까지 했을까? 김종서의 손자와 수양대군의 장녀인 세희공주가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는 금계필담 같은 .. 2011.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