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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26

연산군 이야기 (성종, 폐비 윤씨 이야기 추가) 출처는 박영규의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일단 출발점이 되는 성종 성종의 도학 정치와 조선의 태평성대 (1457-1494, 재위 기간 1469년 11월-1494년 12월, 25년 1개월) "성종은 치세에 능했다. 권신을 견제하기 위해 사림 세력을 끌어들여 권력의 균형을 이룸과 동시에, 유교 사상을 더욱 정착시켜 왕도정치를 실현해나갔다. 그 결과로 그는 모든 기초를 완성시켰다는 뜻의 성종이라는 묘호를 얻었을 만큼 조선 개국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열어갔다." " 성종이 편전을 장악하면서부터 상황은 급변했다. 성종은 우선 조정의 서무 결재에 원로 대신들이 참여하던 원상제도를 폐지하여 왕명 출납과 서무 결재권을 되찾았으며, 김종직 등 젊은 사림 출신 문신들을 가까이 하면서 권신들을 견제했다. 또한 2년.. 2007. 11. 9.
연산군의 여인, 장녹수 - 실제로 엄청난 미인형 얼굴이었을까? 연산군의 여인, 장녹수. 그녀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출처: 네이버 오픈사전 연산군의 여자관계를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여인이 장녹수이다. 연산이 분노했던 그대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은 임금의 황음 내지는 못된 첩이 한 인간과 나라를 망친다는 식의 역사이해를 가져 왔다. 바로 그런 역사관에 의해 연산시대의 악녀로 자리매김된 여인이 장녹수이다. 장녹수는 연산군 8년 3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연산이 승지에게 그녀의 부친 장한필의 내력을 조사시켰다는 기록인데, 이 해부터 장녹수에게 빠졌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 대략 이 때쯤 연산과 장녹수가 만났던 것같다. 장녹수의 아버지 장한필은 문과에 급제하고 성종 19년에 충청도 문의현령까지 지냈다. 그러나 더 이상 크게 출세하지는 못한 것 같다. 어머니는.. 2007. 11. 9.
왕과 나의 김처선 - 실제로는 일곱 임금 거쳐.. 연산군에게 직언했다가 극형 [이한우의 조선이야기] 일곱 임금 거친 환관 김처선의 비극 세종 말년부터 연산군 때까지 세력다툼에 치여 죽을 고비 수없이 넘겨 연산군 폭정에 맞서 직언했다 사지 찢기는 극형… 최근 드라마로 부활 최근 한 공중파 방송에서 조선 초 환관 김처선(金處善)의 스토리를 극화한 드라마를 시작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배우 장항선씨가 연기했던 바로 그 환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극용 인물로는 대단히 성공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실제 행적도 흥미진진한 데다가 생존시기도 세종 말년부터 연산군 때까지 파란만장했던 격동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여기에 극적 상상력이 적절하게 가미될 경우 우리는 오랜만에 멋진 팩션을 만나게 될 듯하다. 실록에 김처선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단종 1년(1453년) 10월 13일자다.. 2007. 10. 9.
"왕의 남자"의 김처선, 그와 연산군의 역사적 진실을 밝힌다 - KBS 한국사전(傳) [제14회] 왕의 남자, 내시 김처선 ■ 방송 : 2007. 9. 22 (토) 20:10~21:00 (KBS 1TV) ■ 진행 : 한상권, 이상호 아나운서 ■ 연출 : 송철훈 PD ■ 작가 : 정종숙 "처(處)자는 김처선의 이름이니 이제부터 모든 문서에 처(處)자를 쓰지 말라." 1505년 4월 1일, 연산군은 내시 김처선을 처참하게 죽이고 '처(處)자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도대체 연산군과 김처선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왕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왕을 보필했던 내시 김처선. 그는 파국으로 치달아가는 왕을 목숨 걸고 지켜내었던 진정한 "왕의 남자"였다. ▣ 영화 "왕의 남자"의 김처선 그에 관한 역사적 진실을 밝힌다! 연산군의 곁에서 평생을 걸고 눈과 귀어 되어주었던 영화의 김처선. 단종부터.. 2007.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