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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25

폐비 윤씨 이야기 - 그녀는 왜 폐비가 되었나? 몇 년 전에 미니홈피에 있던 글이라서 어디까지가 원글인지, 정확한 출처인지 기억이 안납니다. 문제가 생기면 삭제하겠습니다. 알려주세요.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 폐비윤씨의 비극을 정확히 이해할려면 이야기는 좀 더 위로 올라가야돼. 때는 세조.(세종의 차남.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했지. 왕이되기전엔 수양대군으로 불렸슴) 세조에겐 아들이 둘 있었는데 첫째가 당연히 세자.(조선의 왕위는 장자승계원칙) 그런데 이 세자가 젊어서 병으로 죽고 20대의 세자빈은 애딸린 청상과부가 됐지. 왕실 법도에 따라 세자빈은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가. 그리고 세조의 두번째 왕자가 다시 세자가 되어 왕위를 이어받아.(얘가 예종) 그런데 예종이 왕위를 이어받고 얼마 안되서 죽어. 당연히 다시 왕위를 이어야하는데 .. 2007. 11. 9.
연산군 이야기 (성종, 폐비 윤씨 이야기 추가) 출처는 박영규의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일단 출발점이 되는 성종 성종의 도학 정치와 조선의 태평성대 (1457-1494, 재위 기간 1469년 11월-1494년 12월, 25년 1개월) "성종은 치세에 능했다. 권신을 견제하기 위해 사림 세력을 끌어들여 권력의 균형을 이룸과 동시에, 유교 사상을 더욱 정착시켜 왕도정치를 실현해나갔다. 그 결과로 그는 모든 기초를 완성시켰다는 뜻의 성종이라는 묘호를 얻었을 만큼 조선 개국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열어갔다." " 성종이 편전을 장악하면서부터 상황은 급변했다. 성종은 우선 조정의 서무 결재에 원로 대신들이 참여하던 원상제도를 폐지하여 왕명 출납과 서무 결재권을 되찾았으며, 김종직 등 젊은 사림 출신 문신들을 가까이 하면서 권신들을 견제했다. 또한 2년.. 2007. 11. 9.
연산군의 여인, 장녹수 - 실제로 엄청난 미인형 얼굴이었을까? 연산군의 여인, 장녹수. 그녀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출처: 네이버 오픈사전 연산군의 여자관계를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여인이 장녹수이다. 연산이 분노했던 그대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은 임금의 황음 내지는 못된 첩이 한 인간과 나라를 망친다는 식의 역사이해를 가져 왔다. 바로 그런 역사관에 의해 연산시대의 악녀로 자리매김된 여인이 장녹수이다. 장녹수는 연산군 8년 3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연산이 승지에게 그녀의 부친 장한필의 내력을 조사시켰다는 기록인데, 이 해부터 장녹수에게 빠졌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 대략 이 때쯤 연산과 장녹수가 만났던 것같다. 장녹수의 아버지 장한필은 문과에 급제하고 성종 19년에 충청도 문의현령까지 지냈다. 그러나 더 이상 크게 출세하지는 못한 것 같다. 어머니는.. 2007. 11. 9.
왕과 나의 김처선 - 실제로는 일곱 임금 거쳐.. 연산군에게 직언했다가 극형 [이한우의 조선이야기] 일곱 임금 거친 환관 김처선의 비극 세종 말년부터 연산군 때까지 세력다툼에 치여 죽을 고비 수없이 넘겨 연산군 폭정에 맞서 직언했다 사지 찢기는 극형… 최근 드라마로 부활 최근 한 공중파 방송에서 조선 초 환관 김처선(金處善)의 스토리를 극화한 드라마를 시작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배우 장항선씨가 연기했던 바로 그 환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극용 인물로는 대단히 성공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실제 행적도 흥미진진한 데다가 생존시기도 세종 말년부터 연산군 때까지 파란만장했던 격동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여기에 극적 상상력이 적절하게 가미될 경우 우리는 오랜만에 멋진 팩션을 만나게 될 듯하다. 실록에 김처선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단종 1년(1453년) 10월 13일자다.. 2007.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