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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중얼중얼

[펌] 일본인,한국인과는 다른, 5가지 시선

by 파란토마토 2011. 3. 27.

솔직해지자. 일본에 대지진이 오기 전 한국인에게 일본인은 어떤 존재였나?



옷깃만 조금 스쳤을 뿐인데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이라며 사죄하는 일본인의 표정은 상대방마저 미안하게 한다. 엘리베이터가 닫히기 전까지 수차례 머리가 땅에 닿을 듯 인사하고, 엘리베이터가 닫히는 순간 또 인사하는 모습은 좀 부담스럽다. ‘친절한 일본인’이라 칭찬하면서 돌아서면 가짜와 진짜 마음을 구분한다. 가짜겠지?


적개심과 경쟁의식도 생긴다(경쟁심의 뒷모습은 콤플렉스다). 스포츠 경기를 비롯해 별 쓸데없는 순위 경쟁에서 한국이 일본을 이기면 그게 무엇이든 대단한 거다. 한류스타도 그렇다. ‘욘사마(배용준)’ 팬인 50대 일본 아줌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욘사마,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TV 화면을 보면서 내심 그녀를 비웃는다.

저 나이에 웬 호들갑이야? 그래도 묘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배용준이 자랑스럽다.
그토록 수많은 일본 여자를 미치게 한 그는 애국자다, 적어도 그 순간엔.


그런데 지금, 한순간에 역전됐다. 어떤 동요도 없이 팩트만 전달하는 NHK 아나운서의 차분한 얼굴은 ‘절제의 미학’이다. 생수 한 병을 얻기 위해 불평불만 없이 수백m 줄을 서고, 담요를 반으로 찢어 이웃과 나누는 피난민의 행동은 ‘위대한 배려’다.


한국은 찬사를 보냈다. “경제대국 일본의 저력을 확인했다.” “일본을 배워야 한다.” “급하면 큰소리부터 치는 우리 모습을 바꾸자.” 매사 반골 기질 강한 극소수는 이렇게 진단했다. “이 또한 전체주의의 한 단면이다.” 찬사와 비판 사이에도 공통분모는 있다. 이웃나라 한국과 일본, 정말 다르구나….




거리

옆집에 음식을 나눠준다고 가정해보자.

한국: (초인종을 누르며) 옆집인데요, 떡 좀 가져왔어요. 계세요?

일본: (전화기를 들고) 옆집인데요, 떡을 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방문해도 괜찮은가요?


“옆집이라도 갑자기 가는 건 실례입니다. 일단 전화해서 허락을 받고 가는 거죠. 기숙사 사는 학생들끼리야 그렇지 않겠지만 보통 가정은 이래요. 일본인이 ‘언제든 우리 집에 오세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약속도 없이 찾아가면 안 돼요. 혼네(本音·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겉표현)란 말 아시죠? 그걸 구별해야죠. 한국인들은 친한 친구의 집이나 사무실 앞을 지나다 전화해서 ‘지나는 길이야. 잠깐 보자’라고 하잖아요. 일본에선 이런 행동 잘 안 해요.” (한림대 일본학과 사이토 아케미 교수)



일본인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부부 사이에도 더블베드 대신 트윈베드를 쓰고, 친구 사이라도 공과 사는 확실히 구별한다. 친구가 나의 지인 휴대전화 번호를 물어본다면 한국인은 즉각 휴대전화 전화번호부를 검색한다. 그러나 일본인은 지인에게 전화번호를 공개해도 되는지 물어본 다음 가르쳐준다.


일본인은 한국인에 비해 집 내부 공개를 꺼린다. 갑작스럽게 방문하는 경우 현관문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도바타카이기 문화’도 이런 맥락에 맞닿아 있다.


호세이대학 경제학부 박종현(42) 교수는 “약속을 하지 않고 방문한 시어머니를 문 앞에 세워놓고도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웃으며 대화하는 걸 봤다”며 “이런 일본에서 한국처럼 술에 취해 친구에게 전화해 불러냈다면, 그 다음 날 죽을죄를 졌다고 사죄할 일”이라고 말했다.



답례

아는 형이 저녁을 샀다.

한국: “형, 잘 먹었어.” “어, 그래.” 다음 만났을 때 잘 먹었다는 인사를 재차 하면 형은 이렇게 말한다. “너, 또 사달란 말이냐?”

일본: “정말 잘 먹었습니다.” “그때 잘 먹었습니다.” “저번에 잘 먹었습니다.”



“지인이 밥을 사면 세 번은 인사해요. 밥 먹고 난 직후, 헤어지고 나서 메일로, 다음에 또 만났을 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해야 인간관계가 매끄러워요. 아들이 밥을 사줘도 엄마가 나중에 잘 먹었다고 전화한다니까요. 늘 긴장감을 갖고 인간관계를 지키는 거죠. 일본인들 스트레스 많고 아토피 많고  자살률 높은데 이런 이유도 작용한다고 생각해요.”(박종현 교수)


일본인들은 주고받는 것이 정확하다. 타인으로부터 배려를 받으면 수차례 감사함을 표현한다. 선물을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선물로 즉각 보답한다. ‘오카에시(답례) 문화’의 일부다.


‘일본인은 세켄(世間) 속에 산다’는 말이 있다. 일종의 사회적 시선이고 룰이다. ‘일본인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저자인 아베 긴야는 세켄을 이렇게 설명한다.


“세켄은 산스크리트어 ‘로카(loka)’를 옮겨 적은 것으로 일본 고전 문헌에 수없이 등장한다… 만요슈(万葉集),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 등 고문서에 등장하는 세켄은 세 가지 중요한 일본인의 행동 원리로 자리 잡고 있다. 증여상호보답 원칙, 장유(長幼)의 질서, 그리고 공통된 시간 의식이다.”


세켄의 무게 때문에 내면세계에만 묻혀 살아가는 이도 있다. 굳이 히키코모리(외톨이)를 예로 들지 않아도 맥도날드 매장에서조차 칸막이 테이블로 타인의 시선을 차단한 채 햄버거 먹는 일본인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침착

사무실에서 회의하다 초대형 강진이 발생했다. 일부 지방은 쓰나미가 몰려와 헤아리기 힘든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한국: 먼저 전화기를 들고 가족과 통화한 뒤 급히 집에 가거나 뉴스 속보에 집중한다. 나중에야 묻는다. 그 회의 어떻게 됐지?

일본: 강진이 끝나면 회의를 재개한다.


“일본에 계신 엄마한테 들은 얘기인데요. 지진 발생한 그날, 세탁소에서 와이셔츠를 배달해주기로 약속했대요. 지진 나서 차가 막히니까 배달하지 말라고 전화하려 했는데 통신이 끊겼대요. 그런데도 그날 와이셔츠가 배달됐다는 거예요. 일본인은 약속을 중시하는 것 같아요. ‘미녀들의 수다’ 찍을 때도 일본인, 독일인이 제일 먼저 방송국에 도착해요.”(KBS2 ‘미녀들의 수다’ 출연자 후지타 사유리)


일본인은 비상 상황에도 감정을 절제한다. 특별한 상부 지시가 없으면 하던 일을 지속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도쿄 하라주쿠에 사는 양영희(47) 독립영화감독은 “일본인의 눈물은 참고 참다가 새어나오는 울음소리”라고 말했다. 부모 시신이 발견돼도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은 시신조차 찾지 못하는 이들을 배려한 것이라고 했다.


절제는 일본 미학의 핵심이다. 말을 아끼는 문화도 전통예술 곳곳에 배어 있다. 일본의 전통 시 가운데 5, 7, 5의 17개 음으로 이뤄진 짧은 시 ‘하이쿠(俳句)’가 그렇고, 일본의 전통 연극도 배우의 가벼운 몸짓이나 대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약속어를 모르면 감상하기 어렵다.


이런 정서 통제를 전체주의의 단면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건  남에게 폐를 끼치면 보이지 않는 처벌을 받는단 얘기이기도 하다.



나체

대중목욕탕에서,

일본: 수건으로 몸을 가린다. 서로 시선을 피한다.

한국: 홀딱 벗은 채로 다닌다. 일부 손님만 몸을 가린다. 예전엔 수줍음 많은 아가씨들이 수건으로 앞을 가렸다. 요즘은 몸매 안 좋으면 가린다. 괜찮은 몸 나타나면, 자세히 쳐다본다. 괜찮은 몸도 시선을 즐긴다.


“목욕탕에서 수건으로 몸을 가리는 한 알몸은 알몸이 아닌 거죠. 수건을 덮는 행위는 일종의 옷을 입은 것과 같다고 서로 간주합니다. 일본인은 탕 밖에선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탕 안에선 머리에 수건을 올려둡니다. 1970년대에 저의 할머니도 목욕을 끝내면 상반신을 벗고 허리에 천을 두른 채 쉬고 계셨어요. 수치스러운 기색은 없었습니다. 예전부터 전해 내려온 이런 나체 풍습은 많이 소멸됐지만 현재까지도 내려오고 있습니다.”(‘한국 온천 이야기’ 저자 다케쿠니 토모야스)


일본에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목욕하는 혼탕 문화가 있다. 메이지 정부는 일본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혼욕을 미개한 문화로 치부한다고 판단해 1872년 풍속 금지령 53개 조항을 발표했다. 그래도 이 문화는 아직 남아 있다(요즘 혼탕엔 할머니들만 있어서 일부러 찾아가는 음흉한 관광객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일본 혼탕의 남녀는 청결과 피로회복을 위해 한 공간에 모인 몸일 뿐이다.



애매

퇴근 후 친구가 저녁식사를 하자고 권한다. 그런데 오늘 선약이 있다.

일본: “전 좀….”

한국: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선약 있어. 다른 날 어때?”


“일본인이 ‘전 좀…’이라고 말하면 거절의 의미예요.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솔직한 화법이죠. 오해가 생기면 ‘얘기 좀 할래?’ ‘술 한 잔 하자.’ 시원하게 말하는 모습이 일본인에겐 멋져 보여요. 어법이 간접적인 경우가 많아요. 지인을 소개할 때도 ‘∼를 소개합니다’가 아니라 ‘∼를 소개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표현하는 식이죠. 저도 습관적으로 한국어로 말할 때 ‘∼라고 생각합니다’란 표현을 곧잘 써요. 직설적으로 말하면 감정이 상할 수도 있으니 서로 조심하는 거죠. 한국 엄마들은 ‘싸움은 최대한 피하되 정말 싸울 일이 생기면 차라리 이겨라’고 말해요. 일본 엄마들은 무조건 싸움은 안 된다는 쪽이죠.”(사이토 아케미 교수)


화(和)를 중시하는 일본 문화는 에도 막부가 정한 ‘겐카 료세이바이’ 정책과 일맥상통한다. 싸운 사람들은 모두 잘못이 있기 때문에 같이 처벌하는 제도다. 가능한 한 싸움을 없애려는 의도로 만든 제도지만 매사에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적당히 놔두는 문화를 양산했다. 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오에 겐자부로(76)는 일본의 특성을
‘애매모호함’으로 규정했다.


화(和)를 중시하는 태도, 침착함, 친한 사이에도 지키는 예의, 선물에 대한 즉각적인 답례….


모두 배워야 할 것들이다. 그런데 일본 문화는, 어느 하나 비뚤어짐 없이 나란한 도쿄의 보도블록 같다. 반듯하지 않는 보도블록은 도쿄 거리에 나올 수 없다.


한국이 한의 정서라면 일본은 쓸쓸함의 정서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설국’의 중년 남성, 영화 ‘색계’의 양조위, 다들 뒷모습이 서글펐다.


최근 한 일간지에서 이와테(岩手)현 오후나토(大船渡)시 주민인 오타 아키코(大田明子·38)씨 가족 사연을 읽었다. 자폐 증세가 있는 장애아들이 이웃에 폐를 끼칠까 봐 가족 8명이 대피소가 아닌 자동차에서 생활한다는 내용. 이 신문은 이를 배려라고 정의했다. 이 배려도 그랬다. 쓸쓸했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



여러모로 일본은 참.. 무서운 나라.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