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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역사

조선 건국 직후의 왕씨 제거 작전 - 그 많던 왕씨는 다 어디로 사라졌나? [이한우의 朝鮮이야기(26)] 그 많던 왕씨는 어디로 사라졌나? 조선 건국 직후 강화도 등에 강제이주… ‘왕씨 제거’ 기습작전으로 집단 수장돼 그 많던 왕(王)씨들은 어디로 갔을까? 당시의 통계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500년 가까이 이어진 고려였기에 조선 건국 당시 왕씨의 수는 대단했을 것이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지 사흘 후인 1392년 7월 20일 태조 이성계는 대사헌 민계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고려왕조의 제사를 받들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한 모든 왕씨를 강화도와 거제도에 옮겨 살도록 명을 내렸다. 이성계는 물론이고 신하들도 왕씨의 존재에 대해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당시는 명나라로부터 제대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국내외적으로 불안정 요인이 컸던 것이.. 더보기
왕의 남자는 연산군의 제삿날인걸 알까? '왕의 남자'는 연산군 제삿날인 걸 알까? 폐주 연산군 묘(1) ▲ 연산군 묘역 입구에서 종친들이 제사를 봉향하러 찾는 손님을 맞고 있다. 연산군의 제사를 보러 폐왕의 묘에 갔던 날은 4월임에도 쌀쌀했다. 다 물러간 추위가 다시 오는 듯 비까지 뿌리고 있어, 정리중인 겨울옷 중 오리털 파카를 다시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연산군(1476~1506) 500주기였던 지난 4월 2일, 청명제(淸明祭)를 지내던 그날 하늘은 구름이 잔뜩 껴있어 어두웠고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추운 바람이 불었다. 연산군과 부인 신씨의 묘(도봉구 방학동)에 올라서자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연산군 봉향회, 거창 신씨 대종회에서 참석한 문중 사람들로 붐볐다. 왕릉에서 치르는 왕이나 왕비 기신제에 여러 차례 다녀봤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더보기
연산군에게 폭군이란 딱지는 누가 붙였을까? 연산군에게 폭군이란 딱지는 누가 붙였을까? [이야기가 있는 문화기행-22]실록에 그려진 연산군 ▲ 영화 에서 연산군역을 맡은 정진영. ⓒ 이글픽처스 왕은 왕이로되 왕이 아닌 왕이 바로 연산군이다. 이러한 연산군이 영화 가 뜨자 새로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선 역대 왕 중에서 연산군만큼 소설과 연극, 영화,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에 등장한 연산은 폭군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이번에 뜬 연산군은 마마 콤플렉스에 힘들어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연산군은 폭군이었을까? 그의 재위기간 12년은 실록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하고 로 남아있다. 내용 또한 패악으로 그득하다.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교과서로 학습하고 그것을 자료로 만들어진 소설을 읽고 영화 연극 드라마를 접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