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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황진이 연지인형이 좀 더 고혹적이고 섹시한 쪽인데 비해, 

초반의 황진이 연지인형은 좀 귀엽기까지 하다... 


뒤로 갈수록 예뻐지고, 고혹적으로까지 보이는 황진이 인형.. ㄷㄷㄷㄷ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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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시작한 드라마 공주의 남자 때문에 조선시대 역사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공주의 남자'는 조선 역사상 손꼽히는 역사의 라이벌인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아들과 딸이 사랑을 나눈다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이며, 역사와 허구를 적절히 섞어놨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공주의 남자'는 알려지다시피 정사가 아닌 야사집인 '금계필담' 속 한 에피소드를 변형시킨 드라마다. (금계필담 속의 공주의 남자 이야기, 역사 속의 결말 보기) 금계필담 속 에피소드는 김종서의 손자와 수양대군의 딸이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결말이 새드엔딩으로 반이상 정해진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 하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수많은 야사들이 실려있다. 대부분의 제목이 낯이 익은 느낌이고 제목만 보아도 흥미를 끄는 것들이 다수인데 이들 중 다수는 우리가 어릴 때 보았던 이야기 책에 나온 것들이 아닌가 싶다.


공주의 남자의 한 장면





1873년(고종 10)
서유영(徐有英:1801~?)이 쓴 문헌설화집.


2권 2책. 한문필사본.

이본으로는 서울대학교 가람문고에 한문유인본(漢文油印本) 2책, 서울대학교 상백문고(想白文庫)에 한문필사본 1책,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한문필사본 2책 중 1책의 낙질본이 있다.


우리나라의 기록에서 빠진 이야기를 모았다는 뜻인 ‘좌해일사(左海逸事)’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말년에 외로움을 느껴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고자 심심풀이[破寂之資]가 될 수 있는 이 책을 쓴다고 했다.

고려대학교본은 원작을 지은 지 두 달 뒤에 저자가 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각 편의 주인공의 신분과 시대순에 따라 작품들을 수록하는 체재로 되어 있다.



제왕과 왕비·문신·이인(異人)·양반층여인·기생·하층여인·무인 및 장사(壯士)의 순으로 이들에 얽힌 이야기를 배열하고, 풍속에 관한 잡다한 이야기들을 함께 묶어서 끝에다 첨부하였다.

각 인물은 대체로 시대순으로 배열했는데, 단종부터 순조 때까지 걸쳐 있다. 작품에서 다룬 주인공들은 하층인보다 상층인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현실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보다 현실에서 소망을 이루지 못한 인물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록에 빠진 이야기를 모았다는 뜻인 '좌해일사'(左海逸事)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141편의 설화가 주인공의 신분과 시대순에 따라 실려 있다. 조선 단종부터 순조 때까지의 왕·왕비·문신·이인(異人)·양반층여인·기생·하층여인·무인·장사(壯士)의 차례로 이들에 얽힌 이야기를 적고, 풍속에 대한 이야기들을 덧붙였다. 주인공들은 하층계급보다 상층계급이 많으며, 현실에서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는 인물이 많다.


이 책은 조선 후기에 많이 나오게 된 야담집들과는 달리 다른 문헌을 참고하지 않고, 저자 자신이 직접 들은 이야기만을 수록하였다는 점에서, 공동작인 구비문학이 개인의식을 통해 어떻게 변모되는가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육미당기(六美堂記)와 금계필담(錦溪筆談)의 비교분석을 통한 소설과 야담계 서사체의 관계양상 고찰」(이강옥, 『한국학보』42, 1986)
「육미당기(六美堂記)의 작자 재론(再論)」(장효현, 『고전소설연구의 방향』, 새문사, 1985)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목차
 . 사육신의 피흘린 자취
 . 단종의 원한을 풀어준 사람
 . 현덕왕비의 무덤이야기
 . 정순왕비의 가여운 인생
 . 피눈물로 얽힌 갸륵한 인연
 . 태평성대의 사랑이야기
 . 뜻을 펴지 못하고 간 임금
 . 선조 임금의 신기한 꿈
 . 나라를 구하려는 임금의 노래
 . 백사가 귀양길에 오르면서
 . 말 그림의 임자를 찾아라
 . 도량을 떠보는 거친 행동
 . 임금과 사귄 어리석은 백성
 . 큰 뜻을 펴지 못하고 간 효종
 . 영웅과 짝짓겠다는 여인
 . 남몰래 볼기맞은 재상
 . 청렴결백한 남산골 선비
 . 헤어진 옷 입고 다니는 재상
 . 전복 한 그릇에 벼슬을 내놔
 . 건공탕으로 인한 두 가지 사건
 . 오십년만에 나타난 꿈의 징험
 . 영조의 생모인 숙빈의 참을성
 . 정순왕후의 남다른 총명
 . 치마 밑에 숨어 화를 면한 사람
 . 고향을 그리워하는 비파소리
 . 유기장의 딸이 정경부인이 돼
 . 질투 심한 홍정승의 어머니
 . 종아리를 맞고 돌아간 처녀
 . 사랑에 빠지지 않는 영의정
 . 큰 인물의 일처리는 남과 달라
 . 거지와 인연맺은 유명한 재상
 . 미움을 이겨낸 홍정승의 의리
 . 김정승과 동양위의 우정
 . 임금이 밝으면 신하도 바름
 . 정승될 사람의 인품
 . 사충사의 이야기
 . 영조를 도운 송정승의 꿈
 . 밥 한 말 먹고 백리를 뛴 정승
 . 이정승의 신통한 감별력
 . 김정승의 적선한 이야기
 . 기생의 도움으로 한을 풀어
 . 윤시동의 글짓는 재치
 . 대동강물에 빼앗긴 담뱃대
 . 벼슬아치들의 행동은 신중해
 . 어른 앞에서 말을 삼가야 해
 . 벗을 얻는 방법도 가지가지
 . 말 한 마디에도 복이 깃들어
 . 혼령을 데려온 김정승
 . 세 번 잘못한 하인을 죽여
 . 중요한 문서를 하나 더
 . 홍연천의 재치있는 글
 . 반토막 시에 짝을 채운 이야기
 . 신선이 됐다는 5세 신동 매월당
 . 실정에 알맞은 정치를 해야지
 . 세가지 의리를 어긴 인생
 . 화담선생 이야기
 . 좀더 살려고 애쓰는 사람
 . 죽은 친구를 살린 북창공
 . 십만 정병을 길러야 무사하리
 . 앞 일은 내다 본 토정
 . 양주 송산이 피난처다
 . 왜적은 솔송자가 든 마을은 피해
 . 신선이 되려고 떠돌아 다니는 사람
 . 안동부사가 된 김치의 옥관자
 . 가난 때문에 절개가 꺽인 선비
 . 아내 덕에 병마사된 사나이
 . 오랑캐의 침략을 미리 아는 중
 . 병자호란을 예언한 박무관
 . 우암에게 준 한 늙은이의 시구
 . 이충정공의 신수에 관한 이야기
 . 금족두리 조각이 사람을 살려
 . 선비의 운명을 알고 있는 여인
 . 신선이 없다는 건 거짓말인지
 . 작은 은덕으로 큰 복을 받다
 . 이평량자라는 사람의 시
 . 앞일을 환히 알고 있는 사람
 . 왜송동 흉가터에 어서각이 선 사연
 . 익사할 신수를 면한 이야기
 . 정성을 다하면 하늘이 복을 준다
 . 죽은 아이의 후신이 된 재상
 . 꿈에 본 죽은 아들의 모습
 . 원통하게 죽은 한을 풀어
 . 죽을 고비를 모면한 이야기
 . 마술장이에게 속은 사람들
 . 문 밖에 제사를 차리는 풍속
 . 삼연선생의 오언시이야기
 . 송악산 신령의 싸움이야기
 . 대궐을 집으로 쓴 한 서생
 . 신사임당의 값진 일생
 . 황발부인의 뛰어난 전략
 . 영수각 서부인의 뛰어난 재주
 . 고도령과 박씨부인의 십 년 공적
 . 까치가 울면 기쁜 소식이 와
 . 남편을 돕는 지극한 정성
 . 절개지킨 아내를 오해한 남편
 . 헤어진 가족의 눈물겨운 만남
 . 명필 양봉래의 어머니의 이야기
 . 천재 시인 허난설헌의 죽음
 . 이씨부인의 효성이야기
 . 누명을 벗은 선비와 의로운 여성
 . 옛 주인의 원수를 갚은 하녀이야기
 . 한떨기 꽃이 된 여자
 . 안평대군과 최생의 풍류
 . 황진이와 벽계수
 . 출사표를 부르며 흐느끼는 가련이
 .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
 . 부채하나로 맺어진 인연
 . 의기 논개의 넋을 기리는 노래
 . 원님과 사랑한 어린 기생
 . 무정한 것이 아니라 늙어서 그래
 . 용모는 어미를 문장은 아비를 닮아
 . 고장군을 짝사랑하다 죽은 처녀
 . 박태보를 짝사랑한 하녀
 . 아랑의 원한이 깃든 영남루
 . 이완장군의 대담한 전략
 . 임경업장군의 한맺힌 말
 . 사람의 일생은 꿈같은 것
 . 원통하게 처형된 남이장군
 . 서생이 왜장 일곱명을 죽이다
 . 도둑의 마음을 움직인 이완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 힘 자랑은 우물 안의 개구리
 . 민장사의 놀라운 힘
 . 큰 원한은 도움만으로는 풀기 어려워
 . 사소한 일에도 장수다운 지략
 . 은덕을 못잊어 역적 아들을 살려줘
 . 백학을 황학이라 속인 이야기
 . 속임수로 벼슬길을 도운 어사
 . 금주령에 얽힌 갸륵한 이야기
 . 공사를 분별하는 일처리
 . 심공의 기생놀이로 생긴 일
 . 금강산 유점사를 지은 유래
 . 도끼를 주면 하늘 기둥감을 찍으리라
 . 정월 대보름날 약밥을 먹는 유래
 . 진평왕의 옥대를 찾은 이야기
 . 처용무에 대한 옛날 이야기
 . 김생의 글씨가 세상에 알려져
 . 솔거의 황룡사 노송도
 . 거문고와 가야금의 유래
 . 여원을 풀어주지 않아 화를 입은 최진사
 . 호랑이와 무덤을 지킨 강효자
 索引



2011/07/30 - 공주의 남자로 보는 세조시대 역사, 역사 속의 결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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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드라마 황진이 캡쳐 사진 가져옴.


 내 언제 무신하여 ∼                 - 황진이 -

                  

 [현대어 풀이]

  • 내 언제 신의 없이 님을 언제 속였길래(임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 달도 기운 깊은 밤에 님이 오려는 뜻(기척)이 전혀 없네.(임이 찾아주지 않는 안타까움)
  • 추풍에 떨어지는 잎 소리야 난들 어이하리오.(임이 찾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 지는 닙 → 시적 화자의 외로운 심정을 대변하는 사물.

    * 秋風(추풍) → 쓸쓸한 이미지를 통해 슬픔과 외로움이라는 화자의 정서를 대변

 [이해와 감상]

여류 시조 작가의 대명사인 황진이의 시조로, 소식이 없는 임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원망의 정서를 섬세하고 감각적인 필치로 아름답게 그려 내고 있다. 가을 밤에 초조하게 임을 기다리며,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를 임의 인기척으로 착각할 정도로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한 여인의 정서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임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임이 찾아 주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임이 찾아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조는 서화담의 노래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에 화답한 것이라고 한다. 비록 스승과 제자의 사이지만 이성으로서의 애정을 은근히 느끼게 된 것은 황진이나 서화담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 같다. 다만 그것을 순수한 애정으로 승화시킨 데에 화담의 고매한 덕성과 황진이의 반짝이는 총명이 조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하는 서화담의 은근한 연정을 넌지시 받아서, '가을 바람에 지는 잎 소리야 난들 어이하리오.'라는 구절은 체념하는 듯하면서도 속으로는 더욱 간절한 애정을 담고 있다.

 [정 리]

 ◇ 성격 : 평시조, 연정가 - 감상적

 ◇ 주제 : 임을 향한 애타는 그리움



 



동짓달 기나긴 밤을 ~                           - 황진이  -

         


                                                                           
              <청구영언>

 [현대어 풀이]

  • 동짓달의 기나긴 밤(기다림의 시간)의 한가운데를 둘로 나누어서
  • 따뜻한 이불(만남의 시간) 아래에 서리서리 간직해 두었다가
  • 정 둔 임이 오시는 날 밤이면 굽이굽이 펴서 더디게 밤을 새리라.

 [이해와 감상]

 기녀 시조의 본격화를 이루었고, 시조 문학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황진이의 절창 중의 하나이다.

임이 오시지 않는 동짓달의 기나긴 밤을 외로이 홀로 지내는 여인의 마음이, 임이 오시는 짧은 봄밤을 연장시키기 위해서, 동짓달의 기나긴 밤을 보관해 두자는 기발한 착상을 하기에 이른다.

또한 중장과 종장에서는 '서리서리', '구뷔구뷔'와 같은 의태어를 사용하여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을 매우 효과적을 나타낼 수가 있었다.

혼자 임을 기다리며 지내야 하는 긴 '겨울밤'과 낮이 길어 임과 함께 하는 밤이 짧은 '봄'이 서로 대조가 되어, 임과 오래 있고 싶은 화자의 심정이 잘 묘사되어 나타난다. 문학성을 띤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예술적 향취를 풍기는 작품으로, 기교적이면서도 애틋한 정념이 잘 나타나 있다.

 [정 리]

▷성격 : 평시조, 연정가(戀情歌)

▷표현 : 의태어의 적절한 사용, 관념(시간)의 시각화

             기발한 착상(긴 기다림의 시간을 잘라서 짧은 만남의 시간을 연장시키겠다고 함.)

             문학적 기교와 애틋한 정서를 잘 조화시켜 예술성을 확보함.

▷주제 : 정든 임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정

 


어져 내 일이야                                  - 황진이 -

         


                                                                           
        <청구영언>

 [현대어 풀이]

  • 아, 내가 한 일이여!  이렇게 그리워 할 줄을 몰랐단 말인가?
  • 있으라고 말씀드리면 임께서 굳이 가셨겠는가?
  • 보내놓고 나서 그리워하는 정은 나도 모르겠구나!

 

 [창작 배경]

 작자가 사대부 황진사의 서녀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여 스스로 시와 서예, 묵화와 음률을 배워 문인을 비롯한 석학들과 교류하였다.

 

 [이해와 감상]

 " 아, 내가 한 짓을 좀 보아라, 이게 무슨 꼴이람. 막상 보내 놓고 나면 이렇게 더욱 그리워질 줄을 미처 몰랐단 말이냐. 제발 나를 버리고 가지 말고, 있으라고 만류하였던들 이렇게 뿌리치고 가 버리지는 않았을  것을. 하필, 말리지 못하고 보내놓고 나서 더욱 그리워하는 이 심정은 또 무엇이란 말이냐. "

당혹해서 마음에도 없는 엉뚱한 행동을 하기가 일쑤인 것이 사랑의 생리임을, 사랑을 해 본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초장과 중장은 임을 보낸 후의 후회를 나타내고 있으며, 종장에서는 떠나 보낸 후에 더욱 간절해지는 임에 대한 그리움을 애써 체념조로 가라앉히고 있다.

문두에 등장하는 '어져'라는 말은 이별을 하자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던 그리움을 깨닫게 되었다는 표현과 더불어 생생하게 표현한 신선한 감각이 느껴진다. 특히 이 시조의 표현상의 절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제 구태여'의 행간 걸림이다. '제 구태여'는 앞과 뒤에 동시에 걸리는 말로서, 앞에 걸려서는 '임이 굳이 가겠는가마는'의 도치형을 만들고, 뒤에 걸려서는 '자기가 구태여 보내고'라는 뜻을 가져 황진이 자기 자신을 일컫게 되기도 한다.

여성의 섬세한 표현이 부드럽고 고운 시어를 구성하고 있으며, 임을 위해 떠나 보낸 뒤 말없이 임을 그리워하는 동양적인 여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정리]

 □ 성격 : 평시조, 연정가

 □ 표현 : 우리말의 절묘한 구사를 통해 화자의 심리상태를 섬세하고 곡진하게 표현함.

              도치법, 영탄법

 주제 : 임을 그리워하는 회한의 정

 □ 가치 : 고려 속요인 <가시리>, <서경별곡>과 현대의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이어주는 이별시의 절창이라

                  할 수 있음.


 



 청산은 내 뜻이오 ~                           - 황진이 -

         

         
                                                             
          <청구영언, 해동가요,가곡원류>

 [현대어 풀이]

  • 청산은 나의 뜻이요, 녹수(푸른 물)는 님의 정이라.
  • 녹수가 흘러간들 청산의 뜻이야 변할 것인가?
  • 녹수도 청산을 잊지 못해 울면서 흘러 가는구나.

 [이해와 감상]

 '청산'과 '녹수', 변함없는 푸른 산과 자꾸만 흘러가서 한때도 머무르지 않는 물결, 변함없는 작자의 뜻과 변덕스러운 님의 정을 이것들에 비유한 착상이 평범하면서도 신선미가 넘친다.

여기서의 '청산'은 '불변하는 것'이며 곧 '나'와 동일시되고 있다. '녹수'는 '변화하는 것'으로 곧 '님'을 상징하고 있다. 이로써 녹수(님)가 흘러가도 변하지 않을 스스로의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녹수의 흘러감'으로 표상되는, 인간이 지니는 숙명적 불안감과 허무감은 사대부들의 자연인식과는 근본적으로 인식을 달리하는 것이다. 사대부들에게 있어서 '녹수'나 '청산'은 다 같이 시간적으로 무한한 영원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사대부의 시에서 변하는 인간과 대비되는 자연물들로서 이 두 소재가 다 함께 채택된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황진이는 녹수의 흘러감, 즉 그 유한성에 주목함으로서 사대부들의 당위론적인 자연 인식과는 다른 이미지를 창출해 내었다.

    결국 나에 대한 임의 사랑이 설령 바뀌었다 하더라도 임에 대한 나의 마음은 영원함을 노래하고 있다. '청산'이 넘치는 애정과 정열에 불타는 내 마음이라면, 그 밑으로 푸르름을 머금고 흐르는 '녹수'는 임이 나에게 속삭여주던 정이라 할 수 있다.

   청산은 녹수가 영원히 자신의 품안에 있기를 원하지만, 녹수는 더 좋은 경치를 향해 떠나간다. 그러나 흘러간 녹수야 지금 있건 없건, 임을 향한 청산의 마음이야 변할 까닭이 있겠는가? 그리고 저리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아 녹수도 청산을 잊지 못해 눈물을 뿌리고 있는 것이리라.

 [정 리]

 □ 성격 : 평시조, 단시조, 연정가

 □ 표현 : 비유적 표현(은유)

 □ 주제 : 임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






청산리 벽계수 ㅣ야                           - 황진이 -

         


                                                
                               <청구영언, 해동가요>

 [현대어 풀이]

  •  청산에 흐르는 푸른 시냇물아, 빨리 흘러가는 것을 자랑하지 말아라.
  • 한 번 넓은 바다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우니,
  • 밝은 달이 텅빈 산에 가득 비추고 있으니 잠시 쉬어간들 어떠하겠는가?

 [창작 배경]

  당시 종친의 한 사람인 벽계수(李渾源)라는 사람이 하도 근엄하여 딴 여자를 절대로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높았다. 마침 그 때 그가 개성에 와서 달밤에 나귀를 타고 만월대를 산책할 때에, 소복 차림한 황진이가 이를 시험해 보려고 그에게 다가가 이 노래를 건넸더니, 벽계수는 황진이의 시재(詩才)와 미모에 끌려 자신도 모르게 나귀 등에서 내려서는 하룻밤의 시흥을 돋우었다고 한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중의적인 표현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벽계수'는 흐르는 물과 왕족인 벽계수(碧溪水)를, '명월'은 달과 황진이 자신을 동시에 의미한다.

일차적으로 이 시조는, 아름다운 기녀가 한 강직한 선비를 유혹하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벽계수에게 자신과 이 달 밝은 밤의 빈 산에서 함께 어우러져 놀아보자는 유혹의 뜻이 충분히 전달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초장의 '청산'은 영원히 변함없는 자연을 나타내며, '벽계수'는 순간순간 쉬지 않고 변해가는 인간의 삶을 뜻한다. 영원한 자연에 비해 순간적이고 덧없기만 한 인생, 그 허망한 인생을 풍류로 한 번 달래보자는  기녀다운 호소력을 지닌 노래라고도 할 수 있다.

    *청산리 → 푸른 산속
       *벽계수 → 푸른 시냇물, 종친 벽계수를 빗댄 말
       *수이 → 쉽게, 빨리
       *일도창해 → 한번 넓은 바다에 이름
       *명월 → 밝은 달인데, 황진이의 예명이기도 하다. '벽계수'와 아울러 이른 바 중의법으로 표현됨.
       *만공산 → 텅빈 산에 가득 차 있다.

 [정 리]

 ▶ : 평시조, 연정가

  : 중의법.

  : 인생 무상에 대한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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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럽지 아니한가.



노골적인 노출이 아닌, 드러내지 않는 아름다움





마이웨딩(My Wedding)에서 아름다운 한복 사진 다수 가져옴.






아기들 때때옷도.. 파티복보다 한복이 훨씬 이쁨~ ㅠㅠ




당의를 입은 여인,
(당의: 조선시대에 상층 신분의 여자들이 입었던 예복의 하나.당저고리·당적삼·당한삼이라고도 한다. )

 

 





한복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 드라마 황진이 때의 장근석.. (아아..ㅠㅠ 이때로 돌아가줘ㅠㅠ)





한복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 드라마, 성균관스캔들..
무슨 공부만 하던 유생들이 저렇게 예뻐ㅡㅡ;;


한복 입은 송중기






놀라서 입도 다물어지지 않는 한복입은 단아한 이영애.




한복입은 하지원은 어떻고~ 매력적인 황진이 때의 하지원 모습.





송혜교의 한복 입은 모습 - 황진이랑은 다소 안어울리지만 그래도 예쁘다.






지진희 (동이에서 숙종 역할할 때) 임금님의 선비복 입은 모습




임금님의 옷인 곤룡포를 입은 지진희 숙종임금





동이 출연진들 한복 입은 모습 모음.
(한복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한효주가 후궁에 입적된 후의 모습이 없는게 아쉽다.)







일반 서민들이 시집갈 때나 입을 수 있었던 옷인 활옷 입은 김태희,
(활옷: 고려와 조선시대에 입던 공주나 옹주의 대례복(大禮服)이나 상류계급의 혼례복.)

 





위엄있어 보이는 송지효 한복 자태.






아이쿠.. 이뻐라.. 이쁘디 이쁜 김연아 한복 자태.





단아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전도연 한복 자태








결론은 ............. 한복 너무 예뻐서...  눈을 뗄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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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1 - 장근석 가장 아름다웠던 황진이 은호도령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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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거의 6개월간 블로그를 자유(?)라는 이름 아래에 방치 중인 파란토마토입니다.
실은 요즘은 싱싱한 파란 토마토라기 보다는 멍들어 푸르딩딩하게 변해버린 느낌이지요. 음하하...


요즘 바람의 화원에서도 기생 정향이라는 분이 인기던데...

바람의 화원신윤복의 여인, 정향






갑자기 그동안 기생 역을 맡았던 배우들이 누가 있을까 싶어서 찾아보게 되었어요.




작년 한 해에만도 두 명의 황진이가 탄생했으니....
매력적인 기생들이 너무 많아서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네요^^.

다들 아름다운 배우들이지만 예전 배우들 구경도 할 겸,
특히 유명한 역할 혹은 작품에 출연한 분들만 몇 몇 분을 선별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중에 누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본격 기생은 아니었지만 기생이 될 뻔했던 난정이 역할을 맡았던 여인천하의 강수연씨입니다.
(어찌나 동안이신지~)

여인천하의 난정이와 윤원형강수연씨와 이덕화씨



하지만 요건 맛배기구요, 강수연씨는 사극 연기를 상당히 많이 했었고,
실제로 기생 역할을 맡은 적도 있었습니다.

이대근씨와 함께 출연한 영화 연산군에서 기생 출신의 후궁 장녹수 역을 맡으셨죠.
너무 요염하신가요? ㅋ

영화 연산군에서 이대근과 강수연연산군과 장녹수



보너스: 여인천하에서 난정이 친구 옥매향 역을 맡았던 박주미씨입니다.
이 분은 너무 단아하셔서 양반댁 규수 같은데요?

여인천하 기생 옥매향옥매향 역할의 박주미




장녹수 역할은 연산군 만큼이나 매력적인 역할이라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멋진 여배우들이 많이 보입니다.


제가 참으로 즐겁게 보았던 영화 왕의 남자에서 강성연씨입니다.

왕의 남자에서 연산군과 장녹수강성연과 정진영



장녹수 강성연정말 매력적이죠?



한편,  故 유니씨도 멋지고 매력적인 장녹수 역할을 제대로 해주셨습니다.



이때 어린 나이였음에도 어찌나 맛깔스럽게 연기를 해주시던지...
아직도 깔깔거리던 교태스러운 웃음소리를 잊을 수가 없네요.


드라마 장녹수에서 유동근씨와 짝을 맞추어 연기해주셨던 장녹수다운 장녹수 박지영씨도 빼놓을 수가 없죠^^

박지영 장녹수박지영 장녹수




기생이 장녹수 밖에 없냐구요??


그렇진 않죠^^


아름다운 기생에는 절대 빠질 수 없는 그 이름,
황진이가 남아있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지적이며, 풍류에 예술적인 면모까지 갖추었다던 황진이...
황진이 역을 맡은 분들을 한 번 알아볼까요?


도금봉, 김지미, 이미숙, 장미희, 하지원, 송혜교그간 황진이 역을 맡았던 배우들




황진이 포스터황진이 장미희



지금보면 좀 낯 뜨겁고 웃긴 포스터지만..
그 당시에는 도도한 황진이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작품, 영화 황진이에서 장미희씨입니다.

황진이장미희

황진이

황진이




지금에 비하면 여러 모로 꾸밈새가 촌스럽고 포즈가 좀 웃기긴 하지만..
그래도 세련된 미모를 빛내주시는 장미희씨입니다.

황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생 치고는 너무도 도도하고 품격있는 모습이군요.


한편,
작년에 새로이 태어난 예인 황진이, 하지원씨입니다.

황진이하지원



제가 상상하는 황진이와 딱 맞아떨어지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굉장히 매력적인 황진이였다고 생각됩니다.


보너스: 황진이를 질투하는 황진이 친구 부용 역의 왕빛나씨입니다.

부용 왕빛나멋드러진 춤을 추고...

황진이 친구 부용 역의 왕빛나.. 속살이 비치는 한복;;을 입고...

아마도 벽계수를 유혹하는 모양입니다.


이 분 눈이 정말 크고 이쁘시네요.
황진이의 요염함과는 다르면서도 색다른 여성스러움이 흐르는 분입니다.


귀여운 송혜교씨가 황진이를 맡는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던 영화, 황진이입니다.

송혜교의 황진이 포스터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해도.... 아무리 봐도 귀여운 작은 마님으로 보입니다만...
제 눈에 황진이 역할의 기생으로는 다소 불만족스럽지만 그래도 이쁘긴 이쁘네요.


이 분처럼 다소 어울리지 않는 황진이가 예전에도 한 명 더 있었습니다.
너무도 착하게 생긴 선우은숙표 황진이;;

선우은숙 황진이





문득 떠오른 생각입니다...  기생은 아닙니다만...
왠지 이 분도 후보에 넣고 싶어지네요..


왕의 남자 공길이 황진이는 어떠십니까? 좀 징그러운가요? ㅋ



하하하^^;;


여러분의 선택을 기다립니다!
지금 즉시 투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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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에서 장근석은 정말 최고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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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승복이님의 끄적끄적이야기에서 모셔온 글입니다. 이 글을 얼마 전에 발견해서 비공개하고 있다가 지금은 승복이님의 블로그가 아예 사라져 버린 관계로 공개처리했습니다.


이제는 원로 축에 끼는 김재형과 이병훈이 동시에 조선 시대 사극을 들고 오고, 김종학이 판타지 사극을, 정하연이 이방자 여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대극을, KBS에서는 <대조영> 의 후속작으로 <세종대왕> 을 제작할 준비를 마치면서 2007년 하반기와 2008년 상반기는 때 아닌 '사극' 열풍이 불어 닥칠 전망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방송됐던 사극들은 어떠한 인물들을 주로 다뤘을까. 재미로 알아보는 대한민국 사극의 단골 손님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후보 1. 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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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극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흥행카드' 라고 한다면 단연 연산군이다. 성종의 맏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적, 어머니를 잃고 고아와 마찬가지로 자라나며 삐뚤어지기 시작한 연산군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그 주위를 둘러 싼 권력 암투와 2번에 걸친 사화, 요부 장녹수와의 스캔들, 할머니 인수대비와의 갈등과 그로 인한 폐륜 등 다양한 이야기거리를 담아내며 사극의 주요 인물로 등장하기에 안성맞춤인 조건을 갖췄다.  

1962년 영화 <연산군> 에서 신영균이 열연하며 강한 인상을 남긴 이 후로, TV판 '연산군' 은 그로부터 9년 뒤인 1971년 TBC <사모곡> 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 때 연산군 역을 맡아 호연을 펼친 배우는 바로 우리에게 <사랑이 뭐길래><딸 부잣집> 등으로 친숙한 배우, 김세윤. 김세윤의 뒤를 이어서는 1985년 MBC <조선왕조 500년-설중매> 에서 임영규가 연기한 바 있고, 1987년에는 영화 <연산군> 에서 배우 이대근이, 1994년 KBS <한명회> 에서는 아역배우 출신 연기자 이민우가 연산군을 맡아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1년 뒤인 1995년 KBS <장녹수> 에서는 유동근이, 1999년 KBS <왕과 비> 에서는 안재모가 각각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로 안방 극장에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가장 최근에 연산군 역을 맡은 배우는 영화배우 정진영으로 1000만 관객 돌파의 신화를 낳은 영화 <왕의 남자> 에서 어머니를 잃고 광기 어린 영혼을 소유하게 된 연산군 역을 실감나게 연기해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배우는 누구일까.

시청률로만 따지고 보자면 <왕과 비> 의 안재모로 그 당시 최고 시청률이 44.3% 를 기록했을 정도. 녹록치 않은 경력을 지닌 연기파 채시라와의 연기대결은 <왕과 비> 의 사상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는데 1등 공신이라 할 만하다.


후보 2. 장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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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하면 떠오르는 여자하면 당연히 장녹수다. 연하의 연산군에게 장녹수라는 존재는 아내이자, 첩이었고, 어머니였다. 연산군 시대의 개막과 함께 그를 파멸로 이끌고 결국은 자신까지 돌무더기 무덤 속으로 들어간 시대의 요부. 민중에게는 증오의 대상이었던 동시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녀는 지금까지도 연산군과 함께 한국 사극에서 가장 사랑받는 존재다.

그렇다면 이 '요부' 를 실감나게 그려 낸 인물은 누가 있을까. 1971년 <사모곡> 에서 김세윤과 호흡을 맞춘이는 이제 원로 배우 소리를 듣는 고은아이고, MBC <설중매> 에서는 '섹시배우' 이미숙이, 영화 <연산군> 에서는 강수연이 장녹수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자타공인 최고의 장녹수는 KBS <장녹수> 의 박지영으로 유동근과의 연기 앙상블이 빛났을 뿐 아니라 장녹수가 살아 돌아온 듯 한 실감나는 연기력으로 대내외적인 찬사를 받았다.

19999년 <왕과 비> 에서는 지금은 고인이 된 故 이혜련이 안재모와 호흡을 맞춰 안정된 연기를 선보였고, 작년 영화 <왕의 남자> 에서는 배우 강성연이 '녹수' 역을 맡아 남성 중심의 영화에서 카리스마를 뽐내는 등 수많은 스타들이 장녹수라는 캐릭터를 거쳐갔다. 연산군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본 것은 장녹수가 아니라 수근비였으나 여전히 장녹수라는 인물은 스타들이 탐을 내는, 연산군과 운명을 같이 한 '매력' 있는 '여성' 인 셈이다.


후보 3. 인수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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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이 등장했으니 '인수대비' 가 없을 수 없다. 할머니와 손자의 관계지만 '폐비 윤씨' 의 사사사건을 계기로 정치적으로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었던 연산군과 인수대비는 조선 500년 역사 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폐륜으로 그 끝을 맺었다. 20대에 청상과부가 되어 잠저로 나온 뒤, 예종 시대의 과도기를 거쳐 자신의 둘째 아들을 왕으로 밀어 올리고 훈구파와의 강력한 결탁으로 성종 시대를 안정을 추구했던 한 여걸의 죽음이 그토록 비참했던 것은 우리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이자 아픔이다.

우리에게 '소혜왕후' 라는 이름보다 '인수대비' 라는 이미지로 더욱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는 이 캐릭터는 지금까지 수많은 연기파 배우들이 거쳐갔다. 이제는 영원한 배우로 기억되는 황정순 선생을 비롯해 영화 <연산군> 에서는 중견배우 정혜선이, <설중매> 에서는 고두심, <장녹수> 에서는 반효정, <한명회> 에서는 김영란, <왕과 비> 에서는 채시라, 영화 <왕의 남자> 에서는 윤소정 등이 열연했다. 특이한 점은 정혜선이나 고두심, 채시라 등의 여배우들이 모두 20~3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노역을 소화했다는 것.

인수대비의 파란만장한 삶을 20대부터 그려내려다 보니 비교적 젊은 배우를 기용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일테지만 어찌되었건 지금으로 보자면 모두 자타공인 '연기파' 들이 이 역을 거쳐갔으니 인수대비야 말로 '연기파 제조기' 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역사의 격랑 앞에 힘차게 몸을 던져 자신의 아들을 정상에 우뚝 세웠던 정열적인 조선의 어머니이자, 조선 왕조 500년을 안에서 지킨 인수대비는 양보와 자애를 강요 당하는 진취적 현대 여성들에게 지금까지도 소중한 교훈을 남기고 있는 모양이다.


후보 4. 한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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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최고의 간신이자 사육신과 대비되는 조롱의 대상이면서도 왕권이 약화되던 단종시대를 철인군상과 같은 의지로 뒤엎고 결국은 성종시대의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명신(名臣)의 반열에 그 이름을 올린 한명회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재평가 되면서 그 역사적 명성을 달리했다.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때 의도적으로 이루어진 '사육신 띄우기' 로 명성에 흠집을 냈던 한명회는 이제야 제 위치를 찾으며 역사적으로 받아 마땅한 평가를 받고 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는 이 유명한 칠삭동이를 맡은 배우들은 정진, 이덕화, 최종원 등. 특히 정진 같은 경우에는 70~80년대 문화를 향유했던 사람들에게 최고의 '한명회' 로 기억되는 인물로 지금 보아도 온 몸에 전율이 흐를 정도다. 이덕화는 자타공인 가장 유명한 한명회로 회자되는 배우로서 신봉승이 쓰고 그가 타이틀롤을 맡았던 드라마 <한명회> 는 여전히 KBS 가 자랑하는 사극 중 하나로 남아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도, 안목도 달라진다. 미래의 한명회는 우리에게 또 어떤 인물로 기억 될 것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의 '공과' 를 둘째치고서라도 단종-세조-예종-성종-연산군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한명회' 라는 이름이 미친 거대한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리라.


후보 5. 황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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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여자가 아닌 다음에야 후세에 그 이름이 남는 것은 쉽지 않다. 하물며, 천한 기생의 신분으로서는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더욱 시급한 일일진대 오직 단 한사람, 명월 '황진이' 는 그러한 평가를 거부한다. 양반 출신의 여성으로 태어나 기생의 길을 택한 여자. 화담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 로 불리우는 조선 최고의 여성 문학가. 벽계수를 골탕 먹이고 지족선사를 파계시키며 세상을 발 밑에 둔 여성. 그것이 바로 기생 황진이의 정체다.

요부의 이미지와 순결한 문학가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황진이는 1957년 영화 <황진이> 에서 처음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때, 대한민국 최초로 황진이를 연기한 이는 전설의 스타 도금봉. 그 이 후, 강숙희, 김지미, 이미숙, 장미희, 하지원, 송혜교 등이 그 뒤를 이으며 이 매력적인 기생 아니, 시인의 일생을 스크린과 브라운관에 담아내고 있다.

최근 영화 <황진이> 가 개봉되면서 송혜교의 '황진이' 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개인적으로 한마디 덧 붙이자면, 영화 자체의 매력과는 상관 없이 송혜교는 그 위치에서 충분히 잘 해냈다. 송혜교의 황진이가 하지원의 황진이보다 매력적이지 못했던 까닭은 하지원이 송혜교보다 월등히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라 황진이에 대한 작품의 접근이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오히려 송혜교는 <황진이> 를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녀가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 로 남아줬으면 좋겠다.


후보6. 김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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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와 광해군,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사랑한 여자였던 김개시는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정쟁의 역사 속에서 그 요망한 이름을 남기고 있다. 선조의 독살설과 인목대비에 대한 핍박, 광해의 실책에 모두 관련되어 있는 김개시는 일개 상궁의 신분으로 대북 정권의 창구 역할을 하면서 정사를 좌지우지한 요화였으니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테지만.

이 요화를 연기한 이는 <회천문> 의 원미경, <서궁> 의 이영애, <천둥소리> 의 이주화, <왕의 여자> 의 박선영 등이고 이들과 함께 광해군을 연기한 이는 이희도, 김규철, 김주승, 지성, 김개시와는 정치적으로 반대적 입장에 서 있던 인목대비는 권재희, 이보희, 이현경, 홍수현이 열연했다. 개인적으로 <서궁> 의 이영애와 이보희의 연기는 나름대로 재밌게 본 편이다.


후보 7. 장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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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글에서 자주 했고, "역대 장희빈" 에 관한 글까지 이미 쓴 상황에서 더 할 말이 무에 있을까 싶으랴만은 해도 해도, 봐도 봐도 재밌는 것이 바로 '장희빈' 이다. 1대 김지미, 2대 남정임, 3대 윤여정, 4대 이미숙, 5대 전인화, 6대 정선경, 7대 김혜수로 이어지는 장희빈의 역사는 곧 한국 사극의 역사와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장희빈> 이 만들어 질 때는 항상 '장희빈을 재평가 하겠다.' 는 거창한 구호를 앞세우지만 결국은 '현모양처' 인현왕후와 '악녀' 장희빈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로 시청자의 이목을 끈다는 것. 아직도 장희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악녀와 요부' 라는 차원에서 한 치 앞도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장희빈의 정치적 역량을 보여주려 했던 김혜수의 <장희빈> 이 나중에서는 그저 '독한 여자' 로만 기억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장희빈은 장희빈이다. 장희빈은 이미 역사라는 차원을 넘어서 한국 사극에서 가장 '쓸 만한' 캐릭터로 자리 잡았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를 이미 포함하고 있는 인물이다. 여자vs여자의 싸움에, 선과 악이라는 극명한 대립을 즐겨하는 시청자들의 입맛을 굳이 거스르면서 바꿀 필요는 없다. 장희빈에 대한 재평가는 드라마가 아니라 역사학계에서 하면 될 일이다.

아, 그리고 한가지 더. 그렇다면 이들과 호흡을 맞춘 인현왕후는 누가 있을까. 1대 도금봉을 시작으로 2대는 태현실, 3대 김민정, 4대 이혜숙, 5대 박순애, 6대 김원희, 7대는 박선영이 맡았다.


후보 8. 혜경궁 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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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궁궐 문학의 정수라고 일컬어 지는 <한중록> 의 지은이로 유명한'혜경궁 홍씨' 는 지금껏 정치적인 이유로 남편 사도세자를 여읜 비운의 주인공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오히려 사도세자의 구원 요청을 차갑게 외면한 것은 바로 혜경궁, 그 자신이었다. 자신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했던 남편에게 -그것도 정략결혼을 한 남자에게- 그녀는 사랑도, 애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을 버리는 대신에 아들에게 모든 것을 '올인' 했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뒤에도 사도세자의 씨앗인 정조를 그대로 왕위에 올린 이유는 혜경궁 홍씨의 강력한 의견 표명이 단단히 한 몫을 거들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버리되 자식까지는 버리지 못했던 혜경궁은 정조를 제거하려는 친정 집안의 움직임에 격렬히 반대하고 정치적 공세를 펼침으로써 마침내 '정조시대' 를 열어제쳤다.

정조 시대에 이르러 사도세자의 일에 관련해 자신의 가문인 풍산 홍씨가 풍비박산 나게 되자 그녀가 꺼내든 카드가 바로 그 유명한 <한중록> 임은 이미 유명한 사실. '한가한 날의 기록' 이라는 뜻의 <한중록> 은 끊임없이 사도세자의 정신병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친정을 옹호함으로써 혜경궁 홍씨의 정치적 돌파구 역할을 했다. 재밌는 것은 <한중록> 을 쓰던 혜경궁 홍씨의 나이는 이미 70 줄이었으니, 그녀야 말로 영조와 정조 시대를 관통하는 진정 노회한 정객이었던 셈이다.

이야기로 잠시 딴데로 새버렸는데 다시 돌아와서 '혜경궁 홍씨' 를 맡은 여배우는 누가 있을까? MBC <안국동 아씨> 의 김영란을 시작으로, <한중록> 의 최명길, <하늘아 하늘아> 의 하희라, <대왕의 길> 의 홍리나 등이 바로 혜경궁을 연기한 배우들이다. 


후보 9. 흥선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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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이라는 빛나는 이름과 '쇄국' 이라는 역사적 오명을 동시에 쓰고 있는 인물, 흥선 대원군. 상가지구로 시작해 조선말 가장 혁신적인 개혁가로 이름을 날렸던 그의 삶은 드라마로 그려내기에 가장 적합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권불십년' 이라는 말처럼 10년만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끊임없는 정치적 재개로 결국은 을미사변이라는 역사적 책임을 떠 맡을 수 밖에는 없었던 사람. 

대원군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모두 당대 최고의 카리스마라고 일컬어지는 인물들로 영화 <청일전쟁과 여걸민비> 의 김승호를 비롯하여, <민비> 의 김성원, <풍운> 의 이순재, <대원군> 의 임동진, <찬란한 여명> 의 변희봉, <명성황후> 의 유동근이 바로 그들이다. 특히 이순재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연기 경력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바로 <풍운> 을 꼽기도 했는데, 그 만큼 대원군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임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후보 10. 명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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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가 나왔으니 며느리가 빠질 수 없다. 바로 '명성황후' 가 그 주인공이다. 조선의 마지막 왕비이자, 대한제국 최초의 황후였던 그녀는 1895년 일본인들에게 잔인하게 시해당하기 직전까지 조선 정계를 쥐락펴락 했던 진정한 여걸이었다. 명성황후의 정치적 행적에서는 '공' 보다 '과' 를 더 많이 찾을 수 밖에 없겠으나, 그녀의 죽음과 함께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것은 명성황후라는 한 인물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영향력을 새삼 되새기게 한다.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리했고, 드라마에서도 여과없이 반영 됐다. 그러나 대부분 드라마들은 명성황후에게 있어서 '관대한' 시각을 가졌을 뿐더러 미모의 여배우를 캐스팅함으로써 명성황후에 대한 재평가에 앞장 선 편이다.

영화 <청일전쟁과 여걸민비> 에서 원로배우 최은희가 김승호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대중문화사에 등장한 '명성황후' 는 <민비> 의 김영애가 그 바통을 이어 받으며 브라운관에 진출했고, 다시 한 번 김영애가 <풍운> 에서 열연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김영애 이 후에는 <대원군> 에서 연기파 김희애가, <찬란한 여명> 에서는 하희라, <명성황후> 에서는 이미연, 영화 <한반도> 에서는 강수연이 맡았다.

지금 젊은 층에게 가장 사랑받는 명성황후는 이미연으로서 그 동안의 강인하고 독한 이미지를 순화시키고 마치 멜로물의 여주인공 같은 느낌을 투영함으로써 명성황후의 이미지를 재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시 조선으로.

최근 <주몽><대조영> 의 경향으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를 벗어난 '탈조선화' '반조선화' 현상은 주목할만한 현상이다. 고려 시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태조 왕건> 이 후에, <제국의 아침><무인시대><신돈> 등은 고려시대를, <주몽><연개소문><태왕사신기> 등은 고구려를, <대조영> 은 발해를 다룸으로써 조선이라는 시간을 벗어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2007년 하반기의 움직임을 보면 한국 사극은 다시 '조선' 을 주목하고 있다.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왕과 나>, 정조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리려는 <이산 정조>, 조선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 등은 이미 편성이 거의 확정 된 상태로 'Come back 조선' 을 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왕과 비><신돈> 의 정하연과 <내 남자의 여자> 에서 열연중인 김희애가 손을 잡고 <비운의 이방자 여사> 를 준비중이어서 또 다른 근대사의 비극을 보여 줄 참이다. 왜 그들은 다시금 조선에 주목하기 시작했는가.

그 이유는 바로 '조선' 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시청자들에게 긴밀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연산군, 장녹수, 인수대비, 장희빈, 정난정, 영조, 정조, 혜경궁, 대원군, 명성황후 같은 인물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친숙도는 이미 40여년간 지속되어져 왔으며 그것이 비록 '식상' 하다고 할지라도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어 올 수 밖엔 없다. 한국 최고의 사극 감독이라고 일컬어지는 김재형과 이병훈이 '닳고 달은' 연산군과 정조를 들고 나온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최근의 사극들은 조선으로 컴백한 것일뿐 인물에 컴백한 것 같지는 않다. <왕과 나> 도 연산군이 아닌 김처선이 주인공이고, <이산 정조> 도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영조나 사도세자, 혜경궁이 아니라 바로 정조의 일대기를 본격적으로 다루려고 하고 있기 ?문이다. 친숙한 배경과 신선한 캐릭터로 무장한 2007년 사극들. 그들은 과연 얼마나 새로운 이야기로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한국 사극의 역사, 그 역사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된다,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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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의 연산군은 누구? 당신의 투표를 기다립니다 (동영상 비교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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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즐겁고 신성한 것이라 여긴 신라시대 여인들이 칠거지악을 내세우는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갑갑해서 모두 기생이 됐거나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외국도 그런 것인지 우리 민족이 유달리 성을 사랑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언어에 유독 음담패설과 성 관련 욕설이 많은 걸 보면 조선시대의 악랄한 억압은 강한 것에 대한 더 강한 것을 통한 반작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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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점잖은(?) 조선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던 섹스 스캔들'들을 모아보려는데, 이미 많은 분들이 이에 대한 글을 쓰셨고, 이 블로그에도 황진이나 어우동에 대한 글이 있으니, 링크를 통한 소개만으로 내 수고를 덜고자 한다.

↓이 글↓은 카페글이라서 검색을 통한 조회는 되지만, 링크를 따라가면 조회금지로 나와서 원본 출처 명기 후에 표기한 것임.

조선시대 스캔들

영화 <스캔들>이 나오기 전에는 조선시대 스캔들이야 과부가 머슴과 도망가 숨어 살거나 결국 자살을 택하는 것 정도의 고루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어우동, 사방지 등 한국형 에로 영화의 소재가 모두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기억하자.


어우동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그리고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들과 사랑을 나눈 여자이다. 조선 성종 때의 실존 인물인 어우동은 본래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손자 며느리였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과의 간통 문제가 불거져 이혼당했고 그 이후 노소, 근친을 가리지 않고 숱한 염문을 뿌린다. 어우동은 한번 관계를 맺은 남자는 절대 헤어나오지 못할 만큼 매력적이었는데 애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몸에 문신하도록 강요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애정 행각이 구설수에 올라 풍기문란 죄로 처형된다. 야사에 의하면 당시 어우동의 형량은 고작 곤장형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와 연루된 고위 관리들이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해 사형을 고집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의 책임감없는 행동은 한결같다.



믿기지 않겠지만 500년 조선조 동안 왕실 여인들의 동성연애 사건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조선시대에 궁궐 내 동성연애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세종대왕이 이와 관련된 벌칙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그런 세종대왕이 자신의 며느리가 동성연애자임을 알았을 때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성군으로 알려진 세종대왕을 충격에 빠뜨린 며느리는 후에 문종이 되는 세자의 둘째 부인인 봉씨. 실록에 의하면 봉씨는 거짓말로 임신과 낙태를 번갈아 하고 술을 즐겨 만취한 일이 많았다고 전한다(물론 이는 봉씨를 고운 눈으로 보지 않은 관리들의 악의에 찬 기록일 수도 있다). 그러던 어느날 궐내에 여종 소쌍이 세자빈과 같이 잔다는 소문이 떠돌았고 왕의 문초를 받던 소쌍은 세자빈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잠자리를 같이 했다고 고백한다. 결론? 물론 세자빈은 폐위됐고 친정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그 아버지도 자결했다.



드라마 <대장금>의 배경이 되는 중종 때 조정은 백정의 딸을 양반의 정실 부인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로 한바탕 시끄러웠다. 결국 중종이 어려운 시절에 동고동락한 천민의 딸을 양반의 정식 아내로 인정하라는 명령을 내려 일단락된 이 사건은 조선 전체가 들썩거렸던 백정의 딸 양씨 스캔들이다. 폭군 연산군은 예쁜 여자라면 유부녀건 처녀건 가리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던 어느 날 연산군은 이장곤이라는 관리의 아내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의 여자로 만든다. 이에 격분한 이장곤은 홧김에 아내를 죽이고 함경로 도망친다. 도망자 신분의 이장곤은 백정 양씨의 집에 얹혀살게 되고, 정말 괜찮은 그 집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 도망자 생활 몇 년 만에 중종의 즉위로 조정으로 돌아온 이장곤. 그동안 양씨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이장곤은 동고동락한 아내를 버릴 수 없어 조정에 선처를 부탁한다. 결국 이장곤 덕에 부인 양씨는 정경부인이 되고 친정은 모두 천민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정경부인 양씨의 이야기는 나중에 소설 <임꺽정>에도 등장하는데 임꺽정은 정경부인 양씨의 조카로 설정돼 있다.


언젠가 KBS <역사 스페셜>에서 지독한 사랑으로 소개된 바 있는 홍랑과 김덕창의 스캔들은 이렇다. 김덕창은 함경도 변방에 발령을 받고 그곳에서 시와 음악에 뛰어난 관기 홍랑을 만난다. 서로 뜨거운 사랑을 나누던 두 사람은 결국 김덕창의 임지 변경으로 헤어지게 되는데 어느 날 홍랑은 한양에 있는 김덕창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당시 관기는 임지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 있음에도 홍랑은 연인을 찾아 한양에 오게 되고, 한양에서 둘은 다시 한번 뜨거운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한양 한복판에 아내까지 있는 양반 관리가 법을 어긴 관기와 함께 지낸다는 것은 대단한 스캔들이었고 김덕창은 파직 후 객지에서 살해됐다. 사실 개인적이기까지 한 이야기가 이렇게 자세하게 전해지는 이유는 후에 홍랑이 김덕창을 위해 평생 수절했고 결국 김덕창과 나란히 묻혔다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사회 금기를 깨고 사랑을 이룬 그녀의 용기가 더 부럽다.


양녕대군은 동생을 위해 일부러 패륜아 행세를 한 꽤 멋진 왕자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양녕대군을 호탕한 풍류가로만 생각하기에는 입에 담기 민망한 스캔들이 많다. 양녕대군이 일으킨 스캔들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시끄러웠던 것은 유부녀인 어리 강간 사건이다. 어리는 한 정승의 첩으로 병이 있고 남편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지만 양녕대군은 그녀를 납치해 강제로 관계를 갖는다. 심지어 양평대군은 어리를 궁궐과 지방 유배지에까지 끌였들이는데 이는 연산군의 스캔들을 제외한 조선시대 최고의 섹스 스캔들로 기록되고 있다. 일부에는 이 어리 사건으로 왕세자에서 폐위됐다는 사실을 들어 당대의 로맨스로 미화하지만 결국 양평대군이 어리를 버리고 왕에게 잘못을 빌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 어쨌든 그 이후의 어리의 삶은 기록에 전해오지 않는다.

출처
:아름다운 만남의 동행  원문보기





영웅은 수많은 미녀들을 취해도 호남으로서의 기개나 풍류로 포장하는데 비해, 여자들은 조선시대가 아닌 현대의 미국에서도 추악한 스캔들의 여주인공으로서 등장하는걸 보니 이 또한 남녀차별의 일종인 것 같아서 과히 유쾌하진 않다만.. 나 역시도 그녀들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 걸 보면 나도 똑같은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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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춤과 시로 당대의 문장가들과 세도가들을 무릎  꿇게 했던 황진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녀이기 전에 철학자요, 예술가의 삶을 살았던 그녀는 동서고금을 통해 몇 안되는 여장부였다.

30년을 수행한 지족선사를 하룻밤에 파계시킨 미모, 화담 서경덕과의 우정, 그녀가 그리워한 벽계수, 당대의 가인 송순과의 만남, 그녀가  죽은 뒤 그녀의 무덤에 술을 올렸다 하여 관직헤서 파면당한 벽파...
그녀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며 아직도 우리의 마음속에 맴돌고 있다.


황진이가 기녀가 된 까닭

비록 황 진사의 서출로 태어난 그녀였지만 어느 여염집 여자아이보다도 총명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황진이가 집을 뛰쳐나가 기생이 된 까닭은 그녀의 미모 때문이었다. 황진이가 사는 마을의 한 총각이 먼발치에서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는 그만 상사병에 걸려 누워 있다 결국 죽고 말았다.

이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는 황진이는 어느 날 집 앞에서 상여 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웅성거렸다. 황진이가 사는 집 앞에서 상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예로부터 상사병에 걸려 죽은 사람은 그 집 앞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벌일세. 그러니..."

더 이상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황진이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옷장 속에 곱게 접어 둔 적삼과 치마를 꺼내 사람들에게 주었다. 상여꾼들이 그 옷을 관 위에 얹어 놓자 비로소 상여가 움직였다.

황진이는 자기 때문에 죽은 자의 상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인생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의 외모 때문에 한 남정네가 죽었다. 내 용모가 사람을 죽인 것이다. 내가 시집을 간다면 다른 남정네들이 또 죽게 될지 모른다.'

황진이는 여러 모로 생각 끝에 기생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 
(이건 좀 너무 유치한데..;;ㅋ)

황진이가 기생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노라 하는 문장가와 풍류객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세상의 풍류객들은 황진이를 만나러 먼 길을 달려 송도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황진이를 두고 하늘에서 인간 세계로 내려온 선녀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황진이가 노래를 하면 모두들 이렇게 심금을 울리는 절조는 처음이라며 감격해 마지않았다. 그녀는 시를 잘 지어 시인 판서 소양곡과 사랑을 나누었으며, 노래를 잘 불러 당대 최고의 가인 송순과 친하게 지냈으며, 풍류를 알아 당대의 풍류가인 이사종과 6년 동안 환상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내노라 하는 남정네들이 그녀 앞에선 맥도 못 쓰고 비실거렸다.

그녀는 이제 이런 부류의 남자들말고 색다른 남자들을 농락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은근히 들었다. 자신처럼 아름다운 여자의 유혹을 뿌리칠 남자가 과연 있을까? 결국 그녀는 커다란 모험을 시도하기로 했다.



하룻밤에 파계된 30년 생불 지족선사

황진이 인형
당시 30년 동안 불도를 닦아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지족선사가 그녀의 첫 번째 유혹 대상이었다.

천마산 청량봉 아래에 있는 지족암으로 스님을  찾아간 날, 지족선사는 산 아래에서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알 만한 기생 황진이가 자신을 찾아온 것에 그만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산에서 불공만 드리던 스님은 눈이 부시게 빛나는 황진이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이미 스님의 마음을 꿰뚫어본 그녀는 슬슬 스님을 농락해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스님. 저로 인해 상사병에 걸려 죽은 총각이 있나이다. 남자들은 예쁜 여자를 못 잊어 죽을 수도 있나이까?"
"허허! 나무관세음보살!"

 지족선사는 황진이의 요염한 자태에 그만 넋이 나가고 말았다. 제대로 황진이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잘못하다간 30년 수도가 도로아미타불이 될 판국이었다.

'과연 빼어난 미모를 가졌구먼.  저 정도의 얼굴이면 상사병이 걸릴 만도 하겠어.'


시간이 흘렀다. 산사의 밤이 깊어지자 지족선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를 덥석 안아 버렸다. 지족선사의 가슴에 안긴 그녀는 요염한 표정을 지으며 본격적으로 유혹했다. 그날 지족선사와 밤을 함께한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새벽녘 암자를 내려왔다. 30년 불공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기녀의 묘한 웃음 뒤에는 허탈감이 느껴졌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화담

지족선사를 화룻밤 사이에 파계시킨 장본인 황진이는 이번에 화담 서경덕에게 화살을 겨눴다. 대학자 서경덕을 만약 유혹할 수 있었다면 사내들은 늙은이고 젊은이고 모두 계집 치마폭에서 놀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지 모를 일이다. 그녀는 서경덕 선생을 점찍은 다음부터 욕망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시정 잡사를 멀리하고 오로지 초당에 기거하며 학문에 정열을 불태우는화담 선생. 만인의 존경을 받는 대학자를 반드시 자신의 미모로 유혹해 그의 고매한 인격과 높은 학문을 일시에 땅에 떨어뜨려 보겠다는 일종의 오기가 충만해 있었다.

그러나 화담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상황은 달랐다.

지족선사는 자신의 미모에 너무 당황해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는데, 화담은 달랐다. 황진이가 큰절 올리자  편히 앉으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황진이의 미모따위엔 전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래, 어쩐 일로 날 만나러 왔소?"
"일찍이 선생님의 고매하신 인격과 높은 학문의 경지를 들었사옵니다. 미천한 제가 선생님의 고매한 정신을 배우기 위해 이렇게 불쑥 찾아뵙게 되었나이다."

황진이와 화담은 서로 학문과 시를 겨루어 보았다.
밤이면 술과 춤으로 화담 선생을 휴혹하려 했으나, 화담은 황진이를 그저 귀여운 어린아이 정도로만 여겼다. 황진이는 오기가 발동해 며칠 동안 화담을 유혹했지만 화담 선생은 전혀 그런 것과는 무관한 표정이었다.

황진이는 생각다 못해 마지막으로 육탄 공세를 취하기로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초저녁부터 황진이는 비를 맞고 돌아 다녔다. 탄력 있는 유방. 가는 허리, 물기를  머금은 그 자태는 한 마리의 학을 연상시켰다. 황진이는 온갖 교태를 다 보이며 드러난 물기 어린 몸으로 화담을 방에 들어갔다.

"선생님. 너무 추워요."

황진이는 화담 선생이 앉아 있는 곁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화담과 그녀의 살갖이  부딪혔다.

"허허, 이런. 온몸이 비에 젖었구려. 어서 옷을벗고 이리 들어오시오."

옷을 벗으라는 화담의 말에 황진이는 옳거니 너도 별수없구나 하며 화담 앞에서 옷을 하나하나 벗었다.
이윽고 눈부신 그녀의 알몸이 드러났다. 그러나 화담은 아무렇지 않은 듯 젖은 옷을 주섬주섬 챙겼다.

'아니, 내 벗은 몸을 보고도 아무런 동요가 일지 않는단 말인가!'

그녀는 잠시 당황한 표정으로 화담을 쳐다보았다.

"젖은 몸으로 그대로 있으면 감기가 드니 어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있으시게. 내 옷을 말려 줄 터이니."

화담은 알몸인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는 옷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 그는 황진이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코를 골며 이내 잠이 들었다. 황진이는 저절로 화담의 인격에 고개가 숙여졌다. 한 여자가 남자에게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수롭지 않은 듯 잠이 든 화담의 못습을 보면서 황진이는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진이는 화담에게 존경의 눈길을 보냈다.

이튿날 그녀는 마른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는 화담에게 큰 절을 올렸다. 그리고 무릎을 꿇은 채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송도의 삼절(三絶)을 아시나이까?"
 "송도삼절? 글세, 그게 무슨 뜻인고?""송도에는 삼절이 있사온데, 하나는 박연폭포이고, 또 하나는 황진이옵고, 나머지는  화담인가 하옵니다."

화담은 대답 대신 미소를 머금고는 황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연에서는 박연폭포이고, 여자 세계에서는 자신이며, 남자 세계에서는 화담이란 말이었다. 송도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황진이는 문장의 대가들과 시를 지으면서도 절대로 뒤떨어지는 법이 없었다고 전한다.


멋진 남자를 그리워한 황진이

그러나 그녀도 여자였으므로 멋진 사내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노라 하는  양반들이 그녀 앞에서 기어다니다시피 하였지만, 마음에 드는 사내가 있으면 언제 그를 다시 만날까 하는 그리움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하였다. 이렇듯 멋진 사내를 그리워하는 그녀의 외로움은 결국 시가 되어 오늘날 고전문학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로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아야  가고 아니 오더이다.

어져 내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라 하더면 가랴 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황진이의 유혹을 뿌리치고 유유히 떠나간 사람이 화담말고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벽계수였다. 그는 황진이의 아름다움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라. 아무리 황진이가 유혹을 해 온다 하더라도 절대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하고는 황진이와 풍류를 즐겼다. 황진이는 귀인 벽계수를 유혹하기 위해 별 수단을 다 써 보지만 결국 벽계수는 도도히 흐르는 물처럼 스쳐 지나갔다. 황진이는 벽계수를 그리며 그 외로움을 시심으로 달랬다.

靑 山 裡 碧 溪 水 (청산리벽계수)
莫 誇 易 移 去 (막과이이거)
一 到 滄 海 不 復 還 (일도창해부복환)
明 月 滿 空 山 (명월만공산)
暫 休 且 去 若 何 (잠휴저거이약하)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오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그녀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남자를 그리워하며 밤마다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 허리을 둘에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 임 오신 날 밤이여든 굽이굽이 펴리라

그녀는 결국 임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 뜻을 펴지도 못하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만다. 마흔이 채 못 된 그녀는 그때까지도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눈을 감았다. 생을 마감할 때는 누구나 자신을 뒤돌아보듯이, 황진이 역시 여자로서 살아온 삶에 대한 죄책감을 유언 속에 담았다.

"내가 살아 생전 내 몸을 사랑하지 못했으니 내가 죽은 후에는 관에 넣어 매장하지 말고 동문 밖 모래 틈에 시체를 버려 세상 여인들로 하여 경계하게 하라."

그러나 황진이를 아는 이웃들은 결코 유언을  따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시체를 장단 근교 구정고개 남쪽 길가에 고이 묻어 넋을 위로해 주었다. 후에 당대의 문장가 백호 임제가 관의 일로 송도에 왔다가 제일 먼저 황진의 안부를 물었다. 황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안 그는 즉시 묘소를 찾아가 제사를 지내 주었다.

그때 임제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었는다
홍안을 어데 누고 백골만 묻혔는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양반가의 사람으로 일개 송도 기생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제사를 지내 주었다는 소식이 장안에 퍼져 나갔다. 결국 조정에까지 이 사실이 알려져 그는공직에서 파면을 당했다.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가 기생 따위의 죽음을 슬퍼하여 넋을 위로하다니. 당장 파면시켜라."

백호는 덤덤한 심정으로 관직을 내팽개쳤다. 당대의 손꼽히는 문장가였기에 그녀의 죽음을 두고 슬퍼했던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황진이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은 기녀는 없었다.

그녀는 기녀이기 전에 예술과 철학을 통달한 신화적인 존재였다. 그녀는 가장 완숙한 아름다움을 유지해야 할 때 세상을 등졌다. 그래서 미인박명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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