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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113

조선시대 최고의 막말 대마왕은??? 연산군도 광해군도 세조도 태종도 아닌 정조였다. 재미있는 역사 소개 정조의 비밀편지 299통 첫 공개 과격한 언사·노회한 정치··· 기존의 성군 이미지와 거리 다혈질적 성향 반영하듯 비속어·구어 남발 '눈길' 각 당파 원격조정 등 탕평 구도도 통념과는 차이 정조는 어떤 군주였을까. 그리고 조선 후기 정치구도는 어떻게 짜여 있었을까. 정조 대왕은 조선의 왕 중에서도 몹시 입이 험한 편이었는데 이 사실은 최근에 발견된 비밀 편지 299통으로 밝혀졌다. 조선 22대왕 정조가 신하에게 보낸 비밀편지가 발견됐다. 정조의 꼼꼼한 성격, 막후정치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난다. 9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은 정조가 친필로 쓴 299통의 편지를 공개했다. 1796년 8월20일부터 1800년 6월15일까지 작성된 편지로 정조가 노론(老論) 벽파(僻派)의 지도자 심환지(17.. 2013. 2. 7.
[펌] 조선이 생각보다 괜찮은 나라인 이유 1 출처는 미상이긴 한데 여하간에 괜찮은 글 있어서 그대로 옮긴다. 이 분 너무 너무 대단하시다.. 어떻게 이런 학식과 지식과 글솜씨까지... 혹시 문제되면 삭제 예정. 원글자 나타나면 알려주시길. 무엇보다 조선은 무력에 의해 지배되어지는 나라가 아니었다. 동시대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조선의 지배계급은 사적인 무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다. 국가를 운용 유지하기 위해 군사적인 긴장을 이용하지도 않았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해결하고자 군사력을 동원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이익을 취하기 위해 함부로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전쟁을 이유로 민중을 억압하거나 탄압하지도 않았다. 조선의 비교대상으로 언급하는 일본과 비교해보면 그 독특함과 뛰어남이 크게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물론 조선의 양반들에게도 부정적인 부분.. 2013. 2. 7.
[펌] 장희빈, 당쟁의 주모자인가? 희생자인가? 장희빈은 효종 10년(1659)에 역관의 집안에서 태어나 현종 10년 아버지 장경(張烱)을 여의고 숙부 장현의 집안에서 자랐다. 어머니 윤씨가 조사석의 집 종이었던 관계로 조대비의 사촌동생인 조사석과 조대비의 조카사위인 숭선군, 그 아들인 동평군 집안과 가까웠다. 장희빈이 살았던 시기는 북벌론을 주도하던 효종이 승하하면서, 1차․2차 예송(禮訟)이 벌어지고 경신환국․기사환국․갑술환국이 벌어지는 붕당정치의 격동기였다. 이러한 격동기에 장희빈은 현종 15년 2차 예송으로 서인이 실각하고 숙종이 즉위하면서 남인이 정계를 주도하는 시기에 궁중에 들어가 2살 어린 숙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숙종 6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면서 궁 밖으로 쫓겨났다가, 숙종 9년 모후 명성왕후가 승하하면서 다시 궁으로 들어와.. 2013. 2. 7.
수양대군이 세조가 되기 위해서 죽인 사람들 명단 지금에 와서 수양대군을 욕하는 건 현대의 시각이니 어쩌니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충효 사상이 강했던 그 당시에 어린 조카를 폐하고 왕이 된 수양대군이 얼마나 욕을 먹었으면 천재적인 학자였던 신숙주가 몇 백년 간 숙주나물로 불리며 미움을 받았을까? 또한 몇 십년간 왕보다 더한 권세를 누리며 살아간 한명회가 최악의 간신 이미지로 남아있을까? 왜 그렇게나 수많은 사람들이 세조에 대항하여 성공 가능성도 미미한 반란을 그렇게 많이 일으켰을까?? 그는 왜 왕이 되기 전에도, 왕이 되고 난 후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만 했을까? 그가 왕이 된 후에도 끊임없이 악몽에 시달리고 죽은 현덕왕후의 묘를 파기까지 했을까? 김종서의 손자와 수양대군의 장녀인 세희공주가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는 금계필담 같은 .. 2011.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