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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길 거리/먹고 듣고 보자!

잘 생겨도 너~무 잘생긴 유승호;; 바자 화보 2013년 3월호

by 파란토마토 2013. 2. 24.

입대 기다리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는 유승호.
어린 것이 개념도 꽉 찼고 생긴 것은 왜 이리 잘 생겼나.
암튼 잘 건강하게 다녀오길.





스무 살 청춘, 유 승 호

(2013. 3월호)



하와이의 서퍼들은 강하다. 노스쇼어의 사나운 파도를 거슬러 헤엄치는 이들은 파도가 가장 높아졌을 때 비로소 파도를 뚫고 나온다. 파도는 얼마나 잘 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다루느냐의 문제다. 지금 바다를 등지고 촬영중인 유승호도 세월과 시간, 세상과 대중의 시선이라는 파도를 뚫고 나오길, 그렇게 춤추듯 걸어오길. 이것은 하와이에서 날아온 유승호의 입대 전 마지막 화보이자 미리 보내는 첫번째 위문편지다.



글/ 윤혜정  진행/ 김민경  Photographed by Lee Youngjin

 





하와이의 하늘은 순진하다. 하와이 오하우 섬은 적도 가까이에 있는 탓에 늘 하늘은 땅에 낮게 깔려 있고, 구름도, 별도, 달도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옛날 옛적 하와이 사람들이 하늘의 움직임만 보고 시간과 내일 날씨까지 알아 맞출 수 있었던 건 그만큼 하와이의 하늘이 정직하기 때문일 것이다. 촬영 전날 로케이션 헌팅을 위해 차로 이동하던 중에는 "하늘이 참 드라마틱하다"고 감탄했다가 일행들로부터 대체 무슨 소리냐고 비웃음만 샀고, 촬영 중에는 구름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통에 해변에서 모래로 두꺼비 집을 지으며 해가 나가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지만, 어쨌든 난 하와이 땅의 따분한 평화로움을 '드라마틱한' 하늘이 채워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밤이 되어도 이렇게 구름이 빨리 움직이는 게 다 보일 줄은 몰랐다.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게 있고 귀를 닫아도 들리는 게 있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지금도 신기한 건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생각들이 유승호와의 인터뷰 사이사이, 말문이 막힐 때마다 떠올랐다는 거다. 유승호는 매우 예의바르고 수줍음이 많은 청년이었다. 청춘들은 별 이유 없이 웃어도 아름답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낯을 많이 가린다는 소문에 영화<페널티 킥을 맞은 골키퍼의 불안>의 주인공처럼 잔뜩 움츠려 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예거밤을 마시면서 쏟아지는 별을 지붕 삼아 수다나 떨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런 다정한 선문답이나 나누고 싶은 밤이었다. "승호씨, 세상이 깜깜해져도 여전히 볼수 있는게 있지 않을까요? 특히 순진하고 정직한 사람들은 더 그렇죠. 그러니, 너무 고민하지 말아요."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 일행은 잠깐 틈을 내서 함께 와이키키에 있는 쇼핑센터에 갔다. 각자의 시간을 가진 후 다시 만났을 때, 유승호는 트렁크만 한 레고 세트를 들고 있었다. 영화 <스타워즈>의 주 무대가 되는 거대한 우주선, 밀레니엄 팔콘 레고 세트, 1천 개가 넘는 피스로 구성된 이 밀레니엄 팔콘은 레고를 좀 하거나 혹은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로망의 시리즈로 통한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만드는 데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리기 때문이다. 주책없이 반색하며 달려들어 상자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내게 유승호는 이렇게 말했다. "군대 가기 전에 마지막 작품 활동 좀 해보려고요, (웃음)" 또래남자들만큼이나 쇼핑에는 관심이 없던 그가 구입한 물건이 레고인 건 무슨 사연이었을까? "처음 CF를 찍을 때 조그만한 레고 하나 사줄테니까 찍자, 그렇게 촬영하곤 했었어요. 만드는 걸 워낙 좋아하니까. 그래서 어렸을 때 엄청 많이 샀어요.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이건 애들이나 하는 건데? 싶어 친척 동생들 줬죠. 그래서 지금도 레고 보면 너무 사고 싶어요. 좀 창피하기도 한데, 그래도 내가 좋으면 되는 게 아닌가 하면서, 여자들이 쇼핑 좋아하고, 남자들이 차 좋아하듯이, 나도 레고가 좋을 뿐이니까요." 레고를 사고 '새콤달콤'을 먹고 싶어서 카메라 앞에 섰던 천진한 아이가 지금 청년이 되어 내 앞에 앉아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입대 날짜를 받아둔 스무 살 청년이라면 마치 내일은 없는 것처럼 청춘을 불살라도 시원찮을 판에, 군대 가기 전까지 한 달 동안 집에서 조용히 레고 조각이나 맞추고 있겠다니. "솔직히, 만날 사람도 많이 없어요. 인맥이 넓은 것도 아니거든요. 스태프 누나들이랑 가족들, 친한 친구 몇 명, 그렇게 밖에 없어요. 친구 사귈 시간도 없었고, 거의 일만 했으니까. 솔직히 놀아봤자 딴 생각만 더 들고, 제가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다 사람 사는데니까. 무엇보다 제가 너무 가고 싶어 했던 곳이니까. 너무 원했던 일이니까. 전 그래서 요즘 기분이 너무 좋아요. 진짜 좋아요. (웃음)" 





이번 해외 화보 촬영은 처음부터 '유승호의 입대 전의 마지막 화보이자 인터뷰'로 화제가 됐다. 유승호의 입대 사실은 드라마 <보고싶다> 방영 중 발표됐고, 그날 <바자> 사무실은 난리가 났었다. '유승호가 군대를 간다'는 사실을 두고 아쉬움을 표하는 지점은 꽤 여러 가지였다. 다름 사람이 아닌 유승호가, 2년동안 사라진다는, 그리고 하필이면 지금처럼 소위 '잘나갈 때'여야 하냐는. 이런 세간의 관심을 전해도 그저 웃기만 하던 유승호에게 왜 그곳에 그렇게 가고 싶었냐고 물었다. "군대를 가는 이유는 되게 많아요. 단순히 이미지 변신을 위해서는 아니에요. 물론 말 못할 이유도 많지만 일단 전 2년동안 그동안과는 다른 생활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인천에서 남자 중학교를 다녔거든요. 그때 <마음이>를 찍었었는데, 학교에 거친 남자 아이들 밖에 없었어요. 마음 터놓을 친구도 없었고요. 아이들 사이에서 부대끼면서 그 때 아마 해병대에 간다고 했을 거예요. 어린 눈에도 해병대가 강해 보였나봐요. 물론 대학을 안 가는 대신 해병대도 포기해야 했지만.(웃음)" 그러고는 다녀와서는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고 오리발을 내밀지 모르겠다며 웃는 유승호.



내 주위에는 유승호를 좋아하지 않는 여자들도 없지만, 그를 칭찬하지 않는 남자들도 없다. 대한민국에서는 특히 군대 문제는 도덕성과 직결되는 상황이고, 유승호는 신문 사설에서도 아주 올바른 예로 여러번 언급됐다. "감사한 일이지만 사실 이 상황 자체가 어리둥절하긴 해요. 군대를 가는 타이밍은 누구나 상황에 따라 다른 거잖아요. 또 어떤 연예인이 연예사병을 선택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제 친구들은 모두 올해 입대해요. 그냥 전 친구들과 똑같이 군대 가고, 제대해서, 사회생활 하는건데 그걸로 시선을 받는다는 게 이상하기도 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얼마 전 유승호는 대학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또 한번 주목 받았던 것 같다. "그것도 사연이 긴데... 난 어릴 때부터 현장에서 연기를 배워왔어요. 간다면 연극영화과일 텐데, 대학 졸업장을 위해 제가 그 기회를 독점하긴 싫었어요. 사람들이 다 인정할 수 있끔 열심히 연기하고, 대학은 공부하고 싶을 때 가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우린 대학이나 군대 같은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의 솔직하고 명료한 대답에서 유승호가 그 동안 무엇이 힘들었고, 앞으로는 어떤 어른으로 살고 싶은지에 대한 단서를 어렴풋하게나마 찾아가는 듯했다. 분명한건 아역 배우로 살던 그가 나이와는 상관없이 프로페셔널이 됐다는 거다.






내가 유승호에 대해 가장 처음 받은 인상은 그는 자신에 대한 고민을 숨 쉬듯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는 거다. 내가 누구이며,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며, 나의 곁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길 바라고, 이윽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어떤 연예인인지가 아니라) 고민하는 것. "언젠가 대한민국 배우가 한 번도 하지 않은 걸, 하지 못한 걸 내가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물론 군대든, 대학이든 그 말 때문에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그게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요" 길게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난 아마도 '하지 못한 것' 이라는게 연예인처럼 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모두들 정확한 입대 날짜를 몰라요. 훈련소에 마음 편하게 오는 사람 한 명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웬 배우 취재한다고 길 막고 그러면 얼마나 싫겠어요. 저도 싫고요. 최대한 조용히 가고 싶어요."



세상은 당연하다고 하는데, 유승호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 대학과 군대 말고 또 뭐가 있을까? "만약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전 사회복지를 공부했을 거예요. 예전에 <사랑의 리퀘스트 희망로드 대장정>을 했을 때였는데, 아... 너무너무 느껴졌어요. 뭔지 정확하게 말할 순 없어도요. 사실 연예인이라는 사람이 사회봉사를 하면, 이미지 때문이라고 당연히 생각하잖아요. 만약 진심이라고 해도, 그런 소리 듣기 싫으니까 사람들 모르게 봉사를 하는 거죠." 그리고 그는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있으면 환경 캠페인 같은 것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지난 여름 파주에서 잠실까지 운동을 다녔는데, 여름 내내 에어컨을 한 번도 켜지 않았었다는 에피소드와 함께.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했죠.(웃음) 모든 사람들이 에어컨을 켜는데, 나만 안 켜고 살 수 있을까. 사실 사소한 일인데, 굉장히 뿌듯하더라고요." 당연하다는 것과 당연하지 않다는 것, 그에 대한 고민이 유승호를 또래 연예인들과 다르게 만드는 가장 첫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승호의 다름'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드라마 <보고싶다> 때문이었다. 물에 빠진 치킨 말고 프라이드 치킨을 달라고 절규하던 꼬마 때부터 재능이 있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남자가 됐다'는 말로는 한참 부족한 유승호의 존재감을 실감했다고나 할까. 드라마에서 그는 '결핍'이 낳은 '괴물'을 연기했다. 불편한 육체, 모성의 부재,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기는 상실의 정서를 완벽하게 표현해 내는 그를 보며 소름 끼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날 선 인간의 욕망과 분노를 보여주며 극의 긴장감을 조절하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마지막 회, 창고에서 세 주인공이 일촉즉발의 대치 상태에 있을 때, 그가 손에 권총을 묶은 채 조이에게 "나 너무 아파, 나 좀 봐줘." 애절하게 부탁(혹은 명령)하는 부분은 정말 무서웠다. 눈, 코, 입 중 어디가 변화했는지 딱히 잡아낼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하게 표정이 변화하는 모습에는 혀를 내둘렸다. 반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여기가 나의 천국이야."라고 말할 때, 다른 사람이었으면 심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을 대사와 장면도 완벽하게 해리 보리슨의 것으로 만들었다. 스무살의 남자가 표현하기에는 너무 무겁거나 복잡했을 선악의 공존의 상태를, 유승호는 의연하게 끌고 나갔다. 게다가 원래 해리역할이 나이 지긋한 남자로 설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에는 추호의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유승호의 에너지는 강렬했다. 그건 대체 어디서 나오는 삼손 같은 힘이었을까?



"사이코패스 같은 역할을 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조금 더 나간 부분도 있어요. 분명히. 감독님이 컷 하고 나서 야, 너무 심하지 않냐, 그런 적도 있고.(웃음) 사실 더 보여주고 싶었죠. 하지만 이건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잖아요. 매체의 한계도 있었고 그래서 아쉬웠던 부분도 많아요." 해보고 싶었던 역할이라도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맨날 분노하는 표정 짓는 건 힘들었어요. 대본의 처음부터 끝까지, '분노를 참는 해리'라는 지문이 신 끝에 꼭 있어요. 가면 갈수록 분노를 더 참아야 하잖아요. 이미 끝까지 참았는데, 어떻게 더 참아야 하지? 진짜 막 울어야 하나? 분노를 참지 못해서 내 심장이 아픈 걸 어떻게 표현하지?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렇게 참다가 마지막에 한 번 터졌죠.(웃음)" 그런 장면들을 보고 유승호만의 감성의 정체가 무엇일까 궁금했다고 하자, 그가 이렇게 말한다. "해리가 분노를 참는 성격이었는데, 제가 그랬어요. 원래 전 화를 내지 못했어요. 집에서 혼자 울고 그랬거든요. 이게 오래되다 보니 조절이 잘 안되더라고요. 그런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분노를 참지 못하면 심장이 아프다, 라는 말이 너무 정확했기 때문인지 난 말문이 막혔다.



<보고싶 다>의 방영과 함께 유승호의 연기에 관심이 집중되자, 인터넷에서는 유승호의 어린 시절 사진들이 다시 무섭게 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그런 것들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보고싶다>가 유승호라는 배우를 더 궁금하게 만드는 드라마였다면, 그 호기심의 방향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여야 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난 다음에, 다음에는 영화에서도 이런 사이코틱한 역할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전 유승호라는 배우의 작품을 원하거든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물론 상업적인 결과를 생각해야 하지만, 한번쯤은 그런 거 상관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제 필모그래피에 제가 원하는 그런 영화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만족할 수 있는 영화, 너무 이기적인가요?(웃음)" 우리가 이렇게 유승호의 근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 건 그가 재능을 발휘한 덕분이지만, 그는 말끝에 "운이 좋았다"며 모든 공을 운명에 돌려버렸다. 



화보 촬영을 할 때 유승호는 내가 본 그 어떤 배우보다 열심이었다. 해변에 누워 있다 밀려오는 파도에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짠물과 모래를 먹고, 찬 지하수를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그는 원하는 방향의 사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평소 내성적이고 숫기 없는 그가 현장에서 카메라만 돌아가면 확 돌변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기억났다. "변하는 게 아니라 편해지죠. 어쨌든 대본이라는, 이미 예정되어 있거나 준비된 상황을 갖고 유승호라는 배우 느낌대로 표현하는 거니까요. 사람들은 연기할 때 창피해서 어떻게 하냐고 하는데,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건 일이잖아요. 제대로 하고 빨리 빨리 오케이 사인을 받아야 스태프들도 얼른 집에 보낼 수 있잖아요. 물론 주어진 대로 해보기도 하고, 내가 좀 달리 해보기도 하는데, 어느 쪽이든 괜찮아요. 어쨌든 연기를 안 하고 있으면 되게 하고 싶어요." 카메라 앞에서 차라리 편해진다고 말 할 때에는 내 앞에 비누 냄새 폴폴 풍기며 앉아 있는 그가 잔뼈 굵은 베테랑으로 훌쩍 커버린 것 같았다.



웬만하면 아역배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묻고 싶지 않았다. '청년 유승호'에게 '귀여운 꼬마 유승호'란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것일 테니까. 하지만 또한 그건 부정할 수 없이 안고 가야 하는 가족 같은 존재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는 그 시간들이 스스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까? "글쎄요.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다시 태어나도 배우는 절대 안 할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하고 있는 건 내가 그나마 잘하는 거라는 건 분명하니까요. 그리고 어느덧 촬영할 때가 가장 편하니까요. 사람은 재능을 하나씩 갖고 태어난대요. 나의 재능은 뭘까 생각해봤어요. 공부도 아니고, 운동도 아니고. 사실 연기도 아니었거든요? 주변에서 재능을 살려주고 만들어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결핍으로 에너지를 얻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나는 그만의 감성과 생각을 만드는 것, 그 시선의 원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전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이 80명도 채 안 돼요. 제가 마음을 안 여는 이유도 있고요. 사실 혼자 있어도 별 거 안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어색하고 재미없어요.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노력도 해봤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어떻게 변할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제가 이게 가장 편하니까 맞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웃음)"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학교 다닐 때 친구가 없었던 이유가 있어요. 그냥 연예인이니까, 신기하니까 접근하는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마음을 안 열었을 테고요. 물론 진심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그 사람만 아는 거니까요."





난 드라마를 보는 내내 궁금했던 것이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막내조카뻘인 유승호라는 배우에게 내가 (혹은 수많은 여자들이) 열광하는 이유. <데미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상처 받은 사람은 살아남는 법을 안다." 유승호에게는 뭐랄까, 그런 사람만이 목격한 삶의 본질, 비밀을 이미 체득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이 낯설면서도 자꾸만 마음이 갔던 건, 그런 느낌은 보통 대중매체에서 얼굴을 비추는 이들에게서는 좀처럼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설가나 아티스트에게서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감흥이랄까. 유승호는 스무 살이지만, 다른 스무 살 아이돌과는 완전히 다른 대척점에 있다. 청춘스타들이 현재 빛나기 위해 미래를 망각하고, 유혹하고, 마초적인 근성을 풍기며 욕망한다면, 유승호는 건실하게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절제하는 느낌이다. 오랜 시간 쇼비즈니스라는 곳에 발을 들이고는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죽을 만큼 애쓰고 노력하는 청춘스타. 의도하지 않아도 삶의 결과로 얻어지는 생각과 고민들은 유승호를 아주 고유한 배우로 만들고 있다.



인터뷰 말미, 그는 서울로 돌아가자마자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했다. "그 친구들이요? 저한테 별로 관심 없어요. 내가 나오는 드라마에도 관심없고, 만나면 일 얘기는 전혀 안 해요. 그러더니 어느 날 그러더라고요. 너 갑자기 왜 이렇게 인기가 많아졌냐고. 내 참, 친구라는 놈들이 말이야. (웃음)" 그때 자신의 표정이 가장 밝았다는 걸 유승호는 알고 있었을까?






택배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라고 스스로의 상태를 명확하게 정의한 유승호는 군대를 다녀온 자신의 모습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그런 것처럼. "좀 더 남자다워지고 싶어요." '남. 자. 답. 게'라는 네 글자에는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의 치기 어린 남자다움이 아니라 괜찮은 배우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서의 남자다움. "너무나 많은 분들이 날 어릴 때부터 봐오셨으니까요. 내가 몇 살이 되든 <집으로>를 떠올릴 수 밖에 없을테고요. 그래서 전 제 나이답게 그렇게 바뀌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배우들에게 단골로 하는 질문, 꿈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는 일상의 이야기로 이미 꿈을 말했으니까. 현실을 현실처럼 살고, 미래를 미래처럼 사는 것, 그러므로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꿈을 꾸며 지금을 사는 것. 대신 난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유승호에게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요즘 느끼는 건데, 순수한 사람인 것 같아요. 돈 잘 벌고, 인기 있고, 예쁘고, 잘생기고 그런 것보다 정말 순수한 사람. 나이를 한 살 씩 먹으면서도 다 알게 되잖아요. 사람들의 행동을. 왜 어른들이 고등학교 때가 좋았다는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어요. 때가 탄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그런 걸 알아 가는게 싫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얼굴에 적나라하게 나타나요. 그럴때면 제 얼굴이 싫어요. 거울을 별로 안 보려고 해요. 예전엔 좋아했거든요. 샤워하고 나서, 젖은 머리 다 넘기고, 폼 잡고...(웃음)" 어떤 순간에도 순수하고 싶은 청년, 유승호의 눈이 밤이 깊어갈수록 점점 더 길고 그윽해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몇 가지 스케쥴을 소화해야 한다더니, 그 중 하나가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이라는 걸 뉴스를 통해 알게 됐다. 그 출연료를 기부한다는 '유승호다운' 소식과 함께. 다큐멘터리에 목소리를 빌려준다는 건 대중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는 배우라는 아주 결정적인 증거이기에, 반갑기 그지없었다. 엉뚱하게도 한편으로는 혹시 바쁜 스케쥴 때문에 밀레니엄 팔콘을 다 못 만들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그는 지금 얼마나 조립했을까, 그 많은 레고 블록들을 끼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디 그가 포기하지 않고 밀레니엄 팔콘을 완성한 후 입대했으면 좋겠다. 지난 감정, 고민, 성장통을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시킨 후, 다 털어버리고 홀가분하게 다녀오길. 아마 그가 끼운 건 레고 블록이겠지만, 그리하여 그가 완성한 건 '유승호의 청춘'이라는 작품일 것이다. 유승호보다도 우리가 더 영원히 기억할 푸르른 스무 살 인생.





 
그 외에 유승호의 화보 같은 드라마 캡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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