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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내 의견과 거의 일치하는 글이 있어서 가져와 봄.

 

 

기사 원본을 보려면 제목을 클릭~.

 

 

장희빈만 악녀? 인현왕후도 투기를 했다

 

사극에서 인자한 인물로 그려진 인현왕후, 우리가 잘 몰랐던 '두 얼굴'

 

 

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인현왕후(홍수현 분)가 중궁전에 입성하면서 장옥정(김태희 분)의 악녀 본색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장희빈의 '흥행 포인트'인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궁중암투가 본격화됨에 따라 시청률 상승 또한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기존에 장희빈을 그린 이야기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희생과 인고'의 상징인 인현왕후가 매우 정치적이고 권력지향적인 인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과연 인현왕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담담히 인내하고 받아들였던 후덕한 여인이었을까, 아니면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그리고 있는 것처럼 중전의 자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야심 있는 여성이었을까.

'엘리트 코스' 밟았던 인현왕후의 자존심

 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인현왕후 역을 맡은 홍수현.
ⓒ 키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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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는 당시 조선 시대 여성 중에서도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었다. 서인세력 중에서도 뼈대 있는 가문을 자랑하던 여흥 민씨 집안의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딸이었고, 외할아버지는 서인의 거두 송준길이었으며 외척으로는 우암 송시열을 곁에 두고 있었다. 그가 숙종의 계비로 발탁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실제로 그를 왕비로 적극 추천한 이는 송시열과 숙종의 모후 명성왕후 김씨였다. 한 마디로 집권세력과 왕실세력의 비호를 한 몸에 받은 셈이다.

이렇듯 날 때부터 최고의 양갓집 규수가 열다섯 어린 나이에 지존의 짝인 왕비가 되었으니 자존감이 하늘을 찔렀음은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인현왕후 특유의 자신감은 궁 밖에 쫓겨나 있던 장희빈의 환궁 과정을 통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장희빈은 명성왕후에게 '남인의 간자'로 찍혀 궐 밖으로 쫓겨난 상태였다. 그러나 명성왕후가 승하하자 인현왕후는 장희빈을 다시 숙종의 곁으로 불러들인다. 한 마디로 남편의 첩을 제 손으로 끌어 들인 것이다.

인현왕후가 이런 선택을 한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첫째는 숙종이 장희빈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 둘째는 남인세력이었던 시할머니 장렬왕후 조씨가 장희빈의 환궁을 은근히 부추겼다는 것, 셋째는 인현왕후 스스로 장희빈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인현왕후는 자신보다 나이도 한참 많고 한미한 가문 출신의 장희빈을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양갓집 규수로서 그것은 해서도, 할 수도 없는 생각이었다.

인현왕후에게 장희빈은 숙종을 거쳐 가는 여러 여자 중 한명일 뿐이었다. 중전의 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이 평생을 걸쳐 두고두고 신경 쓸 '라이벌'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셈이다. 그러나 인현왕후의 안일한 생각과 달리 장희빈은 훨씬 영리했고 정치적이었으며 숙종의 사랑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여성이었다. 숙종의 총애를 받으며 날이 갈수록 기세등등해 지는 장희빈의 위세는 인현왕후로선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현실이었을 것이다.

인현왕후도 '투기'를 했다

 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왼쪽부터)김태희(장희빈 역)-한승연(최숙빈 역)-홍수현(인현왕후 역)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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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예의범절이 생활화된 데다가 왕비의 체면과 체통을 중시했던 인현왕후는 대놓고 장희빈을 구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에는 숙원의 첩지를 내리고, 다과를 함께 하는 등 후덕한 조강지처의 품격을 보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인현왕후 또한 중전 이전에 여자이니 어찌 투기를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는 장희빈이 매우 교만하다는 이유를 들어 회초리를 때리기도 했는데, 장희빈으로선 아무리 윗전이긴 하지만 자신보다 여덟 살이나 어린 사람에게 끌려가 매를 맞는 것이 보통 고욕이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인현왕후는 장희빈에 대한 숙종의 총애가 너무 지나치자 서인의 거목 중 한 명인 김수항의 증손녀를 후궁으로 들여 장희빈을 견제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재밌는 것은 김수항의 증손녀는 명문세가의 여식이라는 이유로 궁에 들어오자마자 당시 숙원이었던 장희빈보다 윗전인 숙의의 첩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소의 김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빈'의 바로 아래 단계인 귀인에 책봉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현왕후는 장희빈의 미천한 출신을 환기시키며 내심 그를 조롱한 것이다.

그러나 귀인 김씨의 입궁에도 불구하고 장희빈에 대한 숙종의 사랑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에 초조해 진 인현왕후는 직접 숙종을 찾아가 자신이 꿈을 꾸었는데, 꿈에 현종과 명성왕후가 나타나 "민씨와 장씨는 본래 원수지간으로 현재 장씨가 복수하려하며, 경신환국 후 원한을 품은 이들과 결탁하여 나라에 화를 미칠 것이다. 그리고 장씨 팔자에는 아들이 없고 민씨에게는 자손이 많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며 직접적으로 장희빈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현왕후는 "장씨는 전생에 숙종의 활을 맞고 죽은 짐승의 화신"이라는 험담까지 했는데,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숙하고 어진 인현왕후의 이미지와는 매우 상반된 모습이다. 인현왕후의 위와 같은 발언은 장희빈이 숙종의 첫 아들인 경종을 낳으면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폐비시키면서 아들도 낳지 못한데다가 체통을 잃고 '투기'까지 한 죄목을 함께 물었다. 몇몇 사료에서는 숙종이 인현왕후를 연산군의 친모인 폐비 윤씨보다 못한 죄인이라고 일갈했다고 전한다.

죽는 순간까지 장희빈을 궁지로 몰아

 인현왕후에게 장희빈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라이벌이었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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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에게 중전의 자리를 빼앗긴 인현왕후는 5년간 안국동 본가인 감고당으로 돌아가 폐출 생활을 감내했다. 정부의 제대로 된 지원조차 없었던 이 시기에 인현왕후의 몸과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손상됐다. 인현왕후가 서른다섯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이유도 바로 폐비 때 얻은 여러 가지 병증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1964년 서인 세력이 재집권한 갑술환국이 일어나면서 중전으로 복위한 인현왕후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7년이 넘는 세월동안 병마와 싸웠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그는 장희빈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못했다. 과거의 악연을 떨쳐 버리지 못한데다가 세자의 친모이기도 한 장희빈은 인현왕후가 살아 있는 그 날까지 가만 둬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언제든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만큼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제거'할 필요가 있었던 셈이다.

인현왕후는 승하하기 얼마 전부터 자신의 건강이 악화된 이유는 모두 희빈의 저주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나의 병 증세가 지극히 이상한데, 사람들이 모두 반드시 빌미가 있다고 한다"고 말했는데, 이 빌미란 것이 바로 장희빈의 저주를 뜻한다. 인현왕후의 이 같은 말은 차후 장희빈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로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무고했다는 죄목으로 인현왕후 승하 2개월 만에 사약을 받고 사사됐다.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역사 속의 인현왕후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린 것과 다른 '두 얼굴의 인물'이었다. 그는 명문세가의 딸로 태어나 깍듯한 예의와 품격이 몸에 밴 사람이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남편의 애첩에게 질투를 하는 평범한 여성이기도 했다. 불행히도 인현왕후는 궁인 출신의 장희빈이 자신의 라이벌이란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평생을 장희빈에 대한 콤플렉스와 피해의식에 시달렸다.

숙종과 함께 서오릉 중 하나인 명릉에 묻혀 있는 인현왕후는 지금쯤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어쩌면 끝끝내 '역사의 승리자'로 남아 연적이었던 장희빈을 희대의 악녀이자 요부로 전락시킨 것에 대해 매우 만족스러워 하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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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장희빈들이다. 동영상으로 한 번 비교해보자!

 

 

 

 

 

8대 장희빈이 등장하는 동이, 이병훈 감독이 알려주는 예전 장희빈과의 비교

 

 

 

 

제 5대 장희빈인 전인화 장희빈

 

 

이때의 숙종은 강석우 - 청춘스타였음ㅋㅋㅋㅋㅋ

인현왕후는 박순애 - 후덕한 왕후에 정말 잘 어울림. 

 

 

 

 

제 6대 장희빈인 정선경 장희빈의 오프닝.

 

 

숙종은 임호, 인현왕후는 김원희. 지금과 사뭇 다른 이미지.

 

 

 

장안의 화제였던 정선경 장희빈 사약 받는 장면

 

 

특히 사약 그릇 발로 차서 임호 임금 얼굴에 맞고 떨어지는 장면!!ㅋㅋㅋㅋㅋ

 

 

 

 

 

 

7대 장희빈 김혜수 장희빈과 그 외의 여인들 연기

인현왕후 - 박선영, 숙종 - 전광렬, 숙빈 최씨 - 박예진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송일국씨가 김춘택으로 열연..

너무 잘 생겼어..ㅠㅠ 근데 너무 미워.. ㅠㅠ

 

 

 

 

 

김혜수 장희빈 사약 받는 모습

 

 

 

 

 

 

 

8대 장희빈인 이소연, 동이 속에서 이소연 장희빈 사약받는 장면

 

 

예전에 소리지르고 발악하던 장희빈들에 비하면 너무도 점잖고 기품있다.

이때 숙종 - 지진희, 인현왕후 - 박하선, 숙빈 최씨(동이) - 한효주... ㅋ

 

 

 

 

 

 

마지막으로 김태희 장희빈...

아직 극 초반이라 이렇다 할 장희빈의 성격이 나오지는 않았으나

이제 본격적인 대결이 펼치질 듯 하여 기대중..

 

 

역대 장희빈들의 동영상을 보니 잠깐인데도 너무 너무 재미있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도 높은 시청률로 좋은 결과 얻을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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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장옥정, 사랑에 살다'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비록 시청률은 삼사 드라마 중 꼴찌이지만 (직장의 신, 구가의 서, 장옥정)

적어도 사극빠인 저한테는 흥미를 유발하는 부분이 많더라구요.

 

이 드라마 속에서 궁인들의 가벼운 행동거지나, 서인들의 지나친 왕권 도전 등이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숙종 이순의 불같은 성정, 냉철한 성격, 결단력있는 성격과 과단성,

그가 장희빈(희빈 장씨, 장옥정)을 사랑할 때의 모습 등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보여집니다.

 

 

요즘도 게시판, 카페, 블로그 등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드라마의 문제점 및 시청률이 낮은 이유는 역사 왜곡이라고들 하는데...
그 역사왜곡이라는 것이 착한 장희빈, 악녀 인현왕후 때문이라고 말을 하네요.

이 드라마의 문제점은 뚝뚝 끊기는 편집과, 과한 설정, 감없는 연출이지
캐릭터 설정은 전혀 문제가 없어요.


아, 물론 익숙하지 않다는 단점은 있지요.


하지만 숙빈 최씨를 무조건적인 선역으로 그렸던 동이에서조차도
장희빈을 이전의 무모한 악역으로 그리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리 따지면 동이야 말로 역사 왜곡 환타지 동화였음.)

 

 



장옥정(장희빈)을 보는 시선이 이리 달라지게 된 것은
한문으로 쓰여진 실록이 국역되면서 점점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인데요,


조선왕조실록을 보아도 장희빈이 악독하게 굴었다는 기록은 없어요.
그 어떤 장면에서도 장희빈이 사악하게 행동했다는 기록이 없거든요.

장희빈이 사악하게 행동했다는 것은 숙종이 마지막에 자진을 명하면서 내린 비망기에만

등장하는 표현이고, 그 전의 기록에는 없는 말입니다. 

 

중전에서 다시 희빈으로 강등된 후에 인현왕후에게 인사하러 가지 않았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사악한 행동이 없습니다. 적혀진 사실 자체가 없어요.

 

 

인현왕후를 저주한 죄로 인해서 죽었다?는 것조차도 제대로 된 물증이 없습니다.

 

실록을 찾아보면 최숙빈이 그리 말했고,

그것을 인현왕후 사후에, 장희빈 자진 어명이 떨어진 후에 조사하는 이상한 조사과정이 나올 뿐입니다.

실록을 찾아서 읽으면 읽어볼수록 장희빈이 좀 불쌍한 구석이 있네?라고 느끼게 될 정도입니다..

 


오히려 현숙하고 조신한 왕후의 이상형인 인현왕후가 우리의 기억과는 판이하게 다름에 놀라게 됩니다.

 

실록 속에는 인현왕후가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장희빈을 불러서 매질을 했다는 기록과

'숙원 장씨는 숙종이 전생에 죽인 짐승으로 원한을 품고 태어났다'고 폭언(?)을 퍼부은 기록이 있습니다.

 

숙종실록 21권, 15년 (1689년 기사) : 왕비 민씨의 간특한 정상을 참지 못하는 비망기

 

 

위키피디아 인현왕후 - 전체 내용을 보고 싶으면 여기를 클릭

 

민씨는 복위된 지 8년 만인 1701년 음력 8월 14일 서거한다. 민씨 사망하고 2개월 정도가 지난 음력 10월 8일 숙종왕세자의 생모 희빈 장씨에게 자진을 명한다. 이때 공식적인 죄명은 장씨와 궁인들이 민씨를 저주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진을 명한 이후에 뒤늦게 수사를 시작하는 등 그 과정이 정상적이지 않아 당시 조정 안팎에서 장씨의 무고의 사실성과 판결에 의구심과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인현왕후는 장희빈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숙종실록』 27년 9월 23일자는 왕비 민씨가 친정붙이 민진후(閔鎭厚) 형제에게 “지금 나의 병 증세가 지극히 이상한데, 사람들이 모두 ‘반드시 빌미가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고 적고 있다. ‘빌미’란 장씨의 저주로 병에 걸렸다는 뜻이었다. 『숙종실록』은 또 “숙빈 최씨(영조의 생모)가 임금에게 몰래 (장씨의 저주를) 고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숙종은 제주도에 유배 중인 장씨의 오빠 장희재를 처형하라는 명을 내림으로서 숙빈 최씨의 저주설에 손을 들어주었다.

예의바르고 정숙했다고 전하나 장희빈에게 매질을 하거나 전생에 숙종의 활을 맞고 죽은 짐승의 화신이라는 폭언을 하는 등 상반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덤은 서오릉 중 하나인 명릉(明陵)이며 숙종, 둘째 계비인 인원왕후와 함께 묻혀 있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이 전해져 옛 한글 연구에 참고가 되고 있으나, 소설 내용이 실록 등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다수이고 사건과 인명 표기에도 오류가 많아 사료적 가치는 인정되지 않는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은 영`정조대에 남성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밝혀져 인현왕후의 궁인이 아닌 인현왕후의 친족 일족이나, 그녀의 폐출에 반대했던 박태보의 후예가 쓴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5]

 

 

사악한 장희빈과 불쌍하고 후덕한 인현왕후는 서인들의 소설인 '인현왕후전'에 등장하는 내용이며,

수많은 사극과 드라마에 의해서 확대, 왜곡, 재생산되었습니다.

 

 

 

경종의 하초를 잡아당겨 경종을 고자;; (성불구?)로 만들었다는 것,
사약을 마실 때 발버둥쳤다는 것조차도 실록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임금의 사랑으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가

세자를 낳고도 희빈으로 강등된 것만으로도 억울해서 땅을 칠 노릇인데

사약 먹고 죽은 후에도 (이것도 실록에는 안나옴.) 몇 백년간이나 악녀의 상징으로 기억이 되다니...


아무리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이쯤 되면 너무한 거 아닌가요??

 

 

저는 인현왕후가 투기했다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 - 여인이자, 서인정권의 상징으로서 당연하다고 봅니다)

 

장희빈이 착하디 착했는데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인현왕후도, 장희빈도 예전의 이분법적인 선악구도 속의 인형이 아닌...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  납득 가능한 인간이었음을 믿습니다.

 

제발 이제라도 새로운 장희빈, 재해석된 장희빈과 인현왕후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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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사극 속의) 장희빈....

 

 

미모와 요사스러운 색기로 우유부단한 숙종을 홀리어서 중전 자리를 차지하고,

성정이 표독하고, 천성 자체가 사악해서 자신을 다시 불러준

순박하고 지고지순한 인현왕후를 모함하고 저주해서 죽게 만들었다...

 

 

이 여인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바는 대체적으로 사극에서 보여준 모습에 힘입은 바가 큰데..

이 사극 속의 장희빈의 모습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하면 조선시대 인현왕후를 모시던 궁인 혹은 서인이 쓴 것으로

짐작되어지는 작가 미상, 연대 미상의 작품, 인현왕후전'에 등장한 장희빈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 인현왕후전 원문 ------------------- 

 

 

 

"옛 한무제도 무죄한 구익부인을 죽였거니와 이제 장녀는 오형지참(五刑之斬)을 할 것이요. 죄를 속이지 못할 바로되 세자의 정리를 생각해서 감소감형하여 신체를 온전히 하여 한 그릇의 독약을 각별히 신칙하노라."

 

 

궁녀를 명하여 보내시며 전교하사,

 

 

"네 대역부도의 죄를 짓고 어찌 사약을 기다리리요. 빨리 죽임이 옳거늘 요약한 인물이 행여 살까 하고 안연히 천일(天日)을 보고 있으니 더욱 죽을 죄라. 동궁의 낯을 보아 형체를 온전히 하여 죽임이 네게 영화라, 빨리 죽어 요괴로운 자취로 일시도 머무르지 말라."

 

 

"네 중궁을 모살(謨殺)하고 대역부도함이 천지에 당연하니 반드시 네 머리와 수족을 베어 천하에 효시(梟示)할 것이로되 자식의 낯을 보아 특은으로 경벌을 쓰거늘 갈 수록 태만하여 죄 위에 죄를 짓느뇨?"

 

 

장씨 눈을 독하게 떠 천안(天顔=용안)을 우러러뵈옵고 높은 소리로 말하기를,

 

 

"민씨 내게 원망을 끼치어 형벌로 죽었거늘, 내게 무슨 죄가 있으며 전하게서 정치를 아니 밝히시니 인군의 도리가 아닙니다."

 

 

살기가 자못 등등하니 상감께서 진노하사 두 눈을 치켜 뜨시고 소매를 걷으시며 여성하교하여 이르시기를,

 

"천고에 저리 요악한 년이 또 어디 있으리요. 빨리 약을 먹이라."

 

 

장씨, 손으로 궁녀를 치고 몸을 뒤틀며 발악하여 말하기를,

 

"세자와 함께 죽이라. 내 무슨 죄가 있느뇨?"

 

 

상감께서 더욱 노하시어 좌우에게,

 

"붙들고 먹이라." 하시니,

 

 

여러 궁녀 황황히 달려들어 팔을 잡고 허리를 안고 먹이려 하나 입을 다물고 뿌리치니

상감께서 내려보시고 더욱 대노하사 분연히 일어나시며,

 

"막대로 입을 벌리고 부으라." 하시니, 여러 궁녀 숟가락 청으로 입을 벌리는 지라

 

 

(중략) 상감께서는 조금도 측은한 마음이 아니 계시고,

 

"빨리 먹이라." 하여, 연이어 세 그릇을 부으니

 

경각에 크게 한 번 소리를 지르고 섬돌 아래 고꾸라져 유혈이 샘솟듯 하니,

 

 

(중략) 상감께서 그 죽음을 보시고 외전으로 나오시며,

 

"시체를 궁 밖으로 내라." 하시고

 

----------- 이하 생략 -------------------------------

 

 

 

 

한편 실록 속의 장희빈...

 

장옥정, 흔히 장희빈으로 알려진 장옥정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유일한 경국지색(傾國之色)이다.

"자못 아름다웠다"고 짧게 표현됐지만 조선왕조실록이 인정한 유일한 미인인 만큼

장옥정이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유일하게 실록에 그 자태가 자못 아름다웠다고 적혀져 있는 여인,

유일하게 낮은 신분의 궁인에서 신분이 급상승한 여인,

유일하게 궁녀 신분으로 쫓겨나서 재입궁한 여인,

유일하게 6년이나 궁 밖에 있으면서도 왕의 마음을 쥐고 있던 여인

유일하게 후궁의 신분으로 궁 안에서 죽은 여인. (대비, 중전, 세자빈 외에는 무조건 출궁해서 죽어야 함.)

 

 

여러가지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장렬하게(?) 전사한 여인이다.

 

 

실제로 실록 속에는 장희빈이 인현왕후에게 저주를 퍼부었다는 것에 대한 물증이나,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해하려고 했다거나, 표독스러웠다거나, 이런 부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다.

 

오히려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를 약올려서 

인현왕후가 참다 못해 매질을 했다는 기록이 몇 번 나올 뿐인데...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한 인현왕후를 찾아가서 자랑한 거;;;)

 

임금이 실수로 한, 혹은 농담으로 했던 작은 이야기까지도 다 적혀있는 실록에

왜 인현왕후가 장희빈을 때리게까지 만들었던 건방진 행동은 하나도 적혀있지 않는 것일까??

 

 

이쯤 되면.... 

그동안의 장희빈 드라마나 장희빈 영화 속에서의 장희빈 모습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혹시 서인들이 승리한 역사에서 남인들에게서조차도 서인을 내리기 위한 도구로만 쓰여졌던

천한 신분의 장희빈이 오히려 권력 투쟁의 희생양으로 쓰인 가엾은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장희빈 상상화라는데... 서양화가가 그린 것이라서 우리 정서에 좀 안맞는 듯 하다.

실제 장희빈 이렇게 생겼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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