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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역사107

비운의 사도세자, 장인에게 보낸 편지 첫 공개 - 사도세자는 자신의 병을 알고 있었다! 비운의 사도세자, 장인에게 보낸 편지 첫 공개 “나는 원래 남모르는 울화의 증세가 있는 데다, 지금 또 더위를 먹은 가운데 임금을 모시고 나오니, (긴장돼) 열은 높고 울증은 극도로 달해 답답하기가 미칠 듯합니다. 이런 증세는 의관과 함께 말할 수 없습니다. 경이 우울증을 씻어 내는 약에 대해 익히 알고 있으니 약을 지어 남몰래 보내 주면 어떻겠습니까.”(1753년 또는 1754년 어느 날) 사도세자가 자신의 내면을 고백하는 내용을 담아 장인 홍봉한(洪鳳漢)에게 보낸 편지들이 발견됐다. 학계에서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사도세자의 병세와 아버지 영조와의 갈등을 명확히 설명해 주는 자료로 평가하고 있다. 권두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최근 일본 도쿄(東京)대에서 조선시대 영조 장조 정조 3대의 편지를 촬.. 2007. 10. 15.
왕과 나의 김처선 - 실제로는 일곱 임금 거쳐.. 연산군에게 직언했다가 극형 [이한우의 조선이야기] 일곱 임금 거친 환관 김처선의 비극 세종 말년부터 연산군 때까지 세력다툼에 치여 죽을 고비 수없이 넘겨 연산군 폭정에 맞서 직언했다 사지 찢기는 극형… 최근 드라마로 부활 최근 한 공중파 방송에서 조선 초 환관 김처선(金處善)의 스토리를 극화한 드라마를 시작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배우 장항선씨가 연기했던 바로 그 환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극용 인물로는 대단히 성공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실제 행적도 흥미진진한 데다가 생존시기도 세종 말년부터 연산군 때까지 파란만장했던 격동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여기에 극적 상상력이 적절하게 가미될 경우 우리는 오랜만에 멋진 팩션을 만나게 될 듯하다. 실록에 김처선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단종 1년(1453년) 10월 13일자다.. 2007. 10. 9.
"왕의 남자"의 김처선, 그와 연산군의 역사적 진실을 밝힌다 - KBS 한국사전(傳) [제14회] 왕의 남자, 내시 김처선 ■ 방송 : 2007. 9. 22 (토) 20:10~21:00 (KBS 1TV) ■ 진행 : 한상권, 이상호 아나운서 ■ 연출 : 송철훈 PD ■ 작가 : 정종숙 "처(處)자는 김처선의 이름이니 이제부터 모든 문서에 처(處)자를 쓰지 말라." 1505년 4월 1일, 연산군은 내시 김처선을 처참하게 죽이고 '처(處)자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도대체 연산군과 김처선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왕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왕을 보필했던 내시 김처선. 그는 파국으로 치달아가는 왕을 목숨 걸고 지켜내었던 진정한 "왕의 남자"였다. ▣ 영화 "왕의 남자"의 김처선 그에 관한 역사적 진실을 밝힌다! 연산군의 곁에서 평생을 걸고 눈과 귀어 되어주었던 영화의 김처선. 단종부터.. 2007. 9. 22.
쾌도 홍길동?? No, no, 실제로는 연산군 시절 강도 홍길동!!! [이한우의 朝鮮이야기(29)] 실제 홍길동은 연산군 시절 도적 떼의 두목 고위관리 사칭한 강도 행각 실록에 남아… 당상관 등 비호세력 밝혀지며 조정이 시끌 신출귀몰(神出鬼沒)하면 곧바로 연상되는 인물이 홍길동(洪吉童)이다. 지금도 우리는 동사무소나 구청에 가서 각종 서류양식을 작성하려 할 때 표본서류에서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그만큼 한국 사람이 가깝게 느끼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홍길동상(像)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허균이 ‘홍길동전’을 쓴 이후부터 홍길동은 조선 백성들이 학정(虐政)에 시달릴 때마다 메시아처럼 갈구하는 인물로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사실 실록에 기록된 홍길동은 소설 속 홍길동과 다르다. 광해군 때 허균은 세종 때를 배경으로 해서 홍길동을 썼지만 역사 속.. 2007. 4. 12.