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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40

[펌] 연보(年譜)로 보는 연산군의 생애 (수정중) 연보(年譜)로 보는 연산군(燕山君)의 생애(生涯) 이 분의 블로그에 스크랩글이 많아서 이 글도 이 분이 원본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단 내가 찾은 곳들 중에서 가장 먼저 쓰여진 글이므로 이 글을 원본 출처로 링크시켰다. 대부분의 연산군 기록이 그렇듯이 이 글 역시 야사의 기록을 실록과 섞어넣어 신빙성이 떨어진다. 야사서나 실록의 일부분은 내가 찾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직접 링크를 시켰으며, 연대 또한 틀린 점이 많아서 실록에 맞게 수정 중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이 정확히 남아 확인 가능한 부분은 실록에 링크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고전번역원의 야사서에 링크했다. 앞으로도 조금씩 실제 기록을 찾아서 링크시킬 예정이다. 출처: 다음 언덕에서 님의 블로그 1476년 성종 7년 (1세) 11월 7일 삼경.. 2008. 2. 27.
내시들이 정말 왕 독살 주도했을까? 드라마 왕과 나에 그려지고 있는 것처럼, 내시를 '궁중에서 왕권을 위협한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중국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환관의 폐해'니 '환관의 농간'이니 하는 표현이 그런 인식을 더욱 더 부채질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내시제도의 원래의 목적을 알게 된다면 그런 생각은 근거가 없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내시가 왕권을 위협했다는 일부의 통념은 다분히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형성된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 기획 하에서 출발한 것인가를 알아보자. 세계일보 기사 일부 발췌: 원 출처는 제목에 링크 내시들이 정말 왕 독살 주도했을까? SBS 사극 '왕과 나' 계기로 본 환관들의 세계 ◆환관이 국왕 독살 주도?=드라마에서 예종은 판내시부사 조치겸(환관 전균을 모델로 한 가상인물.. 2008. 2. 26.
연산군 때문에 한꺼번에 폐출당한 고모와 조카: 폐비 신씨, 단경왕후 이야기 조선시대의 폐비는 폐비 윤씨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연산군 때문에 한꺼번에 폐출당한 고모와 조카: 폐비 신씨, 단경왕후 가장 유명한 사람은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이긴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쫓겨난 중전은 몇 명 더 있었습니다. 먼저 미친 남편 연산군과 혼인하는 바람에 조용히 살다가 날벼락 맞은 연산군의 부인, 폐비 신씨(廢妃 愼氏, 거창군 부인. 1472년~1537년)는 연산군의 정비(正妃)로 신승선과 임영대군의 딸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거창. 중종의 정비인 단경왕후의 고모입니다. 단경왕후의 아버지는 익창부원군 신수근으로 연산군의 처남이었고 할아버지는 당대의 명신이었던 거창부원군 신승선으로 연산군의 장인이기도 했으며 고모는 바로 연산군의 비(妃)로 그녀의 친정 거창 신씨 가문은 당대 .. 2008. 2. 23.
폐비 윤씨에 대한 단상(부제: 왕과 나의 권력욕 없는 죽음에 대한 불만! ) 왕과 나의 폐비 윤씨 죽음에는 중요한 이유가 빠졌다! 폐비 윤씨를 새롭게 조명한 SBS 사극 왕과 나에서 폐비 윤씨(구혜선)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 드라마의 완성도나 폐비의 잘못을 떠나 그녀가 처연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우울하던 차에 슬픈 장면 나오면 울어버려야지 작정하고 봤는데... 눈물은 안났다 ㅡㅡ; 왕과 나 OST 임형주 부디 어린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는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국모에까지 올랐다가 사모하는 임이 내린 사약을 마시고 죽은 그녀의 비극적인 일생은 정말 드라마틱하다. 폐비 윤씨의 일생도 돌아볼 겸 사약 마시는 장면을 잠시 돌아보자. (사진 출처는 디씨인사이드 왕과 나 갤러리) 오만석, 구혜선 두 배우가 얼마나 연기에 푹 빠졌는지.. 내 가슴도.. 2008.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